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박수진 교수 연구팀, “충전 20분, 주행 1,000km” 전기차 '아킬레스건' 없애다
[충·방전 반복해도 안 깨지는 실리콘 배터리 소재 개발] 단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전기차. 그것도 20분 만에 충전을 끝내고 말이다. 국내 연구진이 전기차 배터리 고질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신소재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상상이 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 제민준 박사 연구팀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최장욱 교수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이차전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고강도 실리콘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전기차의 가장 큰 숙제는 결국 배터리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빨리 충전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로 가장 많이 쓰인 소재는 '흑연'이지만 흑연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이미 이론적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흑연에 비해 최대 10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꿈의 소재'로 불려왔다. 문제는 실리콘이 충·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부피가 무려 300%까지 부풀었다 줄어든다는 점이다. 풍선을 반복해서 불면 결국 터지는 것처럼, 실리콘 입자도 갈라지거나 산산조각 났다. 이 때문에 배터리 성능이 빠르게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기존 연구들이 소재를 그냥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연구팀은 반복적인 부피 변화를 버텨내는 '강도'에 주목했다. 단단하면서도 쉽게 금 가지 않는 구조, 즉 깨지지 않는 유리가 아니라 구부러져도 돌아오는 금속 같은 특성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실리콘 산화물 내에 32nm(나노미터) 크기 불화리튬(LiF) 결정을 정밀하게 배치했다. 이는 결정 크기가 작아질수록 강해지지만, 또 지나치게 작아지면 오히려 약해지는 ‘홀-페치(Hall–Petch)1) 법칙’과 ‘역 홀-페치 효과’를 응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이온은 잘 통과시키고, 전자는 빠르게 이동시키는 특수 코팅층을 입자 표면에 더해 급속충전 성능까지 함께 잡았다. 실험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는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 변화가 18.9% 수준에 머물렀다. 기존 실리콘의 300% 팽창과 비교하면 사실상 '끄떡없는' 수준이다. 실제 전지 평가에서도 10–80% 충전 기준 20분 급속충전 조건으로 1,000회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1.26Ah(암페어시)급 파우치형 배터리에서도 500회 이상 정상 구동을 확인했으며, 에너지 밀도는 1kg당 402Wh(와트시), 부피 기준으로는 1L당 1,125Wh를 기록했다. 현재 시판 중인 전기차보다 훨씬 긴 주행거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기술이 실제 전기차에 적용될 경우, 한 번 충전으로 약 1,00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나 장거리 운전자들이 느끼는 '혹시 중간에 방전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이른바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이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POSTECH 박수진 교수는 "실리콘 음극재가 부서지는 문제를 ‘강도’와 ‘영률’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라며 “고에너지 밀도와 급속충전을 만족하는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최장욱 교수도 “나노미터 수준에서 결정 크기를 정밀하게 제어해 성능을 극대화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대 공학연구원/이차전지혁신연구소/ 신소재공동연구소, LG에너지솔루션 오픈액세스 출판 비용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202528238 1. Hall-Petch : ‘재료를 이루는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진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너무 작아지면(보통 수십 nm 이하) 반대로 약해지는 '역 Hall-Petch 효과'가 나타난다. 즉,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지다가 특정 구간을 지나면 약해지게 되어, 이들의 교차점이 가장 강한 지점으로 여겨진다.
