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 오승수 교수 연구팀, ‘택배 상자’ 없이 세포 속으로 쏙… 핵산 스스로 세포막 통과하는 기술 개발
[핵산에 양친매성 조절해 세포 전달 특성 설계… ‘양친매성도’ 지표도 제안] 좋은 상품도 제대로 배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유전자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치료 효과를 내는 핵산을 세포 안까지 보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POSTECH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 유혜빈 박사, Ewa Pietrasiak(에바 피에트라시악) 박사 연구팀이 별도의 ‘택배 상자’ 없이 핵산이 스스로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은 기름 성분으로 이뤄져 있어 물에 잘 녹는 친수성 물질이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 문제는 유전자 치료제로 활용되는 siRNA1)와 ASO2) 같은 핵산이 대표적인 친수성 물질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도 세포막을 넘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동안에는 바이러스나 지질 나노입자(LNP, Lipid Nanoparticle) 같은 운반체에 핵산을 담아 세포 안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운반체는 면역반응이나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제조 과정이 복잡하다. 세포 안으로 들어간 핵산이 소포체에 갇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핵산 자체가 세포막을 통과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주목했다. 핵산 골격의 특정 부위인 포스포로티오에이트(Phosphorothioate,)에 기름을 좋아하는 소수성 사슬을 선택적으로 붙여, 물과 기름 모두에 친화적인 ‘조절가능한 양친매성 핵산(이하 TuNA, Tunable Amphiphilic Nucleic Acid)’을 개발했다. 핵산 말단에 소수성 물질을 연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 기술은 핵산 골격의 원하는 위치에 다양한 길이의 소수성 알킬기를 도입할 수 있어 양친매성의 크기와 분포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균형’이다. 연구팀은 약 90%의 높은 수율로 TuNA를 합성한 뒤 인공 지질막을 이용해 세포막과의 상호작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소수성이 적절하면 핵산이 막을 스스로 통과했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막에 달라붙어 이동하지 못했다. 물과 기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성질의 균형이 세포막 투과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균형을 수치로 나타내는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3)’라는 지표도 제안했다. 연구팀은 실제 살아있는 세포에서도 효과를 확인했다. TuNA는 15분 이내에 대부분 세포로 빠르게 들어갔고, 핵산 길이에 따라 세포질이나 핵 주변 등 서로 다른 위치에 전달됐다. 특히 소포체에 갇히지 않고 필요한 위치까지 전달되는 것도 확인했다. 나아가 녹색 형광 단백질(GFP4))을 만드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siRNA에 TuNA 기술을 적용하자 별도의 운반체 없이 세포 안으로 전달된 siRNA가 표적 유전자의 발현까지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오승수 교수는 "핵산의 양친매성을 정밀하게 조절하면 세포투과성 펩타이드처럼 세포를 스스로 통과하는 ‘세포투과성 핵산’을 설계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유혜빈 박사는 "핵산 길이와 양친매성을 조절해 세포질이나 핵 주변부 등 원하는 위치로 전달 특성을 설계할 수 있어 siRNA, mRNA, ASO, 압타머 등 기능성 핵산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STEAM 연구사업(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 및 합성생물학 전문인력양성사업, 산업통상부의 시장주도형K-센서기술개발사업, 경상북도·포항시 합성생물학 육성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9124 1. siRNA(Small interfering RNA): 특정 메신저 RNA와 상호작용해 해당 유전자 단백질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짧은 이중가닥 RNA다. 2. ASO(Antisense Oligonucleotide): 유전 정보를 담은 특정 RNA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막거나 교정하는 짧은 인공 핵산. siRNA와 함께 대표적인 핵산 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3.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 DA): 핵산에 도입된 알킬 사슬의 전체 탄소 수를 핵산뉴클레오타이드 수로 나눈 값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형 알킬기로 개질한 TuNA의 인공 지질막 상호작용을 비교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했다. 4.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형광단백질이다.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무질서 속 숨은 질서” 빛을 다루는 나노 소자, 설계 쉬워진다
[복잡한 메타표면 속 '숨은 주기'를 찾아내는 새 해석법 제시] 증강현실(AR) 안경, 머리카락보다 얇은 렌즈, 손끝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SF 영화에서 보던 이 기술들에는 핵심은 '메타표면'이라는 나노 소자가 있다. 빛의 파장보다 작은 나노 구조물로 빛의 방향과 색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마법 같은 기술이다. 이 강력한 기술에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발목을 잡아 온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를 해결했다.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김석우 박사 연구팀이 무질서한 나노 구조 속에 숨은 반복 규칙을 찾아내, 메타표면을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하는 길을 열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메타표면’으로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려면 구조물 크기와 방향을 조금씩 다르게 배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구조물을 하나씩 다르게 배치할수록 전체 모양이 복잡해지고 표면을 규칙적으로 채우던 반복 패턴인 '주기성'이 깨져 소자가 빛을 어떻게 조절할지 계산하기 어려워졌다. 규칙성이 있다면 일부만 계산해도 전체 특성을 예측할 수 있지만, 구조가 제각각이면 수많은 구조물을 하나씩 계산해야 한다. 심지어, 가로세로 수 cm 크기의 메타표면에는 10억 개가 넘는 구조물이 들어가 이를 컴퓨터로 계산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기존에는 구조를 단순하게 가정하거나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야 했다. 