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반도체/융합 박경덕 교수 연구팀, “사진 지울 필요 없다?” 한 칸에 수십만 배 더 담는 빛의 기술
[빛과 엑시톤 기반으로 한 초집적 광 데이터 저장 기술 개발] 스마트폰 용량이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진을 지워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데 앞으로는 추억을 지워야 하는 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최근 POSTECH 물리학과·반도체공학과·융합대학원·반도체대학원 박경덕 교수 연구팀이 기존보다 수십만 배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광(光) 데이터 저장 기술을 개발했다. 스마트폰 사진 한 장 용량은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초고화질 영상은 더하다. 여기에 AI 서비스 확산으로 생성·처리되는 데이터까지 늘어나면서, 저장 공간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든 USB든 기존 장치들은 전기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한 칸(셀, cell)에 ‘0’과 ‘1’ 두 가지 상태로 정보를 기록한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려면 정보 저장 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한 칸의 크기를 줄이다 보면 전기적 간섭과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빛을 활용한 광 저장 기술은 빛이 퍼지는 성질 때문에 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수준까지 집적도를 높이기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다. POSTECH 연구팀은 반도체 내부에서 빛과 전자가 결합해 형성되는 입자인 ‘엑시톤(exciton)’에 주목했다. 엑시톤은 빛의 특성과 전자의 특성을 모두 가진 입자로 이 입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조절하면 하나의 저장 셀에서 여러 단계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신호등이 빨강, 노랑, 초록 색깔에 따라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듯, 엑시톤 발광 밝기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하나의 셀에 두 가지 이상의 정보를 담는 방식을 고안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금속-절연체-반도체’를 쌓아 올린 나노 터널 접합 장치를 만들었다. 이 구조에서 전하 이동을 미세하게 조절하면 엑시톤이 또 다른 입자 상태로 변하면서 빛의 세기가 달라진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약 60nm 크기 단일 셀에서 세 단계 이상의 발광 상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저장층 두께를 15nm 이하(머리카락 굵기 약 5,000분의 1)로 얇게 만들어, 소자를 더욱 촘촘히 쌓을 수 있는 기반도 확보했다. 연구팀이 이번에 개발한 기술의 핵심은 정보를 ‘빛의 세기’가 아니라 반도체 내부 입자의 ‘물리적 상태’로 저장한다는 점이다. 빛을 이용해 비접촉 방식으로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어 장치의 마모와 손상을 줄일 수 있으며, 기존 광 데이터 저장 기술이 가진 근본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데이터 저장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논문 제1저자인 이형우 박사는 "기존 기술이 저장 공간의 확대에 의존했다면, 이번 연구는 빛의 세기가 아닌 반도체 내부 엑시톤의 상태 자체를 정보 단위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향후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 서버,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스마트 기기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될 경우, 저장 기술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연구에 사용된 2차원 반도체 물질의 제작은 성균관대 김기강 교수팀, 결과 분석은 펜실베니아대 Deep Jariwala 교수팀이 참여했으며, POSTECH 주희태, 문태영, 구연정, 김수정 씨가 측정 연구를 함께 수행하였다. 한국연구재단과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nano.5c15152
김철홍·안용주 교수 공동 연구팀, 혈관 좁아진 뒤 ‘혈류 정체’, 뇌졸중 재발 위험 높인다