기계 이상준 교수 연구팀, 바닷속 ‘하얀 석유’ 리튬, 햇빛으로 뽑아낸다
[태양빛만으로 고농도 염수에서 리튬만 골라내는 차세대 나노필터 개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전기차를 달리게 하고, 태양광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저장하는 것.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리튬'이 필요하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하얀 석유'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 자원을, 단지 햇빛만으로 바닷물에서 골라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POSTECH 기계공학과 이상준 교수, 샤킬루르 라헤만(Shakeeur Raheman) 박사 연구팀이 태양빛을 이용해 고농도 염수에서 리튬만 선택적으로 회수하는 나노여과막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최근 게재됐다. 리튬은 바다와 염분이 높은 호수에 녹아 있지만, 정작 꺼내 쓰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마그네슘이라는 '훼방꾼' 때문이다. 마그네슘은 리튬과 그 특성이 비슷해 함께 녹아 있는데, 물 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어 리튬만 따로 분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기존에는 드넓은 증발지에 염수를 가득 채우고 수개월씩 햇볕에 말리거나, 강한 화학약품을 대량으로 쓰는 방식도 있지만 당연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환경에도 부담이 컸다.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리튬 수요가 치솟는 지금, 보다 깨끗하고 환경친화적이며 효율적인 추출 기술이 절실 하게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연구팀은 '그래핀 나노리본(GNR1))'과 '광열 환원 그래핀 산화물(PrGO2))'을 결합한 초미세 나노 채널을 개발했다. 원리는 이렇다. 물에 녹은 이온은 주변 물 분자를 달고 이동하는데, 마그네슘은 리튬보다 물 분자를 훨씬 강하게 붙잡는다. 리튬은 가벼운 백팩 하나만 메고 좁은 문을 통과하는 반면, 마그네슘은 커다란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어 같은 문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핀 나노리본 가장자리에는 여러가지 화학 기능기가 있는데, 이 기능기들은 리튬 이온 주변 물 분자를 살짝 떼어내서 이동을 돕는다. 덕분에 리튬은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막을 통과한다. 그리고, '광열 환원 그래핀 산화물‘ 구조는 태양 빛을 열로 바꾸는 변환 능력이 있어, 햇빛을 받으면 막의 내부 온도가 올라가고 리튬 이온 이동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기본 태양광 조건(1kW·m-2)에서 시스템을 구동한 결과, 리튬과 마그네슘을 분리하는 선택성이 크게 높아졌고, 염수 속 리튬의 농축 효율은 기존 대비 약 28배까지 향상됐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이 원리를 확인했다. 리튬 이온은 막을 지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매우 낮아 빠르고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마그네슘은 이동 경로가 좁고 복잡하여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수치해석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기술은 '태양광'이라는 무한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화학약품도, 거대한 증발지도 필요 없다. 2030년이면 전 세계 리튬 수요가 현재의 수 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바다와 염호를 거대한 리튬 광산으로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POSTECH 이상준 교수는 "태양광 기반 광열 효과와 그래핀 나노구조를 결합해 리튬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플랫폼을 제시했다"라며, "차세대 친환경 이온 분리 기술과 리튬 자원 확보 기술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202528238 1. GNR(graphene nanoribbon) : 펼쳐진 탄소나노튜브(Unzipped carbon nanotube)로부터 유래한 그래핀으로, 선택적으로 기능화될 수 있는 풍부한 가장자리(edge) 부위를 노출시켜 음전하를 띤 작용기 (Mg2+)의 침투를 억제하고, 질소 함유 작용기는 Li+ 배위를 촉진함. 2. PrGO(photothermally-reduced graphene oxide) : 팽창 방지 기능이 있는 흑연 연속체이자 전도성 지지체인 광열 환원된 그래핀 산화물로 장기간 작동에도 나노채널 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함.
물리/융합 이길호 교수 연구팀, “구리에선 불가능” 수십 년 상식 뒤집어… 전자 충돌 없이 달리는 '탄도 전도' 실험 성공
[단결정 구리 박막서 '음의 굽힘 저항' 신호 첫 관측]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손이 뜨거워질 만큼 열이 난다. 이 열의 상당 부분은 칩 안을 달리는 전자들이 서로, 혹은 장애물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생겨난다. 회로가 작아질수록 이 '교통 체증'은 심해지고, 속도는 느려지며 전력 소모는 늘어난다. 반도체 업계가 수십 년째 풀지 못한 이 문제에 최근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됐다. POSTECH 물리학과·융합대학원 이길호 교수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조용진 씨 연구팀이 최근 부산대 첨단융합학부 정세영 명예교수 연구팀,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물리천문학과 김성곤 교수 연구팀은 실제 반도체 배선과 비슷한 크기의 구리 박막에서 반도체 속 전자 '교통 체증'을 없앨 핵심 현상인 ‘탄도 전도(ballistic transport)1)’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 연구 성과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탄도 전도’란 전자가 어딘가에 거의 부딪히지 않고 직선에 가깝게 쭉 달려가는 현상이다. 당구공이 다른 공과 충돌 없이 테이블 끝까지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전자가 이렇게 이동하면 에너지 손실과 발열이 줄고, 신호 전달 속도도 빨라진다. 반도체 속에 전자를 위한 '고속도로'가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껏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 같은 특수한 소재에서만 주로 관측됐다. 반도체 배선에 가장 널리 쓰이는 구리는 전자가 쉽게 산란되는 금속이라, 탄도 전도는 사실상 불가능한 물질로 여겨져 왔다. 연구진은 'ASE(Atomic Sputtering Epitaxy)2)' 기술을 이용했다. 일반 금속 박막은 작은 결정 알갱이들이 불규칙하게 이어 붙은 구조라 전자가 경계마다 부딪힌다. 연구진은 이 경계를 없앤 '단결정 구리(Cu(111)) 박막'을 만들고, 표면 거칠기도 0.2nm(나노미터) 수준으로 매우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런 다음 두께 약 90nm, 선폭 150nm의 구리 배선을 십자 형태로 제작해 전자 이동 특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영하 188도(85K) 이하 저온 환경에서, 전자가 충돌 없이 이동할 때만 나타나는 '음의 굽힘저항(negative bend resistance)' 신호를 관측했다. 일반 구리 도체에서는 전자가 반복적으로 산란되는 ‘확산 전도3)’가 나타나 저항은 항상 양의 값을 갖는데, 이러한 신호는 배선에서 ‘탄도 전도’가 일어났다는 강력한 증거다. 