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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CH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인터뷰 시리즈] ① 화학 김기문 교수, 36년 POSTECH 연구인생의 항해를 마치며

2024-07-31 2,696

[POSTECH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인터뷰 시리즈]
쿠커비투릴과의 동고동락이 만든 세계적 초분자화학 석학
36년 POSTECH 연구인생의 항해를 마치며

여느 때라면 북적였을 지곡회관과 운동장이 한산하다. 평소보다 조용한 캠퍼스, POSTECH에도 방학은 찾아왔다. 화학관과 생명과학관을 지나 제1실험동으로 가는 길. 건물 입구 게시판에 ‘POSTECH 정년기념 강연’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강연의 날짜는 지난 5월 24일이었음에도 아직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기념 강연의 주인공은 POSTECH 화학과의 김기문 교수. 그는 오는 2024년 8월 31일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기념 강연에서 발표한 강연자료 ‘My Voyage’에는 지난 수십 년의 연구인생이 담겨있었다. 서울대 화학과 72학번으로 입학했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의 유신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제명처분을 받았다가 가까스로 복학했다. 초분자화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학부생 시절 제명당해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후 KAIST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노스웨스턴대학에서 X선 결정구조학을 공부했다. 1988년 미국에서 연구자 생활을 이어가던 그의 다음 목적지는 POSTECH이었다. 이제 개교한 지 막 3년을 향해가는 신설학교였지만 학교의 건립이념, 그리고 초대 김호길 총장의 설득이 김기문 교수의 키를 POSTECH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게 POSTECH에서의 연구 여정이 시작됐다.

김기문 교수는 올해로 만 70세를 맞았다. 다른 교수들과 달리 70세에 정년퇴임을 하게 된 건 지난 2017년 POSTECH에서 제정한 ‘유니버시티 프로페서(University Professor)’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1930년대부터 시행된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제도는 세계적 석학에게 칭호와 함께 최상의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OSTECH은 국내 사립대학 최초로 정년을 만 70세까지 연장하는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제도를 도입했으며, 첫해 김기문 화학과 교수와 조길원 화학공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현재 유니버시티 프로페서는 김기문 교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으로, POSTECH 내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영예로운 직함이다.

POSTECH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김기문의 36년의 여정은 곧 끝을 준비한다. 하지만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하지 않는가. 김기문 교수를 만나 그간의 연구생활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 지금의 교수님을 있게 하신, 연구 원동력이 됐던 스승이 있으신가요?

여러 분이 계시지만 스탠퍼드대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제임스 콜먼(James P. Collman) 교수님을 첫째로 꼽고 싶습니다. 그분은 항상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죠. 스스로도 뛰어난 학자일 뿐 아니라 이런 가르침으로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배리 샤플리스(K. Barry Sharpless)와 로버트 그럽스(Robert H. Grubbs) 입니다. 이 가운데 샤플리스는 2001년과 2022년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죠. 콜먼 교수님의 말에 자극받아 저도 늘 ‘홈런을 치겠다’는 각오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 김기문이라는 연구자를 대표하는 ‘아이콘 연구를 꼽으신다면요.

