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조승환 교수 연구팀, 화학 실험실 만능 일꾼, 100년 한계 넘었다
[그리냐르 시약 반응성 제어해 원하는 구조 분자만 선택적 합성] POSTECH 화학과 조승환 교수, 박사과정 이세민 씨, 한승철 박사, 통합과정 최조은 씨 연구팀이 신약 개발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밀 합성의 오랜 난제를 해결했다. 한 세기 넘게 화학 실험실의 ‘만능 일꾼’으로 불려 온 유기합성 대표 시약의 과도한 반응성을 제어하여 서로 다른 입체구조들이 섞인 물질에서도 원하는 구조의 유기 분자만 선택적으로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합성화학 분야 권위지인 ‘네이처 신세시스(Nature Synthesis)’에 게재됐다. 신약 개발에서는 분자 '모양'이 약효를 좌우한다. 같은 원자로 이루어졌더라도 원자의 공간적 배열이 다르면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닮았지만 겹칠 수 없듯이 거울상 관계에 있는 분자는 전혀 다른 성질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는 입체구조의 분자만 선택적으로 만드는 '비대칭 합성' 기술이 신약과 기능성 소재 개발에서 매우 중요하다. 1900년 프랑스 화학자인 빅토르 그리냐르(François Auguste Victor Grignard)가 개발한 '그리냐르 시약(Grignard reagent)'은 대표적인 유기마그네슘 시약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활용도가 높아 100년 넘게 유기합성 분야에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반응성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원치 않는 반응까지 일어나 비대칭 합성에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여러 입체구조가 섞인 시약에서 원하는 구조만 선택적으로 반응시키는 일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 '만능 일꾼'의 반응성을 ‘붕소’로 해결했다. 마그네슘이 결합한 탄소 바로 옆에 ‘붕소’를 배치해, 이 ‘만능 일꾼’ 시약의 높은 반응성을 필요한 수준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붕소는 원자 구조상 전자를 받아들일 빈자리를 가진, '전자가 부족한' 원소로 주위에 있는 탄소가 전자를 지나치게 내어주며 날뛰려고 할 때, 붕소가 전자를 붙잡아 탄소를 차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새로운 합성 전략도 개발했다. 연구팀은 탄소 하나에 붕소 두 개가 붙은 ‘1,1-이붕소알케인(gem-diborylalkane)에서 붕소 하나만 선택적으로 마그네슘으로 바꾸는 '붕소-마그네슘 금속 교환(boron-to-magnesium transmetalation)' 반응을 구현해, 붕소가 인접한 새로운 그리냐르 시약을 안정적으로 합성했다. 이렇게 만든 시약은 니켈 촉매를 사용한 반응에서 다양한 알킬 화합물과 높은 수율은 물론 뛰어난 입체선택성을 보였다. 서로 다른 입체구조들이 섞인 물질을 원하는 하나의 구조로 선택적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팀은 붕소가 그리냐르 시약 반응성을 조절하는 과정과 높은 입체선택성이 형성되는 원리까지 밝혀 반응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생성된 유기 붕소 화합물은 붕소 부분을 다른 작용기로 쉽게 치환할 수 있어, 의약품과 천연물 합성에 활용될 '분자 조립용 블록'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조승환 교수는 "그리냐르 시약은 유기합성에서 널리 쓰이고 있지만, 높은 반응성 때문에 비대칭 합성에서는 활용이 제한적이었다“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선 만큼 의약품과 기능성 소재를 비롯한 다양한 고부가가치 카이랄 분자 합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 (유형2) 및 우수선도연구센터 (SRC), 국가연구소 (NRL 2.0),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4160-026-01107-3
화학 박수진 교수 연구팀, “충전 20분, 주행 1,000km” 전기차 '아킬레스건' 없애다