무엇보다 이번 성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 구조가 아니라, 지금 실제 공장에서 쓰이는 반도체 배선과 비슷한 크기에서 이 현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신호 지연 감소, 발열 감소, 저전력·고속 회로 구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OSTECH 이길호 교수는 "탄도 전도는 전자소자 전력 소모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상적인 방식"이라며 "산업 표준 금속인 구리에서, 실제 배선 크기로 이 현상이 가능함을 보인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6-70252-2 1. 탄도 전도(Ballistic Transport): 전자가 이동 중 다른 입자나 불순물과 거의 충돌하지 않고 직선으로 통과하는 현상이다. 총알이 공기 저항 없이 날아가듯, 전자가 배선 안을 방해 없이 가로지른다고 이해하면 쉽다. 충돌이 없으니 에너지 손실이 적고 발열도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그래핀·탄소나노튜브 같은 특수 소재에서만 주로 관측됐다. 2. ASE(Atomic Sputtering Epitaxy): 원자 단위로 물질을 한 층씩 쌓아올리는 박막 제조 기술이다. 레고 블록을 한 칸 한 칸 정밀하게 쌓듯, 원자를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배열해 결정 구조가 완벽하게 균일한 박막을 만들어 낸다. 3. 확산 전도(Diffusive Transport): 전자가 이동하는 도중 원자 진동이나 불순물, 결정 경계 등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방식이다.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적인 금속 도선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전자 이동 방식으로, 충돌이 반복될수록 저항과 열이 증가한다.
신소재/친환경/배터리 김용태 교수 연구팀, “다쳐도 스스로 낫는 촉매 나왔다” 수소차·연료전지 핵심 난제 극복할까
[손상돼도 금속 상태로 되돌아가는 전기화학 촉매 개발] 상처가 나도 회복하는 피부처럼, 산화되어 성능이 떨어져도 스스로 원래 상태를 되찾는 촉매가 나왔다. 수소차와 연료전지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소 경제 상용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친환경소재학과·배터리공학과 김용태 교수, POSTECH 신소재공학과 유상훈 박사(現 국립공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유상훈 교수), 서울대 신소재공학부 한정우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 이국승 박사 연구팀이 함께 스스로 성능을 회복하는 촉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에너지 앤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게재됐다. 수전해 장치와 수소 연료전지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거나,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수소 경제의 핵심 기술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내부에서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가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패시베이션(passivation)1)’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이 상태가 되면 촉매가 다시는 본래 성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 시동을 켜고 끄는 과정(이하 SU/SD2))이나 연료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처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건에서 촉매 손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뛰어난 초기 성능을 갖고도 실제 제품에 쓰이지 못한 촉매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이리듐(Ir)과 철(Fe)을 결합한 합금 나노촉매(IrFe/C)를 설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핵심은 촉매 '겉'과 '속'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 금속 합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바깥 표면만 주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촉매 표면이 산화되더라도 다시 금속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 회복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동적 분리-표면 재구성(dynamic segregated-surface reconstruction)’이라 설명했다. 불에 타도 다시 재생되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촉매 스스로 성능을 복원하는 길을 연 셈이다. 실험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수전해 장치(PEMWE3))와 연료전지(PEMFC4))에 적용한 결과, 기존 촉매(Pt/C)는 성능이 62%나 감소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촉매(IrFe/C)는 16% 감소에 그쳤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불안정한 운전 조건에서도 높은 전류 밀도와 최대 출력 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기존 촉매의 출력 밀도가 최대 0.25W·cm⁻²까지 떨어지는 동안, 새 촉매는 0.72W·cm⁻²를 유지했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을 넘어, 성능 자체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수소 에너지 경제성을 높여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촉매 수명이 늘어나면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의 유지 비용이 줄어들고, 교체 주기도 길어진다. POSTECH 김용태 교수는 “촉매 표면 패시베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라며 “수전해 기반 친환경 수소 생산은 물론, 수소차·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비 수명을 늘리고 유지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5ee05899f 1. 패시베이션(passivation): 금속이나 촉매 표면에 산화물층 같은 얇은 막이 형성되면서 외부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이 막은 촉매의 활성 부위를 덮어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2. SU/SD(Start-up/Shut-down): 장치의 시동(Start-up)과 정지(Shut-down) 과정을 뜻한다. 수소 연료전지나 수전해 장치는 이 과정에서 전압 변화가 크게 발생해 촉매 열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3. PEMWE(Proton Exchange Membrane Water Electrolyzer):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 장치.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H₂)와 산소(O₂)로 분리하는 장치로,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4. PEMFC(Proton Exchange Membrane Fuel Cell): 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 수소와 산소의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로, 수소차와 친환경 발전 시스템 등에 활용된다.
