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 노용영 교수 연구팀, 기억만 하던 반도체 물질, 이제 '생각'까지 한다
[250 ℃ 저온 4인치 웨이퍼 규모 κ상 In2Se3 트랜지스터 구현] 같은 탄소라도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흑연이 되기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반도체 재료도 마찬가지다. 같은 물질이라도 원자 배열이 조금만 달라지면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잠들어 있던' 한 결정 구조가, 이 원리 덕분에 차세대 반도체의 두뇌로 깨어났다. POSTECH 화학공학과 노용영 교수, 통합과정 이재윤 연구팀이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권지민 교수·이용우 박사 연구진과 함께 그동안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κ상 인듐 셀레나이드(In2Se3)’를 4인치 웨이퍼 규모 논리 트랜지스터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인듐 셀레나이드(In2Se3)는 매우 얇으면서도 전하가 빠르게 흐르는 특성 덕분에 일찍이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 꼽혀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결정 구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 번 가해진 전압의 흔적을 ‘기억하는’ 특성은 메모리에는 유리했지만, 같은 신호에 항상 같은 답을 내야 하는 논리회로에서는 오히려 불안정하였다. 게다가 작은 조각에서는 성능이 좋아도, 넓은 웨이퍼 전체에 고르게 펼쳐 만들기가 어려워 실제 공장 공정에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κ상에 눈을 돌렸다. 같은 인듐 셀레나이드라도 κ상은 원자 배열이 달라 '기억하는' 성질이 억눌려 있다. 그로 인해, 늘 일정한 답을 내야 하는 논리회로에 더 유리하다. 연구팀은 산업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열증착 공정으로 인듐 셀레나이드를 쌓은 뒤 250℃에서 열처리했다. 그러자 약 10nm(나노미터) 두께의 κ상 박막이 4인치 웨이퍼 전체에 고르게 입혀졌다. 공정 온도도 이미 만들어진 실리콘 회로를 망가뜨리지 않고, 그 위에 소자를 층층이 쌓아 올릴 수 있는 450℃ 이하 조건을 안정적으로 만족했다. 성능도 뛰어났다. 웨이퍼에 576개(24×24)를 촘촘히 배열한 트랜지스터는 위치에 상관없이 균일한 특성을 보였고, 전하 이동속도를 뜻하는 평균 전자 이동도는 39.3cm2V−1s−1, 신호를 켜고 끄는 효율인 온·오프 전류비는 1억 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저온⦁대면적 박막 공정으로 제작된 기존 2차원 반도체 트랜지스터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100ns의 짧은 전기 신호를 1,000만 회 반복하는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 실제 논리소자에서 요구되는 빠른 스위칭과 반복 동작 안정성을 검증했다. 여기에 특성이 전하 운반 방식이 다른 p형 셀레늄 합금화 텔루륨 산화물(Se-TeOx)을 더해 입력 신호를 정반대로 뒤집어 내보내는 회로까지 만들어냈다. 이 결정 구조가 진짜 논리 반도체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 확실한 증거였다. 이번 성과는 메모리에 어울린다고 여겨지던 인듐 셀레나이드를, 잘 쓰이지 않던 κ상으로 바꿔 넓은 웨이퍼에 고르게 입힘으로써, 논리 반도체로도 쓸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여준 연구다. 반도체를 평면이 아니라 위로 쌓아 올리는 '3차원 집적' 시대에 특히 의미가 크다. 낮은 온도에서 넓은 면적에 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완성된 실리콘 칩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기능을 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더 작고 강력한 반도체를 향한 길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연구를 주도한 POSTECH 이재윤 통합과정은 “인듐 셀레나이드는 주로 ‘기억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연구됐지만,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κ상을 안정적인 논리 반도체로 확장했다”라며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글로컬대학30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2553-y
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금속은 단단할수록 부서진다?" 금속의 딜레마, 영하 196도에서 풀다
[고강도·고내수소취성 고엔트로피합금 설계기술 개발] 미래 친환경 에너지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수소에는 뜻밖의 약점이 있다. 수소를 담고 나르는 금속에 수소가 스며들면 금속이 쉽게 깨지는 '수소취성(Hydrogen Embrittlement)1)'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수록 이 현상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몸을 키우려 근육을 붙였더니 오히려 관절이 약해지는 것처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두 마리 토끼'였다. POSTECH 친환경소재학과·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이 이 오랜 딜레마를 풀었다. 극저온 처리와 열처리를 결합한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금속의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머티리얼스 리서치 레터스 (Materials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그렇다면 왜 단단한 금속일수록 수소에 약할까. 금속은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줄 맞춰 쌓인 구조인데, 이 배열이 매끄러우면 힘을 받았을 때 원자 층이 쉽게 미끄러지며 물러진다. 그래서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 때는 일부러 내부에 미세한 '결함'이나 경계를 촘촘히 심는다. 원자 배열이 어긋난 이 지점들이 서로의 미끄러짐을 가로막아 금속을 단단하게 버티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조직들이 수소가 몰려드는 통로이자 균열이 시작되는 약점이라는 것이다. 강해질수록 부서지기 쉬워지는 모순이 여기서 생긴다. 연구팀은 '나노쌍정(Nanotwin)2)' 구조에 주목했다. 나노쌍정은 금속을 튼튼하게 지탱하면서도 균열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특별한 조직이다. 