[충·방전 반복해도 안 깨지는 실리콘 배터리 소재 개발] 단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전기차. 그것도 20분 만에 충전을 끝내고 말이다. 국내 연구진이 전기차 배터리 고질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신소재 개발에 성공하면서 이 상상이 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 제민준 박사 연구팀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최장욱 교수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이차전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고강도 실리콘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전기차의 가장 큰 숙제는 결국 배터리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빨리 충전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로 가장 많이 쓰인 소재는 '흑연'이지만 흑연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이미 이론적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흑연에 비해 최대 10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꿈의 소재'로 불려왔다. 문제는 실리콘이 충·방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부피가 무려 300%까지 부풀었다 줄어든다는 점이다. 풍선을 반복해서 불면 결국 터지는 것처럼, 실리콘 입자도 갈라지거나 산산조각 났다. 이 때문에 배터리 성능이 빠르게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기존 연구들이 소재를 그냥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연구팀은 반복적인 부피 변화를 버텨내는 '강도'에 주목했다. 단단하면서도 쉽게 금 가지 않는 구조, 즉 깨지지 않는 유리가 아니라 구부러져도 돌아오는 금속 같은 특성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실리콘 산화물 내에 32nm(나노미터) 크기 불화리튬(LiF) 결정을 정밀하게 배치했다. 이는 결정 크기가 작아질수록 강해지지만, 또 지나치게 작아지면 오히려 약해지는 ‘홀-페치(Hall–Petch)1) 법칙’과 ‘역 홀-페치 효과’를 응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이온은 잘 통과시키고, 전자는 빠르게 이동시키는 특수 코팅층을 입자 표면에 더해 급속충전 성능까지 함께 잡았다. 실험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는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 변화가 18.9% 수준에 머물렀다. 기존 실리콘의 300% 팽창과 비교하면 사실상 '끄떡없는' 수준이다. 실제 전지 평가에서도 10–80% 충전 기준 20분 급속충전 조건으로 1,000회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1.26Ah(암페어시)급 파우치형 배터리에서도 500회 이상 정상 구동을 확인했으며, 에너지 밀도는 1kg당 402Wh(와트시), 부피 기준으로는 1L당 1,125Wh를 기록했다. 현재 시판 중인 전기차보다 훨씬 긴 주행거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기술이 실제 전기차에 적용될 경우, 한 번 충전으로 약 1,00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나 장거리 운전자들이 느끼는 '혹시 중간에 방전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이른바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이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POSTECH 박수진 교수는 "실리콘 음극재가 부서지는 문제를 ‘강도’와 ‘영률’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라며 “고에너지 밀도와 급속충전을 만족하는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최장욱 교수도 “나노미터 수준에서 결정 크기를 정밀하게 제어해 성능을 극대화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대 공학연구원/이차전지혁신연구소/ 신소재공동연구소, LG에너지솔루션 오픈액세스 출판 비용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202528238 1. Hall-Petch : ‘재료를 이루는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진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너무 작아지면(보통 수십 nm 이하) 반대로 약해지는 '역 Hall-Petch 효과'가 나타난다. 즉, 결정 입자가 작아질수록 기계적으로 강해지다가 특정 구간을 지나면 약해지게 되어, 이들의 교차점이 가장 강한 지점으로 여겨진다.