화공 한지훈 교수 연구팀, 친환경 플라스틱 한계, ‘나무’에서 답을 찾다
[리그닌 화학 개질로 성능·경제성·환경성 모두 향상] 땅에 묻으면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 가격도 비싸고 생각보다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국내 연구팀이 나무로 종이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POSTECH 화학공학과 한지훈 교수, 통합과정 권기현 씨 연구팀이 KIST RAMP융합연구단 최용석 선임연구원, 전남대 석유소재화학공학과 변재원 교수와 함께 목재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리그닌(lignin)'을 활용하여 생분해성 플라스틱 성능, 친환경성을 모두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화학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중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소재는 'PBAT1)'다. 일정 조건에서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포장재나 농업용 비닐에 쓰기 좋아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원료 대부분 여전히 석유에서 나오는 데다 가격도 비싸다. 리그닌이나 셀룰로스 등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섞는 방법도 있지만 이러한 천연 소재는 PBAT와 잘 섞이지 않아 많이 넣을수록 오히려 플라스틱이 약해졌다. 연구팀은 리그닌의 화학 구조를 다양하게 바꿔 PBAT와 가장 잘 맞는 형태인 '페놀화 리그닌(phenolated lignin)‘을 찾아냈다. ’페놀화 리그닌‘은 PBAT 안에서 최대 20wt%2)까지 균일하게 퍼졌고, 플라스틱이 잘 찢어지지 않고 버티는 힘인 ‘인성(toughness)’도 기존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소재 간의 궁합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고분자 복합재의 성능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환경성과 경제성까지 고려해 이 기술의 산업 적용 가능성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경우 기존 PBAT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1% 감소하고, 생산 비용도 약 12%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환경 소재는 비싸고 성능도 떨어진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 결과다. 또한, 페놀화 리그닌은 빛을 차단하는 기능도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잡초 억제와 토양 온도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농업용 멀칭(mulching)3) 필름처럼, 햇빛 차단이 중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플라스틱 물성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기능까지 더하는 친환경 소재'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목재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고부가가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자원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로 기대된다. 한지훈 교수는 “리그닌의 화학적 변형만으로도 플라스틱과의 궁합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라며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더 친환경적인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용석 선임연구원은 “친환경 소재가 성능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라며 “바이오 기반 복합소재 개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석유 대체 원료 기반 친환경 화학소재 개발’ 사업 및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재활용할 수 있는 미래 에어모빌리티 구조용 소재 부품 경량화 플랫폼 기술 개발’ 융합연구단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6279 1. PBAT: Poly(butylene adipate-co-terephthalate), 생분해성 고분자 소재 2. wt%: weight percent(중량 백분율), 질량 기준 비율로 전체 무게 중에서 어떤 물질이 몇 % 들어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3. 멀칭(mulching): 농작물 주변의 토양 표면을 비닐이나 짚 등으로 덮어주는 농법이다.
