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융합 김원종 교수 연구팀,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 면역 ‘방해 분자’만 치워도 강해진다
[종양 환경에서 살아남는 차세대 T 세포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가 힘을 잃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기술이 발표됐다. POSTECH 화학과·융합대학원 김원종 교수 연구팀은 종양 주변에서 면역세포 기능을 떨어뜨리는 일산화질소를 제거하는 ‘세포 표면 공학’ 전략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추가 표지 논문(supplementary cover art)으로 게재됐다. 환자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을 공격하는 ‘T 세포 면역치료’가 차세대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꺼내 기능을 강화한 뒤 다시 주입해 암을 공격하게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혈액암에서는 놀라운 치료 효과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폐암이나 췌장암처럼 덩어리를 이루는 고형암에서는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암세포 주변에 형성되는 특수한 환경, 이른바 ‘종양 미세환경’이 면역세포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종양 주변에서는 다양한 분자들이 만들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산화질소(이하 NO, Nitric oxide)’다. 이 물질은 면역세포 신호 전달을 방해해 T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전투에 나선 병사가 짙은 연기와 독성 가스로 가득한 공간에서 시야와 호흡이 막혀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종양 근처에서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해 분자’를 치우는 데 집중했다. ‘NO를 선택적으로 붙잡아 제거하는 분자’를 T 세포 표면에 부착하는 전략을 고안했다. NO를 포획하는 분자를 ‘리포좀(liposome)’이라는 아주 작은 지질 입자에 담고, 이 입자가 T 세포의 세포막에 결합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T 세포는 암 주변에서 생성되는 NO가 세포 내로 들어오기 전에 붙잡아 제거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T 세포는 종양 환경을 모사한 조건에서도 활발하게 증식하며 면역세포 특유의 활성 상태를 유지했다. 동물 실험에서는 종양 내부로 더 많은 T 세포가 침투했고 면역 반응도 강화되면서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미세환경의 방해 요소만 제거해도 면역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면역세포 유전자를 직접 바꾸지 않고, 세포 표면을 간단히 개질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POSTECH 김원종 교수는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도 종양 환경에서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라며, “궁극적으로는 고형암 면역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면역세포가 더 강력하게 암을 공격할 기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RC 연구사업,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nano.5c06907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찍어내는 나노기술’이 여는 평면 광학의 미래
[나노프린팅 기반 광학 메타표면 연구 흐름 정리] 최근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오동교·김주훈 박사, 통합과정 강현정·강도현 씨 연구팀이 ‘나노프린팅’ 기술을 중심으로 빛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광학 메타표면’ 연구 동향과 향후 발전 방향을 정리한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재료 과학 분야 학술지인 ‘Nature Reviews Materials’에 게재됐다. ‘광학 메타표면(optical metasurface)’은 파장보다 작은 나노미터 규모의 구조를 평면에 배열해 빛의 위상과 세기, 편광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차세대 광학 소자다. 얇은 평면 구조만으로도 빛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메타렌즈, 홀로그래피 광학 소자, 차세대 광학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메타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노 규모의 패턴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전자빔(e-beam)을 이용해 패턴을 새기는 ‘전자빔 리소그래피(Electron Beam Lithography, EBL)’ 같은 반도체 공정에 의존해 왔다. 이 방식은 해상도는 높지만 제조 공정 속도가 느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연구팀은 ‘나노프린팅(nanoprinting)’ 기술에 주목하고, 공정 기술과 광학 재료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대표적인 공정으로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anoimprint Lithography, 이하 NIL)’와 ‘나노전사 프린팅(Nanotransfer Printing, 이하 nTP)’이 있다. NIL은 마스터 몰드(틀)로 나노 패턴을 복제하는 방식이다. 