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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나만의 템포로 빚어내는 화음

  • 등록일2026.05.18
  • 조회수371

나만의 템포로 빚어내는 화음


글. 화학과 21학번 이상빈


안녕하세요,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 화학과 21학번 이상빈입니다. 어느덧 학부 과정의 마지막인 4학년에 접어들어, 전공 학업과 고분자 합성 연구실 학부 연구생 생활을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포스텍 학생이라고 하면 어릴 적부터 과학과 친했을 것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진로를 꿈꿔왔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어떻게 지금의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그림 1. 2023년도 한동대학교 오케스트라 객원 연주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만 6세였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거의 동시에 접하게 되었고, 어려서 워낙 내향적이었기 때문에, 혼자 앉아서 하루 종일 세 악기를 번갈아 연습하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몇 년간 꾸준히 훈련받은 결과로, 초등학생 고학년쯤에는 지역 내의 여러 콩쿠르에서 피아노와 첼로 부문으로 출전하여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보다는 첼로에 더 애정이 있었던 저는 초등학생 시절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첼로에 투자하며 첼리스트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림 2. 청소년 오케스트라 향상음악회 (만12세)


‘난 연습하는 게 너무 좋아!’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악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습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왼손 손가락 끝은 굳은살이 수십 번 생겼다가 떨어졌습니다. 활을 쥐는 오른팔은 멀쩡한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음정이 틀리거나 원하는 음악이 나오지 않을 때 너무 화가 나 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악기를 계속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대에 서서 박수받을 때 그 떨림이 어린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하는 경험이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지역 전체 콩쿠르 예선을 앞두고 있던 날 손목 골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깁스를 한 저는 몇 달간 악기를 연습할 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음악가의 진로와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음악을 잠시 내려놓고 공부에 전념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취미 시간엔 틈틈이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삭막한 고등학교 생활을 그나마 취미활동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대학 생활 중 음악 활동

포스텍에 진학한 후,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된 새내기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저는 답답함과 함께 어려운 대학 공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습니다. 결국 22학년도 1학기에 휴학을 결심하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서울에는 아마추어 클래식 음악가가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로부터 저의 두 번째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전국의 대학생과 사회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취미로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되었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대학 연합 오케스트라(AOU)의 Monomyth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서강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 다양한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및 가우디움, Chaos 등 사회인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또는 수석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인천아트센터, 부천아트센터 등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도 정말 좋았습니다. 꿈만 같았던 한 학기가 지나고 다시 포스텍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AOU Fantasia 프로젝트의 첼로 수석을 맡게 되어 매주 주말마다 서울과 포항을 왕복하며 지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마음에 드는 곡을 하는 오케스트라에 오디션을 보고, 틈만 나면 악기를 품에 안은 채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을 오갔습니다.


그림 3. 2023년도 가우디움 정기연주회 (말러 5번 교향곡)


교내에서도 ‘포스텍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음악 동아리 ‘한울림’에서틈틈이 활동했습니다. 22년도 2학기 초에는 한울림에서 슈만 첼로 콘체르토로 협연했고, 이듬해 23년에는 한울림 정기 공연에서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23년에는 포스텍 오케스트라에서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악장의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또, UNIST에서 주최하는 실내악 캠프인 UPAF에 2회 연속 참석하며 과학기술원 소속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실내악 무대에도 오를 수 있었습니다.

24년에는 육군사관학교 군악병, 그중에서도 색소폰 연주병으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을 같이했던 분들은 대부분 음악 전공자인 대학생 혹은 연주자들이었는데, 어린 시절 꿈이던 직업을 실제로 가진 사람들의 곁에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색다르고 재미있었습니다. 전역 후에도 공부와 악기연주를 병행하면서, 바쁜 복학생의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림 4. 2024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참가 (육군군악대)


진로에 대한 마음가짐

최근 문득 깨달아가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음악은 논리적으로, 과학은 감성적으로 풀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모순 같지만, 무대 위에서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했던 일은 음표 간의 당위성을 설계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음악에서 풀어가기 위한 철저히 논리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반대로, 차가운 플라스크 속에서 화합물을 설계하고, 실패 속에서 직관을 발휘해 원하는 물질을 합성해 내는 과정은 다분히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과학자이자 예술가가 되고 싶은 저는, 가끔은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모두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 전혀 다를 것 같았던 이 두 세계가 사실은 깊은 곳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를 보완해 주며,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 글을 읽고 계실, 진로를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고등학생 여러분께도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흔히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길을 확고히 선택하고 나머지 가능성을 모두 잘라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쏟고 있는 엉뚱해 보이는 열정이나,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취미가 훗날 여러분의 본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영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당장 하나의 완벽한 길을 정하지 못했다고, 혹은 남들과 다른 선택지를 쥐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치열하게 계산하고 때로는 직관에 몸을 맡기며, 두려움 없이 다양한 길을 탐색하고 여러분만의 고유한 화음을 찾아 나가시길 바랍니다. 저의 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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