다만 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앞서 말한 결함 가운데 특히 수소취성을 부르는 전위가 잔뜩 생겨나는 것이 문제였고, 지금껏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한 사례는 없었다. 연구팀의 해법은 온도에 있었다. 먼저 영하 196도(77K)의 극저온에서 금속에 힘을 가해 나노쌍정을 촘촘히 만든 뒤, 다시 적당한 온도(773K)로 데우는 열처리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튼튼함을 담당하는 나노쌍정은 그대로 남기고, 수소취성의 원인이 되는 결함만 골라내듯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것은 남기고 해로운 것만 걷어낸 셈이다. 그 결과 개발된 합금은 일반 합금보다 항복강도가 약 2.2배 높아졌고, 수소가 있는 환경에서도 기존 소재보다 훨씬 잘 견뎠다. 수소가 파고들어 부서지는 표면층 깊이도 크게 줄어, 단단하면서도 잘 깨지지 않는 금속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이라는, 그동안 서로 등을 지고 있던 두 특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전략은 수소 저장용기와 배관, 극저온 구조물처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에 곧바로 쓰일 수 있다. 수소 시대를 앞당기려면 수소를 안전하게 담고 나를 그릇부터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POSTECH 김형섭 교수는 "이번 연구는 극저온 나노쌍정 공학을 통해 금속재료의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 사이의 오랜 상충 관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며, "향후 수소 저장 및 운송 인프라를 비롯한 다양한 차세대 구조재 설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80/21663831.2025.2596162 1. 수소취성(Hydrogen Embrittlement): 수소 원자가 금속 내부로 침투해 재료를 쉽게 깨지도록 만드는 현상으로, 수소 저장용기와 배관 등 수소 인프라의 안전성을 결정하는 핵심 문제이다. 2. 나노쌍정(Nanotwin): 수 나노미터 간격으로 형성되는 결정 내부 대칭 구조로, 전위 이동을 효과적으로 막아 금속의 강도를 높이면서도 일반 결정립계보다 수소가 잘 모이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카메라 한 대로 질병 찾아내는 초소형 센서
[카메라 영상 기반 휴대형 메타표면 바이오센서 개발] 병원에 가지 않고 손바닥 위 작은 칩과 카메라만으로 질병의 신호를 읽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을 국내 연구진이 현실로 한 걸음 당겨놓았다.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김홍윤 박사, 화학공학과 통합과정 윤희창·정세빈 씨 연구팀이 POSTECH 화학공학과 이효민 교수팀,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유용상 교수팀과 함께 비싼 분광기 없이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만으로 생체분자를 정밀하게 검출하는 '메타표면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바이오센서는 질병 진단부터 감염병 검사, 암 표지자 검출, 유전자 분석까지 두루 쓰이는 '건강의 파수꾼'이다. 그중에서도 빛을 이용하는 광학 바이오센서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생체분자가 센서 표면에 달라붙을 때 생기는 미세한 빛의 변화를 읽어내, 별도의 형광 표지 물질을 붙이지 않고도 분자를 곧바로 검출할 수 있다. 문제는 ‘크기’다. 이 미세한 변화를 정밀하게 재려면 고해상도 분광기와 넓은 파장의 광원이 필요한데, 크고 비싼 탓에 병원 밖으로 들고 나가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발상을 뒤집어 분광기가 하던 일을 '카메라 사진 한 장'이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열쇠는 '연속 기하학적 구배 메타표면'이라는 특수한 칩이다. 원리는 이렇다. 나노 구조를 칩 위에서 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위치마다 서로 다른 빛의 파장에 반응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마치 피아노 건반이 자리마다 다른 음을 내듯, 칩의 각 지점이 저마다 다른 빛에 반응하는 셈이다. 여기에 하나의 파장을 내는 작은 레이저를 비추면, 그 빛과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빛이 통과하지 못해 카메라 영상에 '어두운 선'이 나타난다. 생체분자가 센서 표면에 달라붙으면 주변 환경이 미세하게 바뀌며 이 선의 위치가 슬쩍 이동한다. 연구팀은 이 선이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일반 카메라 센서로 촬영해 분석하는 것만으로 생체분자의 결합 신호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분광기 없이 오직 사진 분석만으로 검출에 성공한 것이다. 성능도 뛰어났다. 센서는 300마이크로미터(μm), 머리카락 몇 가닥 굵기의 작은 영역 안에서 넓은 측정 범위와 0.1나노미터(nm) 수준의 정밀한 판독 능력을 동시에 구현했다. 실제 단백질과 DNA 검출 실험에서는 수백 피코몰(1조분의 1몰 수준)1)이라는 극미량까지 잡아냈고, 특정 유전자 서열을 골라내는 것도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번 기술은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함’이다. 크고 비싼 분광기와 광원 대신 작은 레이저와 카메라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실험실에 묶여 있던 정밀 진단 장비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줄일 길이 열린 것이다. 연구팀은 이 센서가 앞으로 감염병 진단, 암 표지자 검출, 유전자 분석, 그리고 피 한 방울로 질병을 찾는 액체 생검 등 다양한 현장 진단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OSTECH 노준석 교수는 “메타표면의 높은 광학 감도와 카메라 기반 이미징 판독 단순성을 결합해, 기존 분광기 기반 바이오센서 한계를 극복한 사례”라며 “향후 소형화·저비용화가 가능한 현장진단형 바이오센서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한국연구재단 글로벌융합연구지원사업, 과기정통부 대통령과학장학금, 보건복지부의 재원을 통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ARPA-H프로젝트 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4749-8 1. 피코몰(picomolar, pM): 용액에 물질이 녹아 있는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1조분의 1몰 수준의 매우 낮은 농도를 뜻한다.