높은 해상도와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롤투롤(Roll-to-Roll) 공정과 결합할 경우 대면적 광학 소자를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반해, nTP는 선택적으로 구조를 전사하는 방식으로, 기존 반도체 공정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광기능성 재료를 메타표면에 직접 통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재료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초기에는 주로 자외선이나 열로 경화되는 폴리머(polymer) 기반 재료가 쓰였지만, 굴절률이 낮아 고효율 광학 소자 구현에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는 굴절률이 높은 나노복합체나 졸-겔(sol-gel) 기반 무기 산화물, 능동 광학 재료 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고, 이는 메타표면의 성능과 설계 자유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연구진은 나노프린팅 기술이 정적인 메타표면을 넘어 대면적 메타렌즈, 홀로그래피 광학 소자, 능동형 메타표면, 집적 광학 시스템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광학 메타표면 기술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산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준석 교수는 "광학 메타표면 분야에서 그간 걸림돌로 여겨져 온 제조 공정 문제를 나노프린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고, 관련 최신 연구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나노프린팅이 단순한 저비용 대량생산 공정을 넘어, 광학 메타표면의 성능과 기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 글로벌융합연구지원사업, 미래 디스플레이 전략 연구실 지원사업, 나노미래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알키미스트프로젝트 사업, 보건복지부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사업, ㈜포스코 홀딩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 등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578-025-00874-3
서종철·신승구 교수 공동 연구팀, 반도체 나노 구슬, 몸집과 겉옷을 한 번에 재다
[전기음성 매트릭스 활용한 양자점의 표면유기분자 정밀 분석] '양자점(quantum dot)1)’ 세계에서는 그동안 옷을 입은 채 몸무게를 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POSTECH 화학과·시스템생명공학부 서종철 교수, 화학과 신승구 교수 연구팀, DGIST 나노기술연구부 임성준 박사 연구팀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는 최근 분석화학 분야 학술지 ‘애널리티컬 케미스트리(Analytical Chemistry)’에 게재됐다. 양자점은 수 나노미터(nm)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입자의 크기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 암세포를 추적하는 생체 이미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 양자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표면을 ‘리간드(ligand)’라는 분자로 감싸야 한다. 이 분자의 개수에 따라 발광 효율이나 화학적 반응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입자 ‘크기‘와 ‘리간드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크기는 ’광학적‘ 방법으로, 리간드 수는 별도의 ’화학 분석‘으로 따로 측정해야 했다. 마치 사람의 체형을 파악하려 할 때 체중은 저울로 재고, 입고 있는 옷의 치수는 다시 줄자로 재야 하는 것처럼 번거로운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양자점 질량을 측정하기 위한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2)’ 방식은 강한 레이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리간드가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있었다. 옷을 입은 채로 몸무게를 재야 하는데, 저울에 올라서는 순간 옷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연구팀은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 '전기음성도‘에서 해법을 찾았다. 전기음성도가 큰 매트릭스 물질을 활용해 양자점이 레이저에 의해 들뜬 상태가 되면 전자를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더 낮은 레이저 에너지에서도 안정적인 이온화를 가능하게 해 리간드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길이가 다른 리간드로 감싼 양자점의 질량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해 리간드의 개수와 양자점의 크기를 동시에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나노소재 분석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양자점을 활용한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개발 과정에서 소재의 특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적은 양의 시료만으로도 측정할 수 있어 희소하거나 고가의 나노소재 연구에도 유리하다. 또한 양자점 표면의 화학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어 신약 개발과 생체 진단용 나노소재 연구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종철 교수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리간드가 붙은 채로 양자점을 이온화해 질량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양자동역학 연구센터), 개인기초연구 우수신진연구지원사업, 자율운영 대학 중점 연구소 지원사업(POSTECH 기초과학연구소),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 지원사업, 과학난제도전 융합연구개발사업과 DGIST 기관 고유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analchem.5c06291 1. 양자점(quantum dot): 수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크기에 따라 광학적, 전자적 특성이 달라지는 물질이다. 2.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 MALDI): 레이저와 매트릭스를 이용해 시료를 이온화한 다음 질량을 측정하는 분석 기법이다.
