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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ing Minds] [POSTECH 40 Stories]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갑니다." ㅡ 물의 숨겨진 비밀을 밝힌 김경환 교수 연구팀의 10년

  • 등록일2026.05.18
  • 조회수958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갑니다." 

ㅡ 물의 숨겨진 비밀을 밝힌 김경환 교수 연구팀의 10년


글|POSTECH Creators 지은수 (산업경영공학과 24)



Editor’s Note


40년 전, ‘한국에서 연구중심대학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 속에 POSTECH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2026년 현재,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뒤를 쫓지 않습니다. 오늘도 세계 최고들이 포기한 난제에 도전하고, 인류의 지식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개교 40주년 기념 콘텐츠 <POSTECH 40 Stories>에서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NCS(Nature, Cell, Science)를 통해 세계적인 연구 역량을 증명한 연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그 시작으로, 교과서 너머의 진리를 찾아 떠난 이들의 집요함과 인내를 담았습니다.



"영하 42도 아래는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노맨즈 랜드라고 부르거든요."


물. 매일 마시고, 매일 만지는 이 평범한 물질에 아직도 과학이 풀지 못한 비밀이 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섭씨 4도에서 가장 무거워지고, 얼음이 물 위에 뜨고, 유독 낮은 온도에서 점성이 급격히 치솟는 물의 기이한 성질들. 과학자들은 그 답이 '영하 45도 이하의 얼지 않은 물' 속에 숨어 있다고 오랫동안 의심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영역은 '노맨즈 랜드(No Man's Land)',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과학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금단의 구역이었습니다.


그 벽을 깨뜨린 연구가 올해, 2026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습니다. POSTECH 화학과 김경환 교수 연구팀과 스웨덴 스톡홀름대 팀이 10년에 걸쳐 이뤄낸 결실입니다. 30년 넘게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마침내 실험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전세계가 불가능하다고 외쳤던 실험에 도전한 김경환 교수, 그리고 학부생 신분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서 7년 후에 사이언스 논문의 제1저자가 된 유선주 연구원. 연구 중심 대학, POSTECH의 개교 4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을 직접 만나 그 10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경환 교수님의 연구팀 (김경환 교수: 첫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제 1저자 유선주 연구원: 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Part 1. 김경환 교수 인터뷰


Q1. 이번 연구는 10년에 걸친 끈질긴 도전의 결실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드셨던 순간과,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10년이라고 하면 마치 10년 내내 아무런 성과 없이 버텼을 것 같지만, 사실 중간중간 의미 있는 성과들이 있었습니다. 2017년과 2020년에도 사이언스 논문을 냈고, 그 성과들이 큰 힘이 됐죠. 가장 어려웠던 건 사실 따로 있습니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어요.


'액체-액체 임계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학계에서 첨예하게 논쟁 중인 상황에서, 수년이 걸리는 까다로운 실험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과서에는 '성공 가능성이 100%가 아닌 도전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나오지만, 현실에선 연구비, 승진, 연구실 학생들의 졸업 등과 같은 문제가 따라오니까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런 연구가 하고 싶어서 교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갔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연구, 그걸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원동력이었습니다.



Q2.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은 30년 넘게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도전했지만 실험으로 입증하지 못했는데,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결정적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핵심은 '영하 42도 이하의 얼지 않은 물'을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든, 반증하든 간에 그 온도 영역의 물이 어떻게 거동하는지를 측정해야 하는데, 아무도 할 수 없었거든요.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그 영역을 '노맨즈 랜드(No Man's Land)', 즉 무인지대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전환점은 4세대 방사광 가속기였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이 시설을 활용하면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실험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나갔습니다. 2017년 영하 45도 측정에 처음 성공하고, 2020년 영하 70도까지 확장했으며, 이번 연구에서 그 사이를 정교하게 분석해 임계점의 실재를 확인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쉽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단계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Q3. 포항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이 연구의 핵심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장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점점 빠르게 얼어붙습니다. 영하 70도에서는 무려 10만분의 1초 만에 얼어버려요. 그러니 기존의 어떤 측정 수단으로도 그 순간을 포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POSTECH 안에 위치한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시설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1킬로미터짜리 거대 현미경'이라고 설명하는데, 분자 수준의 구조와 변화를 극히 짧은 순간에 포착해낼 수 있는 시설이죠. 덕분에 10만분의 1초 만에 얼어붙는 물도 그 전에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영하 45도 측정 성공 이후 지금까지, 그 온도 영역의 물을 측정한 수단은 이 가속기 외에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에서 실험 중인 김경환 교수님 연구팀



Q4. 기초과학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과 관심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교수님은 왜 '물 연구'에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하게 되셨나요? ‘물’의 어떤 점이 교수님께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이번 연구 성과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이런 거 해서 어디 쓰냐'는 글을 봤어요. 그런데 싫어요가 27개, 좋아요가 1개더라고요. 예전보다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희망적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박사 졸업 전까지는 물에 대해 이렇게 많은 논쟁이 있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는 걸 몰랐어요. 알고 나서 정말 신기했죠.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밝히는 연구를 내가 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은 못하는데, 나는 할 수 있겠다.'


