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박수진 교수 공동 연구팀, 물 붓고 섞으면 끝, 스스로 굳는 배터리 전해질 개발
[개시제 없이 상온 자가중합 가능한 하이드로겔 전해질 소재 개발] 라면 수프를 물에 넣고 저으면 자연스럽게 퍼지듯, 배터리 전해질에 가루를 섞기만 하면 저절로 젤리처럼 굳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 화학과 박수진 교수 연구팀이 부산대 나노융합기술학과 강준희 교수 연구팀과 함께 복잡한 화학 반응이나 고온 공정 없이도 스스로 단단해지는 전해질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안전하지만 수명이 짧았던 ‘수계 아연전지’ 한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스몰(Small)’에 게재됐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장치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수계 아연(Zn) 전지’가 떠오르고 있다. 물을 전해질로 사용해 불이 날 위험이 적고 원가 부담도 적다. 하지만 쓰다 보면 아연 전극 표면에 나뭇가지처럼 뾰족한 결정이 자라거나 부식이 발생해 수명이 짧아졌다. 대안으로 액체 전해질을 젤리처럼 굳히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지만, 화학 약품이나 열이 필요해 공정이 복잡하고 전극이 손상될 우려도 있었다. 무질서하게 얽힌 젤 구조가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하는 한계도 지적되어 왔다. 연구팀은 기존 수계 아연전지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인 ‘황산아연(ZnSO₄) 수용액’에 ‘SBMA(Sulfobetaine Methacrylate, 설포베타인 메타크릴레이트)’라는 특수 분자를 섞기만 해도 상온에서 저절로 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황산아연은 물에 녹아 아연 이온을 제공하는 물질이다. 이 아연 이온이 분자 구조를 자극해 반응을 시작하도록 돕고, 분자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게 만든다. 우유에 식초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굳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약 30분이면 단단한 젤이 완성된다. 이 전해질은 초기에는 액체처럼 전극 사이를 빈틈없이 채우다가, 조립 이후 자연스럽게 굳어 안정적인 내부 구조를 형성한다. 추가 열처리나 특수 환경이 필요 없어 제조 공정이 단순해지고, 전극 손상 가능성도 낮다. 실험 결과, 이 전해질을 적용한 전지는 4,100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영하 10℃에서도 문제없이 구동됐다. 100번 충·방전 뒤에도 처음 용량의 96%를 유지했다. 불필요한 화학 반응이 줄고 이온 이동 통로가 균일하게 형성된 덕분이다. 이번 성과는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계 아연전지 상용화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된다. 공정이 단순해지면 대량 생산과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고,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는 "화학 개시제나 열처리, 특수 환경 없이 상온·대기에서 구현되는 이 전략은 배터리 성능과 공정 효율을 동시에 잡은 새로운 설계"라며 "아연 이온이 단량체의 전자구조를 바꿔 반응성을 높이는 동시에 뭉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는 "안전성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한 수계 아연 전지의 실용화를 앞당기기를 바란다"라며 "다양한 단량체에 적용하고 다른 수계 금속 전지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영커넥트, ERC,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우수신진연구사업과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smll.202511783
기계 이안나 교수 연구팀, “두께는 200배 얇게, 늘어남은 3배로” 접히는 전극 한계 돌파
[휘어짐 없이 늘어나는 주름 구조, 고신축 전극의 해법 제시] POSTECH 기계공학과 이안나 교수, 이정락 박사, 박사과정 곽현수 · 김준식 씨 연구팀이 최근 접히고 늘어나는 유연 전자소자의 고질적 한계를 구조 설계만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기계 및 구조역학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 '국제기계과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Mechanical Sciences)'에 실렸다. 스마트폰을 수천 번 접었다 펴도 화면이 멀쩡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폰 화면 안쪽에 숨어 있는 작은 '주름'에 있다. 금속 전극에 있는 주름은 기기를 구부리거나 당길 때 아코디언처럼 늘어나고 줄어들며 충격을 흡수한다. 덕분에 전극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 이 기술은 폴더블 스마트폰은 물론, 피부에 붙여 심박수나 혈압을 재는 건강 센서처럼 몸에 착용하는 전자기기에도 반드시 필요한 핵심 원리다. 문제는 이 주름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은 탄성 있는 고무 재질의 바탕판 한쪽 면에 얇은 금속 필름을 붙이는 구조였는데, 이렇게 하면 주름이 생기기도 전에 구조 전체가 한쪽으로 먼저 휘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 한쪽에만 테이프를 붙이면 종이가 저절로 말려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막으려면 바탕판 두께를 금속 전극 두께의 1,000배 이상으로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기 자체도 두꺼워지고, 30~40% 이상 늘리면 주름도 무너졌다. 