단연코 ‘쿠커비투릴’(cucurbituril)입니다. 쿠커비투릴은 글리코루릴(glycoluril)이라는 단위체 6개가 둥글게 연결된 ‘속이 빈’ 호박 모양의 분자로, POSTECH에 와서 30년이 넘게 쿠커비투릴 동족체 및 유도체를 합성하고 이를 이용한 기초 및 응용 연구를 수행하면서 전세계를 선도하여 쿠커비투릴은 우리 연구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쿠커비투릴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988년 햇병아리 교수로 POSTECH에 부임하면서 미국에서 했던 연구는 모두 접고 당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초분자화학(supramolecular chemistry)’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공유결합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화학과 달리 초분자화학은 분자간에 작용하는 약한 인력을 이용하는 학문입니다. 이러한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약한 인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platform) 분자가 필요한데, 1990년 초 도서관에서 학술 잡지를 보다가 쿠커비투릴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쿠커비투릴은 1905년 독일의 로버트 베렌드(Robert Behrend)가 처음 합성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 화합물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한동안 잊혀졌다가 1980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윌리엄 목(William Mock) 교수가 합성을 재현했는데, 현대적인 분석방법을 통해 쿠커비투릴의 실체와 구조를 알 수 있었죠. 분자 구조나 포함하고 있는 작용기를 본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연구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에 대한 연구가 끊긴 상태였는데, 쿠커비투릴을 녹일 수 없기 때문이었죠. 대부분의 화학은 용액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녹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4-5년간 고생만 하고 이렇다 할 연구 결과가 없어서 포기를 하려고 하던 즈음에 아주 사소한, ‘우연한’ 발견이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소금(Na₂SO₄)물에 쿠커비투릴이 녹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쿠커비투릴 연구의 새 지평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새 지평이 열리다니,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일단 녹이는 방법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일사천리였습니다. 우선 쿠커비투릴 내부에 작은 분자를 가두거나 방출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를 “분자 술통(molecule barrel)”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1996년 10월 미국화학회지(JACS)에 실렸습니다. 해당 연구성과는 미국 화학회가 발행하는 주간지 C&EN(Chemical and Engineering News)에도 소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연구가 이 잡지에 소개된 것은 이 논문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연구뿐만 아니라 쿠커비투릴 분자들을 줄줄이 꿰어 “폴리로택산(polyrotaxane)”이나 “분자목걸이(molecular necklace)”와 같은 구조적으로 흥미로운 초분자 구조체들을 만드는 연구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2016년도 노벨 화학상의 주제인 “분자기계(molecular machine)”의 개발과 맞닿아 있습니다.

쿠커비투릴 동족체와 유도체란?

우리가 쿠커비투릴에 대한 연구하면서 늘 의아하게 생각하던 것이 왜 반응에서 6개의 글리코루릴이 포함된 것만 생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도 끝에 기존의 6개의 글리코루릴 조각으로 이루어진 쿠커비투릴 (이후 CB[6]라 표기함) 이외에 합성 조건을 달리하면 글리코루릴이 5개부터 11개까지 포함된 쿠커비투릴 동족체(homologues)들이 생성됨을 발견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CB[5], CB[7], CB[8]을 순순하게 분리해 내고 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1). 앞서 CB[6]를 ‘분자 술통’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이제 크기가 다른 여러 가지 술통을 만든 것이죠. 그 크기에 따라서 다양한 분자들을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숭실대에 있는 김자헌 교수가 주저자로 참여한 이 연구 결과도 미국화학회지에 실렸고 미국에서 물질 특허를 받았습니다. 초분자화학 분야에서 이정표적인 연구로 꼽히고 있지요.

<그림 1. 호박과 쿠커비투릴 동족체들.>

또 다른 중요한 일로 쿠커비투릴 유도체(derivertives)의 합성을 들 수 있습니다. 쿠커비투릴의 측면에 다양한 화학적 작용기를 도입하는 합성법을 개발한 것이죠. 이를 통하여 쿠커비투릴을 특정 분자나 물질과 결합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쿠커비투릴 관련 연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국제학회 설립과 저술활동도 활발히 하셨는데요.

앞서 설명한 일련의 연구들을 통하여 쿠커비투릴 화학을 개척하여 새로이 정립하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그 결과 이 분야가 커지면서 국제학회도 생겼습니다. 2009년 첫 학회가 POSTECH에서 열렸고 이후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쿠커비투릴 관련해 책도 두 권 썼습니다.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칼리지 출판사가 집필을 요청해서 쓴 교과서 ‘쿠커비투릴: 화학, 초분자 화학 그리고 응용 (Cucurbiturils: Chemistry, Supramolecular Chemistry and Applications)’이 2018년에 나왔습니다. 1988년에 귀국해 연구 주제로 삼아 개척한 쿠커비투릴 분야가 교과서를 집필할 정도로 권위를 갖게 됐다는 사실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후 영국왕립화학회도 쿠커비투릴 분야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책을 쓰거나, 편집자가 돼 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2019년 11월 ‘쿠커비투릴과 관련 거대고리(Cucurbiturils and Related Macrocycles)’가 출판되었습니다.