기계 이안나 교수 연구팀, 연료 없이 하늘 난다, ‘전기제트엔진’ 첫 실험 성공
[대기압 공기로 뉴턴급 추력 구현-플라즈마 항공 추진 새 가능성 제시] 불꽃이 공기를 밀어낸다. 연료 한 방울 없이 오직 전기만으로 말이다. 헤어드라이어가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내듯, 전기로 만들어진 고온의 공기가 뒤로 뿜어지며 추진력이 생긴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전기제트엔진’이 현실이 됐다. POSTECH 기계공학과 이안나 교수, 이정락 박사, 한국기계연구원(KIMM) 강홍재 박사 연구팀이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공기흡입 전기추진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항공우주 분야 국제 학술지인 '애드밴시스 인 스페이스 리서치(Advances in Space Research)'에 실렸다. 항공 산업은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이다. 비행기는 공기를 빨아들인 뒤 연료를 태워 뜨거운 가스를 뒤로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각종 배출물이 발생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연료를 태우지 않는 추진 방식을 찾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플라즈마(plasma)1) 전기추진’이다. ‘플라즈마’는 고체·액체·기체와 다른 ‘제4의 물질 상태’로, 전기를 이용해 기체를 이온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를 가속해 뒤로 밀어내면 추력이 만들어진다. 연료를 태우지 않아 배출가스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공기가 거의 없는 우주 공간이나 높이 150~400km 상공, 이른바 초저궤도2)에서 주로 연구됐다. 공기가 빽빽한 대기압 환경에서는 플라즈마 자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기가 많을수록 불꽃이 쉽게 꺼지듯, 방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힘들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회전 글라이딩 아크(Rotating Gliding Arc, RGA)3)' 구조로 풀었다. 회전하는 플라즈마 불꽃을 이용해 대기압에서도 안정적인 방전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새롭게 설계한 추진기관 안에서는 공기가 빨려 들어오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회전 플라즈마가 형성된다. 이 플라즈마가 공기를 빠르게 가열한 뒤 뒤쪽으로 밀어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실험 결과, 대기압 조건에서도 플라즈마 방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추진기관 내부 압력이 약 5.7기압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계속 작동했으며, 이때 발생한 추력은 최대 2.5뉴턴(N)에 이른다. 추력 대비 전력 비율4)은 708밀리뉴턴/킬로와트(mN/kW)로 이는 기존 플라즈마 추진기보다 약 10배 높은 수치다. 이번 연구는 플라즈마 전기추진이 우주가 아닌 지구 대기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한 첫 사례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전기만으로 움직이는 비행기나 장시간 하늘에 머무는 무인기 같은 차세대 항공 이동 수단 등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항공 산업에서 친환경 무탄소·무연료 추진 기술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안나 교수는 "연료를 태우지 않고 전기만으로 추력을 만드는 전기제트엔진 개념을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국기계연구원 강홍재 선임연구원은 “장시간 비행하는 무인기나 차세대 항공 이동 수단은 물론 초저궤도에서 공기를 활용하는 추진기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지원 사업(과제번호: RS-2024-00349732)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 DOI: https://doi.org/10.1016/j.asr.2026.01.005 1) 플라즈마(plasma): 고체·액체·기체에 이은 물질의 네 번째 상태. 기체에 강한 에너지를 가하면 원자가 전자와 이온으로 쪼개지는데, 이 상태를 플라즈마라 부른다. 2) 초저궤도(Very Low Earth Orbit, VLEO): 지구 표면에서 150~400km 높이의 궤도. 이 구간은 공기가 매우 희박해 인공위성이 대기 저항을 덜 받으면서도 지구를 가까이서 관측할 수 있다. 3) 회전 글라이딩 아크(Rotating Gliding Arc, RGA): 회전하는 아크 방전을 이용해 대기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플라즈마를 만드는 기술. 아크가 빙글빙글 돌면서 공기를 지속적으로 가열한다. 4) 추력 대비 전력 비율(Thrust-to-Power Ratio, TPR): 같은 전력으로 얼마나 센 추력을 만드는지 나타내는 값. 이 수치가 높을수록 효율이 좋다는 뜻이다.