화학 류순민 교수 연구팀, “겉은 멀쩡한데 속은 뒤집혀 있었다”… 빛으로 찾아낸 2차원 유전체 속 결함
[간섭 기반 SHG 이미징으로 대면적 박막의 구조적 불균일성 분석] 겉으로는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이는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소자의 핵심 소재인 2차원 박막 내부에 숨어있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빛으로 식별하는 분석법을 개발했다 POSTECH 화학과 류순민 교수, 통합과정 이예리 씨 연구팀은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육방정계 질화붕소(이하 hBN, hexagonal boron nitride)1) 박막 내부 숨은 구조 결함을 빛으로 식별할 수 있는 간섭 기반 SHG 이미징 분석법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스마트폰과 AI, 양자컴퓨터까지. 차세대 전자기술 핵심 소재로 ‘2차원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hBN은 전류 누설을 막는 절연 특성이 뛰어나 '2차원 소재의 보호막'으로 불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 hBN을 대면적으로 만들면 내부에서 결정 방향이 정반대인 영역인 '역평행 도메인2)'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마치 같은 배에 탄 선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는 상황처럼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내부 신호가 충돌하며 전기적·광학적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TEM3)이나 STM4) 등 기존 분석 장비로는 아주 정밀한 관찰은 가능해도 넓은 면적을 빠르게 분석하기 어렵고, 라만 분광5)은 시료를 파괴하지 않고 분석할 수 있지만 역평행 도메인을 직접 구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2차 고조파 발생(이하 SHG, second-harmonic generation)6) 이미징’ 기술에 주목했다. SHG는 특정 물질에 빛을 비췄을 때 원래 빛의 두 배 주파수를 가진 빛이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외부 기준 신호7)를 더해 두 신호 사이의 위상 차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눈으로 보기에는 같은 방향처럼 보이는 영역들 사이에서도 실제로는 SHG 위상이 정확히 180도 반대인 역평행 도메인이 널리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다양한 성장 조건으로 제작한 hBN 박막 10종을 비교 분석해, SHG 세기 차이가 단순 결정 방향 차이가 아니라 역평행 도메인 간 ‘상쇄 간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서로 반대 방향의 신호가 만나 빛이 약해지는 현상을 통해 결정 구조 불균일성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SHG 세기와 라만 분광 데이터, 결정 방향 분산 등의 상관관계를 종합해 hBN의 결정성과 구조적 균일성을 평가할 수 있는 광학 기준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특정 결함을 찾아내는 수준을 넘어, 대면적 2차원 소재의 품질을 빠르고 체계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POSTECH 류순민 교수는 “그동안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던 hBN 내부의 역평행 도메인을 광학적으로 식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며 “향후 이차원 물질의 성장 조건 최적화는 물론, 차세대 전자·광학·양자소자 개발에도 중요한 분석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과 시스템화학글로벌 선도연구센터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19546 1. 육방정계 질화붕소(hexagonal boron nitride; hBN) : 육각 격자 구조를 가진 대표적 이차원 절연체 물질로, 전자·광학 소자에 널리 활용된다. 2. 역평행 도메인 : 같은 결정 구조를 가지지만 결정 방향이 서로 반대인 결정 영역을 뜻한다. 3. TEM(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y, 투과전자현미경): 전자빔을 시료에 통과시켜 원자 수준의 내부 구조를 관찰하는 초고해상도 현미경 기술 4.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y, 주사터널링현미경): 매우 뾰족한 탐침을 시료 표면 가까이 이동시키며 전류 변화를 측정해 원자 단위 표면 구조를 분석하는 기술 5. 라만 분광(Raman spectroscopy): 레이저(빛)을 물질에 비췄을 때 산란되는 빛 변화를 분석해 물질의 구조와 결정 상태를 확인하는 비파괴 분석 기술 6. 2차 고조파 발생(Second Harmonic Generation; SHG) : 강한 빛이 물질과 상호작용할 때 입사광의 두 배 주파수를 갖는 빛이 생성되는 비선형 광학 현상이다. 7. 기준 신호: 이미 위상(빛의 진동 타이밍)을 알고 있는, 비교를 위한 기준 빛