[초고속 초음파로 혈류 정체 및 뇌졸중 재발 위험도 간 연관성 규명] 뇌졸중 환자 중 일부는 치료 이후에도 병이 다시 찾아온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누구는 재발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연구진이 그 단서를 혈관 속 ‘혈류 흐름’에서 찾아냈다. POSTECH 김철홍·안용주 교수 연구팀과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김범준 교수 공동 연구팀이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가 일시적으로 정체되고, 이러한 환경이 혈전 형성을 촉진해 뇌졸중 재발과 뇌 손상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뇌졸중 분야 국제 학술지 ‘스트로크(Stroke)’에 게재됐다. 뇌졸중은 재발 위험이 매우 큰 질환이다. 특히, 혈관 벽에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쌓여 생긴 덩어리(플라크)가 원인인 경우, 항혈소판제를 복용해도 재발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액이 통과한 뒤쪽에서 흐름이 일시적으로 느려지거나 머무는 구간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강물이 바위를 지나간 뒤 물이 잠시 맴도는 소용돌이와 비슷한 현상이다. 연구팀은 환자마다 재발 여부가 달라지는 이유가 혈관 내부 환경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받은 허혈성 뇌졸중 환자를 분석했다. 일부 환자의 CT나 MRI 영상에서 고음영 동맥 징후(hyperdense artery sign)1) ‘블루밍 아티팩트(blooming artifact)2)가 나타났는데, 연구팀은 이를 ‘clot sign(혈전 징후)’으로 정의하고, 혈전에 적혈구가 많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상 단서로 활용했다. 분석 결과, ‘clot sign’이 나타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뇌졸중 재발 위험이 약 2.76배 높았다. 특히, 1년 이내 재발 위험은 3.5배 더 높았으며, 뇌경색으로 손상된 뇌 조직 부피도 약 3배 정도 컸다. (부피 중앙값 10.17cc vs 3.59cc) 연구팀은 혈관 협착 주변 혈류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실험도 진행했다. 쥐 혈관에 협착을 만든 뒤 ‘협착 앞쪽’, ‘협착 정점’, ‘협착 뒤쪽’로 구간을 나누고, 초고속 초음파로 혈류 흐름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협착 뒤쪽 구간에서 혈액이 머무르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RRT3))가 ‘협착 정점’보다 약 3배 높게 나타났다. 이 구간에서는 혈전 속 적혈구 비율도 높았다. 이는 혈관이 좁아진 뒤쪽에서 혈류가 오래 머무는 환경이 적혈구가 많이 포획된 혈전을 만들고, 이러한 혈전이 뇌졸중 재발과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뇌졸중 재발 위험을 더욱 정밀하게 평가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논문 공동1저자인 POSTECH 정동영 박사는 “향후 다기관 전향적 연구를 통해 혈류 정체 지표의 임상적 기준을 정립하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재발 고위험 환자를 선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발전시키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POSTECH 전자전기공학과·IT융합공학과·기계공학과·융합대학원 김철홍 교수, 융합대학원 정동영 박사, 전자전기공학과 통합과정 안준호 씨, IT융합공학과 ·융합대학원 안용주 교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범준 교수 등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및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 지원 프로그램,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 재원의 한국연구재단 지원 프로그램, BK21, Glocal 30 대학 프로젝트, 대한신경초음파학회,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지원 등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161/STROKEAHA.125.053896 1. 고음영 동맥 징후(hyperdense artery sign): 비조영 CT에서 혈관이 정상보다 더 밝게 보이는 소견으로, 혈관 안에 적혈구가 많은 급성 혈전이 형성되면서 헤모글로빈 농도가 증가해 X선이 더 많이 흡수되어 되어 나타나는 영상 소견이다. 2. 블루밍 아티팩트(blooming artifact): MRI 영상에서 혈액 성분이나 금속 성분이 실제보다 더 크게 번져 보이는 현상으로, 혈관 안에 혈전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다. 3. RRT: Relative Residence Time, 혈관 내에서 혈액이 특정 구간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를 나타내는 혈류 지표로 값이 높을수록 혈류가 정체되는 경향이 크다는 뜻이다.