연구팀은 ‘겉보기에는 복잡해도 그 안에 반복되는 규칙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무아레(Moiré) 무늬1)'에서 찾았다. ‘무아레 무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두 패턴이 조금 어긋나 겹칠 때 나타나는 커다란 물결 모양 무늬다. 얇은 모기장이나 커튼을 두 장 겹쳤을 때 어른거리는 무늬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메타표면을 이루는 기본적인 배열과 빛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더해진 변화를 서로 다른 두 패턴이 겹친 것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두 패턴의 각도와 간격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복잡해 보이던 구조 안에서도 큰 반복 패턴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쉽게 말해, 겉으로 하나하나 다른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나노 구조물 속에서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작은 반복 단위’를 찾아낸 것이다. 그 덕분에 거대한 메타표면 전체를 일일이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다. 10억 개가 넘는 구조물로 이루어진 소자라도 수십 개의 나노 구조물로 구성된 작은 단위만 계산하면 전체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메타표면 소자를 제작해 예측한 것과 같이 빛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빛과 원치 않는 방향으로 퍼지는 빛을 구분해 소자의 성능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원리는 빛뿐 아니라 소리, 전자, 진동처럼 '파동'으로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에 두루 쓸 수 있어, AR·VR용 광학 소자나 고효율 나노 렌즈를 더 빠르고 정밀하게 설계하는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노준석 교수는 "무질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이 방법은 차세대 광학 소자 개발에 속도를 더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세종과학펠로우십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4150-5 1. 무아레(Moiré) 무늬: 두 개의 규칙적인 패턴이 조금 어긋나 겹칠 때 나타나는 더 큰 물결 무늬를 말한다.
신소재/IT융합 정성준 교수 연구팀, 비눗방울에서 찾은 ‘숨 쉬는 폐’의 해법
[폐포 움직임 그대로 재현…24만 번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 누구나 한 번쯤 빨대로 비눗방울을 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얇은 막에서 착안해 실제 폐처럼 ‘숨 쉬는 인공 폐’가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IT융합공학과 정성준 교수 연구팀이 폐 속에 있는 공기주머니인 폐포 움직임을 재현하면서 폐 세포의 반응까지 관찰할 수 있는 초박막 인공 폐를 개발했다.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폐의 반응까지 재현했다. 이번 연구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사람의 폐는 하루에도 수천 번 움직인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고, 내쉬면 다시 줄어든다. 폐 안쪽에 있는 작은 공기주머니인 폐포도 이 움직임을 반복한다. 폐포의 움직임은 단순히 공기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폐 세포의 성장과 기능에 영향을 주고, 염증이나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중요한 신호가 된다. 폐 질환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 효과를 확인하려면 실험실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재현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하지만 기존 폐 세포 배양 기술로는 실제 폐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평평하고 움직이지 않는 바닥에서 세포를 키우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칩 안에 폐의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한 ‘폐-칩(lung-on-a-chip)’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단한 플라스틱 소재(PDMS1))를 사용해 실제 폐 조직의 특성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말랑한 하이드로젤(hydrogel)을 쓰기에는 얇게 만들었을 때 쉽게 찢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비눗방울’에서 그 답을 찾았다. 비눗방울은 액체가 스스로 얇은 막을 만들면서도 쉽게 터지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연구팀은 이를 하이드로젤에 적용했다. 원하는 모양의 틀을 하이드로젤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는 방식으로 틀 표면에 매우 얇은 막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초박막은 실제 폐 속의 폐포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반복적인 움직임을 견딜 만큼 튼튼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실제 사람이 숨 쉬는 원리도 적용했다. 사람이 숨을 들이마실 때 횡격막이 아래로 움직이면 폐 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바깥 공기가 들어온다. 연구팀은 초박막 아래에서 이와 같은 압력 변화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호흡 구동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결과 초박막이 실제 폐처럼 늘었다가 줄어들었고,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인공 폐 내부도 실제 폐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혈관세포층’, ‘기저막층’, ‘상피세포층’을 차례로 쌓아 폐포와 유사한 3층 구조를 구현했다. 이렇게 만든 인공 폐에서는 호흡에 따른 움직임이 세포에 전달됐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반응까지 진짜 폐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실험에서는 호흡 운동에 따라 폐의 염증 반응과 바이러스 대응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단순 세포 배양이나 동물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약물의 반응을 사람의 폐와 아주 유사한 환경에서 살펴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정성준 교수는 "‘숨 쉬는 인공 폐'는 호흡의 빠르기와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정상적인 폐부터 여러 질병 상태까지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라며, ”이번 연구는 신약 개발과 폐 질환 연구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산업자원통상부 바이오산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74372 1. PDMS: 폴리디메틸실록산(Polydimethylsiloxane)이라는 실리콘 계열의 말랑한 고분자 소재를 말한다.