연구팀은 그 원인이 재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대칭 구조', 즉 금속 필름이 한쪽에만 붙어 있어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데 있다고 봤다. 해법은 단순했다. 금속 필름을 한쪽이 아닌 두 개의 바탕판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 구조'로 만든 것이다. 위아래가 같은 힘으로 균형을 이루자 원치 않는 ‘휨’ 현상이 사라졌다. 또한, 복잡한 화학 처리 없이 얇은 막을 살짝 누르기만 해도 자연스럽고 균일한 주름이 형성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바탕판 두께를 기존 대비 200분의 1 수준인 전극 두께의 5배 미만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극 구조를 100% 이상 늘려도 끊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기기를 더 얇고 가볍게 만들면서 훨씬 잘 늘어나는 전극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 연구팀은 주름의 높이와 간격을 계산하는 수학적 모델도 개발해 원하는 형태의 주름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이번 연구는 폴더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관절처럼 움직임이 많은 신체 부위에 부착하는 의료용 전자 피부,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는 소프트 로봇의 감지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응용이 기대된다. 이안나 교수는 "바탕판의 두께 비를 기존 대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100% 이상 변형에서 안정적인 작동이 가능함을 입증했다"라며 "고신축 전자소자 분야에서 구조 설계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결과"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 지원 사업(RS-2024-00349732),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 · 장비진흥센터 지원 사업(RS-2024-00405058)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16/j.ijmecsci.2026.111213
화공 정대성 교수 연구팀, “이온을 붙잡아라” AI 반도체 건망증 해결 방법 찾았다
[차세대 뉴로모픽 유기 전기화학 트랜지스터 개발... 성능 두 배 향상] AI가 사람처럼 배우고 판단하려면, 학습한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차세대 AI 반도체의 문제는 ‘기억이 쉽게 사라진다’라는 점이다. 그런데 POSTECH 화학공학과 정대성 교수, 통합과정 김준서 씨 연구팀이 ‘이온을 단단히 붙잡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고 반도체 기억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현재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계산하는 장치가 분리되어 있어 데이터의 이동에 따른 시간·전력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뉴로모픽(Neuromorphic)’이다. 사람의 뇌처럼 하나의 소자 안에서 기억과 연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른바 ‘뇌를 닮은 반도체’다. 그중에서도 ‘유기 전기화학 트랜지스터(Organic Electrochemical Transistor)’는 유력한 차세대 뉴로모픽 소자로 꼽힌다.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하고 유연성이 뛰어나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주입한 이온이 쉽게 빠져나가 장기 기억 구현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모래 위에 쓴 글씨가 바람에 지워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접근 방식을 바꿨다. 이온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끼워 넣는’ 방법 대신, 전기적 인력으로 붙잡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가진 ‘쯔비터 이온(zwitterion)’ 기반 가교 분자를 설계해 반도체 내부에 도입했다. 이 분자는 음전하(-) 부분은 이온의 이동 속도를 조절하고, 양전하 부분(+)은 유입된 이온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잡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정전기적 이온 트래핑(Electrostatic Ion Trapping)’이라 불렀다. 실험 결과, 메모리 성능 지표인 ‘메모리 윈도우(memory window)’는 8.65V(볼트),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강도’는 96.4V로 학계에 보고된 성능 수치(메모리 윈도우: 5.0V, 히스테리시스 강도: 47V) 대비 약 두 배 향상됐다. 특히, 높은 히스테리시스 강도는 입력 신호가 사라진 뒤에도 상태가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의미해 연구팀의 기술로 기억 유지 특성이 크게 향상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소자를 20만 회 이상 반복 구동한 이후에도 초기 신호의 86% 이상을 유지해 반복 사용에 따른 성능 저하도 최소화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웨어러블 기기가 심장 박동이나 근육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도, 외부 서버 없이 스스로 학습·판단하는 환경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스마트폰이나 소형 전자기기에서도 적은 전력으로 고성능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며, 데이터센터 에너지 