박사과정 동안 미국 LCLS에서 4세대 가속기의 세계 최초 실험부터 참여하며 그 활용법을 익혔거든요. 학계가 '불가능하다'고 손 놓은 실험을, 내 손으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Q5. 올해는 POSTECH의 개교 40주년입니다. 이번 연구의 결실이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POSTECH의 정체성과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40년 전, 한국이 연구를 한다는 게 당연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연구를 해?'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에 연구 중심 대학이 생긴 거죠.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연구실에 가면 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버드 누구 교수님이 이런 연구를 했는데, 조건을 조금만 바꿔서 우리 주제로 삼겠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번 연구는 다릅니다. 30년간 미국, 유럽의 최고 연구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걸 '내가 도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연구 중심 대학의 선배 교수님들이 이룬 레거시이며 POSTECH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2026년 사이언스 논문에 참여한 POSTECH 김경환 교수님 연구팀, 스웨덴 스톡홀름대 연구팀, 포항가속기연구소 연구팀이 실험 성공을 축하하며 촬영한 단체 사진



Q6. 교수님은 어떤 스승, 어떤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최근 강의 중에 한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유명한 해외 그룹과 경쟁해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용기를 북돋워줘도, '그쪽은 노벨상급인데 저는 경쟁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포스텍 교수님들은 그 최전선에서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유명한 해외 그룹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연구하는 것이다'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지는 때가 오잖아요. 다른 나라들, 다른 대학들과 비교 자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요. 다음 세대에서는 그런 순간이 연구에서도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냥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 그게 세계 최전선에 있는 연구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Part 2. 제 1저자 유선주 연구원 인터뷰 (화학과 통합과정 재학 / 화학과 학 16, 컴퓨터공학과 복수전공)


Q1. 학부생 신분으로 이 연구에 합류하여서 사이언스 논문의 제1저자가 되셨습니다. 김경환 교수님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교수님께서 처음 부임하셨을 때 X선 산란이라는 기법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 참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때 2020년 사이언스 논문에 들어간 실험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에 연구실에 대학원생이 없어서 학부생인 제가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했었죠. 



Q2. 연구를 하시면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실험 자체의 어려움은 물론이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어요. 이 논문의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학계에 많았기 때문에, 그분들까지 납득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또 일반적인 연구실이라면 선배가 ‘이건 이렇게 분석하면 돼’, ‘이건 이 논문을 참고하면 돼’라고 알려줄 텐데, 이 실험은 전 세계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거라 참고할 논문도, 물어볼 선배도 없었어요. 공동 연구자이신 스웨덴 교수님께서 회의 때 100번쯤 하신 말씀이 있어요. ‘아무도 안 한 연구라서 어쩔 수 없다.’ 그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됐습니다.


김경환 교수님 연구팀과 스웨덴 스톡홀름대 연구팀의 단체



Q3. 화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셨는데, 두 분야가 이번 연구에서 어떻게 시너지를 냈나요?


복수전공을 시작한 이유는 사실 단순해요. 컴공 수업 몇 개를 들어봤더니 재밌어서요. POSTECH이 복수전공하기 좋은 환경이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하다 보니 컴퓨터공학이 정말 요긴하게 쓰이더라고요. 방사광 가속기 실험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쌓이거든요. 그 데이터를 빠르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직접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컴공에서 배운 것들이 그대로 활용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시작한 복수전공이 이 연구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어요.



Q4. 개교 40주년, POSTECH에서 보낸 10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입학했을 때쯤 30주년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40주년이네요. 제가 포항에 온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학부 1학년때 동아리에서 "저 선배는 학교에 10년이나 있었대" 라고 하면 엄청나게 신기했는데, 이젠 제가 그런 사람이 되었네요.


제가 POSTECH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이 연구를 절대로 하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학부생 때부터 연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 바로 옆에 있는 가속기 연구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 그 모든 것이 POSTECH이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논문에 POSTECH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게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30년 넘게 '불가능'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던 실험. 세계 학계가 '노맨즈 랜드'라고 판단하고 포기한 영역. 김경환 교수 연구팀은 그 벽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학부생부터 함께한 유선주 연구원은 세계 최고 저널의 첫 줄에 올랐습니다. POSTECH 40년이 쌓아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제는 '우리가 세계 최초'라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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