인문 정진호 교수 연구팀, “'착한 고기'는 제값 받고 있을까?” 지구 생각한 고기, 지갑도 알아봤다
[美 육류 판매 데이터 75만 건 분석… 지속가능성 라벨 프리미엄 확인] '유기농' 라벨이 붙은 고기는 대개 조금 더 비싸다. 그 뒤엔 환경을 위한 노력이 담겨 있는데, 시장은 이 노력에 제값을 매기고 있을까. POSTECH 정진호 교수 연구팀이 실제 미국 마트 판매 데이터로 답을 확인했다. POSTECH 인문사회학부 정진호 교수는 미국 농무부(USDA) 다니엘 우퍼(Danielle J. Ufer) 박사, 퍼듀대 농업경제학과 니콜 위드마르(Nicole O. Widmar) 교수, 마리아 베리코우(Maria Berikou) 연구원, 오클라호마주립대 농업경제학과 제이슨 러스크(Jayson L. Lusk) 교수 연구팀과 함께 75만 건의 실제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마트 가격표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지속가능성 라벨'의 프리미엄을 데이터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현지 기준으로 지난 12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최근 게재됐다. ‘유기농’, ‘온실가스 저감’, ‘목초 사육’ 같은 '지속가능성 라벨'은 그 고기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 알려준다.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정보이면서 생산자에게는 친환경 생산에 더 든 비용을 값에 반영하고 제품을 차별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라벨이 실제 시장에서 그만큼 값을 인정받느냐다. 그간 연구는 '친환경 고기라면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이 대부분이었고, 정말 얼마나 더 비싸게 팔리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었다. 마트 가격표만으로는 이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유기농 소고기가 비싼 이유가 라벨 덕인지, 부위가 좋아서인지, 비싼 매장이라서인지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웹스크래핑을 활용하여 미국 20개 주요 식료품 체인의 342개 온라인 매장에서 2022년 9월 한 달간 소·닭·돼지고기 판매 정보 약 75만 건을 모으고, 부위와 지역, 유통업체, 판촉 여부 등 조건을 걷어내고 오직 '라벨' 하나가 값을 얼마나 올리는지 분리해 냈다. 마트 몇 곳을 둘러봐선 알 수 없는, 전국 규모로 '라벨의 값'을 뽑아낸 것이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라벨 제품이 일반 고기보다 비쌌다. 소고기는 목초 사육과 유기농이 각각 약 33%, 닭고기는 목초 사육이 약 17% 더 비쌌고, 돼지고기는 유기농이 약 43%로 값이 가장 높았다. 눈여겨볼 점은 이 차이가 단순히 원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기농이나 목초 사육은 손이 더 가니 그렇다고 쳐도, '온실가스 저감', '비유전자변형(Non-GMO)'처럼 소비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원가와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 라벨에도 더 높은 값이 매겨졌다. 시장 데이터로 값이 매겨진 적이 거의 없었던 '온실가스 저감' 라벨마저도 그랬다. 소비자들이 '환경을 위한 가치' 그 자체를 알아보고 값을 치른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라벨이라도 고기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유기농 돼지고기는 프리미엄이 43%였지만 닭고기에선 7% 수준에 그쳤다. 이는 미국 양돈산업의 생산방식이 워낙 효율화되어 있어 특수한 방식으로 바꿀 때 비용이 크게 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시장은 '착한 생산방식'에 실제로 보답하되, 그 크기는 고기와 라벨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이번 연구는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으로 시도하는 생산자에게 실질적인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을 생각한 노력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친환경 생산방식이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근거가 생긴 셈이다. POSTECH 정진호 교수는 "이 방법은 다른 품목이나 국가로도 확장할 수 있어 한국 식품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라며 "다만 한 달간의 자료에 기반한 만큼, 계절과 판촉 주기를 반영한 시계열 분석은 앞으로의 과제"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 농무부(USDA) 국립식품농업연구소(NIFA) Hatch 사업과 미국 농무부(USDA) 경제조사국(ERS)의 협력연구 과제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53190
물리/융합 신희득 교수 연구팀, 어둠 속 숨은 표적, '빛의 쌍둥이'가 한눈에 찾아낸다
