대학소식

도시의 운명, 대학에 달려 있다

2018-01-24 1,567

[유니버+시티 Univer+City ‘대학과 도시의 상생발전’
대학총장16인∙지역단체장 7인 뜻 모아… 사회적 동참 제안]

러스트 벨트(Rust Belt)는 제조업발달의 중심지였던 미국 오대호 지역 도시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미국이 ‘후기 산업사회(post-industrial era)’에 접어들면서 제조업 발달의 중심지였던 오대호 지역 도시들의 공장이 멈춰서고 녹이 슬어 유령도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러스트 벨트를 ‘어디에서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의 선 벨트(Sun Belt)로 바꾼 것은 바로 그 지역에 자리잡은 대학들이었다. 미시건 주립대학, 노스웨스턴대학, 위스콘신주립대학, 퍼듀대학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이 보유한 첨단기술과 고급인력이 기존의 숙련노동과 결합하며 도시의 녹(rust)을 털어내고 새로운 제조업의 시대를 열었다. 실제로 러스트 벨트의 경기 회복세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공급원인 연구중심대학과 주요 연구기관이 위치한 지역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에 성공한 해외 사례를 발판 삼아 대학-도시의 협력 모델 구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김도연 총장의 제안으로 뜻을 모은 16명의 대학 총장과 7명의 지역단체장(시장)이 향후 30년을 대비하기 위한 대학-도시 상생의 미래 비전을 내놓은 것이다. 대학을 뜻하는 University의 ‘유니버(Univer)’와 도시를 뜻하는 ‘시티(City)’를 결합시킨 ‘유니버+시티(Univer+City)’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이 책은 각 지역의 상생 전략을 소개하고 사회적 동참을 제안하고 있다. 도시가 쇠락한 이후 뒤늦게 재생에 나서기보다 지금 대학-도시 간 상생의 결단을 내려 지식집약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대학-도시 상생의 미래 비전 내용을 담은 ‘유니버+시티(Univer+City)’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이 책 이미지

‘유니버시티(Univer+City)’저술에 참여한 23명의 리더들은 현재 △각 시와 대학교에서 추진 중인 과제, △대학과 지방 혹은 중앙정부가 서로에게 요청하고 싶은 일, △대학과 도시의 상생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안,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 인재육성 방안에 대한 비전을 각자 제시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 특색에 맞는 고부가가치 산업 개발, 창업 생태계 조성, 도시의 문제해결과 본격적인 협력을 위한 협의체/플랫폼 구축’을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각 지역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규제를 최소화하는 반면 자율성과 재정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진정한 ‘유니버+시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난다는 새로운 의식’과 ‘상생발전을 이끌 리더십’, 그리고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노동·자본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지식기반으로 전환하는 지각변동을 잇달아 겪고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의 48.9%를 제조업이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인구감소와 노령화의 가속화까지 더해져 그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도시들은 지금 사물인터넷·인공지능·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며 소멸위험과 싸워야 하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변화를 도모하는 도시에게 있어 고부가가치 지식 창출과 고급인력 육성을 통해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창직과 창업까지 이끌 수 있는 대학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한편, 대학 입장에서도 우수 인력 유치에 중요한 쾌적한 생활/환경 인프라 제공과 대학의 브랜드 가치 제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도시와 대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이다. 특히 지식집약 첨단산업으로 향해가는 경제구조와 그 변화를 이끌어갈 역량 있는 인재가 요구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고 있다. 대학과 도시의 상생에 해답이 있는 이유이다.

이번 ‘유니버+시티(Univer+City)’ 발간을 이끈 김도연 총장은 대학과 도시의 진정한 상생에 필요한 대학의 역할은 단순한 사회봉사 차원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대학이 그간 교육과 연구를 통해 추구해왔던 인재가치와 지식가치를 앞으로는 창업(創業)과 창직(創職)으로 연계하여 사회·경제발전에 좀 더 직접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6년, 김 총장은 POSTECH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연구중심대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치창출대학’으로서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POSTECH은 대학의 연구환경을 대폭 개방하여 대학 내부 구성원과 외부의 연구소,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각각 ‘BOIC(Bio-Open Innovation Center)’, ‘FOIC(Future-Open Innovation Center)’라 불리우는 2개의 ‘개방형 혁신센터(OIC)’를 주축으로 하여, 포항을 철강도시에 이은 제약산업의 도시이자 ICT 기반의 미래도시(스마트시티)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김도연 총장은 취임 당시부터 “근본적인 혁신과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서는 대학이 바뀌어야 하며, 포스텍이 조금 더 개방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우리나라 전체 대학 사회의 교육과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Flagship, 즉 기함(旗艦)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도시와 대학의 상생발전이라는 국가적인 이슈에 POSTECH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