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에서 환경공학으로, 새로운 질문을 찾다
글|환경공학부 통합과정 김규리 (생명과학과 학부 졸업)
생명현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연구에서, 그 원리를 사회에 적용하는 연구로

2024년 5월, 생명과학과에서 학부생 대상으로 학과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출처: Photo News | POSTECH Life Science)
포스텍에 입학한 후 1년간의 전공 탐색 과정을 거치며, 저는 “생명체는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작동할까?”라는 궁금증으로 생명과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생명현상이 하나씩 설명되어 가는 과정 자체가 무척 흥미로웠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몸속 미생물이 면역과 대사, 질병 등 다양한 생명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접하며 마이크로바이옴¹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3학년부터는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연구실에서 연구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미생물의 유전자 기능과 단백질의 신호전달 경로를 분석하며 생명현상의 기초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연구와, 미생물과 세포외 소포체² 를 활용한 약물 전달 연구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같은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서도 어떤 연구실은 미생물의 대사와 기능을, 어떤 연구실은 단백질의 신호전달 경로를, 또 다른 연구실은 미생물을 활용한 질병 치료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연구실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왜 연구를 하고 싶은 걸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생명현상의 원리를 밝히는 기초연구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분야를 경험하면서 저는 그 원리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 연구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 성과가 질병 치료와 같이 현실의 문제에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¹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 우리 몸속에 사는 미생물 전체와 그들이 지닌 유전정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장 속 미생물이 대표적입니다.
² 세포외 소포체(extracellular vesicle) — 세포가 바깥으로 내보내는 아주 작은 주머니입니다. 단백질이나 유전물질을 담아 다른 세포에 전달하기 때문에, 약물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로도 연구됩니다.
과학교실에서 시작된 환경에 대한 관심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여름, 포스코 상상이상 과학교실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출처: [2025 CSR 필름 페스티벌 어워드] 포스코1%나눔재단 - 상상이상 사이언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학교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포스코 상상이상 과학교실 활동이었습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여름, 포항 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오염과 탄소중립, 친환경 기술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업 중 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활용해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는 ‘트리톤 바다숲 프로젝트’를 접하며 해양생태계의 탄소흡수와 블루카본³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명과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해양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찾아보던 중, 생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친환경 생체모사⁴ 재료 연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과학에서 배운 지식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연구실을 조금 더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환경공학부에서 실시하는 ‘2025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³ 블루카본(blue carbon) — 갯벌이나 잘피밭, 맹그로브 숲처럼 바다와 연안의 생태계가 흡수해 저장하는 탄소를 말합니다. 육상의 숲이 흡수하는 '그린카본'과 짝을 이루는 개념입니다.
⁴ 생체모사 — 생물이 가진 구조나 기능을 본떠 기술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방울이 잘 맺히는 연잎 표면의 원리를 응용한 방수 소재가 널리 알려진 예입니다.
환경공학부 2025 하계 인턴십, 새로운 연구를 만나다


2025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제가 맡은 주제는 김 양식의 시작 단계인 김 사상체가 성장할 수 있는 인공 모판⁵ 을 개발하는 연구였습니다.
생명과학을 공부했던 저에게는 김의 생활사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김은 엽체⁶ 단계이지만, 그 이전에는 사상체⁶ 형태로 패각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이후 포자를 방출해 엽체로 성장합니다.
선행연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체가 왜 패각 속으로 잠입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대신 패각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광합성에 필요한 탄소 공급원 역할을 할 가능성과 사상체가 패각 내부 표면에서만 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유를 이해하고 이를 공학적으로 모사하는 과정은 이전에 경험했던 생명과학 연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연구 결과가 논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김 양식 현장에 적용되어 어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생명과학에서 배운 지식이 환경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와 만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⁵ 인공 모판 — 벼농사에서 모를 따로 길러 논에 옮겨 심듯, 김 양식도 어린 김을 먼저 길러낸 뒤 바다로 옮깁니다. 자연에서는 조개껍데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이를 대체할 인공 판을 만드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⁶ 사상체와 엽체 — 김은 자라면서 두 가지 모습을 오갑니다. 사상체(絲狀體)는 실처럼 가느다란 형태이고, 엽체(葉體)는 우리가 김으로 먹는 잎 모양의 형태입니다. 패각(貝殼)은 조개껍데기를 뜻합니다.
생명과학에서 환경공학으로, 새로운 질문을 찾다

생명과학을 처음 시작할 때의 질문은 “생명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였습니다. 여러 연구를 경험하면서 생명현상의 원리를 밝혀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그 원리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더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뒤 환경공학부에서 실시한 2025 하계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김 사상체가 성장할 수 있는 인공 모판을 연구하며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고, 그 원리를 활용해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연구 결과가 실제 김 양식 현장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과 생명과학에서 배운 지식이 환경공학과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의 원리를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생명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은 “생명체의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공학적으로 구현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되었고, 이러한 고민을 이어가고자 환경공학부 대학원에 진학했고, DESE Graduate Fellowship에도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생명과학에서 쌓은 기초 지식에 환경공학의 기술적 접근을 더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정해진 길은 아니었습니다. 생명현상에 대한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해 여러 연구를 경험하고 스스로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연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