친환경소재/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금속의 ‘헤테로’ 구조, 강도와 연성 동시에 높였다
[고엔트로피 합금 속 ‘경한 영역과 연한 영역 비율’ 조절해 강도·연성 향상] 금속은 강하게 만들면 깨지기 쉽고, 유연하게 만들면 약해진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딜레마에 POSTECH 연구진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합금 내부에 ‘헤테로’ 미세 구조를 만드는 전략으로 금속의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중 하나인 ‘머터리얼즈 리서치 레터스(Materials Research Letter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항공우주와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는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필수다. 이러한 요구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재가 바로 ‘고엔트로피 합금’이다. 일반 합금이 철이나 알루미늄처럼 한 가지 금속을 중심으로 다른 원소를 소량 섞는 방식이라면, ‘고엔트로피 합금’은 여러 금속 원소를 거의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다. 다양한 원소가 뒤섞이면서 독특한 결정 구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강도, 내구성, 내식성에서 기존 합금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고엔트로피 합금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석출 강화’라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금속 내부에 작은 입자들을 고르게 분산시켜 외부 힘이 가해졌을 때 쉽게 변형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미끄러운 바닥에 작은 돌멩이를 흩어 놓으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금속 강도를 높일수록 잘 늘어나지 못하는 ‘강도-연성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팀은 기존의 ‘균일 강화’ 접근에서 벗어나 ‘구조적 대비’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금속 전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경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을 공존시키는 ‘헤테로’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연구팀은 고엔트로피 합금 내부에서 형성되는 두 가지 석출 방식에 주목했다. 결정 내부에 고르게 형성되는 ‘연속 석출’과, 결정 경계 주변에서 비교적 거칠게 형성되는 ‘불연속 석출’이다. 연구팀은 열처리와 기계적 가공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해 이 두 구조의 비율을 다르게 설계한 합금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기계적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불연속 석출이 더 많이 형성된 헤테로 합금에서 ‘항복 강도’(더 큰 힘을 견디는 능력)와 ‘변형 경화 능력’(변형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이 모두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경한 영역인 불연속 석출 영역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단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이 함께 존재하면, 힘을 받을 때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추가적인 저항이 형성되고, 금속은 변형될수록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헤테로 변형 강화효과’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영역 간의 변형 차이가 추가적인 가공경화를 유도해, 기존 합금보다 더 높은 강도와 우수한 변형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제조 설비나 복잡한 공정 없이 이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열처리·기계 가공 공정만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어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이 높다. POSTECH 김형섭 교수는 “차세대 고강도 구조용 합금이 필요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논문 제1저자인 이재흥 씨는 한국연구재단 2025년도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80/21663831.2026.2615167
진현규·이현우 교수 공동 연구팀, 무질서 속에서 전자의 질서를 찾다
[비정질–결정 구조에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 증폭시키는 새로운 물리 발견] 물을 흘려보낼 때 파이프 내부가 매끄러울수록 물이 잘 흐르듯, 전자 역시 물질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할수록 더 잘 이동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과학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오히려 특정하게 배열된 ‘무질서한 구조’가 전자의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CH 기계공학과 진현규 교수, 박상준 박사(現 일본 물질재료연구기구, NIMS 박사후연구원), 물리학과 이현우 교수, 이호준 연구원 연구팀이 서로 다른 구조가 섞인 자성 물질에서 전자 흐름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미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최근 실렸다. 연구진이 주목한 현상은 '가로 방향 전자 수송(transverse transport)'이다. 일반적으로 전류나 열은 가해준 방향을 따라 흐르지만, 자성을 띠는 물질이나 위상학적으로 특이한 성질을 가진 물질에서는 흐름이 옆 방향으로 휘어지기도 한다. 이는 북반구에서 북상하는 태풍이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인해 동쪽으로 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특성은 자기 센서, 차세대 전자소자,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 발전 기술 등에 활용될 수 있어 활발히 연구되어 왔다. 