[잡음 1,000배 환경서도 여러 표적 한눈에 찾는 양자 LiDAR 개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만으로 여러 물체의 위치를 한꺼번에 알아낼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빛을 한 방향씩 훑어가며 찾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여러 표적의 거리와 방향을 한 번에 읽어내는 새로운 양자 LiDAR(라이다)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Laser & Photonics Reviews'에 최근 게재됐다.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는 빛을 쏜 뒤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물체의 거리·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차가 주변을 인식하는 데는 물론, 지형 측량과 우주 탐사 등에도 두루 쓰인다. 하지만 상대방이 관측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스텔스형 탐지처럼 빛을 매우 약하게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표적에서 되돌아오는 빛이 주변의 배경광보다 약해서 원하는 신호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기존 LiDAR는 대부분 공간을 한 방향씩 훑는 '순차 스캔' 방식이다. 손전등으로 어두운 방을 한 곳씩 비춰보는 것처럼 표적을 차례로 찾기 때문에 여러 방향의 정보를 한꺼번에 빠르게 얻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양자 광원에서 빛 알갱이인 '광자'가 쌍을 이루어 생성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자쌍은 두 광자의 파장과 생성 시각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한 광자의 파장을 알면 그 짝 광자의 파장을 알 수 있다. 또 두 광자가 함께 만들어졌다는 시간 정보를 이용하면, 주변의 수많은 잡음 속에서도 진짜 표적 신호를 골라낼 수 있다. 이처럼 쌍둥이 광자들이 공유하는 파장과 시간 정보를 탐지에 활용한다는 점이 이번 ‘양자 라이다’ 기술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파장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광자쌍을 이용해 여러 방향을 병렬로 탐지하는 양자 라이다를 고안했다. 표적으로 보내는 광자는 만들어질 때마다 파장이 무작위로 정해지고, 회절격자를 통과하면서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지만, 짝 광자의 정보를 이용하면 표적 광자의 파장을 알아낼 수 있어 그 광자가 향한 방향을 알 수 있다. 기존 라이다가 빛의 방향을 하나씩 바꿔가며 주변을 훑었다면, 이번 기술은 광자의 무작위적인 파장과 광자쌍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여러 방향의 표적 정보를 한꺼번에 읽어낸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표적 신호보다 배경 잡음이 1,000배 강한 환경에서도 여러 표적의 거리와 방향을 측정 한 번으로 구분해 읽어냈다. 여기서 "한 번에 본다"라는 말은 카메라처럼 모든 방향을 순간적으로 찍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통로를 열어둔 채 광자가 도착할 때마다 어느 방향의 신호인지 구분한다는 의미다. 이 기술은 몰래 관측해야 하는 저조도 환경에서 특히 중요하다. 빛을 강하게 쏠 수 없어 신호는 약하고 잡음은 커지는 상황에서도, 쌍둥이 광자 연결성이 진짜 표적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는 양자 라이다가 잡음에 강한 센싱을 넘어, 기존 순차 스캔과는 전혀 다른 병렬 탐지 구조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원과 검출 효율, 시스템 집적도가 개선되면 양자 계측, 저조도 이미징, 원격탐사 등 분야로 응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신희득 교수는 "아직 원리 검증 단계지만, 저조도 환경에서 여러 표적 정보를 동시에 읽어내는 새로운 양자 라이다 구조를 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POSTECH 물리학과·융합대학원 신희득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는 국방과학연구소 미래도전국방기술 연구개발사업,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대학ICT연구센터(ITRC) 지원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lpor.71592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렌즈 두께는 얇게, 컬러는 선명하게” AR·VR 안경 두 마리 토끼, 연속으로 잡았다
[정밀 제작에서 대량생산까지... 메타렌즈 상용화 이끌 기술 Nature 자매지 연속 게재] 영화에서나 봤던 AR·VR 안경이 두꺼운 렌즈 뭉치가 아니라 우리가 쓰는 안경알 하나로 완성될 수 있다. 상상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 POSTECH 연구진이 '메타렌즈'로 선명한 풀 컬러 영상을 만드는 기술을 잇달아 개발하고, 이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연속 게재했다. 이번 성과는 성능과 대량생산이라는 메타렌즈 상용화의 두 숙제를 동시에 풀어낸 셈이라 더욱 주목을 모으고 있다. ‘메타렌즈’는 나노 구조들을 촘촘히 배열해 빛의 방향을 원하는 대로 모아주는 얇은 렌즈다. 유리 렌즈를 여러 장 겹쳐 쓰던 기존과 달리 렌즈 한 장으로 같은 역할을 해, AR이나 VR 안경처럼 가볍고 얇은 기기를 만들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문제는 RGB(빨강·초록·파랑) 빛을 한 점에 정확히 모으는 '무색수차' 성능이다. 이 성능을 값싸고 대량생산이 쉬운 저굴절률 소재로 구현하는 일이 매우 까다로웠다. 연구팀은 메타렌즈를 이루는 나노 기둥 '메타아톰'의 '높이'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지금까지는 메타아톰의 가로 폭만을 조절하여 빛을 다뤘다면, ‘높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더한 것이다. 같은 모양의 건물이라도 층수를 다르게 지어 도시 풍경을 다양하게 꾸미듯, 메타아톰마다 높이를 다르게 세워 RGB 빛을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모을 수 있게 했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이광자 리소그래피(Two-photon Lithography)'라는 3D 정밀 인쇄 기술로 복잡한 입체 나노 기둥을 직접 찍어냈다. 