신소재 오승수 교수 연구팀, 주사 대신 바르는 약? ‘지방산 모양’에서 답 찾았다
[지방산 ‘분자 모양’이 약물 피부 투과도 결정하는 핵심 원리 규명] POSTECH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팀이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최시영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주사 대신 약을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몸속에 약물을 전달할 길을 열었다. 피부를 이루는 지방산의 ‘분자 모양’이 약물 전달 효율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피부 투과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분자 설계 원리를 제시한 이번 연구는 화학 공학·재료 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실렸다. 누구나 주삿바늘 없이 약을 투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약물을 피부에 바르는 것만으로 몸속까지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피부 가장 바깥층인 각질층이 외부의 침입을 막는 든든한 방어막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슐린이나 펩타이드처럼 물에 잘 녹는 약물은 지방 성분이 촘촘하게 자리 잡은 피부 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워 주사로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약물이 피부를 통과할 수 있게 장벽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만드는 ‘투과 촉진제’가 연구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유 지방산’은 피부를 구성하는 물질로, 생체적합성과 안정성이 우수하고 지질층 사이에서 약물이 지나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 지방산이 피부 지질의 촘촘한 배열인 ‘라멜라 구조1)를 많이 흐트러뜨릴수록 약물이 더 잘 통과한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같은 정도로 지질 구조를 흐트러뜨려도 지방산의 종류에 따라 약물 투과도는 크게 달랐다. 연구팀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탄소 사슬의 길이, 이중결합의 개수와 위치, 말단 작용기 등이 서로 다른 지방산 24종을 비교했다. 인공 피부 모델과 3차원 바이오프린팅 피부, 돼지 피부 조직에서 지방산에 따른 약물 투과도를 비교하고,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2)으로 지방산이 피부 지질층 안에서 어떻게 배열되는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피부 지질 배열이 많이 무너진다고 해서 약물이 반드시 더 잘 통과하는 것은 아니며, 약물 투과도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지방산 모양’이었다. 특히, 특정 구조를 가진 지방산이 물에 잘 녹는 약물의 피부 투과를 효과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탄소 사슬이 18개인 지방산 가운데 사슬 중간에 분자 구조를 꺾어 놓는 ‘시스(cis) 형태의 이중결합’이 있고, 물과 친한 성질을 가진 머리 부분인 카르복실기3)가 피부 지질층 표면에 자리 잡는 구조가 물에 잘 녹는 약물의 피부 투과를 높이는 데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구조가 약물이 피부를 통과할 때 넘어야 하는 에너지 장벽을 낮추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나아가 빛에 따라 분자 모양이 바뀌는 ‘광 스위칭 지방산’도 개발했다. 빛을 비추면 지방산 구조가 달라지고, 약물이 피부를 통과하는 정도가 달라졌다. 이 현상은 인공 피부와 돼지 피부에서 모두 확인됐다. 약물이 피부를 통과하는 문을 필요할 때 열고 닫듯 조절할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이번 연구는 피부 장벽을 무작정 흐트러뜨리는 것보다 지방산의 분자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약물 전달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를 이끈 오승수 교수는 "연구를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차세대 약물 전달 기술 기반을 마련할 원리를 제시했다“라며, “향후 세포막이나 리포좀 같은 생체막에도 적용하고,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는 스마트 약물 전달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보건복지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STEAM 연구사업(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 및 기초연구실지원사업(개척형), 경상북도·포항시 합성생물학 육성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9663 1) 라멜라(Lamellar) 구조: 물과 친한 부분과 기름과 친한 부분이 시루떡처럼 얇은 층을 이루어 겹겹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구조다. 피부의 지질층은 지질 이중막(lipid bilayer)이 친수성 머리 부분, 친유성 꼬리 부분이 자발적으로 배향해 규칙적인 주기성을 갖는 판상 형태를 이루는 결정성 라멜라 구조를 형성하여 단단한 장벽을 유지한다. 2) 분자동역학(Molecular Dynamics, MD) 시뮬레이션: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분자·원자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 가상공간에서 초미세 단위로 관찰·예측하는 기법이다. 3) 카르복실기(carboxyl group): 지방산 분자의 한쪽 끝에 위치하는 작용기(-COOH)로, 극성을 띠어 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계/융합 김동성 교수 연구팀, 장 조직 환경 구현한 차세대 오가노이드 배양막 개발