기존에는 이 효과를 크게 만들려면 전자가 강하게 휘어지는 특이한 양자 물질이나, 결함이 거의 없는 고품질 단결정 소재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물질 내부가 최대한 ‘정돈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다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두 종류의 자성 물질을 화학적으로 완전히 합치는 대신, 각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한 채 물리적으로 섞은 것이다. 그 결과, 비정질(무정형)과 결정 구조가 뒤섞인 복합 물질에서 전자가 옆 방향으로 흐르는 효과가 각 물질 단독일 때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실험과 이론 계산 모두에서 확인됐다. 이러한 현상의 비밀은 전자 이동 경로에 있다. 복합 물질 내부에서 전자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서로 다른 물질 영역을 따라 구불구불한 경로를 그리며 이동한다. 마치 좁은 골목길과 넓은 대로를 번갈아 지날 때 이동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전자의 흐름이 옆 방향으로 더 크게 휘어지면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이론의 중요한 가정을 깨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복합 물질의 성질은 구성 물질들의 ‘평균값’ 정도로 나타난다고 여겨졌는데, 물질이 섞이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 희귀 물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흔한 자성 물질 조합에서도 가능하다는 점도 입증했다. 실제로 철 기반 자성 물질을 이용한 실험에서 일부 고품질 양자 단결정 물질에 버금가는 성능이 나타났다. 이는 값비싼 특수 소재가 아니라도 높은 성능의 전자 수송 물질을 설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진현규 교수는 "희귀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높은 성능을 내는 저비용 소재 설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스핀트로닉스 및 열전 에너지 변환 분야 응용이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또한, 공동교신저자인 이현우 교수는 “무질서를 피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연구”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본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프로테리얼 코리아에서 제공한 시료를 활용해 수행됐다. 한편, 해당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은 제30회 삼성휴먼테크논문대상 재료과학 및 공학 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 DOI: https://doi.org/10.1103/g18j-1h8w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물에 녹는 스마트 라벨”… 위조 막고 환경도 살린다
[색·홀로그램·습도감지 한 번에 구현한 차세대 친환경 메타표면 개발] 제품 포장에 붙은 작은 라벨 하나가 색과 홀로그램으로 진짜 여부를 알려주고, 보관 중 습도가 높았는지를 기록하고, 물에 넣으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POSTECH 노준석 교수팀이 이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스마트 보안 라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광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포토닉스(Advanced Photonics)’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최근 식품, 의약품, 명품 등 다양한 제품에서 위조 방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포장 기술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보안 라벨은 단순한 홀로그램 기능에 머무르거나 제작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메타표면(metasurface)’이다. 메타표면은 나노 규모의 구조를 정교하게 배열해 빛의 색과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구조로 ‘빛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메타표면 장치는 만드는 공정이 복잡해 가격 경쟁력이 낮고, 친환경 소재로는 빛을 정교하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식물의 섬유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가공해 만든 ‘HPC(hydroxypropyl cellulose)’에 평균 4~6nm 크기의 이산화티타늄(TiO₂) 입자를 섞었다. HPC는 의약품 캡슐이나 식품 첨가제, 화장품 등에 사용될 만큼 안전성이 높은 친환경 소재다. 연구팀은 이 입자를 HPC 안에 최대 75wt%까지, 즉 소재 무게의 약 4분의 3 수준까지 분산시킨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이렇게 나노입자가 HPC 내부에 촘촘히 자리 잡으면서 빛을 더 강하게 굴절시키고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소재 굴절률을 약 1.9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재로 만든 메타표면은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선명한 빨강·초록·파랑 색을 만들어 내고, 자외선 영역에서는 홀로그램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색 정보와 특정 장비에서만 확인되는 보안 정보를 모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QR 코드 안에 서로 다른 홀로그램을 숨겨 세 개의 홀로그램이 동시에 확인될 때만 인증이 가능한 광학 보안 방식도 구현했다. 또 다른 특징은 ‘습도 기록’ 기능이다. HPC가 공기 중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상대습도가 80% 이상인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내부 구조가 변형되면서 색과 홀로그램이 사라지도록 설계했다. 제품이 보관 중 습기에 노출됐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제작 방식도 간단하다. 전자빔으로 구조를 하나씩 새기는 공정이 아니라, 마치 도장을 찍듯 한 번에 넓은 면적을 복제하는 나노임프린트(nanoimprint) 공정을 적용해 플라스틱 필름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어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번 연구는 POSCO 지원 POSCO-POSTECH-RIST 융합연구센터 프로그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강현정 씨는 교육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지원 박사과정생 연구장학금의 지원을 받았으며, 강현정·김홍윤 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김홍윤 씨는 아산재단 의생명과학 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117/1.AP.8.1.016007
