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IT융합 백창기 교수 연구팀, ‘나노튜브’로 폐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기술의 한계를 넘다
[속 빈 나노튜브 구조 포논 국소화 현상으로 열전도 억제 원리 규명] 챗GPT에게 질문 하나를 던질 때마다 서버실 어딘가에서 열이 난다. 달리는 전기차 배터리가 열이나면 그 열을 멈출수가 없다, 또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면 언제나 열이 발생하나, 그 열은 그냥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버려지는 이 열들을 다시 전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국내 연구팀이 그 가능성을 한 단계 현실에 가깝게 끌어당겼다. POSTECH 전자전기공학과·IT융합공학과 백창기 교수, IT융합공학과 통합과정 김기영 씨 연구팀이 ‘속이 빈 실리콘 나노튜브’ 구조를 이용해 폐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소자의 효율 한계를 돌파할 원리를 규명했다. 이 연구 성과는 에너지·나노기술 분야 국제 학술지인 ‘나노에너지(Nano Energy)’에 게재됐다. ‘열전소자’는 온도 차이만으로 전기를 만드는 소자다. 산업 현장의 폐열 회수부터 배터리 냉각, 우주 탐사선의 전원 공급을 위한 핵 전지까지 쓰임새는 다양하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데이터센터 열 관리가 세계적인 과제로 떠오른 지금,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문제는 소재다. 열전소자 핵심 재료는 비스무트(Bi), 텔루륨(Te) 등 희소금속이다. 매장량이 적고 공급망이 불안정해, 국제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가격과 수급이 요동쳤다. 반면 실리콘은 지구상에 풍부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제조 공정과도 잘 맞는다. 그런데도 지금껏 실리콘 기반 열전소자가 상용화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효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열전소자 효율을 높이려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열은 최대한 막고, 전기는 잘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구조를 작게 만들수록 열 이동은 줄어드는 대신 전기 흐름까지 방해받는 딜레마가 생긴다. 소음 차단벽을 세우면 바람도 함께 막히는 것처럼, 이 두 가지 특성은 좀처럼 따로 제어하기가 어렵다. 연구팀은 이 딜레마를 '속 빈 구조'로 풀었다. 일반적인 나노선1)이 속이 꽉 찬 막대 모양이라면, 나노튜브는 내부가 비어 있는 대롱 형태다. 두 구조를 비교한 결과, 나노튜브에서 약 70% 낮은 열전도도가 확인됐다. 더 놀라운 것은 표면적 비율을 같은 조건으로 맞췄을 때의 결과다. 조건이 같으면 성능도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나노튜브는 약 33% 더 낮은 열전도도를 보였다. 속이 비어 있다는 구조 자체가 열을 추가로 막는 독자적인 효과를 낸다는 증거다. 그 원인을 연구팀은 '포논2) 국소화' 현상에서 찾았다. ‘포논’은 고체 안에서 열을 전달하는 진동을 입자처럼 표현한 개념이다. '포논 국소화'란 이 진동이 구조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일부 영역에 갇혀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파도가 방파제 안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기존에는 극저온이나 매우 특수한 구조에서만 나타난다고 알려진 이 현상이, 비교적 단순한 나노튜브 구조에서도 상온에 가까운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원리가 실용화된다면, 버려지는 열을 전기로 되돌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길이 열린다. 희소금속 없이 반도체 공정 기술만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POSTECH 백창기 교수는 "국내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과의 호환성 덕분에, 희토류 재료에 의존하지 않는 차세대 열관리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DOI: https://doi.org/10.1016/j.nanoen.2026.112007 1. 나노선(nanowire): 직경이 수 나노미터에 불과한 가느다란 원통형 구조체다. 2. 포논(phonon): 고체 내부에서 열을 전달하는 에너지 단위로,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진동할 때 생겨나는 파동을 입자처럼 표현한 개념이다.
