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여름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2019-07-18 457

알리미가 만난 사람 /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님과의 만남

최재천 교수님

과자를 옮기는 개미를 관찰하고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다고 부모님께 조른 경험이 있는가? 어린 시절, 필자에게도 자연은 정말 좋은 친구였고 가장 큰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의 동물과 자연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애정이 꿈으로 이어져 평생을 연구하시는 과학자가 있다. 포스테키안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의 저자로 익숙할 것이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진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 저는 사회(society)를 연구하는 과학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생명과학 중에서도 동물행동학, 행동생태학을 연구하시는 과학자이시다.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느껴질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이 학문이 어떤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소개를 부탁드렸다.

동물행동학이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관찰하고 실험하는 학문이에요. 동물을 연구하는 이유가 동물 그 자체에 대한 관심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을 연구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 분야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이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동물이 어떤 자극에 의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환원주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있어요. 하품은 시작하면 중간에 끊을 수가 없죠? 이렇게 유전자 수준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구체적인 행동의 기작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어요. 그리고 스펙트럼의 다른 한쪽 끝에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들이 왜 모여서 이런 행동을 하고 사는지, 즉 큰 범위의 사회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가 있어요. 개미나 침팬지 등의 동물들이 남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머리를 쓰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죠.

그 중에서도 저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들을 주로 연구하고 있어요. 바나나가 있으면 초파리들이 몰려들지만, 그들은 사회를 이루는 종이 아니죠. 그러나 개미, 돌고래, 침팬지 그리고 인간은 항상 모여서 사회를 이루어 사는 종들이거든요. 이처럼 하나의 종이 모여 개체군을 이루는 형태 중에서, 사회를 가지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개미에서부터 까치, 긴팔원숭이, 침팬지 등의 사회성 동물들에 대해 연구하고 사회 행동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의 키워드는 ‘society’라고 할 수 있어요.

# 여왕개미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SNS의 발전으로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보다 온라인 상의 대화가 주가 되면서 인간의 사회 행동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동물행동학과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와 비교하거나 배울만한 동물 사회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우리는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에 50명, 100명씩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만약 사자였다면, 침팬지였다면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그 동물들은 본인의 영토에 다른 개체가 침범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죽어 나갔겠죠. 그러나 인간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진입할 수 있어요. 무서운 뒷골목 등의 몇몇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요.(웃음) 다른 종과 달리 모일 수 있는 종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어느 순간에 아주 중요한 진화의 순간을 넘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우리는 또 다른 진화 앞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과거에 전화번호부를 쓰던 시절에는 한 사람의 전화번호부가 150개 정도 채워져 있었다면, 현재는 SNS를 통해 수만 명, 수억 명이 모일 수 있죠.

그를 바탕으로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은 우리가 개미와 벌의 사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SNS를 통해 주동자가 없어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예요. 촛불 혁명을 비롯한 여러 사회 활동들이 SNS를 통해 널리 퍼지고, 다수의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있죠. 누군가 한 명의 리더가 나타난 것이 아니거든요. 마치 리더가 없는 개미 사회처럼 말이죠. 여왕개미가 개미 사회의 왕인 것 같지만, 사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일, 국민을 생산하는 일만 할 뿐, 일개미들을 진두지휘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개미 사회처럼 우리도 특별한 한 명의 리더가 필요한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이 의견 교환과 합의를 하면서 일을 해가는 세계가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방황 끝에 직선 도로가 있더군요.

교수님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대학 시절까지 시인, 조각가, 의사 등 진로가 굉장히 다양하게 바뀌셨다. 어떻게 보면 진로 선택에 있어 많은 경험과 방황을 하셨는데, 이때의 경험들이 훗날의 진로와 인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사실 저는 잘 안 풀려서 방황을 한 경험이 있어요. 2년 연속 대학에 떨어졌거든요. 그리고 뒤늦게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생물학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제 길을 찾았어요. 사실 많이 늦었던 거죠. 그래서 학사 졸업 후에 정말 어렵게 준비해서 미국에 유학을 하러 갔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 좋아하는 공부에 맞닥뜨리니까, 그때부터는 직선으로 달렸던 것 같아요. 사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유학을 하러 가면 힘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미국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이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방황을 미리 다 했고 방황의 끝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방황 자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는데, 방황은 실패가 아니에요. 젊은 시절의 방황은 오히려 그 후의 인생을 위한 밑거름이죠.

최재천 교수님과 인터뷰하는 모습

최재천 교수님 기사 사진 및 알리미 인터뷰를 이예지의 모습

# 저는 행복한 과학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오신 동물행동학 연구를 시작하신 계기와 연구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았다.

저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자연을 연구하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저는 정글에 가서 연구한 최초의 한국인인데요. 정글에 가면 연구 진행이 어려워요. 개미핥기도 봐야 하고, 도마뱀이 지나가고 있고, 다 쫓아가면서 보고 싶어서 일이 안 될 만큼 이 일이 너무 재밌고 신납니다. 제 연구와 제 삶 자체가 그냥 휴가인 것 같아요. 아마 제 연구의 원동력은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는 개울물에 발 담그고 사슴벌레, 개미핥기를 들여다 보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냥 노는 것이었죠. 그런데 제가 방황할 때 나타나 주신 한 미국 교수님이 계세요. 하루살이를 연구하시던 조지 에드먼즈 교수님이셨는데, 그분이 일주일 동안 한국에 계시는 동안 조수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운전을 하시다가도 갑자기 신발도 안 벗으시고 개울물에 들어가시더라고요. 이분을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교수님을 통해서 제 꿈을 찾고 길을 찾은 거죠. 그분께 정말 감사해요. 그분께 제가 돌려드릴 수는 없는 거고,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 같아서 중고등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뜻밖에도 강연이나 책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본인의 길을 찾은 것 같다고 느끼는 친구들이 꼭 있어요. 많은 아이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시골 학교에서 초청하는 강연은 하루를 투자해서라도 달려가신다는 최재천 교수님. 인터뷰하는 내내 자연에 대한 애정과 또 그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 세대를 향한 교수님의 애정 어린 응원이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들에게도 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알리미 23기 화학과 17학번 이예지

알리미 23기 화학과 17학번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