김연수·박수진 교수 공동 연구팀, 물 붓고 섞으면 끝, 스스로 굳는 배터리 전해질 개발
[개시제 없이 상온 자가중합 가능한 하이드로겔 전해질 소재 개발] 라면 수프를 물에 넣고 저으면 자연스럽게 퍼지듯, 배터리 전해질에 가루를 섞기만 하면 저절로 젤리처럼 굳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 화학과 박수진 교수 연구팀이 부산대 나노융합기술학과 강준희 교수 연구팀과 함께 복잡한 화학 반응이나 고온 공정 없이도 스스로 단단해지는 전해질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안전하지만 수명이 짧았던 ‘수계 아연전지’ 한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스몰(Small)’에 게재됐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장치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수계 아연(Zn) 전지’가 떠오르고 있다. 물을 전해질로 사용해 불이 날 위험이 적고 원가 부담도 적다. 하지만 쓰다 보면 아연 전극 표면에 나뭇가지처럼 뾰족한 결정이 자라거나 부식이 발생해 수명이 짧아졌다. 대안으로 액체 전해질을 젤리처럼 굳히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지만, 화학 약품이나 열이 필요해 공정이 복잡하고 전극이 손상될 우려도 있었다. 무질서하게 얽힌 젤 구조가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하는 한계도 지적되어 왔다. 연구팀은 기존 수계 아연전지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인 ‘황산아연(ZnSO₄) 수용액’에 ‘SBMA(Sulfobetaine Methacrylate, 설포베타인 메타크릴레이트)’라는 특수 분자를 섞기만 해도 상온에서 저절로 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황산아연은 물에 녹아 아연 이온을 제공하는 물질이다. 이 아연 이온이 분자 구조를 자극해 반응을 시작하도록 돕고, 분자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게 만든다. 우유에 식초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굳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약 30분이면 단단한 젤이 완성된다. 이 전해질은 초기에는 액체처럼 전극 사이를 빈틈없이 채우다가, 조립 이후 자연스럽게 굳어 안정적인 내부 구조를 형성한다. 추가 열처리나 특수 환경이 필요 없어 제조 공정이 단순해지고, 전극 손상 가능성도 낮다. 실험 결과, 이 전해질을 적용한 전지는 4,100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영하 10℃에서도 문제없이 구동됐다. 100번 충·방전 뒤에도 처음 용량의 96%를 유지했다. 불필요한 화학 반응이 줄고 이온 이동 통로가 균일하게 형성된 덕분이다. 이번 성과는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계 아연전지 상용화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된다. 공정이 단순해지면 대량 생산과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고,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는 "화학 개시제나 열처리, 특수 환경 없이 상온·대기에서 구현되는 이 전략은 배터리 성능과 공정 효율을 동시에 잡은 새로운 설계"라며 "아연 이온이 단량체의 전자구조를 바꿔 반응성을 높이는 동시에 뭉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는 "안전성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한 수계 아연 전지의 실용화를 앞당기기를 바란다"라며 "다양한 단량체에 적용하고 다른 수계 금속 전지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영커넥트, ERC,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우수신진연구사업과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smll.202511783
기계 이안나 교수 연구팀, “두께는 200배 얇게, 늘어남은 3배로” 접히는 전극 한계 돌파
[휘어짐 없이 늘어나는 주름 구조, 고신축 전극의 해법 제시] POSTECH 기계공학과 이안나 교수, 이정락 박사, 박사과정 곽현수 · 김준식 씨 연구팀이 최근 접히고 늘어나는 유연 전자소자의 고질적 한계를 구조 설계만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기계 및 구조역학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 '국제기계과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Mechanical Sciences)'에 실렸다. 스마트폰을 수천 번 접었다 펴도 화면이 멀쩡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폰 화면 안쪽에 숨어 있는 작은 '주름'에 있다. 금속 전극에 있는 주름은 기기를 구부리거나 당길 때 아코디언처럼 늘어나고 줄어들며 충격을 흡수한다. 덕분에 전극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 이 기술은 폴더블 스마트폰은 물론, 피부에 붙여 심박수나 혈압을 재는 건강 센서처럼 몸에 착용하는 전자기기에도 반드시 필요한 핵심 원리다. 문제는 이 주름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은 탄성 있는 고무 재질의 바탕판 한쪽 면에 얇은 금속 필름을 붙이는 구조였는데, 이렇게 하면 주름이 생기기도 전에 구조 전체가 한쪽으로 먼저 휘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 한쪽에만 테이프를 붙이면 종이가 저절로 말려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막으려면 바탕판 두께를 금속 전극 두께의 1,000배 이상으로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기 자체도 두꺼워지고, 30~40% 이상 늘리면 주름도 무너졌다. 연구팀은 그 원인이 재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대칭 구조', 즉 금속 필름이 한쪽에만 붙어 있어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데 있다고 봤다. 해법은 단순했다. 