생명 김종민 교수 연구팀, “단백질 공장의 일꾼이 '스위치'가 됐다” 세포 스스로 판단하는 유전자 회로 기술 개발
[세포 안에서 복잡한 계산 가능한 RNA 회로 ‘RATEX’ 개발]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기계가 이번엔 ‘스위치’ 역할까지 겸하게 됐다. 최근 POSTECH 연구팀이 세포 내부에서 여러 신호를 동시에 읽고 스스로 판단해 반응을 만들어내는 'RNA 기반 스마트 유전자 회로' 플랫폼을 새롭게 개발했다. 단순히 유전자를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세포 자체가 일종의 '살아있는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시대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POSTECH 생명과학과 김종민 교수, 강한솔 박사, 통합과정 고현섭· 김채리 씨 연구팀이 개발한 이 기술의 이름은 ‘RATEX1)’ 플랫폼으로, 이번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최근 게재됐다 세포가 유전자를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DNA에 담긴 정보를 RNA로 옮기는 '전사(transcription)' 단계, 그리고 그 RNA를 읽어 단백질을 만드는 '번역(translation)' 단계다. 지금까지 RNA 기반 유전자 회로 기술은 신호의 감지와 처리가 주로 번역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문제는 세포가 처리해야 할 신호가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여러 신호등이 동시에 깜빡이는 복잡한 교차로처럼, 세포도 수많은 분자 신호를 한꺼번에 통합해 판단해야 한다. 기존 기술로는 이 복잡한 계산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ribosome)'이다. 리보솜은 RNA를 읽으며 묵묵히 단백질을 찍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연구팀은 특정 조건이 충족될 때 리보솜이 유전자 위 특정 지점에서 멈추도록 설계했다. 이 '멈춤' 자체가 신호가 되어 유전자 발현의 시작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리보솜이 단순한 생산 기계에서 '스위치'로 직급이 바뀐 셈이다. 번역 단계에서 얻은 계산 결과가 전사 단계의 작동 여부로 즉시 이어지는 이 구조가 바로 RATEX 플랫폼의 핵심으로, 연구팀은 이를 '번역-전사 전환 기술(TTC2))'이라고 부른다. 기존 유전자 회로에서 검증된 번역 단계의 논리 스위치들을 레고 블록처럼 조합해 전사 과정을 직접 제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기존 합성생물학 유전자회로의 설계 한계를 극복하고 확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연구팀은 최대 1,492배에 달하는 유전자 조절 능력을 확인하였고, 최대 6개의 RNA 신호를 동시에 처리하는 복잡한 논리 연산 회로도 구현했다. 여기에 RNA 신호뿐만 아니라 아미노산이나 비타민 같은 대사물질까지 함께 인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하이브리드(hybrid) 논리 게이트도 만들었다. 세포가 단순히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종류의 정보를 동시에 '계산'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이 기술을 CRISPR3) 유전자 제어 시스템과 결합해, 특정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만 세포의 형태를 바꾸거나 세포 내부 구조를 새롭게 재배치하는 데도 성공했다. 세포를 정밀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이 기술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암세포에서만 나타나는 특정 신호를 감지해 그 자리에서 치료 물질을 생산하는 스마트 치료제나, 특정 오염물질이 감지될 때만 반응하는 환경 바이오센서도 발전할 수 있다. 김종민 교수는 "번역 단계에서 일어나는 정교한 판단 과정을 전사 제어로 연결한 것이 연구의 핵심"이라며, "RNA와 대사물질처럼 서로 다른 신호를 하나의 RNA 설계 안에서 통합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설계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기본연구사업, POSTECH 기초과학연구원 지원사업,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장비센터,경북테크노파크 푸드테크 연구개발거점센터 사업, 농림축산식품부 고부가가치식품기술개발사업,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nie.202520600 1. RATEX: Ribosome-Assisted Transcriptional EXpression controller 2. TTC: Translation-to-Transcription Converter 3. 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DNA를 원하는 위치에서 정밀하게 편집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
신소재/배터리 강병우 교수 연구팀, 전해질 내부의 이온 고속도로로 ‘꿈의 배터리’ 전고체전지 한계 넘는다
[게르마늄 도입으로 리시콘(LISICON)형 고체전해질 이온 전도도 5배 향상]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무엇일까. 더 복잡한 구조나 새로운 소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담는 것’일지도 모른다. POSTECH 연구팀이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전극을 두껍게 만들수록 성능이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고, 기존보다 수십 배 두꺼운 전극도 거뜬히 버티는 차세대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배터리공학과 강병우 교수, 신소재공학과 우승준 박사(現 LG에너지솔루션), 신소재공학과 통합과정 박준형 씨 연구팀은 기존보다 수십 배 두꺼운 양극을 사용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전고체 배터리 플랫폼 구현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영국왕립화학협회 에너지 분야 국제 학술지인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A’에 게재됐다. 