컴공 박상현 교수 연구팀, “MRI 한 장으로 뇌종양 유전자까지 본다” 진단과 판독을 동시에 수행하는 AI 개발
[뇌종양 진단 시간·부담 줄일 새로운 의료 AI 제시] 뇌 MRI 한 장만으로 종양 유전자 변이를 예측하고, 동시에 영상 판독 소견서도 자동으로 작성하는 AI가 개발됐다. 조직 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를 영상만으로 빠르게 추정할 수 있게 되면서, 뇌종양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 방식에 새로운 전환점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POSTECH 컴퓨터공학과 박상현 교수, 인공지능대학원 석사과정 류희승 씨, DGIST 강명균 박사, 세브란스병원 박예원·안성수 교수 연구팀이 MRI 영상으로 뇌종양 특징을 예측하고, 소견서를 자동 생성하는 비전-언어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의료 인공지능 분야를 포함한 헬스케어 분야 국제 학술지인 ‘npj Digital Medicine’에 게재됐다. ‘성인형 미만성 신경교종1)’은 치료 방법과 예후가 환자마다 크게 다른 뇌종양으로 IDH2) 유전자 변이 여부는 환자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정보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뇌 조직을 직접 채취해야 해 환자 부담이 크고, 검사에도 시간·비용이 많이 든다. 최근에는 MRI를 이용해 비침습적으로 상태를 예측하려는 연구가 활발하지만 이와 동시에 MRI 검사량이 계속 증가하면서, 의료진이 영상을 판독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연구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AI를 설계했다. 먼저 ‘PubMed Central3)’ 대규모 의생명 이미지-텍스트 데이터로 AI를 미리 학습시킨 뒤, 뇌종양 환자의 MRI 영상과 실제 판독문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켜 뇌종양에 특화된 모델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판독문 표현이 제각각인 문제를 줄이기 위해 문장 형식을 정리하고 통일하는 전처리 과정도 적용해 AI가 더 안정적으로 학습하고, 일관된 형태의 판독문을 생성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모델 ‘Glio-LLaMA4)-Vision’은 뇌 MRI 영상으로 IDH 변이 여부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예측 정확도 측면에서도 AUC5) 0.85~0.95 수준의 성능을 보여, 다양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판독문은 전문의 평가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약 90% 이상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됐고, 일부는 기존 판독문과 같거나 더 나은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번 연구는 MRI 분석과 유전자 예측, 판독문 작성까지 하나의 AI 시스템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분석을 돕는 수준을 넘어, 진단 과정 전체를 보조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POSTECH 박상현 교수는 “영상 판독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유전자 검사 없이 빠른 치료 판단에 도움을 줄 가능성을 확인했다”라며 “후속 연구를 통해 실제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의료 AI로 발전시키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746-026-02581-x 1. 성인형 미만성 신경교종: 악성 뇌종양의 한 종류로, 종양이 뇌 조직에 넓게 퍼지는 특징이 있다. 2. IDH(Isocitrate Dehydrogenase): 체내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데 쓰는 정상적인 효소(단백질)이다. 3. PubMed Central : PubMed Central(PMC)은 생의학 논문을 제공하는 공개 데이터베이스다. 4. LLaMA: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 대규모 언어 모델이다. 5. AUC(Area Under the Curve): AI나 진단 모델의 성능을 평가하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예측 정확도가 높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0.5는 무작위 수준, 0.9 이상이면 매우 높은 성능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IT융합 한욱신 교수 연구팀, "관계도 읽고 통계도 척척” 데이터 분석 속도 184배 ↑
[차세대 그래프 분석 엔진 TurboLynx 개발] POSTECH 컴퓨터공학과·인공지능대학원 한욱신 교수, 컴퓨터공학과 통합과정 이태성 씨, 인공지능대학원 통합과정 하재현 씨 연구팀이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를 기존보다 최대 184배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엔진 '터보링크스(TurboLynx)'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데이터베이스 분야 국제 학술대회인 ‘VLDB 2026’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학회는 오는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다. 넷플릭스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금융사가 수상한 거래를 찾아내며, 생성형 AI가 사람과 개념 사이의 연결을 이해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관계’를 읽는 기술이다. 사람과 사람, 상품과 거래, 단어와 단어처럼 복잡하게 얽힌 연결 구조를 다루는 데이터를 ‘그래프 데이터’라고 한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진 정보의 망을 저장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현실의 데이터가 워낙 다양하고 제멋대로라는 데 있다. 기업 환경에서는 데이터의 형태가 수시로 바뀌고, 새로운 항목이 언제든 추가된다. 이처럼 형식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스키마 없는(schemaless)' 데이터1)는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시스템들은 이런 데이터를 집계하거나 통계를 내는 분석 작업에서는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손님마다 주문서 양식이 제각각인 식당에서, 하루 매출을 집계하려면 하나하나 손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 상황과 같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부터 질의를 처리하고 최적화하는 방식까지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설계했다. 핵심은 ‘비슷한 데이터끼리 모아 한 번에 처리하자’라는 아이디어다. 