신소재 김종환·조문호 교수 공동 연구팀, 자외선 LED의 한계를 넘다...국내 연구진, 초고효율 심자외선 LED 소재 개발
[사이언스誌 논문 게재-기존 소재 대비 심자외선 방출 효율 20배 향상, 감염병 확산 억제하는 차세대 위생 기술로서 활용 기대] 기존 반도체 기술로는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심자외선1) 영역에서 고효율 빛을 방출하는 신소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POSTECH 김종환·조문호 교수 공동 연구팀이 반데르발스 반도체 소재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양자우물 구조를 구현해, 기존 소재 대비 심자외선 방출 효율을 20배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 ‘기초과학연구원 지원사업’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3월 20일 게재2)됐다.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 영역의 반도체 광원 개발은 백색 LED 조명, 디스플레이, 레이저 광원 등 다양한 산업 발전을 이끌어 왔다. 최근에는 가시광 영역보다 더 짧은 파장과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자외선 LED로 개발이 확장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균과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심자외선 광원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기존의 자외선 LED는 주로 질화갈륨(GaN) 기반 반도체를 사용하며, 갈륨(Ga)의 일부를 알루미늄(Al)으로 대체한 알루미늄질화갈륨(AlGaN) 반도체로 바꾸면, 발광 파장을 심자외선 영역까지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200~240nm 파장에 도달하면 광원 효율이 1% 미만으로 급격히 떨어져, 해당 영역은 여전히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은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반데르발스 층상 구조를 갖는 반도체를 활용하여 새로운 LED 나노소재를 개발했다. 반데르발스 층상 구조는 원자층 내부에서는 원자들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층과 층 사이는 약한 인력(반데르발스 힘)을 가져 쉽게 떨어뜨릴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질화붕소(BN)는 원자층이 반데르발스 힘으로 적층된 반도체 소재로, 연구팀은 이 질화붕소의 층을 비틀어 쌓을 때, 전자를 강하게 가둘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양자우물 구조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를 ‘모아레 양자우물(moiré quantum well)’이라고 명명했다. 이 구조는 나노미터 크기의 공간에 전자를 가두어 심자외선 영역의 빛을 효율적으로 방출하는 데 유리하며, 기존 알루미늄질화갈륨 반도체 대비 20배 이상 향상된 발광 효율을 나타냈다. 그간, 반데르발스 물질의 양자현상 연구는 그래핀과 같은 원자층 두께의 박막 구조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질화붕소 3차원 결정을 단순히 비틀어 적층하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2차원 양자우물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성과는 또한, 공중 보건 및 환경 위생 분야에서도 중요한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 강력한 소독 효과를 발휘하는 심자외선 중에서도 현재 상용화된 260nm 파장 대역은 인체의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활용이 제한적이었다. 반면, 200~230nm 파장 대역의 심자외선은 피부 최외곽인 각질층을 통과하지 못해 인체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기술적 난제로 여겨졌던 해당 파장 대역의 '고효율' 발광 한계를 극복함에 따라, 향후 200~230nm 심자외선 LED 광원이 상용화되면 기존 자외선 방역의 잠재적 위험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병원, 학교, 대중교통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실내 공간에서 공기와 표면을 상시 지속적으로 살균하는 차세대 위생 기술로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환 교수는 “반데르발스 물질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모아레 양자물리 현상을 2차원에서 3차원 물질로 확장하는 개념적 전환”이라며, “이 연구는 향후 새로운 양자물질 설계와 차세대 광소자 개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구혁채 제1차관은 “김종환 교수는 과기정통부 기초연구 사업을 통해 지난 10년 간 한 분야를 꾸준하게 연구해 온 연구자”라며, “연구자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향후 이 기술을 바탕으로 고효율 심자외선 광원 소자 개발과 다양한 차세대 양자 광소자 응용으로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다. ▶️ DOI: science.org/doi/10.1126/science.aeb2095 1)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 중에서도 파장이 200~280nm 범위에 해당 2) 논문명 : Highly efficient, deep-ultraviolet luminescence in hBN moire quantum wells
화학/융합 김원종 교수 연구팀,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 면역 ‘방해 분자’만 치워도 강해진다