연구팀은 미리 만들어둔 다양한 나노 기둥 설계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인공지능이 위치마다 가장 알맞은 설계를 자동으로 골라 배치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비교적 값싼 저굴절률 재료만으로도 색이 번지지 않는 풀 컬러 메타렌즈를 만들고, OLED 디스플레이와 결합한 실험에서 선명한 컬러 이미지를 확인했다. 이어 진행한 두 번째 연구는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그레이스케일 전자빔 리소그래피(Grayscale Electron-beam Lithography)'로 높이 정보가 새겨진 나노 틀(템플릿)을 만들고, 이를 도장처럼 찍어내는 '나노임프린트(nanoimprint)' 공정에 적용했다. 기존 나노임프린트는 같은 높이의 패턴만 반복해 찍어낼 수 있었지만, 이번 기술은 서로 다른 높이의 구조도 한 번에 찍어낼 수 있어 성능과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두 연구는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저굴절률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험실에서 가능했던 3D 메타렌즈를 실제 산업현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기술로 끌어올린 것이다. 메타렌즈의 성능과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술을 나란히 확보하면서, 메타렌즈 상용화의 두 축을 동시에 세운 셈이다. 연구를 이끈 노준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고차원 나노 공정기술을 통해 AR·VR용 풀 컬러 무색수차 메타렌즈를 실제 산업에서 활용하기 위한 제조 기술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더 가볍고 얇은 AR·VR 안경과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물론, 이미징이나 광학센서 같은 다양한 광학 산업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POSCO 산학융합연구소, 한국연구재단 (초실감 나노 소재기술 개발, 한-영 과학기술협력창구사업, 글로벌융합연구지원, 개인기초연구, 미래 디스플레이 전략연구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3103-2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3940-1
신소재/융합 한세광 교수 연구팀, 빛만 있으면 피부 상처 걱정 끝
[실내등·햇빛을 적색광으로 바꾸는 착용형 광치료 패치 개발]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영혼의 나무(Tree of Souls) 아래에서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듯, 이제 사람의 피부 상처도 일상의 빛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융합대학원 한세광 교수, 신소재공학과 석사과정 조경주 씨, 김성종 박사 연구팀이 건국대 김혜민 교수 연구팀과 함께 별도의 배터리나 전원 없이 실내등이나 햇빛만으로 상처 봉합과 조직 재생을 동시에 돕는 착용형 패치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최근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특정 파장의 빛을 상처에 쬐면 경계면의 콜라겐이 서로 이어져 실이나 접착제 없이 상처가 봉합되고(광화학적 조직 접합1)), 세포 대사와 염증 반응이 조절되면서 새살이 빠르게 돋는다(광 생체 조절2)). 흉터를 줄일 수 있고 몸에 칼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치료법이다. 문제는 '빛을 어떻게 공급하느냐'다. 광 치료 장치는 LED나 레이저, 광섬유, 배터리 같은 외부 전원이 필요한데, 주렁주렁 매달린 장치를 얼굴처럼 눈에 띄는 부위에 오래 붙이고 다니기란 쉽지 않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실내등이나 햇빛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핵심은 이러한 일상속 빛을 치료에 필요한 적색광으로 전환하는 발광 입자(RSLP3))다. 칼슘-스트론튬 황화물 기반 소재에 유로퓸(Eu)과 툴륨(Tm)을 첨가하고, 결함과 이종접합 구조를 활용해 넓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입자는 상처 치료에 적합한 640nm 부근의 적색광을 방출하며, 빛이 잠시 끊겨도 어둠 속 야광별처럼 잔광을 낸다. 이 입자가 내뿜는 적색광은 광감작제(Ce64))를 활성화해 상처 경계면의 콜라겐을 엮어 절개 부위를 봉합하고, 섬유아세포 증식과 세포 이동을 촉진하며 염증을 완화해 새살을 돋운다. 봉합과 재생이라는 두 가지 일을 빛 하나로 동시에 해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입자를 신축성이 좋은 실리콘 소재(Ecoflex)에 고르게 넣어 피부에 밀착되는 패치로 만들었다. 접착층으로 쓰인 하이드로젤 덕에 피부가 움직여도 잘 붙고, 늘리거나 접어도 발광 성능이 그대로 유지된다. 환자가 실내등 아래 있거나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 LED와 배터리 없이 치료용 빛이 공급되는 셈이다. 동물모델 실험 결과, 효과는 뚜렷했다. 절개 상처에 12시간 동안 패치를 붙였을 때, 상처가 빠르게 봉합되고 조직 재생이 촉진됐다. 원형 상처 역시 기존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그뿐 아니라 정상 성인의 얼굴 피부를 대상으로 한 예비 인체 평가에서도 9시간 동안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피부 탄력 회복이 개선되고 붉은 기가 완화됐다. 