이번에 개발한 엔진 '터보링크스(TurboLynx)'는 성격이 비슷한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그룹화한 뒤, 분석에 유리한 열(column) 단위로 저장한다. 덕분에 컴퓨터가 데이터를 읽을 때마다 형태를 일일이 해석할 필요가 없어지고, 불필요한 메모리 낭비도 크게 줄었다. 또한, 여러 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탐색 과정에서 중간 결과가 불필요하게 커지는 문제를 줄였고, 분석 질의도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실제 성능은 숫자로 증명됐다. 국제 표준 벤치마크 평가에서 ‘터보링크스’는 기존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보다 약 184배,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방식 대비 최대 약 41배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특히 위키피디아 기반 대규모 지식그래프 데이터에서는 가장 성능이 좋은 경쟁 시스템보다 약 19배 높은 성능을 보이며 실제 산업 환경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기술은 생성형 AI, 추천 시스템, 금융 보안, 바이오 데이터 분석처럼 복잡한 연결 관계를 다루는 분야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데이터를 실시간에 가깝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 영화 속 수사관이 거대한 범죄 조직의 관계망을 순식간에 추적하듯, 앞으로는 기업도 방대한 데이터 속 연결 구조를 훨씬 빠르게 읽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욱신 교수는 "기업들이 보유한 복잡한 그래프 데이터를 실제 분석과 서비스에 더 폭넓게 활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향후 실시간 트랜잭션 처리와 에이전트용 장기 메모리로 활용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 시스템은 업계 표준 그래프 질의 언어인 Cypher를 지원하며, 일반 사용자도 자연어 질의로 시스템과 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프로젝트 홈페이지(https://turbolynx.io)를 통해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빅그래프의 지능적 처리를 위한 분산 그래프 DBMS 개발' 사업,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자연어 질의 변환 지원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대화 가능하고 자동으로 튜닝하는 DBMS의 개발’ 스타랩 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4778/3797919.3797932 1. 스키마 없는(Schemaless) 데이터: 데이터 항목 종류와 형식을 미리 고정하지 않고, 점이나 선마다 자유롭게 정보를 붙일 수 있는 표현 방식. 데이터가 자주 바뀌거나 새로운 항목이 계속 추가되는 환경에 유리하다.
화공 이상민 교수, 인공지능으로 풀어낸 바이러스의 비밀...백신 실어 나를 대형 단백질 구조체로 탄생
[노벨상 수상자인 美워싱턴대 베이커 교수와 공동연구 통해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Nature에 논문 게재 성과] [바이러스 구조 원리를 인공지능으로 재현, 차세대 약물 전달체로 응용 기대] 국내 연구자가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자연계 바이러스의 조립 원리를 그대로 재현한 대형 단백질 구조체를 설계하는 데 성공하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배경훈, 이하 ‘과기정통부’)는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공학과 이상민 교수가 미국 워싱턴대학교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 단백질 구성요소가 오·육각형 배열을 동시에 형성하며 바이러스 유사 구조로 자가조1) 되는 설계 원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지원 사업(개인기초연구사업(우수신진연구),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한국시간 5월 21일(목) 자정(현지시간 5.20.(수) 16시, GMT) 에게재2)되었다. 최근 바이오·의학 분야에서 차세대 약물 전달 기술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핵심 소재는 ‘단백질 나노케이지(Protein Nanocages)’이다. 단백질 나노케이지는 여러 단백질이 스스로 결합해 만든 나노미터(nm) 크기의 속이 비어있는 구조체로서, 내부 공간에 약물, 유전물질, 효소 등을 안정적으로 탑재할 수 있고, 껍질에는 항원을 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를 설계하는 기술은 계산에 따른 '완벽한 대칭 구조'를 만드는데 주로 의존해 왔으며, 이로 인해 하나의 단백질로 구현할 수 있는 구조체의 크기가 매우 제한적이고 형태가 단순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자연계의 바이러스는 하나의 단백질을 수백 번에서 수천 번 반복 사용하면서도 각 단백질이 놓이는 위치와 환경을 미세하게 조절해 거대한 껍질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원리를 ‘준대칭성(quasisymmetry)’이라고 하며, 이번 연구는 이 고도의 자연 원리를 인공 단백질 설계로 완벽히 구현해 내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껍질이 커지는 핵심 열쇠가 단백질 블록 사이의 각도와 휘어짐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백질이 너무 평평하게 배열되면 껍질이 닫힌 구조가 되지 않고, 반대로 너무 많이 휘면 구조가 작아지는 특성이 있어, 이를 정밀하게 설계하여 하나의 단백질이 위치에 따라 오각형 환경과 육각형 환경을 동시에 형성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위해 단백질 3개가 뭉친 '삼량체 단위'를 기본 블록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구조 생성 도구인 '알에프디퓨전(RFdiffusion)3)'을 활용해 새로운 연결 구조를 설계했다. 마치 조립식 블록을 쌓는 것처럼 하나의 단백질이 서로 다른 각도로 맞물리도록 하여 평평한 판이 아닌 거대한 돔 형태의 껍질을 구현한 것이다. 연구진은 설계한 인공 단백질을 미생물(대장균)을 통해 실제로 만든 후, 최첨단 극저온 전자현미경으로 그 형태를 관찰했다. 그 결과, 단백질들이 스스로 뭉쳐 최소 70nm에서 최대 220nm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둥근 껍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확인했다. 가장 작은 구조는 정교한 '나노 축구공' 형태를 띠었으며, 큰 구조는 그보다 3배 이상 거대했다. 