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8 가을호 / 문화 거리를 걷다 / ‘해야 했던’ 것이 아닌, ‘하고 싶었던’ 것

2018-10-29 104

‘해야 했던’ 것이 아닌, ‘하고 싶었던’ 것

 

웹툰 공모전 1위, 화사이

엄청난 커리큘럼을 자랑하는 포항공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취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곤 해요. 때문에 학교 구성 인원에 비해 상당한 수의 동아리가 존재하며 많은 학생들이 한 개 취미활동으론 도무지 스트레스가 풀리질 않는지 동아리, 자치단체, 분반장이나 과대표 같은 임무도 소화해 내곤 하죠. 그 중에서 저는 미술 동아리 ‘게르브와’ 에서 그림, 특히 만화를 그리며 여유로움을 찾고 있습니다.

게르브와 동아리에서 그린 그림 이미지

저 말고도 개성이 확실한 만화를 그리는 포스테키안이 몇 명 더 있는데, 예를 들면 ‘은이일상’ 은 고퀄리티 일상툰, ‘공대생 김나노’는 아날로그 느낌의 감성툰이고 제 만화는 공감과 유머에 초점을 둔 만화예요. 제 만화는 페이스북 페이지 ‘화사이’에 게시되고 있고, 보통 한 달에 한두 편 꼴로 에피소드가 올라갑니다. 사실 팔로워가 3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페이지라 포스테키안 잡지에 실릴 정도로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생각했는데 저에게도 의뢰가 와서 조금 놀랐습니다.

아무튼 화사이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과 나 정도면 그림 잘 그리지 않나? 하는 나르시시즘 약간, 그리고 관심에 대한 갈망이 합쳐져 2016년 1학기에 처음 만들어 졌어요. 당시엔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하여 지금처럼 아이패드나 태블릿 등 도구 없이 스케치북에 손으로 그린 그림을 스캔해 올렸는데, ‘프로그래밍과 문제 해결’ 수업을 주제로 그렸던 화사이 1화가 저처럼 이 수업에 맺힌 게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만화 페이지로선 괜찮은 출발을 했어요. 이후 만화의 내용은 주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고, 제목이 화찌와 ‘사람들 이야기’, 즉 ‘화사이’인 만큼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휴학하면서 있었던 일 등 제 주위 사람들의 일화들을 2018년 현재까지 그려서 올리고 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도 상상을 뛰어넘는 황당한 일들이 에피소드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화를 그리며 느낀 것은 한마디로 ‘영 좋지않은 캐릭터도 애정으로 키우면 상향 받을 날이 온다’ 였어요. 취미로 시작했던 그림이 점점 익숙해지자, 2016년 가을 ‘던전앤 파이터 UCC 공모전’에서 그림 그리는 과정을 찍어 올려서 3등 상금 100만원을 받기도 하고, 올해 1학기에 있었던 포스텍 웹툰, 스토리 공모전에선 1등 상품 맥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괴로운 날도 많았고, 정말 무너질 것만 같은(무너지고 싶은) 순간도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공부처럼 제가 ‘해야 했던’ 것이 아닌, 만화처럼 ‘하고 싶었던’ 것들 이었습니다. 사물놀이, 교육봉사, 던파, 그림 그리기 등 순전히 저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했던 것들이 결국은 저 자신을 이루는 견고한 핵이 되었고, 전공과 미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들 때도 나와 나의 즐거운 것들은 하루하루 성장한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은 만약 자신이 영 좋지 않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투자해 온 애정(노력)과 시간은 지금도 분명히 힘차게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 아직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확신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거기다 그림도 썩 괜찮은 취미라고 생각하신다면 포항공대 학생회관 2층 게르브와로 오세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쩌면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종부 | 생명과학과 14학번

임종부 | 생명과학과 14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