[종양 환경에서 살아남는 차세대 T 세포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가 힘을 잃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기술이 발표됐다. POSTECH 화학과·융합대학원 김원종 교수 연구팀은 종양 주변에서 면역세포 기능을 떨어뜨리는 일산화질소를 제거하는 ‘세포 표면 공학’ 전략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추가 표지 논문(supplementary cover art)으로 게재됐다. 환자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을 공격하는 ‘T 세포 면역치료’가 차세대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꺼내 기능을 강화한 뒤 다시 주입해 암을 공격하게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혈액암에서는 놀라운 치료 효과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폐암이나 췌장암처럼 덩어리를 이루는 고형암에서는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암세포 주변에 형성되는 특수한 환경, 이른바 ‘종양 미세환경’이 면역세포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종양 주변에서는 다양한 분자들이 만들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산화질소(이하 NO, Nitric oxide)’다. 이 물질은 면역세포 신호 전달을 방해해 T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전투에 나선 병사가 짙은 연기와 독성 가스로 가득한 공간에서 시야와 호흡이 막혀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종양 근처에서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해 분자’를 치우는 데 집중했다. ‘NO를 선택적으로 붙잡아 제거하는 분자’를 T 세포 표면에 부착하는 전략을 고안했다. NO를 포획하는 분자를 ‘리포좀(liposome)’이라는 아주 작은 지질 입자에 담고, 이 입자가 T 세포의 세포막에 결합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T 세포는 암 주변에서 생성되는 NO가 세포 내로 들어오기 전에 붙잡아 제거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T 세포는 종양 환경을 모사한 조건에서도 활발하게 증식하며 면역세포 특유의 활성 상태를 유지했다. 동물 실험에서는 종양 내부로 더 많은 T 세포가 침투했고 면역 반응도 강화되면서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미세환경의 방해 요소만 제거해도 면역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면역세포 유전자를 직접 바꾸지 않고, 세포 표면을 간단히 개질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POSTECH 김원종 교수는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도 종양 환경에서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라며, “궁극적으로는 고형암 면역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면역세포가 더 강력하게 암을 공격할 기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RC 연구사업,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nano.5c06907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찍어내는 나노기술’이 여는 평면 광학의 미래
[나노프린팅 기반 광학 메타표면 연구 흐름 정리] 최근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오동교·김주훈 박사, 통합과정 강현정·강도현 씨 연구팀이 ‘나노프린팅’ 기술을 중심으로 빛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광학 메타표면’ 연구 동향과 향후 발전 방향을 정리한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재료 과학 분야 학술지인 ‘Nature Reviews Materials’에 게재됐다. ‘광학 메타표면(optical metasurface)’은 파장보다 작은 나노미터 규모의 구조를 평면에 배열해 빛의 위상과 세기, 편광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차세대 광학 소자다. 얇은 평면 구조만으로도 빛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메타렌즈, 홀로그래피 광학 소자, 차세대 광학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메타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노 규모의 패턴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전자빔(e-beam)을 이용해 패턴을 새기는 ‘전자빔 리소그래피(Electron Beam Lithography, EBL)’ 같은 반도체 공정에 의존해 왔다. 이 방식은 해상도는 높지만 제조 공정 속도가 느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연구팀은 ‘나노프린팅(nanoprinting)’ 기술에 주목하고, 공정 기술과 광학 재료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대표적인 공정으로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anoimprint Lithography, 이하 NIL)’와 ‘나노전사 프린팅(Nanotransfer Printing, 이하 nTP)’이 있다. NIL은 마스터 몰드(틀)로 나노 패턴을 복제하는 방식이다. 