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② 대통령에겐 호통을, 철강왕에겐 일침을 ― 세상에 없던 리더의 등장
글|이광수
안동 선비의 기개를 품은 세계적 물리학자
포항공대의 역사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초대 총장 무은재(無垠齋) 김호길 박사. 그는 경북 안동 산골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유교적 선비 정신과 현대 과학의 정수를 동시에 품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포항공대의 운명적인 인연은 1980년대 중반, 세상을 놀라게 한 한 장의 강렬한 탄원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83년, 평생의 꿈인 인재 양성을 위해 귀국한 그는 당시 럭키금성사(현 LG그룹)가 설립하려던 공과대학*의 학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했던 4년제 인가를 번복하자, 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직접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정부가 식언을 일삼는다면 나라 이름을 '대한민주공화국'이 아닌 ‘대한사기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는,그야말로 선비다운 서슬 퍼런 호통이었습니다.
※ 당시 럭키금성사가 김호길 박사를 초빙하여 4년제 대학 설립을 추진했으나, 최종적으로는 2년제 전문대학인 연암공업전문대학(현 연암공과대학교)으로 인가되었습니다.
이 도발적인 편지 소식은 대학 설립의 적임자를 찾고 있던 이대공 대학건설본부장을 통해 박태준 설립이사장에게 전해졌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영국 버밍엄대 박사,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라는 화려한 이력보다 박태준 설립이사장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 건 바로 대통령을 상대로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김 박사의 ‘배짱’이었습니다. 이 본부장은 설립이사장의 특명을 전하기 위해 그 길로 진주를 향했고, 수개월에 걸친 끈질긴 설득 끝에 김 박사를 박태준 설립이사장의 앞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두 거인의 조우: “창업자는 바로 저런 사람이어야 돼”
1985년 6월, 백록대에서 마주 앉은 두 거인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호길 박사는 "제철소는 그럴듯하게 지었을지 몰라도 대장장이가 대학을 어찌 알겠느냐"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의욕만으로 국제 수준의 대학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과학자로서의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하지만 박태준 이사장이 황무지에서 포항제철을 일궈낸 고난의 과정과 '교육보국'의 진심을 꾸밈없이 털어놓자, 김 박사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과학을 이대로 두면 나라의 장래가 없다"는 이사장의 의견에 전적인 공감을 보여주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제가 온다면 '포항제철 부설 포항공대'가 아니라 '포항공대 부설 포항제철'이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대학 운영의 전권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곁에 있던 참모들이 경악할 만큼 파격적인 요구였으나, 박태준 이사장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초대 학장은 바로 저런 기개 넘치는 창업자여야 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입니다. 두 거인의 의기투합은 포항공대라는 원대한 이상이 현실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대학건설본부의 요청으로 포항을 방문한 김호길 박사 부부를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포항제철 영빈관인 백록대에 초청하여 예정에 없던 장시간의 면담을 가졌다. 왼쪽이 설립이사장과 이대공 건설본부장, 오른쪽이 김호길 박사 부부와 따님. (1985년 6월 15일)
황색 작업복에 담긴 강력한 의지
1985년 8월 1일, 김호길 박사는 드디어 포항공대 학장 요원으로 부임했습니다. 세계적인 가속기 물리학자였던 그가 부임 첫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뜻밖에도 포항제철 직원이 입는 ‘황색 작업복’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포항제철의 일원으로 일체감을 갖고 대학 설립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는 1986년 3월, ‘교수 1호’인 이전영 교수가 부임할 때까지 무려 9개월 동안 황색 작업복과 안전화 차림으로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의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이는 단순히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 대학 설립이라는 거대한 과업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학장으로서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대학의 청사진을 직접 그리고, 교수 초빙을 위해 세계를 누비며 명문 공과대학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남의 걱정을 자기 걱정보다 더 깊이 하고, 호방한 성격과 거침없는 언변으로 주변에 항상 사람을 모았던 교육자 김호길. 경계를 모르는 그의 학문적 열정과 한계 없는 지적 호기심은 오늘날 우리 대학이 지켜나가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습니다.

김호길 박사가 학장요원으로 부임하여 대학건설본부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김호길 박사는 교수 제1호가 부임할 때까지 포항제철 작업복 입기를 자청하였다. (1985년 8월 1일)

김호길 학장과 대학건설본부 직원들이 포항공과대학 교수 1호로 부임한 이전영 박사를 환영하고 있다. (1986년 3월 6일)
참고 문헌
김호길 박사 추모집 『학장님, 우리 학장님』 (1999) 중 「대장장이가 대학을 어찌 알겠느냐」 (박태준 설립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