전고체 배터리(all-solid-state battery)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를 사용하는 차세대 배터리로, 불이 붙을 위험이 낮고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그런데 꿈에도 약점은 있었다. 고체 안에서 리튬 이온이 느리게 움직이는 탓에 전극을 두껍게 만들수록 내부 저항이 커지고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소재 자체를 뜯어고치는 대신, 리튬 이온이 지나가는 '길'을 바꾸는 전략을 선택했다. 기존 리시콘형1) 산화물 고체 전해질(Li3.5Si0.5P0.5O4, 이하 LSPO) 소재에서 규소(Si)와 인(P)의 일부를 게르마늄(Ge)으로 바꾼 것이다. 마치 좁은 골목길이 얽히고설킨 구도심을 고속도로망으로 재편한 것처럼, 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훨씬 넓어지고, 통로도 서로 촘촘하게 연결됐다. 그 결과, 이온 전도도가 기존 대비 약 5배 향상됐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소재가 양·음극 소재와의 접촉성도 매우 좋다는 것이다. 양극 소재와는 단순한 가열만으로 단단하게 결합하는 공소결2)이 가능하며, 음극으로는 리튬 금속을 사용하여 별도 외부 압력 없이 안정적인 배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약 14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초두꺼운 양극(Ultra-thick electrode)’을 적용한 전고체 배터리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보고되는 전극보다 수십 배 두꺼운 수준으로, 그동안 ‘두꺼우면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전고체 배터리의 한계를 정면으로 넘어선 결과다. 이렇게 제작된 배터리는 상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부피 기준 에너지 밀도는 841Wh/L(와트시퍼리터, 1L 안에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에 달했다. 더 작고 가벼운 배터리로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구조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차세대 에너지 저장 기술의 방향을 한 단계 앞당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POSTECH 강병우 교수는 “산화물계 전고체 배터리에서 두꺼운 전극을 도입해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라며,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동시에 만족하는 차세대 리튬 금속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이차전지 첨단전략산업 글로벌 지원 사업‘, ’기판실장용 산화물계 초소형 적층 전고체전지개발 사업’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6TA00467A 1. 리시콘형(Lithium Superionic Conductor type): 리튬 이온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2. 공소결(co-sintering) : 둘 이상의 물질을 고온에서 구워 하나의 입자로 만드는 공정
화공/융합 차형준 교수 연구팀, “단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홍합에서 힌트 얻은 백신, 접종 사각지대 없앤다
[홍합접착단백질 활용해 ‘지속형 면역’ 구현… 반복 접종 부담 줄일 기술 제시] 국내 연구팀이 홍합의 강한 수중 접착 원리를 응용해, 단 한 번의 접종으로 장기간 면역 효과를 내는 백신 기술을 개발했다. 반복 접종 부담을 줄이는 것을 넘어, 백신 접근 자체가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닿을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POSTECH 화학공학과·융합대학원 차형준 교수, 시스템생명공학부 박사과정 정석원 씨, 화학공학과 박사과정 우현택 씨 연구팀이, 인천대 생명공학부 황병희 교수 연구팀과 함께 수행한 이 연구는 최근 생체소재 분야 국제학술지인 ‘바이오머티리얼즈(Bio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독감, 코로나19 등 감염병 백신은 한 번 맞는다고 끝이 아니다. 충분한 면역 효과를 얻으려면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차례 추가 접종을 받아야 한다. 이는 시간과 비용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여러 나라에서는 아예 접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왜 반복 접종이 필요할까. 현재 대부분의 백신은 바이러스 일부 성분만 사용하는 방식이라 안전하지만,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힘이 약하다. 게다가 백신 성분이 몸속에서 빠르게 사라지면서 면역 반응이 충분히 유지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친 파도에도 바위에 찰싹 잘 달라붙어 있는 홍합에 주목했다. 홍합이 만드는 접착단백질에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면역증강 펩타이드를 결합해 백신 성분을 몸속 특정 위치에 오랫동안 붙잡아 둘 수 있는 '접착성 어주번트 단백질(AAP, Adhesive Adjuvant Protein)'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쉽게 말해, ‘백신용 접착제’를 만든 셈이다. 접착성 어주번트 단백질은 백신의 핵심 성분인 항원과 함께 나노입자 형태로 뭉쳐, 체내에 부착하여 머물면서 항원과 면역증강제를 천천히 내보낸다. 자연 감염이 지속적으로 면역계를 훈련하는 것처럼, 면역세포를 오랫동안 자극해 강력하고 지속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그 결과, 알루미늄염(Alum)을 기반으로 한 기존 면역증강제보다 백신 성분이 체내에 오래 머물렀으며, 단 한 번의 접종만으로 기존 대비 3배 이상 지속되는 면역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면역증강 펩타이드로서 'PADRE1)'를 사용해 면역 반응을 한층 강화했다. PADRE는 사람들의 면역 유형과 관계없이 폭넓게 작용하는 범용 면역 강화 물질로, 특정 개인에게 효과가 한정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면역반응 핵심 경로(MHC Class II)를 활성화한 결과, 항체 생성을 돕는 도움 T세포와 장기 면역 기억을 형성하는 기억 T세포가 늘었다. 