이번 연구는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AI로 새롭게 설계한 단일 인공 단백질만으로 바이러스와 유사한 대형 구조체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향후 표적 약물 및 유전물질 전달체, 백신 항원 제시 플랫폼 등 바이오·의학 분야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확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며, 내부 지지 단백질이나 핵산 등을 주형으로 활용해 구조체의 크기를 더욱 균일하게 제어하는 후속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논문 외에도 베이커 교수가 주도하고 이상민 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한 인공 단백질 구조체 연구 성과4)가 「네이처」 동일 일자에 나란히 게재되었다. 이로서, 이상민 교수는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에 교신저자와 공저자로서 같은 날 연이어 이름을 올리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포항공대 이상민 교수는 “바이러스는 완벽한 대칭만이 정교한 분자 구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최고의 자연 모방 대상”이라며, “분자 타일 사이의 미세한 각도 변화가 평평한 판을 거대한 돔으로 바꾸듯, 단백질 블록의 국소 구조를 조절함으로써 최종 조립체의 크기와 형태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의미를 밝혔다. 과기정통부 김성수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성과는 국내 우수 연구자가 노벨상 수상자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기초연구 역량을 증명해 낸 쾌거”라며, “앞으로도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을 증진하고 세계를 선도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554-z 1)외부에서 하나하나 끼워 맞추지 않아도, 분자들이 스스로 정해진 구조로 모이는 현상 2)논문명: Design of one-component quasisymmetric protein nanocages 3)원하는 단백질 구조를 계산적으로 생성하는 인공지능 기반 설계 도구 4)논문명: De novo design of quasisymmetric two-component protein cages
기계 김기훈 교수 연구팀, 가상현실 ‘손끝 몰입’을 뇌로 읽다
[MRI 속에서도 작동하는 멀티 핑거 햅틱 디스플레이 개발] VR 헤드셋을 쓰면 눈과 귀는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다. 그런데 손끝까지 느낌이 전해진다면 어떨까. 국내 연구팀이 VR 속 촉감이 실제로 뇌를 얼마나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지를 뇌 영상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손끝의 감각이 뇌에 "이건 진짜야"라고 속삭이는 순간을 과학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POSTECH 기계공학과 김기훈 교수, 석사과정 변준섭 씨 연구팀은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용안·정현석 교수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김주연 박사팀과 함께 VR 속 촉각 경험이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반 연구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됐다. VR 기술은 이미 의료, 교육, 게임 등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사람이 VR 속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나"를 객관적으로 잴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체험 후 "얼마나 실감났나요?"라고 묻는 설문지가 사실상 전부였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게 되는 장면처럼, 진짜 몰입을 측정하려면 사람의 말이 아닌 뇌 자체의 반응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뇌 활동을 정밀하게 찍는 장비인 MRI는 강력한 자기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금속이 들어간 전자 기기를 옆에 가져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연구팀은 금속 대신 공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공압(pneumatic) 방식'의 손가락 촉각 장치를 설계했다. 네 손가락에 서로 다른 촉감을 동시에 전달하며,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 소재만 써서 MRI 안에서도 뇌 영상 품질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장치를 활용해 VR 경험 중 촉감을 제공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뇌가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비교했다. 일반 병원용 MRI보다 두 배 강한 자기장을 사용해 뇌 활동을 정밀하게 촬영하는 3T(테슬라) fMRI1)로 실험한 결과는 놀라웠다. 손끝에 촉감이 전해지자, 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만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운동·주의·인지 처리를 담당하는 더 넓은 영역까지 활발하게 반응했다. 특히 촉각이 시각·청각과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맞아떨어질 때 뇌 반응은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느끼는 감각들이 한꺼번에 맞아 들어올 때 뇌는 그것을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는 VR 게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는 수술 시뮬레이션 훈련의 정밀도를 높이거나, 공포증·통증 치료에 쓰이는 VR 치료 프로그램의 효과를 뇌 반응으로 직접 검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재활 치료나 원격 수술 로봇, 실감형 교육 콘텐츠 등에도 응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더 나아가 ‘이 VR 콘텐츠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를 설문이 아닌 뇌 데이터로 증명하는 표준 평가 방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연구를 이끈 김기훈 교수는 “가상현실에서 진짜 같은 몰입감을 만들려면 눈과 귀뿐 아니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며 “이번 연구는 VR 경험을 설문이 아닌 뇌 활동 데이터로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 치의학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과 우수신진연구사업, ㈜포스코 홀딩스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43297 1.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뇌의 혈류 변화를 감지하여 활동 영역을 측정하는 영상 기술.