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AI ‘건망증’을 고치는 기술이, 더 똑똑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기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POSTECH 정대성 교수는 “이번 기술은 특정 고분자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적인 기술”이라며, “뉴로모픽 소자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여 고성능 AI 프로세서와 실시간 생체 신호 처리 시스템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다기능성 분자 리간드를 이용한 내재적 신축성을 갖는 고연신성 디스플레이 Backplane 구현“과 “파장 정합성 유기 수/발광다이오드 및 수직트랜지스터 통합소자를 활용한 고성능 유연 광통신 시스템 개발“에서 지원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19188
전자/IT융합/기계/융합 김철홍 교수 연구팀, 손에 쥐는 초정밀 영상 장비로 몸속 혈관 들여다본다
[핸드헬드 광-음향 현미경 개발로 소형화·고속·고해상 이미징] POSTECH 연구팀이 혈관과 장기를 초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볼펜’ 크기 현미경을 개발했다. ‘휴대성’, ‘빠른 촬영 속도’, ‘선명한 화질’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한 이번 성과는 의료 영상 장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카메라가 작아지면 렌즈도 함께 작아지고, 그만큼 화질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의료 영상 장비도 마찬가지다. 정밀한 영상을 얻으려면 장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수술실이나 응급 현장에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으면서 선명한 영상을 제공하는 장비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의 목표였다. 빛과 소리를 함께 활용하는 ‘광-음향 현미경(PAM)1)’은 이러한 한계를 넘을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번개가 치면 천둥소리가 나듯 조직에 레이저를 쏘면 순간적으로 초음파가 발생하는데, 이를 분석하면 혈관과 미세 구조를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조영제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부분 크기가 크고, 고정형이어서 이동이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다. 김철홍 교수 연구팀은 ‘투명 초음파 트랜스듀서(TUT)2)’와 ‘광섬유 스캐너(Fiber Scanner)’를 하나로 통합한 핸드헬드(handheld) 광-음향 현미경 ‘hPAM-TUT(handheld PhotoAcoustic Microscopy with Transparent Ultrasound Transducer)’를 개발했다. 빛이 통과하는 투명 초음파 소자를 활용해 레이저와 초음파의 경로를 일치시켰고, 복잡한 거울 대신 가느다란 광섬유 자체를 진동시켜 빛을 스캔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구조를 획기적으로 단순화하면서도 영상 품질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완성된 ‘hPAM-TUT’는 지름 17mm(밀리미터), 무게 11g(그램)에 불과하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인 7µm(마이크로미터) 해상도를 구현했고, 직경 2.6mm 시야에서 단일 3차원 볼륨 영상을 1.5초 만에 획득한다. 작지만 빠르고 또렷하다. 연구팀은 동물 실험을 통해 성능을 검증했다. 쥐의 위, 소장 등을 촬영해 복잡한 혈관망들을 선명하게 확인했으며, 응급 치료에 사용되는 에피네프린(Epinephrine)을 투여하자 귀의 미세혈관이 수축했다가 회복되는 과정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특히, 전이 초기 종양 주변에 형성되는 비정상적 혈관 구조를 선명하게 시각화했다. 정량 분석 결과, 종양 부위는 정상 조직보다 혈관 밀도와 구조적 복잡성이 유의하게 높았다. 종양 미세 환경의 변화를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성과는 단순히 장비를 소형화한 데 그치지 않는다. 수술 중 병변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내시경과 결합해 초기 암을 빠르게 탐지하는 등 임상 현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피부과, 종양학, 복강경 수술, 수술 중 영상 유도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단과 치료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반 기술로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연구는 교육부·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세종과학펠로우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딥사이언스 창업 활성화 지원사업,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BK21 FOUR 사업, 글로컬대학30 사업, 그리고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8148-8 1. 광-음향 현미경(PAM, Photoacoustic Microscopy): 물질이 빛을 흡수하면 순간적으로 열이 발생하고 팽창하면서 소리(초음파)가 나는 '광-음향 효과'를 이용한 현미경이다. 조영제 없이 생체 내 혈관, 적혈구, 멜라닌 등을 고해상도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 2. 투명 초음파 트랜스듀서(TUT, Transparent Ultrasound Transducer): 빛을 투과시킬 수 있는 투명한 소재(전극, 압전소자 등)로 만든 초음파 센서. 기존 불투명 센서와 달리 빛과 초음파의 경로를 물리적으로 일치시키기 용이해 소형화 및 고감도 영상 구현에 유리하다.
