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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가을호 / 복면과학 / 피뢰침을 발명한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

2018-10-29 34

피뢰침을 발명한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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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Gold.”

“시간은 금이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 명언을 남긴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이 명언은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활약한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이랍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100달러 화폐 속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인데요. 영국령에 있던 미국 국민으로서 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업적을 남겨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또한 그는 전자기학의 시작이라 불리는 ‘연의 실험’을 하고 피뢰침을 발명한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 복면과학에서는 정치, 외교, 과학까지 섭렵하고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에 이르기까지, 강직하게 노력한 그의 삶을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1706년 1월 17일,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난 그의 유년시절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일찍이 글을 깨우쳤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정규 학교는 2년밖에 다니지 못한 채 10살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후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도왔던 그는 독자들의 기고문을 읽으며 독학으로 글 솜씨를 키웠는데요. 그러던 중, 그의 나이 17살에 형 제임스 프랭클린과 말다툼을 벌이고 가출을 해 홀로 필라델피아로 떠나게 됩니다. 그는 글 솜씨를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인쇄업자로 성공하게 되고, 24살에는 인쇄소를 소유하여 정치인들이 즐겨보았던 <펜실베이니아 가제트> 신문의 발행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꾼 과학자 프랭클린

그의 나이 42세, 인쇄 사업이 안정을 찾게 된 후부터 프랭클린은 과학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는데요. 현재 전자기학에서 이용되는 ‘전지’, ‘전하’, ‘충전’ 등의 전자기학 용어도 대부분 프랭클린이 최초로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프랭클린은 당시 등장하기 시작했던 ‘번개가 전기의 일종’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아들 윌리엄과 비구름이 낀 날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이 실험이 바로 전자기학분야를 개척한 실험이라고 평가받는 ‘연의 실험’입니다.

연의 창살에는 전기가 통할 수 있게 긴 철사를 설치하여 하늘로 띄어 올렸습니다. 연줄로 삼끈을 사용하고, 삼끈에 비단 리본을 묶어 매, 그는 비단 리본만 쥔 채 기다렸습니다. 비단 리본은 전기로 인한 쇼크를 막기 위한 부도체의 역할이었습니다.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는 순간 연의 긴 철사부터  전기가 타고 흘렀고, 삼끈과 비단 리본 사이에 있던 금속 열쇠가 대전되었습니다. 프랭클린이 열쇠에 직접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고, 손가락 통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한 날, 그가 남긴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고 하네요. “갑자기 열쇠에서 ‘퍽’하고 불꽃이 일어났다. 매우 강한 충격이었지만 나는 아픔보다는 기쁨이 훨씬 컸다. 이 실험으로 번개가 구름 속에서 생기는 전기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류의 세기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사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실험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실험을 재현하거나 발전시킨 실험을 수행하다 쇼크로 목숨을 잃은 과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위험을 무릅쓰고 성공적으로 실험을 수행했고, 그동안 과학계에서 가설로만 존재하연던 ‘번개도 전기의 일종이다’를 최초로 증명합니다. ‘연의 실험’은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의 학문이었던 전기 분야가 실험과 이론의 학문으로 성장하는 기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실험’’으로 ‘세계를 비추는 전기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 된 프랭클린,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번개의 전기를 이용해 종소리를 내는 실험을 구현하는데요. 구리선과 청동 공을 이용해서 번개를 맞으면 공이 움직여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번개가 치자, 종소리 대신 기다란 백색 광선의 번개가 바닥으로 환하게 내리꽂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번개가 구리선과 종을 지나 땅으로 흡수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뢰침의 원리가 됩니다. 번개를 구름에서 끌어내 안전하게 땅으로 흐르게 할 수 있게 하는 원리이죠. 요즘도 고층 건물의 옥상에 꼭 피뢰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피뢰침도 소재만 조금씩 변화했을 뿐 피뢰침의 원리나 형태는 프랭클린이 처음 발명한 것과 동일합니다. 피뢰침이 발명된 이후, 낙뢰로 인한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극명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가히 ‘세상을 바꾼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과학자죠?

미국의 독립운동에 힘쓰는 정치인까지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 발행인에서 전기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었고,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는 정치인으로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인쇄 사업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세우는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힘쓰며 영향력이 커진 그는 펜실베니아의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영국에 파견되어 미국의 식민지 자주 과세권 획득과 식민지 우편제도 개편 등을 성공시키며 뛰어난 외교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자주권을 얻어냈습니다. 1776년에는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역사에 길이 남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최종적으로 1783년, 파리 조약의 미국 대표단 중 한 명으로 참석하여 미국의 독립의 기쁨을 이끌어내고 미국 초창기의 헌법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미국에서 우상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프랭클린, ‘팔방미인’라는 사자성어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그의 뛰어난 업적 뒤에 있는 그의 강직한 철학들 또한 느낄 수 있었는데요. “타인의 발명품으로 우리가 혜택과 즐거움을 누리듯, 우리는 우리의 발명품으로 타인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가 실제로 자서전에 남긴 문장입니다. 그는 피뢰침 외에도 하모니카, 난로, 다중초점렌즈 등 수많은 발명품을 남겼지만 특허를 출원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실용적으로 쓰일 때 가치가 생긴다고 여긴 만큼 사람들이 본인의 발명품을 쉽게 사용하고, 더욱 발전시키기를 원했던 것이죠. 본인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보다도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꿈꿨던 벤저민 프랭클린, 그의 신념이 위대한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Benjamin Franklin

1706. 01. 17. ~ 1790. 04. 17.

미국의 정치가·외교관·과학자·저술가. 신문사의 경영자, 교육문화활동, 자연과학분야에서 전기유기체설을 제창하는 등의 활동을 했고, 정치·외교적인 분야에서도 활약하였다. 그는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공리주의에 투철한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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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미 23기 이예지 | 화학과 1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