접종 6주 후에도 면역 반응이 유지됐으며,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세포독성 T세포 활성도 높게 나타났다. 특히, 면역세포가 지쳐 기능이 떨어지는 '면역 고갈' 현상 없이 건강한 면역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점도 확인됐다. 접종 단 한 번으로 충분한 면역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이 기술은 많은 사람을 위한 현실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콜드 튜머(cold tumor)2)‘처럼 치료 효과가 낮았던 난치성 암 백신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차형준 교수는 “홍합접착단백질 기반 백신 전달시스템은 생체적합성이 뛰어나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실용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반복 접종 부담을 줄이고, 세계 백신 접근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글로벌연구네트워크확산사업과 국가연구실(NRL) 2.0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biomaterials.2026.124253 1. PADRE: Pan HLA-DR binding Epitope 약자로 '범용 HLA-DR에 결합할 수 있는 에피토프'를 의미한다. 사람마다 다른 면역 유형에 관계없이 대부분 사람에게 폭넓게 작용하도록 인공 합성된 면역증강 펩타이드 물질이다. 2. 콜드 튜머(cold tumor) : 면역세포(T세포)가 종양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거나 암세포 주위의 면역 억제 환경으로 인해 면역항암제 반응률이 낮은 종양을 의미
물리/융합 이길호 교수 연구팀, 빛 알갱이 한 개의 흔적까지 읽는다… 그래핀으로 여는 ‘보이지 않는 빛’의 세계
[저에너지 광자 검출 위한 초고감도 센서 개발] 빛 알갱이 한 개가 지나간 흔적까지 읽어내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제 과학자들은 더 어두운 우주와 더 미세한 신호 속에서도 새로운 정보를 포착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됐다. 최근 POSTECH 물리학과·융합대학원 이길호 교수 연구팀이 그래핀을 이용해 단일 광자까지 검출할 수 있는 초고감도 양자 센서를 개발하며, ‘보이지 않던 빛의 세계’를 넓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빛은 ‘광자’라는 아주 작은 에너지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알갱이를 하나씩 검출하는 기술은 양자통신, 양자컴퓨팅, 우주 관측 같은 첨단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기존의 단일 광자 검출 기술은 반도체 전자 구조나 초전도체의 에너지 틈을 이용하는데, 이 방식은 안정적이지만, 비교적 높은 에너지를 가진 빛에만 반응한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적외선이나 마이크로파처럼 에너지가 낮은 빛은 검출이 어려워 새로운 방식의 센서 기술이 필요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그래핀 속 ‘디랙(Dirac) 전자1)’의 독특한 열적 특성이다. 그래핀은 전자들이 매우 가볍게 움직이고 열을 거의 저장하지 않는 물질이다. 그만큼 아주 작은 에너지에도 쉽게 온도가 변하는, 일종의 ‘초민감 온도계’라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그래핀 기반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2) 소자를 만들었다. 핵심은 빛을 전기 신호로 읽어내는 기존과 달리, 광자가 흡수되면서 발생하는 ‘미세한 열 변화’를 감지하는 데 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작은 촛불 자체는 보이지 않아도, 퍼져 나오는 열기로 존재를 알아채는 것과 비슷하다. 실험 결과, 광자가 한 개 흡수되었을 때 그래핀 전자 온도가 약 2K3)(캘빈)까지 상승했고, 그로 인해 초전도 상태가 깨지며 발생하는 변화를 전기 신호로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즉, ‘빛 알갱이 한 개가 지나갔다’라는 것을 전기적으로 확실하게 확인한 것이다. 성능도 뛰어났다. 87%의 높은 검출 효율을 보였으머, 잘못된 신호를 감지하는 오검출률은 초당 1회 이하, 조건에 따라 일주일에 1회 수준까지 낮췄다. 또한 기존 기술과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초고감도(등가 잡음 전력: 2×10-22W/√Hz 수준)를 달성했다. 이번 연구는 특정 에너지 문턱을 넘어야만 빛을 감지할 수 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극미세한 열 변화까지 읽어내는 광자 검출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길호 교수는 “기존 검출 기술은 일정한 에너지 문턱을 넘어야만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훨씬 작은 에너지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라며 “적외선부터 마이크로파 영역까지 확장해 우주 관측, 양자통신, 암흑물질 탐색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POSTECH 이길호 교수 연구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삼성전자 등의 지원을 받아 미국 MIT, BBN, Washington University, NIMS 등 연구팀과 수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0252-2 1. 디랙(Dirac) 전자: 질량이 거의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매우 빠르게 이동하는 전자로, 그래핀 등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자 상태로서 차세대 양자소자의 핵심 물리로 주목받는다. 2.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 두 초전도체 사이 전자가 저항 없이 양자 터널링하는 소자로, 양자컴퓨팅과 고감도 센서의 핵심 기술이다. 3. K(Kelvin): 아주 낮은 온도를 표현할 때 켈빈(K)을 사용한다. 0K는 약 –273.15℃에 해당하며, 2K는 약 -271℃ 정도다.