신소재/첨단재료 이동화 교수 연구팀 ”안 겪어봐도 알아요“ 반도체 성능·내구성 예측하는 AI
[전기장 속 원자 움직임 정밀 예측하는 AI 기반 시뮬레이션 기술 개발]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AI가 먼저 예측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첨단재료과학부 이동화 교수 연구팀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공동으로, 전기장이 가해진 환경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AI 시뮬레이션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전기장이 없는 데이터만으로 전기장 속 물성 예측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도체 기술은 더 빠르고, 더 작고,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소재가 ‘비정질1) 하프늄 산화물’이다. 이 물질은 반도체 소자 내부에서 전류를 제어하는 핵심 절연층으로 강한 전기장이 가해지는 경우 내부 원자와 전하 움직임이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소자의 속도와 수명, 안정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전기장 환경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차세대 반도체 설계의 출발점인 이유다. 문제는 ‘예측’이었다. 원자 단위의 거동을 계산하는 기존 ‘제일원리 분자동역학’2) 시뮬레이션 방식은 매우 정확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계산이 빠른 경험적 포텐셜 방법은 정밀도가 떨어진다. 최근 머신러닝 기술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전기장 효과를 반영하려면 실제 전기장을 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별도로 구축해야 했다. 연구팀은 ‘전하 평형법3)’, ‘그래프 신경망’을 결합한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원자 간 상호작용을 학습해 전하와 에너지, 힘을 동시에 예측하며, 이를 기반으로 ‘머신러닝 포텐셜4)’ 기술을 구현한다. 전기장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의 데이터만 학습했음에도 전기장이 있을 때 나타나는 원자 움직임과 전하의 변화를 정확히 재현했다. 기출문제만 공부했는데 전혀 다른 형태의 심화 문제까지 척척 풀어낸 셈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하프늄 산화물 내부 산소 이온 이동 경향과 반도체 소자의 절연 파괴 전압까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AI 기반 시뮬레이션이 단순 이론 검증을 넘어 실제 반도체 소자의 성능과 내구성을 평가하는 실질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를 이끈 POSTECH 이동화 교수는 “기존에는 전기장 반응을 예측하기 위해 고비용의 추가 데이터를 구축해야 했지만, 이번 기술은 별도의 전기장 데이터 없이도 높은 정확도를 확보했다”라며 “차세대 메모리와 뉴로모픽 반도체 설계를 가속하는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npj Computational Materials’의 머신러닝 포텐셜 분야(Machine Learning Interatomic Potentials in Computational Materials) 특별 컬렉션 논문으로 선정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524-025-01864-3 1. 비정질(Amorphous): 원자들이 규칙적인 결정 격자 구조를 이루지 않고 무질서하게 배열된 고체 상태이다. 2. 제일원리 분자동역학(Ab-initio Molecular Dynamics): 제일원리를 기반으로 전자와 원자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방법이다. 정확도는 높지만 가격이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려 수천 개 이상 원자를 다루는 대규모 연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3. 전하 평형법(Charge Equilibration): 원자의 화학적 환경과 주변 원자들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각 원자가 띠는 전하량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이 기법을 그래프 신경망 내부에 통합함으로써, 데이터 학습 없이도 외부 전기장에 의해 소재 내부 전하가 재배치되는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4. 머신러닝 포텐셜(Machine Learning Potential): AI를 활용하여 물질 내 원자 간 상호작용 에너지와 힘을 학습하고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기술이다. 기존 ‘제일원리 분자동역학’의 양자역학적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계산 속도는 수천 배 이상 빨라 대규모 시스템 또는 복잡한 환경에서의 시뮬레이션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신소재/융합 한세광 교수 연구팀, “빛으로 진단하고 치료한다” 빛이 바꾸는 미래 의료