[돼지 대장에서 뽑아낸 성분으로 실제 장과 똑 닮은 배양막 개발] 우리 몸속 장은 부드럽고 유연한 조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험실에서 장 세포를 키우는 배양 환경은 실제 장과는 크게 달랐다. 세포가 자라는 배양 플랫폼이 실제 장 조직보다 훨씬 단단한 플라스틱 소재였기 때문이다. 세포가 자라는 환경을 실제 장과 더 비슷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국내 연구진이 장 조직의 고유한 성분뿐 아니라 부드러운 물리적 환경까지 함께 구현한 새로운 세포 배양막을 개발했다. POSTECH 기계공학과·융합대학원 김동성 교수, 기계공학과 김현지 박사 연구팀은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윤재승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실제 장 조직의 생화학적 성분과 물리적 특성을 동시에 모사한 새로운 세포 배양막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생체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Advanced Healthcare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장 오가노이드(organoid)’는 줄기세포로 만든 일종의 ‘미니 장’이다. 실제 장의 다양한 세포와 기능을 재현할 수 있어 질환 연구와 약물 평가 등에 활용되며, 실험 편의를 위해 오가노이드에서 얻은 세포를 얇은 배양막 위에 펼쳐 키우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배양막이다. 기존에 사용되는 합성 고분자 막은 실제 장보다 훨씬 단단하고, 장 조직 고유의 세포외기질 성분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다. 세포는 장을 모사했지만, 정작 세포가 자라는 환경은 실제 장과 달랐던 셈이다. 이는 단순히 배양막의 ‘촉감’만 다른 문제가 아니다. 세포는 성장인자나 단백질 같은 생화학적 신호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단단함과 구조 같은 물리적 신호도 감지한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은 세포의 증식과 분화, 조직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장과 유사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 조직의 성분과 물리적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 두 가지 조건을 하나의 배양막에 구현하는 데 주목했다. 먼저 ‘전기방사(electrospinning)1)’ 기술을 이용해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섬유로 이루어진 초박막 나노섬유 지지체를 제작했다. 여기에 돼지 대장 조직에서 세포를 제거하고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 ECM) 성분만 남긴 탈세포화 세포외기질(decellularized ECM, dECM)2)을 결합했다. 이렇게 개발된 C-NaDE3) membrane은 나노섬유 지지체의 안정적인 구조와 장 조직 유래 dECM의 조직 특이적 성분을 동시에 갖도록 설계됐다. 특히 기존 합성 배양막과 달리 장 조직에 가까운 부드러운 물리적 환경까지 구현함으로써, 세포가 실제 몸속에서 경험하는 미세환경을 보다 충실하게 재현했다. 효과는 세포 수준에서도 확인됐다. 연구팀이 사람 대장 오가노이드에서 얻은 상피세포를 새로운 배양막에서 키운 결과, 장 줄기세포 유지와 세포 증식에 관련된 특성이 향상됐다. 또한 기존 배양 조건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찰하기 어려웠던 일부 분비계열 세포(secretory cell lineage) 관련 유전적 마커가 증가했으며, 형성된 상피세포층 역시 실제 장 조직의 형태학적 특징을 보다 잘 나타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특정 단백질이나 성장인자를 추가하는 기존 접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세포가 살아가는 조직의 ‘성분’과 ‘물리적 환경’을 함께 재현했다는 점이다. 즉, 장 조직이 제공하는 생화학적 신호(biochemical cues)와 조직의 부드러움과 같은 물리적 신호(biophysical cues)를 동시에 구현해 기존 합성 배양막과 실제 생체조직 사이의 차이를 줄였다. 이번 기술은 기존 세포 배양 장치뿐 아니라 미세유체 기반의 organ-on-a-chip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향후 장 질환 모델링과 약물 반응 평가, 장 장벽 기능 분석은 물론 장내 미생물과 장 상피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플랫폼으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OSTECH 김동성 교수는 “기존 장 오가노이드 모델은 다양한 장 세포를 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평면 배양 과정에서는 실제 조직과 물리적·생화학적 특성이 다른 합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장 조직 고유의 성분과 실제 조직에 가까운 물리적 환경을 하나의 배양막에서 함께 구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인 차의과학대학교 윤재승 교수는 “세포는 성장인자나 단백질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 얼마나 단단한지와 같은 물리적 특성에도 반응한다”며 “이번 연구는 장 조직의 생화학적·물리적 미세환경을 동시에 재현함으로써 보다 생체와 유사한 장 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배양 시스템이나 미세유체 칩에도 적용할 수 있어 향후 장 질환 연구와 약물 평가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과 장 조직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 국가연구소(NRL)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사업과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hm.202501510 1. 