이상민·박수진 교수 공동 연구팀, 배터리 속 ‘모래성 붕괴’ 막았다... 초박막 코팅으로 300회 충전에도 ‘끈끈’
[유기 용매·저압 구동 버티는 고체전해질 표면 설계로 배터리 '표면 분해' 해결] 불이 나지 않는 배터리.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이 오래 기다려 온 기술이다. 최근 그 기대에 응답하는 연구가 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은 보호막 하나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전지의 난제를 풀어냈다. POSTECH 배터리공학과·신소재공학과 이상민 교수, 배터리공학과 통합과정 고수민 씨 연구팀과 화학과 박수진 교수, 화학과 통합과정 이형석 씨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에 표지 논문(cover)으로 게재됐다. 전기차 화재 뉴스는 이제 낯설지 않다.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이유는 배터리 내부의 ‘액체 전해질’ 때문이다. 전기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불에 취약하다. 이를 고체로 바꾼 전고체전지는 화재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은 리튬이온 이동이 빠르고 전극과 잘 밀착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다. 문제는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황화물계 고체전해질로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유기용매나 공기 중의 미량 수분만으로도 표면이 쉽게 분해됐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성이 물에 닿으면 무너지듯, 배터리를 완성하기도 전에 성능이 떨어졌다. 여기에 실제 구동 환경인 낮은 압력에서는 전극 내부 접촉이 점차 느슨해지며 성능 저하가 가속됐다. 재료는 뛰어나지만 제조 공정과 실제 작동 환경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초박막 보호막’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로 해결했다. 대표적인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인 LPSCl1) 표면에 플루오로카본(–CF₃) 말단을 가진 ‘자가조립 단분자층’을 형성해 두께는 약 1nm(나노미터) 수준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이 막은 유기용매와 수분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이와 동시에 전해질 내부 구조와 리튬이온 전도 성능은 그대로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이 보호막은 전기화학적 안정성도 크게 높였다. 분석 결과, 1.0C(C-rate)2)의 빠른 충·방전 조건에서 배터리가 안정적으로 오래 작동했다. 코인 셀(coin cell) 수준의 낮은 압력(≈0.3 MPa)에서도 전극 내부 접촉 손실을 효과적으로 줄이며 성능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완전한 배터리 셀(full cell) 실험에서 300번의 충·방전을 반복한 뒤에도 초기 용량의 90.5%를 유지했다. 에너지밀도와 장수명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전고체전지 상용화의 핵심 기준을 충족한 결과다. 이번 성과는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장치의 안전성과 수명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핵심 기술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고체전지 상용화를 앞당길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이상민 교수는 “고체전해질 표면 안정화가 전극 제작부터 실제 구동까지 이어지는 계면 안정성을 확보해 전고체전지 공정 신뢰성과 저압 구동 내구성을 높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연구 의의를 전했다. 또, 박수진 교수는 “자가조립 단분자층 기반 표면처리는 공정이 단순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대면적 전극 제조로 확장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술 혁신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역혁신 메가프로젝트사업과 산업혁신인재 성장지원(R&D)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enm.202503019 1. LPSCl(lithium phosphorous sulfur chloride, Li6PS5Cl) : 아지로다이트 계열(Argyrodite-type)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의 일종으로, 2020년 삼성전자 및 삼성SDI의 기술 개발 이후 현재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고체전해질이다. 2. C(C-rate): 배터리 분야에서 쓰는 충·방전 속도 단위(C-rate)다. 예를 들어, 1C는 배터리를 한 시간에 완전히 충전/방전하는 속도를 말하며, 0.5C는 두 시간에 완전히 충·방전하는 속도다.
