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 오승수 교수 연구팀, ‘택배 상자’ 없이 세포 속으로 쏙… 핵산 스스로 세포막 통과하는 기술 개발
[핵산에 양친매성 조절해 세포 전달 특성 설계… ‘양친매성도’ 지표도 제안] 좋은 상품도 제대로 배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유전자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치료 효과를 내는 핵산을 세포 안까지 보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POSTECH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 유혜빈 박사, Ewa Pietrasiak(에바 피에트라시악) 박사 연구팀이 별도의 ‘택배 상자’ 없이 핵산이 스스로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은 기름 성분으로 이뤄져 있어 물에 잘 녹는 친수성 물질이 쉽게 통과하기 어렵다. 문제는 유전자 치료제로 활용되는 siRNA1)와 ASO2) 같은 핵산이 대표적인 친수성 물질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라도 세포막을 넘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동안에는 바이러스나 지질 나노입자(LNP, Lipid Nanoparticle) 같은 운반체에 핵산을 담아 세포 안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운반체는 면역반응이나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제조 과정이 복잡하다. 세포 안으로 들어간 핵산이 소포체에 갇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핵산 자체가 세포막을 통과하도록 만드는 방법에 주목했다. 핵산 골격의 특정 부위인 포스포로티오에이트(Phosphorothioate,)에 기름을 좋아하는 소수성 사슬을 선택적으로 붙여, 물과 기름 모두에 친화적인 ‘조절가능한 양친매성 핵산(이하 TuNA, Tunable Amphiphilic Nucleic Acid)’을 개발했다. 핵산 말단에 소수성 물질을 연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 기술은 핵산 골격의 원하는 위치에 다양한 길이의 소수성 알킬기를 도입할 수 있어 양친매성의 크기와 분포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균형’이다. 연구팀은 약 90%의 높은 수율로 TuNA를 합성한 뒤 인공 지질막을 이용해 세포막과의 상호작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소수성이 적절하면 핵산이 막을 스스로 통과했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막에 달라붙어 이동하지 못했다. 물과 기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성질의 균형이 세포막 투과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균형을 수치로 나타내는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3)’라는 지표도 제안했다. 연구팀은 실제 살아있는 세포에서도 효과를 확인했다. TuNA는 15분 이내에 대부분 세포로 빠르게 들어갔고, 핵산 길이에 따라 세포질이나 핵 주변 등 서로 다른 위치에 전달됐다. 특히 소포체에 갇히지 않고 필요한 위치까지 전달되는 것도 확인했다. 나아가 녹색 형광 단백질(GFP4))을 만드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siRNA에 TuNA 기술을 적용하자 별도의 운반체 없이 세포 안으로 전달된 siRNA가 표적 유전자의 발현까지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오승수 교수는 "핵산의 양친매성을 정밀하게 조절하면 세포투과성 펩타이드처럼 세포를 스스로 통과하는 ‘세포투과성 핵산’을 설계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유혜빈 박사는 "핵산 길이와 양친매성을 조절해 세포질이나 핵 주변부 등 원하는 위치로 전달 특성을 설계할 수 있어 siRNA, mRNA, ASO, 압타머 등 기능성 핵산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STEAM 연구사업(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 미래개척융합과학기술개발) 및 합성생물학 전문인력양성사업, 산업통상부의 시장주도형K-센서기술개발사업, 경상북도·포항시 합성생물학 육성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16/j.cej.2026.179124 1. siRNA(Small interfering RNA): 특정 메신저 RNA와 상호작용해 해당 유전자 단백질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짧은 이중가닥 RNA다. 2. ASO(Antisense Oligonucleotide): 유전 정보를 담은 특정 RNA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막거나 교정하는 짧은 인공 핵산. siRNA와 함께 대표적인 핵산 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3. 양친매성도(Degree of Amphiphilicity, DA): 핵산에 도입된 알킬 사슬의 전체 탄소 수를 핵산뉴클레오타이드 수로 나눈 값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선형 알킬기로 개질한 TuNA의 인공 지질막 상호작용을 비교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했다. 4.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형광단백질이다.