이 연구가 그리는 미래는 명확하다. 수술 후 상처 관리나 피부 재생 치료를 병원에 매여 있지 않고 일상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세광 교수는 "일상에서 쉽게 얻는 빛을 이용해 외부 전원 없이도 상처 봉합과 재생을 동시에 유도한 성과"라며 "환자가 병원 밖에서도 손쉽게 관리를 이어갈 수 있는 차세대 착용형 광의학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 한국연구재단 BRIDGE연구사업, KOBRA 프로젝트, 기초과학연구사업, 한국의료기기개발기금, B-IRC 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73965 1. 광화학적 조직 접합(PTB, Photochemical Tissue Bonding): 빛과 광감작제를 이용해 상처 경계면의 콜라겐 사이에 결합을 형성함으로써 조직을 붙이는 기술이다. 2. 광 생체 조절(PBM, Photobiomodulation): 낮은 세기의 특정 파장 빛으로 세포 대사, 염증 반응, 조직 재생을 조절하는 광치료 방식이다. 3. RSLP(Room light- and sunlight-activatable luminescent particles): 실내등과 햇빛을 흡수해 치료용 적색광을 방출하는 발광 입자. 이번 연구에서는 CaSr(S,SO4):Eu,Tm 기반 입자를 사용했다. 4. Ce6(Chlorin e6): 적색광에 반응하는 광감작제의 하나로, 빛을 받으면 콜라겐 교차결합을 유도하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신소재/반도체 황현상 교수 연구팀, '메모리 아파트' 길 잃은 결정에 내비게이션, 3D NAND 반도체 한계 넘는 기술 개발
[시드층 기반 방향 제어형 MILC로 155단 3D NAND 채널 균일 결정화] 스마트폰에 사진 수만 장을 담는 비결은 데이터 저장 공간을 아파트처럼 위로 쌓아 올리는 기술에 있다. 국내 연구진이 이 ‘메모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길을 방해하던 반도체 결정에 내비게이션을 달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성능을 높일 기술을 개발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반도체공학과 황현상 교수, 신소재공학과 통합과정 권오혁 씨 연구팀은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메모리사업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3D 낸드(NAND)’ 채널 내부 실리콘 결정의 성장 방향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 학회 ‘2026 IEEE 국제 VLSI 기술 및 회로 심포지엄(IEEE Symposium on VLSI Technology and Circuits)’에서 발표됐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의 ‘Research Highlights’에 선정되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낸드(NAND)’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저장용 반도체로 스마트폰과 USB 메모리 등에 쓰인다.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는 셀을 수백 층까지 쌓은 구조가 ‘3D 낸드’다. 층이 높아질수록 데이터를 전달하는 수직 통로인 ‘실리콘’ 채널도 길어진다. 문제는 채널을 이루는 실리콘 결정이다. 실리콘은 여러 개의 작은 결정이 모여 형성되는데, 결정과 결정 사이의 경계는 전류 흐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채널이 길어질수록 이런 경계가 늘어나 전기 저항이 커지고, 데이터 처리 속도가 떨어진다. 이 문제를 풀 열쇠로 주목받아 온 기술이 ‘금속 유도 측면 결정화(이하 MILC1))’다. 니켈(Ni)을 촉매로 사용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고품질 실리콘 결정을 만들 수 있지만 결정이 자라는 방향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MILC 과정에서 형성되는 바늘 모양 결정인 '위스커(whisker)'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자라 서로 부딪히면 성장이 멈추고, 니켈이 채널 안에 남게 된다. 이 때문에 긴 채널 전체에 전류가 잘 흐를 수 있는 균일한 결정 통로를 만들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주목했다. 먼저 실리콘 기판 위 니켈 박막에 ‘마이크로웨이브 어닐링(이하 MWA2))’을 적용해 결정 성장 방향을 유도하는 시드층(seed layer)을 만들었다. 전자레인지가 음식 속 물 분자에만 선택적으로 열을 전달하듯, MWA도 니켈과 실리콘이 맞닿은 부분에만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덕분에 기판 전체를 가열하지 않고도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균일하게 정렬된 시드층을 낮은 온도에서 형성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층을 3D 낸드 채널 표면에 적용했다. 그 결과, 결정은 방향이 정해진 시드층을 따라 성장했고, 위스커도 무작위로 퍼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졌다. 연구팀은 이를 실제 155단 3D 낸드 구조(채널 깊이 약 6.5㎛)에 적용해 채널 위부터 아래 끝까지 균일하게 정렬된 결정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POSTECH 황현상 교수는 “적층 수가 늘어나는 차세대 3D 낸드에서도 채널 전체를 균일하게 결정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라고 전했다. 제1저자인 권오혁 씨는 “무작위였던 결정 성장에 방향성을 부여해 위스커 충돌과 니켈 포획이라는 MILC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라며 “고단수 3D 낸드의 채널 저항 문제를 푸는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삼성전자(주)의 산학 공동 연구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109/VLSITechnologyandCir65830.2026.11577362 1. MILC(Metal-Induced Lateral Crystallization, 금속 유도 측면 결정화): 니켈 등 금속 촉매를 이용해 비정질 실리콘을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결정질 실리콘으로 변환하는 결정화 기술이다. 2. MWA(Microwave Annealing, 마이크로웨이브 어닐링): 마이크로웨이브 에너지를 특정 화학 결합에 선택적으로 전달해 낮은 기판 온도에서도 반응을 촉진하는 열처리 기술이다.