화학 김경환 교수 연구팀, ‘물이 특별한 이유, 미스터리 드디어 풀렸다’ 10년간 뚝심 있는 연구로 교과서 바꿀 발견
[세계 최초 영하 60℃서 물의 임계점 실제 관측, 물의 비밀 풀 단서 규명] 인류가 수백 년간 풀지 못했던 물의 가장 깊은 비밀이 국내 연구진의 10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 끝에 마침내 밝혀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POSTECH 김경환 교수 연구팀이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물리학과 앤더스 닐슨 교수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우수신진연구 및 선도연구센터)’과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誌에 게재1)됐다. 물은 가장 중요한 물질이자 인류가 가장 오래 연구해 온 대상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가장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물질로 꼽힌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액체는 얼기 직전까지 온도가 낮아질수록 무거워지지만, 물은 4℃에서 가장 무거워졌다가 그보다 차가워지면 오히려 가벼워지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이 때문에 겨울에도 강이나 호수의 표면만 얼고 아래쪽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남아, 그 속에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왜 물이 다른 액체와 다르게 이러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이유는 과학계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 가설은 물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이라는 두 종류의 액체상으로 공존하며, 특정 온도(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구분이 사라져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물이 된다는 가정이다. 학계에서는 이 임계점이 존재한다면 영하 40℃에서 영하 70℃ 사이의 극저온 영역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물은 영하 40℃ 이하로 내려가면 매우 빠르게 얼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실험을 통해 임계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으며, 수십 년 동안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연구팀은 영하 70℃에서도 얼지 않은 물을 만들기 위해 태양보다 수십억 배 밝은 빛을 내며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레이저(PAL-XFEL)’를 활용하였고, 실험 끝에 ‘액체-액체 임계점’이 영하 60℃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번 성과는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을 실험으로 입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질이 고밀도 물과 저밀도 물의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미 2017년에는 영하 45℃까지 얼지 않은 물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였으며, 2020년에는 영하 70℃까지 관측 범위를 넓혀 사이언스지에 두 차례 성과를 게재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연구팀은 물의 온도와 압력에 따른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하며 끈질기게 연구를 이어온 끝에, 임계점 관측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 성과가 다시 한번 사이언스지에 게재되면서 전 세계에 연구팀의 집념과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김경환 교수는 “물의 특별한 성질과 ‘액체-액체 임계점’을 둘러싼 오랜 세월 동안의 학계 논쟁이 마침내 매듭지어지게 됐다"라고 이번 성과의 의의를 밝히며, “이번 발견은 생명 현상을 비롯해 다양한 자연 현상에서 물이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DOI: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ec0018 1) 논문명 : Experimental evidence of a liquid-liquid critical point in supercooled water
화학/융합 김원종 교수 연구팀,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 면역 ‘방해 분자’만 치워도 강해진다
[종양 환경에서 살아남는 차세대 T 세포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가 힘을 잃는 이유를 밝히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기술이 발표됐다. POSTECH 화학과·융합대학원 김원종 교수 연구팀은 종양 주변에서 면역세포 기능을 떨어뜨리는 일산화질소를 제거하는 ‘세포 표면 공학’ 전략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추가 표지 논문(supplementary cover art)으로 게재됐다. 환자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을 공격하는 ‘T 세포 면역치료’가 차세대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꺼내 기능을 강화한 뒤 다시 주입해 암을 공격하게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혈액암에서는 놀라운 치료 효과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폐암이나 췌장암처럼 덩어리를 이루는 고형암에서는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암세포 주변에 형성되는 특수한 환경, 이른바 ‘종양 미세환경’이 면역세포의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종양 주변에서는 다양한 분자들이 만들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산화질소(이하 NO, Nitric oxide)’다. 