신소재/IT융합 정성준 교수 연구팀, 비눗방울에서 찾은 ‘숨 쉬는 폐’의 해법
[폐포 움직임 그대로 재현…24만 번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 누구나 한 번쯤 빨대로 비눗방울을 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얇은 막에서 착안해 실제 폐처럼 ‘숨 쉬는 인공 폐’가 개발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IT융합공학과 정성준 교수 연구팀이 폐 속에 있는 공기주머니인 폐포 움직임을 재현하면서 폐 세포의 반응까지 관찰할 수 있는 초박막 인공 폐를 개발했다.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폐의 반응까지 재현했다. 이번 연구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사람의 폐는 하루에도 수천 번 움직인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고, 내쉬면 다시 줄어든다. 폐 안쪽에 있는 작은 공기주머니인 폐포도 이 움직임을 반복한다. 폐포의 움직임은 단순히 공기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폐 세포의 성장과 기능에 영향을 주고, 염증이나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중요한 신호가 된다. 폐 질환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 효과를 확인하려면 실험실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재현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하지만 기존 폐 세포 배양 기술로는 실제 폐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평평하고 움직이지 않는 바닥에서 세포를 키우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칩 안에 폐의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한 ‘폐-칩(lung-on-a-chip)’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단한 플라스틱 소재(PDMS1))를 사용해 실제 폐 조직의 특성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말랑한 하이드로젤(hydrogel)을 쓰기에는 얇게 만들었을 때 쉽게 찢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비눗방울’에서 그 답을 찾았다. 비눗방울은 액체가 스스로 얇은 막을 만들면서도 쉽게 터지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연구팀은 이를 하이드로젤에 적용했다. 원하는 모양의 틀을 하이드로젤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는 방식으로 틀 표면에 매우 얇은 막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초박막은 실제 폐 속의 폐포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반복적인 움직임을 견딜 만큼 튼튼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실제 사람이 숨 쉬는 원리도 적용했다. 사람이 숨을 들이마실 때 횡격막이 아래로 움직이면 폐 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바깥 공기가 들어온다. 연구팀은 초박막 아래에서 이와 같은 압력 변화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는 ‘호흡 구동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결과 초박막이 실제 폐처럼 늘었다가 줄어들었고, 약 24만 번의 호흡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인공 폐 내부도 실제 폐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혈관세포층’, ‘기저막층’, ‘상피세포층’을 차례로 쌓아 폐포와 유사한 3층 구조를 구현했다. 이렇게 만든 인공 폐에서는 호흡에 따른 움직임이 세포에 전달됐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반응까지 진짜 폐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실험에서는 호흡 운동에 따라 폐의 염증 반응과 바이러스 대응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단순 세포 배양이나 동물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약물의 반응을 사람의 폐와 아주 유사한 환경에서 살펴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정성준 교수는 "‘숨 쉬는 인공 폐'는 호흡의 빠르기와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정상적인 폐부터 여러 질병 상태까지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라며, ”이번 연구는 신약 개발과 폐 질환 연구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산업자원통상부 바이오산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74372 1. PDMS: 폴리디메틸실록산(Polydimethylsiloxane)이라는 실리콘 계열의 말랑한 고분자 소재를 말한다.
신소재/융합 한세광 교수 연구팀, 빛만 있으면 피부 상처 걱정 끝
[실내등·햇빛을 적색광으로 바꾸는 착용형 광치료 패치 개발]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영혼의 나무(Tree of Souls) 아래에서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듯, 이제 사람의 피부 상처도 일상의 빛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됐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융합대학원 한세광 교수, 신소재공학과 석사과정 조경주 씨, 김성종 박사 연구팀이 건국대 김혜민 교수 연구팀과 함께 별도의 배터리나 전원 없이 실내등이나 햇빛만으로 상처 봉합과 조직 재생을 동시에 돕는 착용형 패치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최근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특정 파장의 빛을 상처에 쬐면 경계면의 콜라겐이 서로 이어져 실이나 접착제 없이 상처가 봉합되고(광화학적 조직 접합1)), 세포 대사와 염증 반응이 조절되면서 새살이 빠르게 돋는다(광 생체 조절2)). 흉터를 줄일 수 있고 몸에 칼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치료법이다. 문제는 '빛을 어떻게 공급하느냐'다. 광 치료 장치는 LED나 레이저, 광섬유, 배터리 같은 외부 전원이 필요한데, 주렁주렁 매달린 장치를 얼굴처럼 눈에 띄는 부위에 오래 붙이고 다니기란 쉽지 않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실내등이나 햇빛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핵심은 이러한 일상속 빛을 치료에 필요한 적색광으로 전환하는 발광 입자(RSLP3))다. 