인공지능/전자 김광인 교수 연구팀, “데이터 열지 않고도 오류 찾아낸다” 프라이버시 시대 AI의 '족집게' 검수법
[원본 데이터 공유 없이 라벨 오류 찾아내는 분산 AI 기술 개발] POSTECH 인공지능대학원·전자전기공학과 김광인 교수 연구팀이 원본 데이터를 열어보지 않고도 문제 있는 데이터를 콕 집어내, 적은 비용으로 AI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 분야 국제학회 중 하나인 ’AAAI 2026(The Fortieth AAAI Confere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에 메인 테크니컬 트랙 논문으로 게재됐다. AI를 잘 학습시키려면 데이터마다 '고양이', '강아지'라고 알려주는 ‘라벨(label)’이 필요하다. 라벨이 잘못 붙으면 AI는 엉뚱한 규칙을 배워 성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수많은 라벨을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고쳤을 때 효과가 클 데이터만 골라 재검수하는 '능동 오류 정정(Active Error Correction)' 기술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요즘처럼 데이터를 한곳에 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병원이나 기업, 개인 기기는 개인정보 때문에 데이터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채 각자 가진 상태로 AI 학습에 참여한다. 이때 중앙 서버로 가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내 데이터로 학습해 보니 이렇더라"는 학습 결과 요약본뿐이다. 서버가 원본도 정답표도 볼 수 없으니, 어느 곳에 잘못된 데이터가 숨어 있는지 짚어내기가 어렵다. 연구팀은 데이터를 직접 보는 대신, 이 요약본 속 '가중치 기울기(gradient)1)'라는 신호에 주목했다. 이 기울기는 각 데이터가 AI를 어느 방향으로 바꾸려 하는지 보여주는 지문 같은 정보로, 서버는 이것만 비교해도 원본 없이 학습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연구팀은 여기에 ‘가우시안 프로세스(Gaussian Process)2)’라는 통계 기법을 적용한 ‘가우시안 프로세스 능동 오류 정정(이하 GPAEC, Gaussian Process Active Error Correction)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원리는 이렇다. 다른 데이터들과 견주어 봤을 때 유독 동떨어진 곳을 '수상한 데이터'로 지목하는 것이다. 반 전체가 비슷한 답을 냈는데 혼자만 엉뚱한 방향으로 간 학생의 답안부터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이 '튀는 정도'와 라벨 오류 확률의 상관관계는 0.86으로 잘 들어맞았다. 또한, ’GPAEC 알고리즘‘은 비슷한 오류끼리 겹쳐 뽑지 않도록 서로 다른 유형을 고르게 선택하고, 각 기관이 보고한 성적이 실제 기울기와 어긋나면, 믿기 어려운 보고로 판단해 걸러낸다. "시험을 망쳤다"라는 학생의 말이 사실인지 답안지로 대조하는 셈이다. 그 결과 논문에 제시된 36개 조건 중 34개에서 가장 높은 평균 정확도를 기록했고, 첫 검수 단계에서 제대로 짚어낸 비율이 88.9%로 무작위 선택(78.6%)이나 성적만 본 방식(42.2%)을 크게 앞섰다. 이 기술의 가치는 '데이터를 보지 않고 문제를 찾는다'라는 데 있다. 병원들이 환자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도 함께 진단 AI를 키우거나, 개인 정보 유출 없이 스마트폰으로 AI를 학습시키는 사례가 늘수록 이 기술의 활용 가치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개인정보는 지키면서 더 믿을 수 있는 AI를 만드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김광인 교수는 "개인정보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는 의료·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신뢰 가능한 AI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의 한국연구재단(No. RS-2024-00337559) 사업과 정보통신기획평가원(No. RS-2019-II191906, RS-2022-II220290)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609/aaai.v40i27.39419 1. 가중치 기울기(Weight Gradient): 현재 모델의 예측 오차를 줄이기 위해 신경망의 각 가중치를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바꿔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원본 데이터 대신 클라이언트의 학습 특성을 나타내는 대리 정보로 사용했다. 2. 가우시안 프로세스(Gaussian Process): 관측된 값들 사이의 유사성과 불확실성을 확률적으로 추정하는 방법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다른 클라이언트들의 기울기 패턴으로 특정 클라이언트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데 사용했다.