전기방사(electrospinnin): 전기의 힘을 이용해 액체 상태 고분자를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내는 기술이다. 솜사탕 기계가 설탕을 가는 실로 뽑아내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2. dECM(decellularized extracellular matrix): 탈세포화 세포외기질로 조직에서 세포는 제거하고, 세포를 지탱하던 뼈대 성분(콜라겐, 단백질 등)만 남긴 물질이다. 세포가 자라던 원래 환경의 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실제 조직과 비슷한 배양 환경을 만드는 데 쓰인다. 3. C-NaDE(colon-specific nanofiber-supported decellularized extracellular matrix): 대장 특이적 나노 섬유 지지 탈세포화 세포외기질로 돼지 대장에서 얻은 탈세포화 세포외기질을 초박막 나노 섬유 지지체와 결합해 만든 세포 배양막이다.
신소재 오승수 교수 연구팀, ‘택배 상자’ 없이 세포 속으로 쏙… 핵산 스스로 세포막 통과하는 기술 개발
[핵산에 양친매성 조절해 세포 전달 특성 설계… ‘양친매성도’ 지표도 제안] 좋은 상품도 제대로 배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유전자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치료 효과를 내는 핵산을 세포 안까지 보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POSTECH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 유혜빈 박사, Ewa Pietrasiak(에바 피에트라시악) 박사 연구팀이 별도의 ‘택배 상자’ 없이 핵산이 스스로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은 기름 성분으로 이뤄져 있어 물에 잘 녹는 친수성 물질이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 문제는 유전자 치료제로 활용되는 siRNA1)와 ASO2) 같은 핵산이 대표적인 친수성 물질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도 세포막을 넘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동안에는 바이러스나 지질 나노입자(LNP, Lipid Nanoparticle) 같은 운반체에 핵산을 담아 세포 안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운반체는 면역반응이나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제조 과정이 복잡하다. 세포 안으로 들어간 핵산이 소포체에 갇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핵산 자체가 세포막을 통과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주목했다. 핵산 골격의 특정 부위인 포스포로티오에이트(Phosphorothioate,)에 기름을 좋아하는 소수성 사슬을 선택적으로 붙여, 물과 기름 모두에 친화적인 ‘조절가능한 양친매성 핵산(이하 TuNA, Tunable Amphiphilic Nucleic Acid)’을 개발했다. 핵산 말단에 소수성 물질을 연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 기술은 핵산 골격의 원하는 위치에 다양한 길이의 소수성 알킬기를 도입할 수 있어 양친매성의 크기와 분포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균형’이다. 연구팀은 약 90%의 높은 수율로 TuNA를 합성한 뒤 인공 지질막을 이용해 세포막과의 상호작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소수성이 적절하면 핵산이 막을 스스로 통과했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막에 달라붙어 이동하지 못했다. 물과 기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성질의 균형이 세포막 투과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균형을 수치로 나타내는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3)’라는 지표도 제안했다. 연구팀은 실제 살아있는 세포에서도 효과를 확인했다. TuNA는 15분 이내에 대부분 세포로 빠르게 들어갔고, 핵산 길이에 따라 세포질이나 핵 주변 등 서로 다른 위치에 전달됐다. 특히 소포체에 갇히지 않고 필요한 위치까지 전달되는 것도 확인했다. 나아가 녹색 형광 단백질(GFP4))을 만드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siRNA에 TuNA 기술을 적용하자 별도의 운반체 없이 세포 안으로 전달된 siRNA가 표적 유전자의 발현까지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오승수 교수는 "핵산의 양친매성을 정밀하게 조절하면 세포투과성 펩타이드처럼 세포를 스스로 통과하는 ‘세포투과성 핵산’을 설계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유혜빈 박사는 "핵산 길이와 양친매성을 조절해 세포질이나 핵 주변부 등 원하는 위치로 전달 특성을 설계할 수 있어 siRNA, mRNA, ASO, 압타머 등 기능성 핵산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STEAM 연구사업(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 및 합성생물학 전문인력양성사업, 산업통상부의 시장주도형K-센서기술개발사업, 경상북도·포항시 합성생물학 육성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9124 1. siRNA(Small interfering RNA): 특정 메신저 RNA와 상호작용해 해당 유전자 단백질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짧은 이중가닥 RNA다. 2. ASO(Antisense Oligonucleotide): 유전 정보를 담은 특정 RNA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막거나 교정하는 짧은 인공 핵산. siRNA와 함께 대표적인 핵산 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3.