이 물질은 면역세포 신호 전달을 방해해 T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전투에 나선 병사가 짙은 연기와 독성 가스로 가득한 공간에서 시야와 호흡이 막혀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종양 근처에서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해 분자’를 치우는 데 집중했다. ‘NO를 선택적으로 붙잡아 제거하는 분자’를 T 세포 표면에 부착하는 전략을 고안했다. NO를 포획하는 분자를 ‘리포좀(liposome)’이라는 아주 작은 지질 입자에 담고, 이 입자가 T 세포의 세포막에 결합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T 세포는 암 주변에서 생성되는 NO가 세포 내로 들어오기 전에 붙잡아 제거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T 세포는 종양 환경을 모사한 조건에서도 활발하게 증식하며 면역세포 특유의 활성 상태를 유지했다. 동물 실험에서는 종양 내부로 더 많은 T 세포가 침투했고 면역 반응도 강화되면서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미세환경의 방해 요소만 제거해도 면역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면역세포 유전자를 직접 바꾸지 않고, 세포 표면을 간단히 개질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POSTECH 김원종 교수는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도 종양 환경에서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라며, “궁극적으로는 고형암 면역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면역세포가 더 강력하게 암을 공격할 기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RC 연구사업,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nano.5c06907
서종철·신승구 교수 공동 연구팀, 반도체 나노 구슬, 몸집과 겉옷을 한 번에 재다
[전기음성 매트릭스 활용한 양자점의 표면유기분자 정밀 분석] '양자점(quantum dot)1)’ 세계에서는 그동안 옷을 입은 채 몸무게를 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POSTECH 화학과·시스템생명공학부 서종철 교수, 화학과 신승구 교수 연구팀, DGIST 나노기술연구부 임성준 박사 연구팀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는 최근 분석화학 분야 학술지 ‘애널리티컬 케미스트리(Analytical Chemistry)’에 게재됐다. 양자점은 수 나노미터(nm)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입자의 크기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 암세포를 추적하는 생체 이미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 양자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표면을 ‘리간드(ligand)’라는 분자로 감싸야 한다. 이 분자의 개수에 따라 발광 효율이나 화학적 반응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입자 ‘크기‘와 ‘리간드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크기는 ’광학적‘ 방법으로, 리간드 수는 별도의 ’화학 분석‘으로 따로 측정해야 했다. 마치 사람의 체형을 파악하려 할 때 체중은 저울로 재고, 입고 있는 옷의 치수는 다시 줄자로 재야 하는 것처럼 번거로운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양자점 질량을 측정하기 위한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2)’ 방식은 강한 레이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리간드가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있었다. 옷을 입은 채로 몸무게를 재야 하는데, 저울에 올라서는 순간 옷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연구팀은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 '전기음성도‘에서 해법을 찾았다. 전기음성도가 큰 매트릭스 물질을 활용해 양자점이 레이저에 의해 들뜬 상태가 되면 전자를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방식은 기존보다 훨씬 더 낮은 레이저 에너지에서도 안정적인 이온화를 가능하게 해 리간드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길이가 다른 리간드로 감싼 양자점의 질량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해 리간드의 개수와 양자점의 크기를 동시에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나노소재 분석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양자점을 활용한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개발 과정에서 소재의 특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적은 양의 시료만으로도 측정할 수 있어 희소하거나 고가의 나노소재 연구에도 유리하다. 또한 양자점 표면의 화학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어 신약 개발과 생체 진단용 나노소재 연구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종철 교수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리간드가 붙은 채로 양자점을 이온화해 질량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양자동역학 연구센터), 개인기초연구 우수신진연구지원사업, 자율운영 대학 중점 연구소 지원사업(POSTECH 기초과학연구소),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 지원사업, 과학난제도전 융합연구개발사업과 DGIST 기관 고유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analchem.5c06291 1. 양자점(quantum dot): 수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나노결정으로, 크기에 따라 광학적, 전자적 특성이 달라지는 물질이다. 2.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질량분석(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 MALDI): 레이저와 매트릭스를 이용해 시료를 이온화한 다음 질량을 측정하는 분석 기법이다.