화학 박수진 교수 연구팀, “충전 20분, 주행 1,000km” 전기차 '아킬레스건' 없애다
[충·방전 반복해도 안 깨지는 실리콘 배터리 소재 개발] 단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전기차. 그것도 20분 만에 충전을 끝내고 말이다. 국내 연구진이 전기차 배터리 고질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신소재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상상이 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 제민준 박사 연구팀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최장욱 교수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이차전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고강도 실리콘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전기차의 가장 큰 숙제는 결국 배터리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빨리 충전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로 가장 많이 쓰인 소재는 '흑연'이지만 흑연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이미 이론적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흑연에 비해 최대 10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꿈의 소재'로 불려왔다. 문제는 실리콘이 충·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부피가 무려 300%까지 부풀었다 줄어든다는 점이다. 풍선을 반복해서 불면 결국 터지는 것처럼, 실리콘 입자도 갈라지거나 산산조각 났다. 이 때문에 배터리 성능이 빠르게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기존 연구들이 소재를 그냥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연구팀은 반복적인 부피 변화를 버텨내는 '강도'에 주목했다. 단단하면서도 쉽게 금 가지 않는 구조, 즉 깨지지 않는 유리가 아니라 구부러져도 돌아오는 금속 같은 특성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실리콘 산화물 내에 32nm(나노미터) 크기 불화리튬(LiF) 결정을 정밀하게 배치했다. 이는 결정 크기가 작아질수록 강해지지만, 또 지나치게 작아지면 오히려 약해지는 ‘홀-페치(Hall–Petch)1) 법칙’과 ‘역 홀-페치 효과’를 응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이온은 잘 통과시키고, 전자는 빠르게 이동시키는 특수 코팅층을 입자 표면에 더해 급속충전 성능까지 함께 잡았다. 실험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는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 변화가 18.9% 수준에 머물렀다. 기존 실리콘의 300% 팽창과 비교하면 사실상 '끄떡없는' 수준이다. 실제 전지 평가에서도 10–80% 충전 기준 20분 급속충전 조건으로 1,000회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1.26Ah(암페어시)급 파우치형 배터리에서도 500회 이상 정상 구동을 확인했으며, 에너지 밀도는 1kg당 402Wh(와트시), 부피 기준으로는 1L당 1,125Wh를 기록했다. 현재 시판 중인 전기차보다 훨씬 긴 주행거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기술이 실제 전기차에 적용될 경우, 한 번 충전으로 약 1,00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나 장거리 운전자들이 느끼는 '혹시 중간에 방전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이른바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이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POSTECH 박수진 교수는 "실리콘 음극재가 부서지는 문제를 ‘강도’와 ‘영률’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라며 “고에너지 밀도와 급속충전을 만족하는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최장욱 교수도 “나노미터 수준에서 결정 크기를 정밀하게 제어해 성능을 극대화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대 공학연구원/이차전지혁신연구소/ 신소재공동연구소, LG에너지솔루션 오픈액세스 출판 비용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202528238 1. Hall-Petch : ‘재료를 이루는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진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너무 작아지면(보통 수십 nm 이하) 반대로 약해지는 '역 Hall-Petch 효과'가 나타난다. 즉,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지다가 특정 구간을 지나면 약해지게 되어, 이들의 교차점이 가장 강한 지점으로 여겨진다.