높은 해상도와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롤투롤(Roll-to-Roll) 공정과 결합할 경우 대면적 광학 소자를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반해, nTP는 선택적으로 구조를 전사하는 방식으로, 기존 반도체 공정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광기능성 재료를 메타표면에 직접 통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재료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초기에는 주로 자외선이나 열로 경화되는 폴리머(polymer) 기반 재료가 쓰였지만, 굴절률이 낮아 고효율 광학 소자 구현에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는 굴절률이 높은 나노복합체나 졸-겔(sol-gel) 기반 무기 산화물, 능동 광학 재료 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고, 이는 메타표면의 성능과 설계 자유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연구진은 나노프린팅 기술이 정적인 메타표면을 넘어 대면적 메타렌즈, 홀로그래피 광학 소자, 능동형 메타표면, 집적 광학 시스템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광학 메타표면 기술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산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준석 교수는 "광학 메타표면 분야에서 그간 걸림돌로 여겨져 온 제조 공정 문제를 나노프린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고, 관련 최신 연구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나노프린팅이 단순한 저비용 대량생산 공정을 넘어, 광학 메타표면의 성능과 기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 글로벌융합연구지원사업, 미래 디스플레이 전략 연구실 지원사업, 나노미래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알키미스트프로젝트 사업, 보건복지부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사업, ㈜포스코 홀딩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 등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578-025-00874-3
서종철·신승구 교수 공동 연구팀, 반도체 나노 구슬, 몸집과 겉옷을 한 번에 재다
[전기음성 매트릭스 활용한 양자점의 표면유기분자 정밀 분석] '양자점(quantum dot)1)’ 세계에서는 그동안 옷을 입은 채 몸무게를 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POSTECH 화학과·시스템생명공학부 서종철 교수, 화학과 신승구 교수 연구팀, DGIST 나노기술연구부 임성준 박사 연구팀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는 최근 분석화학 분야 학술지 ‘애널리티컬 케미스트리(Analytical Chemistry)’에 게재됐다. 양자점은 수 나노미터(nm)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입자의 크기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 암세포를 추적하는 생체 이미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 양자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표면을 ‘리간드(ligand)’라는 분자로 감싸야 한다. 이 분자의 개수에 따라 발광 효율이나 화학적 반응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입자 ‘크기‘와 ‘리간드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크기는 ’광학적‘ 방법으로, 리간드 수는 별도의 ’화학 분석‘으로 따로 측정해야 했다. 마치 사람의 체형을 파악하려 할 때 체중은 저울로 재고, 입고 있는 옷의 치수는 다시 줄자로 재야 하는 것처럼 번거로운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양자점 질량을 측정하기 위한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2)’ 방식은 강한 레이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리간드가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있었다. 옷을 입은 채로 몸무게를 재야 하는데, 저울에 올라서는 순간 옷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연구팀은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 '전기음성도‘에서 해법을 찾았다. 전기음성도가 큰 매트릭스 물질을 활용해 양자점이 레이저에 의해 들뜬 상태가 되면 전자를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더 낮은 레이저 에너지에서도 안정적인 이온화를 가능하게 해 리간드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길이가 다른 리간드로 감싼 양자점의 질량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해 리간드의 개수와 양자점의 크기를 동시에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나노소재 분석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양자점을 활용한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개발 과정에서 소재의 특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적은 양의 시료만으로도 측정할 수 있어 희소하거나 고가의 나노소재 연구에도 유리하다. 또한 양자점 표면의 화학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어 신약 개발과 생체 진단용 나노소재 연구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종철 교수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리간드가 붙은 채로 양자점을 이온화해 질량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양자동역학 연구센터), 개인기초연구 우수신진연구지원사업, 자율운영 대학 중점 연구소 지원사업(POSTECH 기초과학연구소),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 지원사업, 과학난제도전 융합연구개발사업과 DGIST 기관 고유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analchem.5c06291 1. 양자점(quantum dot): 수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크기에 따라 광학적, 전자적 특성이 달라지는 물질이다. 2.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 MALDI): 레이저와 매트릭스를 이용해 시료를 이온화한 다음 질량을 측정하는 분석 기법이다.