화학 조승환 교수 연구팀, 화학 실험실 만능 일꾼, 100년 한계 넘었다
[그리냐르 시약 반응성 제어해 원하는 구조 분자만 선택적 합성] POSTECH 화학과 조승환 교수, 박사과정 이세민 씨, 한승철 박사, 통합과정 최조은 씨 연구팀이 신약 개발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밀 합성의 오랜 난제를 해결했다. 한 세기 넘게 화학 실험실의 ‘만능 일꾼’으로 불려 온 유기합성 대표 시약의 과도한 반응성을 제어하여 서로 다른 입체구조들이 섞인 물질에서도 원하는 구조의 유기 분자만 선택적으로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합성화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신세시스(Nature Synthesis)’에 게재됐다. 신약 개발에서는 분자 '모양'이 약효를 좌우한다. 같은 원자로 이루어졌더라도 원자의 공간적 배열이 다르면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닮았지만 겹칠 수 없듯이 거울상 관계에 있는 분자는 전혀 다른 성질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는 입체구조의 분자만 선택적으로 만드는 '비대칭 합성' 기술이 신약과 기능성 소재 개발에서 매우 중요하다. 1900년 프랑스 화학자인 빅토르 그리냐르(François Auguste Victor Grignard)가 개발한 '그리냐르 시약(Grignard reagent)'은 대표적인 유기마그네슘 시약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활용도가 높아 100년 넘게 유기합성 분야에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반응성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원치 않는 반응까지 일어나 비대칭 합성에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여러 입체구조가 섞인 시약에서 원하는 구조만 선택적으로 반응시키는 일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 '만능 일꾼'의 반응성을 ‘붕소’로 해결했다. 마그네슘이 결합한 탄소 바로 옆에 ‘붕소’를 배치해, 이 ‘만능 일꾼’ 시약의 높은 반응성을 필요한 수준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붕소는 원자 구조상 전자를 받아들일 빈자리를 가진, '전자가 부족한' 원소로 주위에 있는 탄소가 전자를 지나치게 내어주며 날뛰려고 할 때, 붕소가 전자를 붙잡아 탄소를 차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새로운 합성 전략도 개발했다. 연구팀은 탄소 하나에 붕소 두 개가 붙은 ‘1,1-이붕소알케인(gem-diborylalkane)에서 붕소 하나만 선택적으로 마그네슘으로 바꾸는 '붕소-마그네슘 금속 교환(boron-to-magnesium transmetalation)' 반응을 구현해, 붕소가 인접한 새로운 그리냐르 시약을 안정적으로 합성했다. 이렇게 만든 시약은 니켈 촉매를 사용한 반응에서 다양한 알킬 화합물과 높은 수율은 물론 뛰어난 입체선택성을 보였다. 서로 다른 입체구조들이 섞인 물질을 원하는 하나의 구조로 선택적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팀은 붕소가 그리냐르 시약 반응성을 조절하는 과정과 높은 입체선택성이 형성되는 원리까지 밝혀 반응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생성된 유기 붕소 화합물은 붕소 부분을 다른 작용기로 쉽게 치환할 수 있어, 의약품과 천연물 합성에 활용될 '분자 조립용 블록'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조승환 교수는 "그리냐르 시약은 유기합성에서 널리 쓰이고 있지만, 높은 반응성 때문에 비대칭 합성에서는 활용이 제한적이었다“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선 만큼 의약품과 기능성 소재를 비롯한 다양한 고부가가치 카이랄 분자 합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 (유형2) 및 우수선도연구센터 (SRC), 국가연구소 (NRL 2.0),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4160-026-011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