기계 이상준 교수 연구팀, 바닷속 ‘하얀 석유’ 리튬, 햇빛으로 뽑아낸다
[태양빛만으로 고농도 염수에서 리튬만 골라내는 차세대 나노필터 개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전기차를 달리게 하고, 태양광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저장하는 것.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리튬'이 필요하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하얀 석유'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 자원을, 단지 햇빛만으로 바닷물에서 골라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POSTECH 기계공학과 이상준 교수, 샤킬루르 라헤만(Shakeeur Raheman) 박사 연구팀이 태양빛을 이용해 고농도 염수에서 리튬만 선택적으로 회수하는 나노여과막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최근 게재됐다. 리튬은 바다와 염분이 높은 호수에 녹아 있지만, 정작 꺼내 쓰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마그네슘이라는 '훼방꾼' 때문이다. 마그네슘은 리튬과 그 특성이 비슷해 함께 녹아 있는데, 물 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어 리튬만 따로 분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기존에는 드넓은 증발지에 염수를 가득 채우고 수개월씩 햇볕에 말리거나, 강한 화학약품을 대량으로 쓰는 방식도 있지만 당연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환경에도 부담이 컸다.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리튬 수요가 치솟는 지금, 보다 깨끗하고 환경친화적이며 효율적인 추출 기술이 절실 하게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연구팀은 '그래핀 나노리본(GNR1))'과 '광열 환원 그래핀 산화물(PrGO2))'을 결합한 초미세 나노 채널을 개발했다. 원리는 이렇다. 물에 녹은 이온은 주변 물 분자를 달고 이동하는데, 마그네슘은 리튬보다 물 분자를 훨씬 강하게 붙잡는다. 리튬은 가벼운 백팩 하나만 메고 좁은 문을 통과하는 반면, 마그네슘은 커다란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어 같은 문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핀 나노리본 가장자리에는 여러가지 화학 기능기가 있는데, 이 기능기들은 리튬 이온 주변 물 분자를 살짝 떼어내서 이동을 돕는다. 덕분에 리튬은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막을 통과한다. 그리고, '광열 환원 그래핀 산화물‘ 구조는 태양 빛을 열로 바꾸는 변환 능력이 있어, 햇빛을 받으면 막의 내부 온도가 올라가고 리튬 이온 이동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기본 태양광 조건(1kW·m-2)에서 시스템을 구동한 결과, 리튬과 마그네슘을 분리하는 선택성이 크게 높아졌고, 염수 속 리튬의 농축 효율은 기존 대비 약 28배까지 향상됐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이 원리를 확인했다. 리튬 이온은 막을 지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매우 낮아 빠르고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마그네슘은 이동 경로가 좁고 복잡하여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수치해석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기술은 '태양광'이라는 무한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화학약품도, 거대한 증발지도 필요 없다. 2030년이면 전 세계 리튬 수요가 현재의 수 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바다와 염호를 거대한 리튬 광산으로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POSTECH 이상준 교수는 "태양광 기반 광열 효과와 그래핀 나노구조를 결합해 리튬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플랫폼을 제시했다"라며, "차세대 친환경 이온 분리 기술과 리튬 자원 확보 기술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202528238 1. GNR(graphene nanoribbon) : 펼쳐진 탄소나노튜브(Unzipped carbon nanotube)로부터 유래한 그래핀으로, 선택적으로 기능화될 수 있는 풍부한 가장자리(edge) 부위를 노출시켜 음전하를 띤 작용기 (Mg2+)의 침투를 억제하고, 질소 함유 작용기는 Li+ 배위를 촉진함. 2. PrGO(photothermally-reduced graphene oxide) : 팽창 방지 기능이 있는 흑연 연속체이자 전도성 지지체인 광열 환원된 그래핀 산화물로 장기간 작동에도 나노채널 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함.