기계 이안나 교수 연구팀, 연료 없이 하늘 난다, ‘전기제트엔진’ 첫 실험 성공
[대기압 공기로 뉴턴급 추력 구현-플라즈마 항공 추진 새 가능성 제시] 불꽃이 공기를 밀어낸다. 연료 한 방울 없이 오직 전기만으로 말이다. 헤어드라이어가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내듯, 전기로 만들어진 고온의 공기가 뒤로 뿜어지며 추진력이 생긴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전기제트엔진’이 현실이 됐다. POSTECH 기계공학과 이안나 교수, 이정락 박사, 한국기계연구원(KIMM) 강홍재 박사 연구팀이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공기흡입 전기추진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항공우주 분야 국제 학술지인 '애드밴시스 인 스페이스 리서치(Advances in Space Research)'에 실렸다. 항공 산업은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이다. 비행기는 공기를 빨아들인 뒤 연료를 태워 뜨거운 가스를 뒤로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각종 배출물이 발생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연료를 태우지 않는 추진 방식을 찾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플라즈마(plasma)1) 전기추진’이다. ‘플라즈마’는 고체·액체·기체와 다른 ‘제4의 물질 상태’로, 전기를 이용해 기체를 이온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를 가속해 뒤로 밀어내면 추력이 만들어진다. 연료를 태우지 않아 배출가스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공기가 거의 없는 우주 공간이나 높이 150~400km 상공, 이른바 초저궤도2)에서 주로 연구됐다. 공기가 빽빽한 대기압 환경에서는 플라즈마 자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기가 많을수록 불꽃이 쉽게 꺼지듯, 방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힘들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회전 글라이딩 아크(Rotating Gliding Arc, RGA)3)' 구조로 풀었다. 회전하는 플라즈마 불꽃을 이용해 대기압에서도 안정적인 방전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새롭게 설계한 추진기관 안에서는 공기가 빨려 들어오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회전 플라즈마가 형성된다. 이 플라즈마가 공기를 빠르게 가열한 뒤 뒤쪽으로 밀어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실험 결과, 대기압 조건에서도 플라즈마 방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추진기관 내부 압력이 약 5.7기압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계속 작동했으며, 이때 발생한 추력은 최대 2.5뉴턴(N)에 이른다. 추력 대비 전력 비율4)은 708밀리뉴턴/킬로와트(mN/kW)로 이는 기존 플라즈마 추진기보다 약 10배 높은 수치다. 이번 연구는 플라즈마 전기추진이 우주가 아닌 지구 대기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한 첫 사례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전기만으로 움직이는 비행기나 장시간 하늘에 머무는 무인기 같은 차세대 항공 이동 수단 등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항공 산업에서 친환경 무탄소·무연료 추진 기술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안나 교수는 "연료를 태우지 않고 전기만으로 추력을 만드는 전기제트엔진 개념을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국기계연구원 강홍재 선임연구원은 “장시간 비행하는 무인기나 차세대 항공 이동 수단은 물론 초저궤도에서 공기를 활용하는 추진기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지원 사업(과제번호: RS-2024-00349732)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 DOI: https://doi.org/10.1016/j.asr.2026.01.005 1) 플라즈마(plasma): 고체·액체·기체에 이은 물질의 네 번째 상태. 기체에 강한 에너지를 가하면 원자가 전자와 이온으로 쪼개지는데, 이 상태를 플라즈마라 부른다. 2) 초저궤도(Very Low Earth Orbit, VLEO): 지구 표면에서 150~400km 높이의 궤도. 이 구간은 공기가 매우 희박해 인공위성이 대기 저항을 덜 받으면서도 지구를 가까이서 관측할 수 있다. 3) 회전 글라이딩 아크(Rotating Gliding Arc, RGA): 회전하는 아크 방전을 이용해 대기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플라즈마를 만드는 기술. 아크가 빙글빙글 돌면서 공기를 지속적으로 가열한다. 4) 추력 대비 전력 비율(Thrust-to-Power Ratio, TPR): 같은 전력으로 얼마나 센 추력을 만드는지 나타내는 값. 이 수치가 높을수록 효율이 좋다는 뜻이다.