기계/화공/전자/융합 노준석 교수 연구팀, “물에 녹는 스마트 라벨”… 위조 막고 환경도 살린다
[색·홀로그램·습도감지 한 번에 구현한 차세대 친환경 메타표면 개발] 제품 포장에 붙은 작은 라벨 하나가 색과 홀로그램으로 진짜 여부를 알려주고, 보관 중 습도가 높았는지를 기록하고, 물에 넣으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POSTECH 노준석 교수팀이 이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 ‘친환경 스마트 보안 라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광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포토닉스(Advanced Photonics)’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최근 식품, 의약품, 명품 등 다양한 제품에서 위조 방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포장 기술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보안 라벨은 단순한 홀로그램 기능에 머무르거나 제작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메타표면(metasurface)’이다. 메타표면은 나노 규모의 구조를 정교하게 배열해 빛의 색과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구조로 ‘빛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메타표면 장치는 만드는 공정이 복잡해 가격 경쟁력이 낮고, 친환경 소재로는 빛을 정교하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식물의 섬유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가공해 만든 ‘HPC(hydroxypropyl cellulose)’에 평균 4~6nm 크기의 이산화티타늄(TiO₂) 입자를 섞었다. HPC는 의약품 캡슐이나 식품 첨가제, 화장품 등에 사용될 만큼 안전성이 높은 친환경 소재다. 연구팀은 이 입자를 HPC 안에 최대 75wt%까지, 즉 소재 무게의 약 4분의 3 수준까지 분산시킨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이렇게 나노입자가 HPC 내부에 촘촘히 자리 잡으면서 빛을 더 강하게 굴절시키고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소재 굴절률을 약 1.9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재로 만든 메타표면은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선명한 빨강·초록·파랑 색을 만들어 내고, 자외선 영역에서는 홀로그램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색 정보와 특정 장비에서만 확인되는 보안 정보를 모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QR 코드 안에 서로 다른 홀로그램을 숨겨 세 개의 홀로그램이 동시에 확인될 때만 인증이 가능한 광학 보안 방식도 구현했다. 또 다른 특징은 ‘습도 기록’ 기능이다. HPC가 공기 중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상대습도가 80% 이상인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내부 구조가 변형되면서 색과 홀로그램이 사라지도록 설계했다. 제품이 보관 중 습기에 노출됐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제작 방식도 간단하다. 전자빔으로 구조를 하나씩 새기는 공정이 아니라, 마치 도장을 찍듯 한 번에 넓은 면적을 복제하는 나노임프린트(nanoimprint) 공정을 적용해 플라스틱 필름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어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번 연구는 POSCO 지원 POSCO-POSTECH-RIST 융합연구센터 프로그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미래융합파이오니어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강현정 씨는 교육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지원 박사과정생 연구장학금의 지원을 받았으며, 강현정·김홍윤 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김홍윤 씨는 아산재단 의생명과학 장학금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117/1.AP.8.1.016007
김연수·박수진 교수 공동 연구팀, 물 붓고 섞으면 끝, 스스로 굳는 배터리 전해질 개발
[개시제 없이 상온 자가중합 가능한 하이드로겔 전해질 소재 개발] 라면 수프를 물에 넣고 저으면 자연스럽게 퍼지듯, 배터리 전해질에 가루를 섞기만 하면 저절로 젤리처럼 굳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 화학과 박수진 교수 연구팀이 부산대 나노융합기술학과 강준희 교수 연구팀과 함께 복잡한 화학 반응이나 고온 공정 없이도 스스로 단단해지는 전해질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안전하지만 수명이 짧았던 ‘수계 아연전지’ 한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스몰(Small)’에 게재됐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장치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수계 아연(Zn) 전지’가 떠오르고 있다. 물을 전해질로 사용해 불이 날 위험이 적고 원가 부담도 적다. 하지만 쓰다 보면 아연 전극 표면에 나뭇가지처럼 뾰족한 결정이 자라거나 부식이 발생해 수명이 짧아졌다. 대안으로 액체 전해질을 젤리처럼 굳히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지만, 화학 약품이나 열이 필요해 공정이 복잡하고 전극이 손상될 우려도 있었다. 무질서하게 얽힌 젤 구조가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하는 한계도 지적되어 왔다. 연구팀은 기존 수계 아연전지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인 ‘황산아연(ZnSO₄) 수용액’에 ‘SBMA(Sulfobetaine Methacrylate, 설포베타인 메타크릴레이트)’라는 특수 분자를 섞기만 해도 상온에서 저절로 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황산아연은 물에 녹아 아연 이온을 제공하는 물질이다. 