금속 필름을 한쪽이 아닌 두 개의 바탕판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 구조'로 만든 것이다. 위아래가 같은 힘으로 균형을 이루자 원치 않는 ‘휨’ 현상이 사라졌다. 또한, 복잡한 화학 처리 없이 얇은 막을 살짝 누르기만 해도 자연스럽고 균일한 주름이 형성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바탕판 두께를 기존 대비 200분의 1 수준인 전극 두께의 5배 미만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극 구조를 100% 이상 늘려도 끊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기기를 더 얇고 가볍게 만들면서 훨씬 잘 늘어나는 전극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 연구팀은 주름의 높이와 간격을 계산하는 수학적 모델도 개발해 원하는 형태의 주름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이번 연구는 폴더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관절처럼 움직임이 많은 신체 부위에 부착하는 의료용 전자 피부,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는 소프트 로봇의 감지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응용이 기대된다. 이안나 교수는 "바탕판의 두께 비를 기존 대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100% 이상 변형에서 안정적인 작동이 가능함을 입증했다"라며 "고신축 전자소자 분야에서 구조 설계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결과"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 지원 사업(RS-2024-00349732),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 · 장비진흥센터 지원 사업(RS-2024-00405058)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16/j.ijmecsci.2026.111213
화공 정대성 교수 연구팀, “이온을 붙잡아라” AI 반도체 건망증 해결 방법 찾았다
[차세대 뉴로모픽 유기 전기화학 트랜지스터 개발... 성능 두 배 향상] AI가 사람처럼 배우고 판단하려면, 학습한 정보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차세대 AI 반도체의 문제는 ‘기억이 쉽게 사라진다’라는 점이다. 그런데 POSTECH 화학공학과 정대성 교수, 통합과정 김준서 씨 연구팀이 ‘이온을 단단히 붙잡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고 반도체 기억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현재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계산하는 장치가 분리되어 있어 데이터의 이동에 따른 시간·전력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뉴로모픽(Neuromorphic)’이다. 사람의 뇌처럼 하나의 소자 안에서 기억과 연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른바 ‘뇌를 닮은 반도체’다. 그중에서도 ‘유기 전기화학 트랜지스터(Organic Electrochemical Transistor)’는 유력한 차세대 뉴로모픽 소자로 꼽힌다.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하고 유연성이 뛰어나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주입한 이온이 쉽게 빠져나가 장기 기억 구현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모래 위에 쓴 글씨가 바람에 지워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접근 방식을 바꿨다. 이온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끼워 넣는’ 방법 대신, 전기적 인력으로 붙잡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가진 ‘쯔비터 이온(zwitterion)’ 기반 가교 분자를 설계해 반도체 내부에 도입했다. 이 분자는 음전하(-) 부분은 이온의 이동 속도를 조절하고, 양전하 부분(+)은 유입된 이온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잡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정전기적 이온 트래핑(Electrostatic Ion Trapping)’이라 불렀다. 실험 결과, 메모리 성능 지표인 ‘메모리 윈도우(memory window)’는 8.65V(볼트),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강도’는 96.4V로 학계에 보고된 성능 수치(메모리 윈도우: 5.0V, 히스테리시스 강도: 47V) 대비 약 두 배 향상됐다. 특히, 높은 히스테리시스 강도는 입력 신호가 사라진 뒤에도 상태가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의미해 연구팀의 기술로 기억 유지 특성이 크게 향상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소자를 20만 회 이상 반복 구동한 이후에도 초기 신호의 86% 이상을 유지해 반복 사용에 따른 성능 저하도 최소화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웨어러블 기기가 심장 박동이나 근육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도, 외부 서버 없이 스스로 학습·판단하는 환경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스마트폰이나 소형 전자기기에서도 적은 전력으로 고성능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며, 데이터센터 에너지 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AI ‘건망증’을 고치는 기술이, 더 똑똑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기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POSTECH 정대성 교수는 “이번 기술은 특정 고분자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적인 기술”이라며, “뉴로모픽 소자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여 고성능 AI 프로세서와 실시간 생체 신호 처리 시스템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다기능성 분자 리간드를 이용한 내재적 신축성을 갖는 고연신성 디스플레이 Backplane 구현“과 “파장 정합성 유기 수/발광다이오드 및 수직트랜지스터 통합소자를 활용한 고성능 유연 광통신 시스템 개발“에서 지원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19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