POSTECH 신소재공학과·융합대학원 한세광 교수팀이 영국 옥스퍼드대 데임 몰리 스티븐스(Dame Molly Stevens) 교수팀, 미국 노스웨스턴대 존 로저스(John Rogers) 교수팀과 함께 기획한 ‘Advanced Materials Special Issue’의 Editorial(서문 논문)이 최근 ‘Advanced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커버 이미지 논문으로도 선정된 이번 Editorial은 광나노소재와 광 기반 디바이스 분야 최첨단 기술 현황과 향후 연구 방향을 체계적으로 조망한다. 빛은 파장·세기·주파수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 세포와 조직을 섬세하게 다루는 데 효과적이다. 형광 영상과 광음향 영상, 광열·광역학 치료, 광생체조절, 광유전학 등 다양한 의료 기술이 빛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초소형 LED, 신축성·유연 전자소자, 무선 통신 기술이 결합되면서 범위가 웨어러블·생체이식형 의료기기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스페셜 이슈는 이러한 연구 흐름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담아냈다. Perspective 1편, Review 9편, Research Article 7편 등 총 17편의 논문을 통해 광기술 기반 스마트 헬스케어를 ▲진단·치료용 나노소재 ▲웨어러블 광 디바이스 ▲이식형 광 디바이스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융합 등 네 가지 세부 주제로 제시했다. 연구 성과의 나열이 아니라, 분야 전반 기술 현황과 발전 방향을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크다. Editorial에서는 광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 활용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현실적 과제도 함께 짚었다. 장기 안정성, 면역 적합성, 제조 신뢰성, 의료 규제 등이 공통 과제로 꼽혔으며, 웨어러블 기기에서는 착용감과 데이터 보안, 이식형 기기에서는 무선 에너지 전송과 이물 반응 문제가 핵심 난제로 제시됐다. 이 같은 기술적 도전이 해결된다면 의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몸에 부착한 소형 장치가 질병 신호를 미리 감지하고, 빛을 활용한 치료가 약물·수술을 보완하며, 개인 맞춤형 정밀 의료가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병원 중심이던 의료가 일상생활로 확장되는 변화의 핵심 기술로 광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세광 교수는 "광 나노소재와 디지털 디바이스의 결합은 진단과 치료 경계를 허물고, 사람 중심 정밀 의료로 가는 중요한 흐름"이라며 "이번 스페셜 이슈가 광 기술 기반 스마트 헬스케어 연구를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기준점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Editorial 관련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연구재단 BRIDGE 연구사업, 기초과학연구사업,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 B-IRC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18886
화공/융합 차형준 교수 연구팀, 홍합의 습윤 조직접착력에 전도성 더해 생체 신호 잡는다
[체내 근육·신경 재생과 생체 신호 전달 돕는 전도성 접착소재 개발] POSTECH·국립부경대 연구팀이 체액으로 가득차 있는 체내에서 조직 및 전자소자(biolectronics)를 단단히 붙이면서 전기신호를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전도성 생체접착제를 개발했다. 홍합이 바닷속 바위에 강하게 달라붙는 원리에서 착안한 이 접착제는 손상된 근육·신경의 재생을 돕고, 이식형 의료기기의 안정성을 높일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몸속은 마치 수중 환경처럼 혈액과 체액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무엇이든 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손상된 근육이나 신경을 연결하거나, 심박 측정기나 뇌 자극 장치 같은 이식형 의료기기를 장기에 부착할 때 한계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기존의 접착제는 습윤환경 조직접착력이 약하고 전기가 잘 통하지 않아 조직이나 전자소자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고정하며 신호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물과 섞이지 않는 ‘불섞임성(immiscible)’과 전도성을 동시에 갖춘 액상 단백질 기반 생체접착제를 개발했다. 여기에 전기 자극으로 단백질을 손쉽게 가교(crosslinking)하는 기술을 더했다. 전기 자극을 받으면 이 접착제는 수 초 내에 젤(gel) 상태로 굳어지며,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고정된다. 그 성과는 실험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조직-조직’ 인터페이스 실험에서 절단된 근육 조직에 개발한 접착제를 적용하자, 끊어졌던 신경과 근육 간 전기신호가 복원됐다. 별도의 봉합 없이도 근육 재생이 촉진됐고, 운동 기능 역시 즉각적으로 회복되었다. ‘조직-전자소자’ 인터페이스에서도 성과가 확인됐다. 의료용 기기를 이식할 때 이 접착제를 사용하면 조직을 꿰매는 봉합사나 독성이 우려되는 화학 접착제 없이도 장기 표면에 소자를 견고하게 부착할 수 있다. 그 결과 장기와 전자소자 간 전기 저항이 낮아져, 장기간 안정적인 생체 신호 모니터링이 가능해졌다. POSTECH 차형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잘 붙는 접착제를 넘어, 체내 환경에서도 생체 신호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생체소재 기술을 제시했다”라며, “신경 재생 치료는 물론 차세대 이식형 생체 전자소자를 위한 전도성 생체접착소재로써 재활의학과 헬스케어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POSTECH 화학공학과·융합대학원 차형준 교수, 화학공학과 박사과정 우현택 씨, 윤진영 박사, 국립부경대 휴먼바이오융합전공 송강일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는 생체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즈(Biomaterial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으며, 한국연구재단의 글로벌연구네트워크확산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16/j.biomaterials.2025.123904