이 아연 이온이 분자 구조를 자극해 반응을 시작하도록 돕고, 분자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게 만든다. 우유에 식초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굳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약 30분이면 단단한 젤이 완성된다. 이 전해질은 초기에는 액체처럼 전극 사이를 빈틈없이 채우다가, 조립 이후 자연스럽게 굳어 안정적인 내부 구조를 형성한다. 추가 열처리나 특수 환경이 필요 없어 제조 공정이 단순해지고, 전극 손상 가능성도 낮다. 실험 결과, 이 전해질을 적용한 전지는 4,100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영하 10℃에서도 문제없이 구동됐다. 100번 충·방전 뒤에도 처음 용량의 96%를 유지했다. 불필요한 화학 반응이 줄고 이온 이동 통로가 균일하게 형성된 덕분이다. 이번 성과는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계 아연전지 상용화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된다. 공정이 단순해지면 대량 생산과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고,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김연수 교수는 "화학 개시제나 열처리, 특수 환경 없이 상온·대기에서 구현되는 이 전략은 배터리 성능과 공정 효율을 동시에 잡은 새로운 설계"라며 "아연 이온이 단량체의 전자구조를 바꿔 반응성을 높이는 동시에 뭉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 핵심"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는 "안전성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한 수계 아연 전지의 실용화를 앞당기기를 바란다"라며 "다양한 단량체에 적용하고 다른 수계 금속 전지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영커넥트, ERC,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우수신진연구사업과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smll.202511783
화학 박수진 교수 연구팀, “두꺼울수록 불안하다?” 배터리 상식 뒤집혔다
[POSTECH·서울대 연구팀, 전극 두께 늘려도 안정성 유지하는 기능성 탄소나노튜브 기술 개발] 전기차가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배터리 안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아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배터리 전극을 두껍게 만드는 것이지만 전극이 두꺼워질수록 배터리는 불안정해지고 수명이 급격히 짧아진다. 그런데 최근 POSTECH·서울대 연구팀이 이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했다. POSTECH 화학과 박수진 교수, 박사과정 정재호 씨, 김성호 박사 연구팀은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기능성 ‘탄소나노튜브1)(이하 CNT)’를 활용해 두꺼운 배터리 전극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 재료과학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전극을 두껍게 만들면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는 늘어나지만, 이온이 이동해야 할 거리가 길어지면서 내부 저항이 커지고 성능 저하가 빠르게 나타난다. 전극과 전해질이 만나는 경계면 역시 불안정해진다. 도로는 넓어졌지만, 교차로가 막혀 차량 흐름이 멈춘 것과 같은 상황이다. 연구팀은 이 문제의 해답을 전기가 잘 통하는 CNT에서 찾았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 분의 1에 불과한 이 소재는 배터리 전극에서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한다. 다만 서로 뭉치는 성질 탓에 두꺼운 전극에서는 고르게 퍼지기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CNT 표면에 이온과 친한 고분자 기능기를 붙여 전극 내부에 균일하게 퍼지도록 설계했다. 이 기능성 CNT는 전극 안에 촘촘한 전자·통로를 형성해 전극이 두꺼워져도 충전과 방전 속도가 느려지지 않고, 성능 저하도 크게 줄이는 효과를 냈다. 특히 이번 기술의 핵심은 전극 내부뿐 아니라 양극과 음극 경계면까지 동시에 안정화했다는 점이다. 배터리 수명을 떨어뜨리던 충·방전 과정 중 화학 반응을 정교하게 조절해 양극에서 구조 붕괴를 막고 음극에서는 균일한 보호막이 형성되도록 유도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전극 간 반응을 상호 조율하는 개념을 ‘화학적 소통(crosstalk)’이라 명명했다. 그동안 문제로 여겨졌던 반응을 오히려 배터리를 보호하는 장치로 전환한 것이다. 실험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 전극은 기존 CNT 전극(두께 약 98 µm)보다 두 배 가까이 두꺼운 전극(약 190 µm)에서도 높은 안정성을 유지했다 박수진 교수는 “전극을 두껍게 만드는 것은 고용량 배터리의 필수 조건이지만, 계면 불안정이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다”라며 “이번 연구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차세대 대형 배터리의 설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미래방사선 강점기술 고도화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516395 1.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머리카락 굵기 수만 분의 1에 불과한 원통형 탄소 소재로,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배터리 전극에서 전자의 이동 통로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