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 DA): 핵산에 도입된 알킬 사슬의 전체 탄소 수를 핵산뉴클레오타이드 수로 나눈 값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형 알킬기로 개질한 TuNA의 인공 지질막 상호작용을 비교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했다. 4.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형광단백질이다.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무질서 속 숨은 질서” 빛을 다루는 나노 소자, 설계 쉬워진다
[복잡한 메타표면 속 '숨은 주기'를 찾아내는 새 해석법 제시] 증강현실(AR) 안경, 머리카락보다 얇은 렌즈, 손끝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SF 영화에서 보던 이 기술들에는 핵심은 '메타표면'이라는 나노 소자가 있다. 빛의 파장보다 작은 나노 구조물로 빛의 방향과 색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마법 같은 기술이다. 이 강력한 기술에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발목을 잡아 온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를 해결했다.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김석우 박사 연구팀이 무질서한 나노 구조 속에 숨은 반복 규칙을 찾아내, 메타표면을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하는 길을 열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메타표면’으로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려면 구조물 크기와 방향을 조금씩 다르게 배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구조물을 하나씩 다르게 배치할수록 전체 모양이 복잡해지고 표면을 규칙적으로 채우던 반복 패턴인 '주기성'이 깨져 소자가 빛을 어떻게 조절할지 계산하기 어려워졌다. 규칙성이 있다면 일부만 계산해도 전체 특성을 예측할 수 있지만, 구조가 제각각이면 수많은 구조물을 하나씩 계산해야 한다. 심지어, 가로세로 수 cm 크기의 메타표면에는 10억 개가 넘는 구조물이 들어가 이를 컴퓨터로 계산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기존에는 구조를 단순하게 가정하거나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반복해야 했다. 연구팀은 ‘겉보기에는 복잡해도 그 안에 반복되는 규칙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무아레(Moiré) 무늬1)'에서 찾았다. ‘무아레 무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두 패턴이 조금 어긋나 겹칠 때 나타나는 커다란 물결 모양 무늬다. 얇은 모기장이나 커튼을 두 장 겹쳤을 때 어른거리는 무늬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메타표면을 이루는 기본적인 배열과 빛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더해진 변화를 서로 다른 두 패턴이 겹친 것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두 패턴의 각도와 간격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복잡해 보이던 구조 안에서도 큰 반복 패턴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쉽게 말해, 겉으로 하나하나 다른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나노 구조물 속에서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작은 반복 단위’를 찾아낸 것이다. 그 덕분에 거대한 메타표면 전체를 일일이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다. 10억 개가 넘는 구조물로 이루어진 소자라도 수십 개의 나노 구조물로 구성된 작은 단위만 계산하면 전체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메타표면 소자를 제작해 예측한 것과 같이 빛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빛과 원치 않는 방향으로 퍼지는 빛을 구분해 소자의 성능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원리는 빛뿐 아니라 소리, 전자, 진동처럼 '파동'으로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에 두루 쓸 수 있어, AR·VR용 광학 소자나 고효율 나노 렌즈를 더 빠르고 정밀하게 설계하는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노준석 교수는 "무질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이 방법은 차세대 광학 소자 개발에 속도를 더할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세종과학펠로우십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4150-5 1. 무아레(Moiré) 무늬: 두 개의 규칙적인 패턴이 조금 어긋나 겹칠 때 나타나는 더 큰 물결 무늬를 말한다.