환경 민승기 교수 연구팀, 기후가 키운 산불, 탄소중립만으로는 못 막는다
[‘탄소중립’ vs ‘탄소감축’ 극한 산불기상의 미래 비교] 지금 당장 대기 중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여름은 더욱 뜨겁고, 다음 산불은 더 거세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 연구팀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탄소중립’만으로는 산불 위험을 충분히 낮출 수 없고, 대기 중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탄소감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최근 게재됐다. 전 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은 더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다. 매년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 산불은 흔히 낙뢰나 담뱃불, 실화 등 ‘불씨’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기온, 습도, 바람이 만들어 낸 기후 조건이 대형 산불을 키운다. 기온이 올라가고, 공기가 건조해질수록 숲은 쉽게 타오르는 화약고가 되고, 불은 더 오래, 더 넓게 번진다. POSTECH 연구팀은 기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두 가지 미래를 비교했다. 하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다른 하나는 이미 대기를 떠도는 이산화탄소까지 줄이는 ‘탄소감축’ 시나리오다. 분석 결과는 분명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산불 위험은 여전히 큰 상태를 유지했다. 북반구 저위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위험이 커지기도 했다. 반면, ‘탄소감축’ 시나리오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습도가 높아져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 크게 완화됐다. 이러한 효과는 기존에 산불 위험이 큰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단순히 기온 변화 때문이 아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바다와 대기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고, 강수 패턴과 기온 분포를 바꾼다. 대서양 자오면 순환의 변화, 열대수렴대 위치 이동 등 대규모 기후 시스템의 재편이 지역별 산불 위험을 좌우한 것이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만으로 이미 넘친 물을 치울 수 없듯, 탄소 배출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변해버린 기후를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탄소 포집·저장 기술, 탄소 제거 기술, 산림 복원 등 자연 기반 탄소 흡수 전략을 포함한 탄소감축은 필수다. 이는 에너지, 환경, 도시 계획,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과 기술 개발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탄소중립 이후의 세계가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연구는 과학적으로 보여준다. 민승기 교수는 “탄소중립은 산불 위험 증가를 멈추는 단계일 뿐, 이미 커진 위험을 되돌리는 해법은 아니다”라며 “극한 산불로부터 사회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을 넘어서는 탄소감축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한편, 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 김유진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w4705 a) 탄소 강제력에 따른 400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점선) 및 농도(실선) 변화 탄소감축 시나리오(파랑): 탄소배출이 2050년까지 선형적으로 증가한 다음 다시 감소하여 2196년 최소값을 보인 후 탄소중립을 유지함. 탄소중립 시나리오(빨강): 탄소감축 시나리오와 같은 배출 경로를 보이다가 2123년에 탄소중립에 도달한 후 2400년까지 유지됨. (b) 현재 기후 대비 시나리오에 따른 극한 산불기상위험의 발생 빈도 변화 (좌)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우) 탄소감축 시나리오에 따른 극한 산불기상위험의 발생 빈도 변화의 공간 분포. 극한 산불기상위험 발생일은 현재 기간(P0: 2001-2031)에서 얻은 일별 산불기상지수(FWI) 지수의 95퍼센타일 기준값을 초과하는 날로 정의함. 현재 대비 변화값은 그림 (a)의 Z7/N7 지점과 P0 지점의 차이를 나타냄. (c) 현재 기후 대비 시나리오에 따른 극한 산불기상위험의 강도 변화 (좌)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우) 탄소감축 시나리오에 따른 극한 산불기상위험의 강도 변화의 공간 분포. 극한 산불기상위험 발생일의 산불기상지수(FWI) 값의 현재 대비 미래변화를 나타냄.