쿠커비투릴 연구 외에도 다양한 연구를 하신 걸로 아는데

분자들이 스스로 모여 특정한 구조의 초(超)분자체가 되는 현상을 자기조립(self-assembly)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중점을 두어 연구했던 또 다른 분야는 자기조립을 이용한 ‘분자 건축물 짓기’입니다. 특히 금속이온과 유기분자를 연결시켜 미세한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metal-organic porous material)을 만들 수 있는데, 이런 물질은 높은 표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흡착제나 촉매로 널리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2000년 Nature에 실린 ‘POST-1’인데, POSTECH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물질이 특별했던 것은 구멍이 키랄(chiral)성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키랄이란 왼손과 오른손처럼 대칭적인 모양이지만 서로 겹쳐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러한 성질을 가지는 분자를 키랄 화합물이라고 부릅니다. 키랄 화합물은 분자를 구성하는 요소는 같지만 화학적인 특성이 전혀 다른 이성질체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인 탈리도마이드의 이성질체를 복용한 임산부가 기형아를 낳는 부작용이 나타나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지요. 그래서 신약을 개발할 때 필요한 이성질체만 골라내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POST-1은 이러한 이성질체를 골라내거나 선택적으로 합성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최초의 키랄 다공성 결정물질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3700회가 넘게 인용되고 있고, Nature에서는 이 논문을 1950~2000년 사이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 35편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죠.

연구 리더로서도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열심히 하였고 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정부에서 새로운 연구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마다 가장 먼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997년 창의적연구진흥사업에 선정돼 지능초분자 연구단 단장을 역임했고, 2009년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WCU) 사업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첨단재료과학부의 연구책임을 맡았죠. 2012년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단장으로 선정돼 연구단을 이끌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쿠커비투릴 학회를 조직하고 2년마다 열리게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초분자화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회인 ISMSC를 비롯하여 Gordon Research Conference, Solvay Conference 등 저명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초청 강연자로 참가하여 우리나라 과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상을 받았는데 어떤 상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부끄럽게도 과분한 칭찬을 듣고 살았습니다. 국내적으로는 한국과학상(2002), 호암상(2006), 최고과학기술인상(2008) 등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대부분 다 받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호암상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의 피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후보자가 될 수 있다 보니 모든 한국인 중에서 받았다는 의미에서 가장 영광스럽습니다. 국제적으로는 2002년 한국인 최초로 제3세계 과학아카데미상 수상했고, 201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명예교수로 헌정되기도 했습니다만, 2012년에 받은 아이잣-크리스텐슨(Izatt-Christensen award)상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상을 받은 분들 중에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고, 울프상 수상자도 두 명이 나왔습니다. 울프상은 수상자의 30% 정도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다 보니 프리-노벨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IBS의 연구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1년 ‘화학의 해’를 맞이하여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한 ‘논문 피인용지수 기준 세계 100명의 화학자’에 한국 화학자가 3명이 포함됐습니다. 저와 KAIST 유룡 교수, 서울대 현택환 교수였죠. 2012년 IBS가 출범하며 이들 모두 IBS 연구단장이 됐습니다. 저는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을 이끌게 됐죠. 생체 내에서처럼 복잡한 시스템에서 ‘분자인지(molecular recognition)’ 현상과 ‘자기조립’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했습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쿠커비투릴에 대한 기초 연구를 기반으로 바이오 분야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새로운 방법(tool)을 개발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CB[7]과 아다만탄(adamantane) 분자는 매우 강하게 결합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단백질 기반 약물의 정제법을 개발하였고(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2020), 세포 소기관 사이의 소통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분리, 동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Nature Commununications 2024). 또한 자기조립에 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이차원 고분자를 합성하는 것에 도전하였습니다. 분자 디자인과 반응의 조절을 통하여 용액상에서 주형 없이 단분자 수준의 얇은 필름 행태로 고분자를 합성하는데 성공하였고, 도핑으로 반도체적 성질을 가지도록 할 수도 있었습니다. 관련 논문이 올해 Chem에 게재되었는데, 학계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같은 산업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락이 왔습니다.