신소재/IT융합 정성준 교수 연구팀, 비눗방울에서 찾은 ‘숨 쉬는 폐’의 해법
[폐포 움직임 그대로 재현…24만 번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 누구나 한 번쯤 빨대로 비눗방울을 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얇은 막에서 착안해 실제 폐처럼 ‘숨 쉬는 인공 폐’가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IT융합공학과 정성준 교수 연구팀이 폐 속에 있는 공기주머니인 폐포 움직임을 재현하면서 폐 세포의 반응까지 관찰할 수 있는 초박막 인공 폐를 개발했다.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폐의 반응까지 재현했다. 이번 연구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사람의 폐는 하루에도 수천 번 움직인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고, 내쉬면 다시 줄어든다. 폐 안쪽에 있는 작은 공기주머니인 폐포도 이 움직임을 반복한다. 폐포의 움직임은 단순히 공기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폐 세포의 성장과 기능에 영향을 주고, 염증이나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중요한 신호가 된다. 폐 질환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 효과를 확인하려면 실험실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재현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하지만 기존 폐 세포 배양 기술로는 실제 폐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평평하고 움직이지 않는 바닥에서 세포를 키우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칩 안에 폐의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한 ‘폐-칩(lung-on-a-chip)’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단한 플라스틱 소재(PDMS1))를 사용해 실제 폐 조직의 특성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말랑한 하이드로젤(hydrogel)을 쓰기에는 얇게 만들었을 때 쉽게 찢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비눗방울’에서 그 답을 찾았다. 비눗방울은 액체가 스스로 얇은 막을 만들면서도 쉽게 터지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연구팀은 이를 하이드로젤에 적용했다. 원하는 모양의 틀을 하이드로젤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는 방식으로 틀 표면에 매우 얇은 막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초박막은 실제 폐 속의 폐포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반복적인 움직임을 견딜 만큼 튼튼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실제 사람이 숨 쉬는 원리도 적용했다. 사람이 숨을 들이마실 때 횡격막이 아래로 움직이면 폐 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바깥 공기가 들어온다. 연구팀은 초박막 아래에서 이와 같은 압력 변화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호흡 구동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결과 초박막이 실제 폐처럼 늘었다가 줄어들었고,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인공 폐 내부도 실제 폐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혈관세포층’, ‘기저막층’, ‘상피세포층’을 차례로 쌓아 폐포와 유사한 3층 구조를 구현했다. 이렇게 만든 인공 폐에서는 호흡에 따른 움직임이 세포에 전달됐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반응까지 진짜 폐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실험에서는 호흡 운동에 따라 폐의 염증 반응과 바이러스 대응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단순 세포 배양이나 동물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약물의 반응을 사람의 폐와 아주 유사한 환경에서 살펴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정성준 교수는 "‘숨 쉬는 인공 폐'는 호흡의 빠르기와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정상적인 폐부터 여러 질병 상태까지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라며, ”이번 연구는 신약 개발과 폐 질환 연구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산업자원통상부 바이오산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74372 1. PDMS: 폴리디메틸실록산(Polydimethylsiloxane)이라는 실리콘 계열의 말랑한 고분자 소재를 말한다.
인문 정진호 교수 연구팀, “'착한 고기'는 제값 받고 있을까?” 지구 생각한 고기, 지갑도 알아봤다
[美 육류 판매 데이터 75만 건 분석… 지속가능성 라벨 프리미엄 확인] '유기농' 라벨이 붙은 고기는 대개 조금 더 비싸다. 그 뒤엔 환경을 위한 노력이 담겨 있는데, 시장은 이 노력에 제값을 매기고 있을까. POSTECH 정진호 교수 연구팀이 실제 미국 마트 판매 데이터로 답을 확인했다. POSTECH 인문사회학부 정진호 교수는 미국 농무부(USDA) 다니엘 우퍼(Danielle J. Ufer) 박사, 퍼듀대 농업경제학과 니콜 위드마르(Nicole O. Widmar) 교수, 마리아 베리코우(Maria Berikou) 연구원, 오클라호마주립대 농업경제학과 제이슨 러스크(Jayson L. Lusk) 교수 연구팀과 함께 75만 건의 실제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마트 가격표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지속가능성 라벨'의 프리미엄을 데이터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현지 기준으로 지난 12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최근 게재됐다. ‘유기농’, ‘온실가스 저감’, ‘목초 사육’ 같은 '지속가능성 라벨'은 그 고기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 알려준다.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정보이면서 생산자에게는 친환경 생산에 더 든 비용을 값에 반영하고 제품을 차별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라벨이 실제 시장에서 그만큼 값을 인정받느냐다. 그간 연구는 '친환경 고기라면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이 대부분이었고, 정말 얼마나 더 비싸게 팔리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었다. 마트 가격표만으로는 이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유기농 소고기가 비싼 이유가 라벨 덕인지, 부위가 좋아서인지, 비싼 매장이라서인지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웹스크래핑을 활용하여 미국 20개 주요 식료품 체인의 342개 온라인 매장에서 2022년 9월 한 달간 소·닭·돼지고기 판매 정보 약 75만 건을 모으고, 부위와 지역, 유통업체, 판촉 여부 등 조건을 걷어내고 오직 '라벨' 하나가 값을 얼마나 올리는지 분리해 냈다. 