배터리/신소재 박규영 교수 연구팀, “빵 반죽처럼 치대는 배터리” 속도 4배↑, 강도 3배↑
[POSTECH·UNIST·KIST, 활물질 표면에 탄소나노튜브 도입해 건식 전극 제조 난제 해결] 최근 POSTECH·UNIST·KIST 연구팀이 마치 빵 반죽을 짧은 시간에 치대면서도 더 쫄깃하게 만드는 것처럼, 친환경 배터리를 만드는 데 걸리던 시간을 4분의 1로 줄이면서도 강도는 3배 더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에너지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배터리 전극을 만들 때 보통 물이나 화학 용액을 사용하지만, 이를 쓰지 않고도 전극을 만드는 ‘건식 전극(dry electrode)’이 차세대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이 기술은 용매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전극을 더 두껍게 만들어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테슬라 등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이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산업화 단계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전극 제조에 시간이 걸리고, 만들어진 전극은 쉽게 부서졌다. 특히,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 배터리를 지탱하는 접착제(binder)와 도전재(conductive additive, 전도성 물질)를 줄이면 에너지 밀도는 높아지지만, 전극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성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연구팀은 재료를 섞는 ‘니딩(kneading)’ 공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니딩’은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 배터리 재료를 섞는 과정으로, 전극 구조와 물성이 결정되는 단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해결책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활물질 표면에 탄소나노튜브1)를 입혔다. 그러자 활물질 표면이 미세하게 울퉁불퉁해져 재료들이 서로 잘 엉기고 바인더가 그 사이사이를 촘촘하게 연결했다. 덕분에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던 니딩 공정은 75% 이상 단축됐고, 전극 강도는 최대 3배 이상 향상됐다. 특히, 바인더 사용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는데, 바인더가 줄어들면 전극 내부의 공간이 더 확보되어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1Ah(암페어시) 파우치형 배터리까지 제작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양산 가능성도 확인했다. 박규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건식 전극 제조의 가장 큰 난제로 꼽혀온 ‘공정 속도’와 ‘구조적 취약성’을 동시에 해결했다“라며, 차세대 고에너지 배터리 생산을 앞당길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POSTECH 신소재공학과·배터리공학과 박규영 교수, 배터리공학과 통합과정 박조규 씨,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정경민 교수, 통합과정 오혜성 씨,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 유정근 박사가 수행한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및 삼성SDI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enm.202504005 1.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크기인 탄소 섬유다.
환경 감종훈 교수 연구팀, 태풍은 재난일까, 가뭄 막는 생명줄일까
[태풍이 사라진 세계 가정한 분석 통해 가뭄 완화 역할 확인] POSTECH 감종훈 교수 연구팀이 태풍으로 인한 강수가 사라진 상황을 가정해 태풍이 전 세계 가뭄을 완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태풍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가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최근 지구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태풍은 흔히 홍수와 피해를 가져오는 재난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태풍이 남기는 비는 가뭄을 늦추고 물 순환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태풍의 부재가 가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체계적으로 분석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 연구는 ‘태풍이 오지 않았다면 가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연구팀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지구 전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태풍 강수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가정하고 수문 모델 실험을 진행했다. 쉽게 말해, ‘태풍이 존재하는 세계’와 ‘태풍이 사라진 세계’를 나란히 놓고, 토양 수분, 하천 유출, 가뭄 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분석했다. 태풍 강수가 사라지는 경우 세계 곳곳에서 토양 수분이 급격히 줄어들고, 가뭄이 훨씬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 확인됐다. 특히, 태풍이 토양을 적시는 방식과 그 효과는 지역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오세아니아 같은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태풍이 남긴 토양 수분이 1년 이내에 빠르게 사라졌으며, 태풍이 오지 않을 경우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다. 반면, 동아시아 같은 습윤 지역에서는 태풍 강수가 없더라도 토양 수분이 완전히 고갈되지 않았다. 이는 태풍의 부재가 어떤 지역에서는 가뭄을 촉발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을 악화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시대에 물 관리의 새로운 변수를 제시한다. 태풍 경로와 빈도가 변화하면, 일부 지역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가뭄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영향은 농업 생산을 넘어 수자원 관리, 도시 물 공급, 재난 대응 방식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번 연구는 태풍을 바라보는 관점도 확장한다. 감종훈 교수는 “태풍 상륙이 주로 홍수·피해의 관점에서만 논의됐지만, 태풍이 가뭄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태풍과 가뭄을 다같이 잘 모사할 수 있는 기후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 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9/2025GL120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