친환경소재/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금속의 ‘헤테로’ 구조, 강도와 연성 동시에 높였다
[고엔트로피 합금 속 ‘경한 영역과 연한 영역 비율’ 조절해 강도·연성 향상] 금속은 강하게 만들면 깨지기 쉽고, 유연하게 만들면 약해진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딜레마에 POSTECH 연구진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합금 내부에 ‘헤테로’ 미세 구조를 만드는 전략으로 금속의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중 하나인 ‘머터리얼즈 리서치 레터스(Materials Research Letter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항공우주와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는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필수다. 이러한 요구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재가 바로 ‘고엔트로피 합금’이다. 일반 합금이 철이나 알루미늄처럼 한 가지 금속을 중심으로 다른 원소를 소량 섞는 방식이라면, ‘고엔트로피 합금’은 여러 금속 원소를 거의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다. 다양한 원소가 뒤섞이면서 독특한 결정 구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강도, 내구성, 내식성에서 기존 합금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고엔트로피 합금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석출 강화’라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금속 내부에 작은 입자들을 고르게 분산시켜 외부 힘이 가해졌을 때 쉽게 변형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미끄러운 바닥에 작은 돌멩이를 흩어 놓으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금속 강도를 높일수록 잘 늘어나지 못하는 ‘강도-연성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팀은 기존의 ‘균일 강화’ 접근에서 벗어나 ‘구조적 대비’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금속 전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경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을 공존시키는 ‘헤테로’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연구팀은 고엔트로피 합금 내부에서 형성되는 두 가지 석출 방식에 주목했다. 결정 내부에 고르게 형성되는 ‘연속 석출’과, 결정 경계 주변에서 비교적 거칠게 형성되는 ‘불연속 석출’이다. 연구팀은 열처리와 기계적 가공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해 이 두 구조의 비율을 다르게 설계한 합금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기계적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불연속 석출이 더 많이 형성된 헤테로 합금에서 ‘항복 강도’(더 큰 힘을 견디는 능력)와 ‘변형 경화 능력’(변형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이 모두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경한 영역인 불연속 석출 영역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단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이 함께 존재하면, 힘을 받을 때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추가적인 저항이 형성되고, 금속은 변형될수록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헤테로 변형 강화효과’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영역 간의 변형 차이가 추가적인 가공경화를 유도해, 기존 합금보다 더 높은 강도와 우수한 변형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제조 설비나 복잡한 공정 없이 이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열처리·기계 가공 공정만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어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이 높다. POSTECH 김형섭 교수는 “차세대 고강도 구조용 합금이 필요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논문 제1저자인 이재흥 씨는 한국연구재단 2025년도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80/21663831.2026.2615167
진현규·이현우 교수 공동 연구팀, 무질서 속에서 전자의 질서를 찾다
[비정질–결정 구조에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 증폭시키는 새로운 물리 발견] 물을 흘려보낼 때 파이프 내부가 매끄러울수록 물이 잘 흐르듯, 전자 역시 물질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할수록 더 잘 이동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과학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오히려 특정하게 배열된 ‘무질서한 구조’가 전자의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CH 기계공학과 진현규 교수, 박상준 박사(現 일본 물질재료연구기구, NIMS 박사후연구원), 물리학과 이현우 교수, 이호준 연구원 연구팀이 서로 다른 구조가 섞인 자성 물질에서 전자 흐름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미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최근 실렸다. 연구진이 주목한 현상은 '가로 방향 전자 수송(transverse transport)'이다. 일반적으로 전류나 열은 가해준 방향을 따라 흐르지만, 자성을 띠는 물질이나 위상학적으로 특이한 성질을 가진 물질에서는 흐름이 옆 방향으로 휘어지기도 한다. 이는 북반구에서 북상하는 태풍이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인해 동쪽으로 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특성은 자기 센서, 차세대 전자소자,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 발전 기술 등에 활용될 수 있어 활발히 연구되어 왔다. 기존에는 이 효과를 크게 만들려면 전자가 강하게 휘어지는 특이한 양자 물질이나, 결함이 거의 없는 고품질 단결정 소재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물질 내부가 최대한 ‘정돈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다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두 종류의 자성 물질을 화학적으로 완전히 합치는 대신, 각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한 채 물리적으로 섞은 것이다. 