물리/융합 이길호 교수 연구팀, “구리에선 불가능” 수십 년 상식 뒤집어… 전자 충돌 없이 달리는 '탄도 전도' 실험 성공
[단결정 구리 박막서 '음의 굽힘 저항' 신호 첫 관측]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손이 뜨거워질 만큼 열이 난다. 이 열의 상당 부분은 칩 안을 달리는 전자들이 서로, 혹은 장애물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생겨난다. 회로가 작아질수록 이 '교통 체증'은 심해지고, 속도는 느려지며 전력 소모는 늘어난다. 반도체 업계가 수십 년째 풀지 못한 이 문제에 최근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됐다. POSTECH 물리학과·융합대학원 이길호 교수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조용진 씨 연구팀이 최근 부산대 첨단융합학부 정세영 명예교수 연구팀,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물리천문학과 김성곤 교수 연구팀은 실제 반도체 배선과 비슷한 크기의 구리 박막에서 반도체 속 전자 '교통 체증'을 없앨 핵심 현상인 ‘탄도 전도(ballistic transport)1)’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 연구 성과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탄도 전도’란 전자가 어딘가에 거의 부딪히지 않고 직선에 가깝게 쭉 달려가는 현상이다. 당구공이 다른 공과 충돌 없이 테이블 끝까지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전자가 이렇게 이동하면 에너지 손실과 발열이 줄고, 신호 전달 속도도 빨라진다. 반도체 속에 전자를 위한 '고속도로'가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껏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 같은 특수한 소재에서만 주로 관측됐다. 반도체 배선에 가장 널리 쓰이는 구리는 전자가 쉽게 산란되는 금속이라, 탄도 전도는 사실상 불가능한 물질로 여겨져 왔다. 연구진은 'ASE(Atomic Sputtering Epitaxy)2)' 기술을 이용했다. 일반 금속 박막은 작은 결정 알갱이들이 불규칙하게 이어 붙은 구조라 전자가 경계마다 부딪힌다. 연구진은 이 경계를 없앤 '단결정 구리(Cu(111)) 박막'을 만들고, 표면 거칠기도 0.2nm(나노미터) 수준으로 매우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런 다음 두께 약 90nm, 선폭 150nm의 구리 배선을 십자 형태로 제작해 전자 이동 특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영하 188도(85K) 이하 저온 환경에서, 전자가 충돌 없이 이동할 때만 나타나는 '음의 굽힘저항(negative bend resistance)' 신호를 관측했다. 일반 구리 도체에서는 전자가 반복적으로 산란되는 ‘확산 전도3)’가 나타나 저항은 항상 양의 값을 갖는데, 이러한 신호는 배선에서 ‘탄도 전도’가 일어났다는 강력한 증거다. 무엇보다 이번 성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 구조가 아니라, 지금 실제 공장에서 쓰이는 반도체 배선과 비슷한 크기에서 이 현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신호 지연 감소, 발열 감소, 저전력·고속 회로 구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OSTECH 이길호 교수는 "탄도 전도는 전자소자 전력 소모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상적인 방식"이라며 "산업 표준 금속인 구리에서, 실제 배선 크기로 이 현상이 가능함을 보인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6-70252-2 1. 탄도 전도(Ballistic Transport): 전자가 이동 중 다른 입자나 불순물과 거의 충돌하지 않고 직선으로 통과하는 현상이다. 총알이 공기 저항 없이 날아가듯, 전자가 배선 안을 방해 없이 가로지른다고 이해하면 쉽다. 충돌이 없으니 에너지 손실이 적고 발열도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그래핀·탄소나노튜브 같은 특수 소재에서만 주로 관측됐다. 2. ASE(Atomic Sputtering Epitaxy): 원자 단위로 물질을 한 층씩 쌓아올리는 박막 제조 기술이다. 레고 블록을 한 칸 한 칸 정밀하게 쌓듯, 원자를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배열해 결정 구조가 완벽하게 균일한 박막을 만들어 낸다. 3. 확산 전도(Diffusive Transport): 전자가 이동하는 도중 원자 진동이나 불순물, 결정 경계 등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방식이다.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적인 금속 도선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전자 이동 방식으로, 충돌이 반복될수록 저항과 열이 증가한다.
신소재/친환경/배터리 김용태 교수 연구팀, “다쳐도 스스로 낫는 촉매 나왔다” 수소차·연료전지 핵심 난제 극복할까
[손상돼도 금속 상태로 되돌아가는 전기화학 촉매 개발] 상처가 나도 회복하는 피부처럼, 산화되어 성능이 떨어져도 스스로 원래 상태를 되찾는 촉매가 나왔다. 수소차와 연료전지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소 경제 상용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친환경소재학과·배터리공학과 김용태 교수, POSTECH 신소재공학과 유상훈 박사(現 국립공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유상훈 교수), 서울대 신소재공학부 한정우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 이국승 박사 연구팀이 함께 스스로 성능을 회복하는 촉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에너지 앤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게재됐다. 수전해 장치와 수소 연료전지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거나,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수소 경제의 핵심 기술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내부에서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가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패시베이션(passivation)1)’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이 상태가 되면 촉매가 다시는 본래 성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 시동을 켜고 끄는 과정(이하 SU/SD2))이나 연료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처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건에서 촉매 손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뛰어난 초기 성능을 갖고도 실제 제품에 쓰이지 못한 촉매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이리듐(Ir)과 철(Fe)을 결합한 합금 나노촉매(IrFe/C)를 설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핵심은 촉매 '겉'과 '속'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 금속 합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바깥 표면만 주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촉매 표면이 산화되더라도 다시 금속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 회복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동적 분리-표면 재구성(dynamic segregated-surface reconstruction)’이라 설명했다. 