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교수님들의 이야기
포스텍의 밝은 빛으로 물의 비밀을 보다
글. 포스텍 화학과 김경환 교수
안녕하세요, 포스테키안 독자 여러분. 저는 포스텍 화학과에서 X-ray Scattering & Spectroscopy Lab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환입니다. 현재 11명의 학생과 함께 4세대 가속기의 강력한 X선을 이용해 분자와 물질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고, 그 변화가 화학 반응과 물질의 특성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연구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분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빠른 변화를 직접 보는 연구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 매력을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모든 변화는 원자와 분자가 움직이고, 서로 만나고, 결합이 끊어지고, 새로운 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간접적으로 추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관찰하며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너무 작고 빨라서 보통의 방법으로는 직접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림 1. 김경환 교수님 연구실 사진 1 / 그림 2. 김경환 교수님 연구실 사진2
우리 연구실은 이러한 순간을 보기 위해 강력한 X선을 사용합니다. 특히 포스텍 가까이에 있는 PAL-XFEL, 즉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우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PAL-XFEL은 강렬한 태양빛보다 무려 100경 배 이상 더 밝은 빛을 만들어 내며, 이 빛을 활용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직접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시설은 매우 제한적이며, PAL-XFEL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최첨단 시설입니다. 많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PAL-XFEL에서의 실험 기회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포스텍의 연구자들은 이 세계적 연구시설을 가까이에 두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중요한 질문을 떠올렸을 때, 그 질문을 완전히 새로운 실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포스텍이 가진 아주 특별한 장점입니다.
저에게 PAL-XFEL은 더욱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2017년 PAL-XFEL에서 수행된 역사적인 첫 번째 실험을 주도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실험은 물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당시 우리가 도전한 것은 영하 45℃의 낮은 온도에서 얼지 않은 상태의 물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온도에서 물은 너무 빨리 얼어버리기 때문에, 당시까지도 과학자들은 이를 직접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림 3. PAL-XFEL 최초 실험 당시 MBC 뉴스 출연 사진 (MBC뉴스 영상 갈무리)
하지만 우리는 PAL-XFEL의 강력한 빛을 이용하여, 물이 얼어버리기 전의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실험을 포스텍의 새로운 빛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그 시설의 첫 번째 실험으로 보여준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실험 수행 후 단 3개월 만에 Science지에 출판되었으며, 덕분에 저는 PAL-XFEL의 실험을 바탕으로 한 첫 번째 논문을 출판하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실은 지금도 PAL-XFEL을 이용해 다른 방법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새로운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대표적인 대상은 물입니다. 물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과학적으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물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한 분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액체와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한 성질을 보입니다. 이 단순한 물질이 이렇게 신기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그리고 그 특성을 통해 물이 자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더 놀랍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물의 밀도입니다. 보통 액체는 차가워질수록 밀도가 커집니다. 그런데 물은 4℃에서 밀도가 가장 높아졌다가, 그보다 더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겨울에 강이나 호수가 얼 때도 바닥부터 얼지 않고 위에서부터 얼기 시작합니다. 이 덕분에 한겨울에도 아래쪽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남아 있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생명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물이 왜 이런 특별한 성질을 갖는지, 그 비밀을 밝히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오랜 이론 연구 결과, 그 근원을 규명하는 비밀은 영하 60℃의 얼지 않은 물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예측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온도에서 물은 너무 빨리 얼어버려 영하 60℃에 숨어있는 물의 비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2017년 PAL-XFEL의 첫 실험으로 영하 45℃의 물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이후, 여러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문제에 꾸준히 도전해 왔습니다. 마침내 최근 비정질 얼음을 정교하게 가열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PAL-XFEL의 강력한 빛으로 영하 60℃ 부근의 얼지 않은 물을 직접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물이 다른 모든 액체와는 다르게 4℃에서 가장 무거운 이유는, 물이 저온에서는 밀도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하고, 두 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액체-액체 임계점이 있어, 상온에서는 초임계유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 초임계유체에서는 두 가지 밀도의 물이 국소 구조로 공존하며, 온도가 낮아질수록 저밀도 구조의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4℃에서 최대 밀도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 연구가 물에 대한 모든 질문을 끝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질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물이 특별한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성질들이 왜 생명현상 등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우리 연구실은 물의 근본적인 성질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그것이 생명과 자연현상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히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림 4. PAL-XFEL에서의 실험 후 실험 장치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 그림 5. 김경환 교수가 조직한 한국-스웨덴 한림원 간 교류 행사, 스웨덴 왕립 한림원에서 진행
마지막으로 연구자를 꿈꾸는 포스테키안 독자 여러분께는 자신감을 가지고 중요한 문제에 도전해 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어떤 분야를 공부할지, 어떤 주제를 연구할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제 강의에서 한 학생이 “중요한 문제에 도전하면 결국 그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들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주제를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포스텍의 많은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은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나란히 서서, 때로는 그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며 최전선의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중요한 질문을 찾고, 과감히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함께한 (좌) 무은재학부 26학번 32기 알리미 박은규 / (우) 산업경영공학과 25학번 31기 알리미 백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