그 결과, 비정질(무정형)과 결정 구조가 뒤섞인 복합 물질에서 전자가 옆 방향으로 흐르는 효과가 각 물질 단독일 때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실험과 이론 계산 모두에서 확인됐다. 이러한 현상의 비밀은 전자 이동 경로에 있다. 복합 물질 내부에서 전자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서로 다른 물질 영역을 따라 구불구불한 경로를 그리며 이동한다. 마치 좁은 골목길과 넓은 대로를 번갈아 지날 때 이동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전자의 흐름이 옆 방향으로 더 크게 휘어지면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이론의 중요한 가정을 깨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복합 물질의 성질은 구성 물질들의 ‘평균값’ 정도로 나타난다고 여겨졌는데, 물질이 섞이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 희귀 물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흔한 자성 물질 조합에서도 가능하다는 점도 입증했다. 실제로 철 기반 자성 물질을 이용한 실험에서 일부 고품질 양자 단결정 물질에 버금가는 성능이 나타났다. 이는 값비싼 특수 소재가 아니라도 높은 성능의 전자 수송 물질을 설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진현규 교수는 "희귀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높은 성능을 내는 저비용 소재 설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스핀트로닉스 및 열전 에너지 변환 분야 응용이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또한, 공동교신저자인 이현우 교수는 “무질서를 피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연구”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본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프로테리얼 코리아에서 제공한 시료를 활용해 수행됐다. 한편, 해당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은 제30회 삼성휴먼테크논문대상 재료과학 및 공학 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 DOI: https://doi.org/10.1103/g18j-1h8w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물에 녹는 스마트 라벨”… 위조 막고 환경도 살린다
[색·홀로그램·습도감지 한 번에 구현한 차세대 친환경 메타표면 개발] 제품 포장에 붙은 작은 라벨 하나가 색과 홀로그램으로 진짜 여부를 알려주고, 보관 중 습도가 높았는지를 기록하고, 물에 넣으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POSTECH 노준석 교수팀이 이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스마트 보안 라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광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포토닉스(Advanced Photonics)’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최근 식품, 의약품, 명품 등 다양한 제품에서 위조 방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포장 기술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보안 라벨은 단순한 홀로그램 기능에 머무르거나 제작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메타표면(metasurface)’이다. 메타표면은 나노 규모의 구조를 정교하게 배열해 빛의 색과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구조로 ‘빛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메타표면 장치는 만드는 공정이 복잡해 가격 경쟁력이 낮고, 친환경 소재로는 빛을 정교하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식물의 섬유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가공해 만든 ‘HPC(hydroxypropyl cellulose)’에 평균 4~6nm 크기의 이산화티타늄(TiO₂) 입자를 섞었다. HPC는 의약품 캡슐이나 식품 첨가제, 화장품 등에 사용될 만큼 안전성이 높은 친환경 소재다. 연구팀은 이 입자를 HPC 안에 최대 75wt%까지, 즉 소재 무게의 약 4분의 3 수준까지 분산시킨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이렇게 나노입자가 HPC 내부에 촘촘히 자리 잡으면서 빛을 더 강하게 굴절시키고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소재 굴절률을 약 1.9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재로 만든 메타표면은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선명한 빨강·초록·파랑 색을 만들어 내고, 자외선 영역에서는 홀로그램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색 정보와 특정 장비에서만 확인되는 보안 정보를 모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QR 코드 안에 서로 다른 홀로그램을 숨겨 세 개의 홀로그램이 동시에 확인될 때만 인증이 가능한 광학 보안 방식도 구현했다. 또 다른 특징은 ‘습도 기록’ 기능이다. HPC가 공기 중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상대습도가 80% 이상인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내부 구조가 변형되면서 색과 홀로그램이 사라지도록 설계했다. 제품이 보관 중 습기에 노출됐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제작 방식도 간단하다. 전자빔으로 구조를 하나씩 새기는 공정이 아니라, 마치 도장을 찍듯 한 번에 넓은 면적을 복제하는 나노임프린트(nanoimprint) 공정을 적용해 플라스틱 필름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어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번 연구는 POSCO 지원 POSCO-POSTECH-RIST 융합연구센터 프로그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강현정 씨는 교육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지원 박사과정생 연구장학금의 지원을 받았으며, 강현정·김홍윤 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김홍윤 씨는 아산재단 의생명과학 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117/1.AP.8.1.016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