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준 교수님의 삶의 철학:
실패 속에서 배우는 성장의 길
글. 신소재공학과 23학번 29기 알리미 윤현서
‘POPO’ 코너는 알리미들이 포스텍 교수님들을 만나 학창 시절의 경험, 삶의 철학, 그리고 고등학생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이번에는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정성준 교수님을 모셨는데요. 교수님의 독특한 학창 시절 이야기와 연구 분야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시죠!
교수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포스텍 정성준 교수입니다. 2013년에 창의IT융합공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여 현재는 신소재공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영국 Cambridge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물리학과 Cavendish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친 뒤 포스텍에 오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계시다가 다소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러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과감한 결정을 하시게 되셨나요?
저는 석사학위를 하고 당시 회사의 중점사업 중 하나였던 디지털프린팅 사업부, 그중에서도 잉크젯 헤드 개발 선행연구팀에서 근무했습니다. 물론 제가 원해서 들어간 부서는 아니었어요. 어느 누가 삼성전자에 ‘나는 프린터 국산화를 위한 개발자가 될 거야!’라는 꿈과 포부를 갖고 입사하겠어요? 가끔은 내가 개척할 수 있는 인생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내 진로가 남에 의해 결정되고 그 결정을 따라 열심히 살아야 할 때도 있더라고요. 당시 잉크젯 프린터가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잉크젯의 핵심기술인 헤드(또는 카트리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어요. 가장 중요한 헤드는 HP에서 전량 수입하고, 회로부와 급지부 등의 시스템만을 만들어 제품을 팔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삼성에서는 헤드 기술 확보에 많은 투자를 했고, 그 연구개발 업무를 3년 반가량 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배울 점도 많고 복지도 좋지만, 과학적 원리를 파악하여 연구하기보다는 당장의 제품 개발 성과를 추구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주도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기보다는 큰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지만, 연구자로서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며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갈수록 커지더라고요.
당시 입사 2년 만에 제 직급에서는 유일하게 A 고과를 받을 만큼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고 월급과 연말 보너스도 정말 좋았지만, 안정적 수입과 정해진 미래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유학에 도전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셨고, 케임브리지에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제가 학부 때는 전자공학, 석사 때는 광통신 분야를 공부했는데요, 박사학위 기간에는 케임브리지 공과대학 내 잉크젯 연구센터에서 프린팅에 사용하는 기능성 잉크의 유체/유변학적인 특성 평가와 마이크로 액적 연구를 했어요. 프린팅용 기능성 잉크에 대한 연구 주제는 삼성에서 잉크젯 헤드 개발을 했던 팀 내에도 전문가가 없었고 관련 지식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저 역시 연구개발 경험은 있지만 학문적 지식이 없었던 분야여서 정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선정했습니다. 역시나 생소하고 어려운 주제여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서른 살의 나이에 20살 학부생들이 듣는 유체역학 수업을 청강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사학위 때 연구만 열심히 했던 건 아니었어요. 케임브리지가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학교 중심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 온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곳이었거든요. 연구실 안에만 있기보다는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문화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봉사동아리에서 외국 학생들의 정착을 돕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동아리 회장도 역임했습니다. 또한 당시 영국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분이었던 Sir. Stephen Cleo bury가 이끄시던 합창단 오디션에도 합격해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다니기도 했어요. 100여 명의 단원중 유일한 아시아계 남성이어서, 연습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도전이었죠. 그래도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케임브리지 800주년 기념공연과 유럽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Royal Albert Hall에서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와의 협연으로 영광스러운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를 같이 썼던 여러 다국적 친구와 많은 대화와 교류를 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지금 교수로서 학생을 지도할 때도, 연구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림 1. 2015년 연구실 사진
그림 2. 2023년 연구실 사진
그림 3, 4. 정성준 교수님 연구실에서 제작한 플렉서블 전자회로 Flexible circuit using 3D-printed NAND technology
현재 수행하고 계시는 연구를 소개해 주세요.
저는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프린팅 관련 기초 연구와 가변형 전자공학 분야, 그리고 인공장기 분야를 연구하고 있어요. 가변형 전자공학 연구의 시작은 새로운 재료의 발견이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플라스틱은 탄소, 수소, 질소 같은 가벼운 원소들의 공유결합으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인데요, 일반적으로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이죠. 그러나 플라스틱 재료를 탄소 단일결합과 이중결합이 번갈아 가면서 연결되게끔 합성하면 전기가 흐르는 도체가 됩니다. 이러한 고분자 재료는 잉크와 같은 액상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보니, 이미지를 출력할 때 사용하던 다양한 프린팅 기술들을 염료나 안료 잉크를 사용하여 상온에서 손쉽게 반도체나 센서 같은 전자 소자를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인공장기 분야에 적용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나 콜라젠과 같은 유기고분자 소재들도 잉크와 같은 액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바이오 잉크들의 물성을 프린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조절하여, 연구자가 디자인한 대로 다양한 세포와 바이오 소재들을 적층한 뒤 프린팅함으로써 인공 장기와 조직을 제작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저는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연구를 발전시키다 보니 반도체, 회로, 바이오센서, 인공 폐, 인공 피부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한 연구실에서 훌륭한 연구진과 수행할 수 있는 점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요즘에는 가변형 유기 전자기술과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의 접점에서 독자적인 바이오 전자공학 융합연구에 큰 노력을 쏟고 있는데요,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한 (좌)화학공학과 23학번 29기 알리미 김세민 (우)신소재공학과 23학번 29기 알리미 윤현서
마지막으로 포스테키안 독자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큰 꿈이 있거나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던 학생이 아니었어요. 대학교 때는 학사경고를 연속 2번 받아 퇴학의 위기에 놓였던 적도 있었죠. 방황과 실패의 시기를 지나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때에 정말 최선을 다해 지냈고, 하나씩 성취하고 전진해 오며 생각지도 못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 중에 지금 힘들지만 훌륭하게 학업을 해오는 학생들에게는 격려와 파이팅을 드리고요, 혹시라도 부침과 좌절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포기하지 말고,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해보세요. 각자 꽃 피는 때가 다른 것 같아요. 여러분의 때가 반드시 올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