정년이 연장되며 남들보다 5년을 더 연구하셨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셨나요?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은 만큼 한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인 만큼 무언가 획기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소리의 파동을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데 이용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는 주파수 영역이 광범위한 만큼 다양한 용도가 있는데, 그중에서 소위 들을 수 있는 가청음은 화학에서는 거의 이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가 너무 낮기 때문이죠. 반면에 물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활용되었습니다. 물리학자면서 음악가인 독일의 클래드니(Ernst Chladni)는 얇은 철판 위에 모래를 뿌리고 바이올린 활로 철판을 긁어주면 재미있는 패턴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고, 저명한 영국의 물리학자인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진동을 주면 물 표면에 이러한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패러데이 웨이브’라고 불리는 것이죠. 이러한 두 세기 전 물리학자들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도전한 끝에 소리를 이용해 화학 반응을 시공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관련 내용이 2020년 Nature Chemistry에 발표되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기초연구 성과로는 드물게 유명한 경제잡지인 포브스(Forbes)지에도 소개됐죠. IBS 연구단을 하면서 한 가장 자부심 넘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일은 연구 외적으로도 저에게 좋은 추억을 남긴 일이었는데요, 화학 반응과 소리의 조화를 통하여 얻은 심미적 패턴 이미지는 ‘소리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작품명으로 ‘제5회 아트인사이언스’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그림 2). 사진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연구를 시발점으로 소리를 이용한 화학 반응 조절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 지난 5년간 주로 한 일입니다. 정년이 연장되지 않았다면 빛을 볼 수 없었던 일들로,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도전적이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림 2. 제5회 아트인사이언스 대상 수상작 ‘소리 붓으로 그린 그림’.>

최근까지 이런 우수한 연구 성과를 냈는데 정년이 다가왔습니다.

아쉽지요. 조금 격하게 표현하면 한마디로 ‘서든 데스(sudden death)’입니다. 물론 갑자기 퇴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선 갑작스런 죽음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학생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고, 연구비도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모든 연구가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쿠커비투릴 연구는 다행히 한 기업에서 이 물질의 활용 가능성을 주목해 2년간 지원을 약속해주어 작게나마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퇴임 후 2년 정도는 그 일에 전념해 볼 생각입니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퇴임을 앞두신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연구 성과라는 것이 젊은 신진 연구자들의 아이디어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축적에서 비롯되는 것들도 적지 않죠. 경험을 가진 시니어 연구자들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충분한 연구 경쟁력을 인정받는다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 리그’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주니어 연구자들이 시니어 연구자와 같이 한 울타리에서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경우는 동향이 어떠한가요?

미국은 이미 1980년대 초에 대학 교수의 정년이 없어졌습니다. 유럽도 영국의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 등에만 일부 남아있고 대부분 없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 체력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에 비해 밀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동안의 경험이 있지요.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기회 자체를 없애버려선 안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제 인구절벽을 맞이하며 연구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고경력 연구자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미 미국 하버드대의 일부 교수들은 노령에도 70~80명의 연구원을 데리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POSTECH은 우수한 자원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이유로 주목을 덜 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 등으로 학교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다소 부각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선 동의합니다. POSTECH은 포항에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을 만들어 보겠다는 故 박태준 POSCO 회장의 의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서울대의 교수직 제안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지방에서도 우수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POSTECH에 남게 되었죠. POSTECH에는 우수한 교수들이 있고, 또 우수한 학생들이 성장하는 곳입니다. 가속기를 비롯한 연구 인프라도 훌륭하죠. 이러한 연구환경이 우수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라고도 생각합니다.

POSTECH 출신들이 굉장히 동료의식이 강하다고도 알려져 있는데요.

POSTECH 캠퍼스 안에 체인지업 그라운드라는 창업보육시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창업기업의 입주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POSTECH 동문 기업들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문 기업들 협의체도 구성이 되어 있고요. 학교의 역사가 아직 40년이 채 안되다 보니 동문의 수가 적지만, 함께 뭉쳐 큰일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직접 기부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호암상 수상 후 받은 상금을 기부하여 화학과 우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외 유명 학자들을 초청하여 강좌를 개설할 목적으로 정년을 맞이하여 발전기금을 출연하였고, 향후 틈틈이 보탤 예정입니다. 이를 통하여 POSTECH이 더 글로벌하게 거듭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교수 김기문의 뜻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와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한 꿈을 후학들이 꼭 이뤄줬으면 합니다. 저의 인생관 같은 금과옥조가 있다면 ‘이제부터가 승부다’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부터 진짜 승부가 시작된 것이라는 거죠. 혹여 조금 부족했더라도 그전까지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진심을 다하면 됩니다. 또 저의 은사이신 콜먼 교수님의 조언인 ‘항상 큰일을 생각하라’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큰일을 생각하다 보면 부수적인 많은 일들이 따라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POSTECH의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큰일을 이뤄나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