마트 몇 곳을 둘러봐선 알 수 없는, 전국 규모로 '라벨의 값'을 뽑아낸 것이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라벨 제품이 일반 고기보다 비쌌다. 소고기는 목초 사육과 유기농이 각각 약 33%, 닭고기는 목초 사육이 약 17% 더 비쌌고, 돼지고기는 유기농이 약 43%로 값이 가장 높았다. 눈여겨볼 점은 이 차이가 단순히 원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기농이나 목초 사육은 손이 더 가니 그렇다고 쳐도, '온실가스 저감', '비유전자변형(Non-GMO)'처럼 소비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원가와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 라벨에도 더 높은 값이 매겨졌다. 시장 데이터로 값이 매겨진 적이 거의 없었던 '온실가스 저감' 라벨마저도 그랬다. 소비자들이 '환경을 위한 가치' 그 자체를 알아보고 값을 치른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라벨이라도 고기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유기농 돼지고기는 프리미엄이 43%였지만 닭고기에선 7% 수준에 그쳤다. 이는 미국 양돈산업의 생산방식이 워낙 효율화되어 있어 특수한 방식으로 바꿀 때 비용이 크게 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시장은 '착한 생산방식'에 실제로 보답하되, 그 크기는 고기와 라벨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이번 연구는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으로 시도하는 생산자에게 실질적인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을 생각한 노력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친환경 생산방식이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근거가 생긴 셈이다. POSTECH 정진호 교수는 "이 방법은 다른 품목이나 국가로도 확장할 수 있어 한국 식품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라며 "다만 한 달간의 자료에 기반한 만큼, 계절과 판촉 주기를 반영한 시계열 분석은 앞으로의 과제"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 농무부(USDA) 국립식품농업연구소(NIFA) Hatch 사업과 미국 농무부(USDA) 경제조사국(ERS)의 협력연구 과제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53190
물리/융합 신희득 교수 연구팀, 어둠 속 숨은 표적, '빛의 쌍둥이'가 한눈에 찾아낸다
[잡음 1,000배 환경서도 여러 표적 한눈에 찾는 양자 LiDAR 개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만으로 여러 물체의 위치를 한꺼번에 알아낼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빛을 한 방향씩 훑어가며 찾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여러 표적의 거리와 방향을 한 번에 읽어내는 새로운 양자 LiDAR(라이다)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Laser & Photonics Reviews'에 최근 게재됐다.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는 빛을 쏜 뒤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물체의 거리·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차가 주변을 인식하는 데는 물론, 지형 측량과 우주 탐사 등에도 두루 쓰인다. 하지만 상대방이 관측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스텔스형 탐지처럼 빛을 매우 약하게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표적에서 되돌아오는 빛이 주변의 배경광보다 약해서 원하는 신호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기존 LiDAR는 대부분 공간을 한 방향씩 훑는 '순차 스캔' 방식이다. 손전등으로 어두운 방을 한 곳씩 비춰보는 것처럼 표적을 차례로 찾기 때문에 여러 방향의 정보를 한꺼번에 빠르게 얻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양자 광원에서 빛 알갱이인 '광자'가 쌍을 이루어 생성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자쌍은 두 광자의 파장과 생성 시각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한 광자의 파장을 알면 그 짝 광자의 파장을 알 수 있다. 또 두 광자가 함께 만들어졌다는 시간 정보를 이용하면, 주변의 수많은 잡음 속에서도 진짜 표적 신호를 골라낼 수 있다. 이처럼 쌍둥이 광자들이 공유하는 파장과 시간 정보를 탐지에 활용한다는 점이 이번 ‘양자 라이다’ 기술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파장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광자쌍을 이용해 여러 방향을 병렬로 탐지하는 양자 라이다를 고안했다. 표적으로 보내는 광자는 만들어질 때마다 파장이 무작위로 정해지고, 회절격자를 통과하면서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지만, 짝 광자의 정보를 이용하면 표적 광자의 파장을 알아낼 수 있어 그 광자가 향한 방향을 알 수 있다. 기존 라이다가 빛의 방향을 하나씩 바꿔가며 주변을 훑었다면, 이번 기술은 광자의 무작위적인 파장과 광자쌍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여러 방향의 표적 정보를 한꺼번에 읽어낸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표적 신호보다 배경 잡음이 1,000배 강한 환경에서도 여러 표적의 거리와 방향을 측정 한 번으로 구분해 읽어냈다. 여기서 "한 번에 본다"라는 말은 카메라처럼 모든 방향을 순간적으로 찍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통로를 열어둔 채 광자가 도착할 때마다 어느 방향의 신호인지 구분한다는 의미다. 이 기술은 몰래 관측해야 하는 저조도 환경에서 특히 중요하다. 빛을 강하게 쏠 수 없어 신호는 약하고 잡음은 커지는 상황에서도, 쌍둥이 광자 연결성이 진짜 표적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연구는 양자 라이다가 잡음에 강한 센싱을 넘어, 기존 순차 스캔과는 전혀 다른 병렬 탐지 구조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원과 검출 효율, 시스템 집적도가 개선되면 양자 계측, 저조도 이미징, 원격탐사 등 분야로 응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신희득 교수는 "아직 원리 검증 단계지만, 저조도 환경에서 여러 표적 정보를 동시에 읽어내는 새로운 양자 라이다 구조를 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POSTECH 물리학과·융합대학원 신희득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는 국방과학연구소 미래도전국방기술 연구개발사업,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대학ICT연구센터(ITRC) 지원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lpor.7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