불에 타도 다시 재생되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촉매 스스로 성능을 복원하는 길을 연 셈이다. 실험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수전해 장치(PEMWE3))와 연료전지(PEMFC4))에 적용한 결과, 기존 촉매(Pt/C)는 성능이 62%나 감소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촉매(IrFe/C)는 16% 감소에 그쳤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불안정한 운전 조건에서도 높은 전류 밀도와 최대 출력 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기존 촉매의 출력 밀도가 최대 0.25W·cm⁻²까지 떨어지는 동안, 새 촉매는 0.72W·cm⁻²를 유지했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을 넘어, 성능 자체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수소 에너지 경제성을 높여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촉매 수명이 늘어나면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의 유지 비용이 줄어들고, 교체 주기도 길어진다. POSTECH 김용태 교수는 “촉매 표면 패시베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라며 “수전해 기반 친환경 수소 생산은 물론, 수소차·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비 수명을 늘리고 유지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5ee05899f 1. 패시베이션(passivation): 금속이나 촉매 표면에 산화물층 같은 얇은 막이 형성되면서 외부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이 막은 촉매의 활성 부위를 덮어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2. SU/SD(Start-up/Shut-down): 장치의 시동(Start-up)과 정지(Shut-down) 과정을 뜻한다. 수소 연료전지나 수전해 장치는 이 과정에서 전압 변화가 크게 발생해 촉매 열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3. PEMWE(Proton Exchange Membrane Water Electrolyzer):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 장치.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H₂)와 산소(O₂)로 분리하는 장치로,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4. PEMFC(Proton Exchange Membrane Fuel Cell): 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 수소와 산소의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로, 수소차와 친환경 발전 시스템 등에 활용된다.
화공 한지훈 교수 연구팀, 친환경 플라스틱 한계, ‘나무’에서 답을 찾다
[리그닌 화학 개질로 성능·경제성·환경성 모두 향상] 땅에 묻으면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 가격도 비싸고 생각보다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국내 연구팀이 나무로 종이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POSTECH 화학공학과 한지훈 교수, 통합과정 권기현 씨 연구팀이 KIST RAMP융합연구단 최용석 선임연구원, 전남대 석유소재화학공학과 변재원 교수와 함께 목재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리그닌(lignin)'을 활용하여 생분해성 플라스틱 성능, 친환경성을 모두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화학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중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소재는 'PBAT1)'다. 일정 조건에서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포장재나 농업용 비닐에 쓰기 좋아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원료 대부분 여전히 석유에서 나오는 데다 가격도 비싸다. 리그닌이나 셀룰로스 등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섞는 방법도 있지만 이러한 천연 소재는 PBAT와 잘 섞이지 않아 많이 넣을수록 오히려 플라스틱이 약해졌다. 연구팀은 리그닌의 화학 구조를 다양하게 바꿔 PBAT와 가장 잘 맞는 형태인 '페놀화 리그닌(phenolated lignin)‘을 찾아냈다. ’페놀화 리그닌‘은 PBAT 안에서 최대 20wt%2)까지 균일하게 퍼졌고, 플라스틱이 잘 찢어지지 않고 버티는 힘인 ‘인성(toughness)’도 기존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소재 간의 궁합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고분자 복합재의 성능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환경성과 경제성까지 고려해 이 기술의 산업 적용 가능성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경우 기존 PBAT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1% 감소하고, 생산 비용도 약 12%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환경 소재는 비싸고 성능도 떨어진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 결과다. 또한, 페놀화 리그닌은 빛을 차단하는 기능도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잡초 억제와 토양 온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농업용 멀칭(mulching)3) 필름처럼, 햇빛 차단이 중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플라스틱 물성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기능까지 더하는 친환경 소재'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목재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고부가가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자원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로 기대된다. 한지훈 교수는 “리그닌의 화학적 변형만으로도 플라스틱과의 궁합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라며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더 친환경적인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용석 선임연구원은 “친환경 소재가 성능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라며 “바이오 기반 복합소재 개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석유 대체 원료 기반 친환경 화학소재 개발’ 사업 및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재활용할 수 있는 미래 에어모빌리티 구조용 소재 부품 경량화 플랫폼 기술 개발’ 융합연구단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6279 1. PBAT: Poly(butylene adipate-co-terephthalate), 생분해성 고분자 소재 2. wt%: weight percent(중량 백분율), 질량 기준 비율로 전체 무게 중에서 어떤 물질이 몇 % 들어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3. 멀칭(mulching): 농작물 주변의 토양 표면을 비닐이나 짚 등으로 덮어주는 농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