전자/반도체 이병훈 교수 연구팀, “반도체도 이제 ‘멀티플레이’ 시대” 필요한 소자 75% 줄이고, 속도 4배 높이고
[저온 공정 가능한 이종접합 트랜지스터 개발… 복잡한 회로 단일 소자로 구현] 스마트폰이 손 안에 들어온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이제 AI까지 손목 위에서 돌아가는 시대가 됐다. 문제는 기기는 작아지는데 처리해야 할 데이터와 기능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POSTECH 연구팀이 이 모순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냈다. POSTECH 전자전기공학과·반도체공학과 이병훈 교수, 전자전기공학과 전재현 박사 연구팀이 하나의 반도체 소자만으로 여러 회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트랜지스터 기술을 개발했다. 회로는 훨씬 단순해지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기존 대비 4배 더 빨라졌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재료·소자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됐다. 반도체 산업의 과제 중 하나는 ‘더 작은 칩 안에 더 많은 기능을 넣는 것’이다. 기능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회로와 트랜지스터 수도 증가하는데 이미 만들어진 반도체 칩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는 기존 칩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400도 이하 저온에서 후공정(BEOL)1)이 진행되어야 한다. 연구팀은 ‘산화아연(ZnO)’과 ‘텔루륨(Te)’에 주목했다. 두 물질은 200도 이하에서도 얇고 균일하게 제작할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아 왔다. 연구팀은 이 둘을 결합해 'ZnO-Te 이종접합2)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이 소자는 전류 흐름을 매우 독특하게 조절한다. 전압이 올라가면 전류도 함께 증가하는 일반적인 반도체와 달리, 특정 구간에서 오히려 전류가 감소하는 ‘부성 미분 트랜스컨덕턴스(Negative Differential Transconductance, NDT)3)’ 특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하나의 소자 안에서 이 현상을 두 번 연속 발생시키는 ‘이중 부성 미분 트랜스컨덕턴스(D-NDT)4)’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쉽게 말해, 여러 명이 나누어서 하던 일을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복잡한 회로를 줄이는 방법이다. 비결은 두 소재가 겹치는 길이를 정교하게 조절한 데 있다. 겹치는 구간이 짧을 때는 전류가 한 번만 변하지만, 구간이 길어지면 소자 안에서 가로·세로 방향 전류가 동시에 형성되면서 전류 피크가 두 번 만들어진다. 일직선으로 흐르던 전류가 입체 교차로를 만난 것처럼 더 복잡한 신호 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 소자를 이용하여 입력 신호 하나를 네 개의 신호로 바꿔주는 '주파수 4체배기5)'를 구현했다. 원래는 여러 개의 트랜지스터가 필요했던 기능이지만, 이번 기술은 단일 소자만으로 이를 구현했다. 필요한 트랜지스터 수를 75% 줄인 셈이다. 또한, 실제 회로 실험에서는 하나의 입력 신호 주기 안에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4배 증가하는 것도 확인했다. POSTECH 이병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복잡한 회로 기능을 단일 소자 수준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초소형 AI 기기나 3차원 고집적 반도체 시스템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국가반도체연구실 지원핵심기술개발사업, 나노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74948 1. BEOL(Back-End-Of-Line): 칩 제조 과정 중 금속 배선을 연결하는 후공정. 이번 연구의 소자는 200℃ 이하 저온에서 제작되어 BEOL 공정 및 3차원 적층 집적(3D integration) 기술과 호환된다. 2. 이종접합(Heterojunction): 특성이 다른 두 개의 반도체(본 연구에서는 n형 ZnO와 p형 Te)를 결합한 소자로, 서로 다른 전하 수송 특성을 이용해 독특한 비선형 전기적 응답을 구현할 수 있다. 3. 부성 미분 트랜스컨덕턴스(NDT, Negative Differential Transconductance): 게이트 전압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특정 구간 이후 전류가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다. 일반 트랜지스터와 다른 비선형 응답을 보이기 때문에, 주파수 체배나 다치 로직 같은 특수 회로 응용에 유리하다. 4. 이중 부성 미분 트랜스컨덕턴스(D-NDT, Double Negative Differential Transconductance): 하나의 소자 전달 특성에서 NDT 피크가 두 번 나타나는 현상이다. 입력 신호가 이 두 피크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면서 한 주기 내 여러 번의 출력 응답을 만들 수 있어, 고차 주파수 변환에 활용된다. 5. 주파수 4체배기(Frequency Quadrupler): 입력 주파수를 4배로 변환해 출력하는 회로 또는 소자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소자와 복잡한 회로 구성이 필요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단일 단계 소자 기반으로 구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