칼슘-스트론튬 황화물 기반 소재에 유로퓸(Eu)과 툴륨(Tm)을 첨가하고, 결함과 이종접합 구조를 활용해 넓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입자는 상처 치료에 적합한 640nm 부근의 적색광을 방출하며, 빛이 잠시 끊겨도 어둠 속 야광별처럼 잔광을 낸다. 이 입자가 내뿜는 적색광은 광감작제(Ce64))를 활성화해 상처 경계면의 콜라겐을 엮어 절개 부위를 봉합하고, 섬유아세포 증식과 세포 이동을 촉진하며 염증을 완화해 새살을 돋운다. 봉합과 재생이라는 두 가지 일을 빛 하나로 동시에 해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입자를 신축성이 좋은 실리콘 소재(Ecoflex)에 고르게 넣어 피부에 밀착되는 패치로 만들었다. 접착층으로 쓰인 하이드로젤 덕에 피부가 움직여도 잘 붙고, 늘리거나 접어도 발광 성능이 그대로 유지된다. 환자가 실내등 아래 있거나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 LED와 배터리 없이 치료용 빛이 공급되는 셈이다. 동물모델 실험 결과, 효과는 뚜렷했다. 절개 상처에 12시간 동안 패치를 붙였을 때, 상처가 빠르게 봉합되고 조직 재생이 촉진됐다. 원형 상처 역시 기존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그뿐 아니라 정상 성인의 얼굴 피부를 대상으로 한 예비 인체 평가에서도 9시간 동안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피부 탄력 회복이 개선되고 붉은 기가 완화됐다. 이 연구가 그리는 미래는 명확하다. 수술 후 상처 관리나 피부 재생 치료를 병원에 매여 있지 않고 일상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세광 교수는 "일상에서 쉽게 얻는 빛을 이용해 외부 전원 없이도 상처 봉합과 재생을 동시에 유도한 성과"라며 "환자가 병원 밖에서도 손쉽게 관리를 이어갈 수 있는 차세대 착용형 광의학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 한국연구재단 BRIDGE연구사업, KOBRA 프로젝트, 기초과학연구사업, 한국의료기기개발기금, B-IRC 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73965 1. 광화학적 조직 접합(PTB, Photochemical Tissue Bonding): 빛과 광감작제를 이용해 상처 경계면의 콜라겐 사이에 결합을 형성함으로써 조직을 붙이는 기술이다. 2. 광 생체 조절(PBM, Photobiomodulation): 낮은 세기의 특정 파장 빛으로 세포 대사, 염증 반응, 조직 재생을 조절하는 광치료 방식이다. 3. RSLP(Room light- and sunlight-activatable luminescent particles): 실내등과 햇빛을 흡수해 치료용 적색광을 방출하는 발광 입자. 이번 연구에서는 CaSr(S,SO4):Eu,Tm 기반 입자를 사용했다. 4. Ce6(Chlorin e6): 적색광에 반응하는 광감작제의 하나로, 빛을 받으면 콜라겐 교차결합을 유도하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신소재/반도체 황현상 교수 연구팀, '메모리 아파트' 길 잃은 결정에 내비게이션, 3D NAND 반도체 한계 넘는 기술 개발
[시드층 기반 방향 제어형 MILC로 155단 3D NAND 채널 균일 결정화] 스마트폰에 사진 수만 장을 담는 비결은 데이터 저장 공간을 아파트처럼 위로 쌓아 올리는 기술에 있다. 국내 연구진이 이 ‘메모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길을 방해하던 반도체 결정에 내비게이션을 달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성능을 높일 기술을 개발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반도체공학과 황현상 교수, 신소재공학과 통합과정 권오혁 씨 연구팀은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메모리사업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3D 낸드(NAND)’ 채널 내부 실리콘 결정의 성장 방향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 학회 ‘2026 IEEE 국제 VLSI 기술 및 회로 심포지엄(IEEE Symposium on VLSI Technology and Circuits)’에서 발표됐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의 ‘Research Highlights’에 선정되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낸드(NAND)’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저장용 반도체로 스마트폰과 USB 메모리 등에 쓰인다.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는 셀을 수백 층까지 쌓은 구조가 ‘3D 낸드’다. 층이 높아질수록 데이터를 전달하는 수직 통로인 ‘실리콘’ 채널도 길어진다. 문제는 채널을 이루는 실리콘 결정이다. 실리콘은 여러 개의 작은 결정이 모여 형성되는데, 결정과 결정 사이의 경계는 전류 흐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채널이 길어질수록 이런 경계가 늘어나 전기 저항이 커지고, 데이터 처리 속도가 떨어진다. 이 문제를 풀 열쇠로 주목받아 온 기술이 ‘금속 유도 측면 결정화(이하 MILC1))’다. 니켈(Ni)을 촉매로 사용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고품질 실리콘 결정을 만들 수 있지만 결정이 자라는 방향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MILC 과정에서 형성되는 바늘 모양 결정인 '위스커(whisker)'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자라 서로 부딪히면 성장이 멈추고, 니켈이 채널 안에 남게 된다. 이 때문에 긴 채널 전체에 전류가 잘 흐를 수 있는 균일한 결정 통로를 만들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주목했다. 먼저 실리콘 기판 위 니켈 박막에 ‘마이크로웨이브 어닐링(이하 MWA2))’을 적용해 결정 성장 방향을 유도하는 시드층(seed layer)을 만들었다. 전자레인지가 음식 속 물 분자에만 선택적으로 열을 전달하듯, MWA도 니켈과 실리콘이 맞닿은 부분에만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덕분에 기판 전체를 가열하지 않고도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균일하게 정렬된 시드층을 낮은 온도에서 형성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층을 3D 낸드 채널 표면에 적용했다. 그 결과, 결정은 방향이 정해진 시드층을 따라 성장했고, 위스커도 무작위로 퍼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졌다. 연구팀은 이를 실제 155단 3D 낸드 구조(채널 깊이 약 6.5㎛)에 적용해 채널 위부터 아래 끝까지 균일하게 정렬된 결정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POSTECH 황현상 교수는 “적층 수가 늘어나는 차세대 3D 낸드에서도 채널 전체를 균일하게 결정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라고 전했다. 제1저자인 권오혁 씨는 “무작위였던 결정 성장에 방향성을 부여해 위스커 충돌과 니켈 포획이라는 MILC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라며 “고단수 3D 낸드의 채널 저항 문제를 푸는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삼성전자(주)의 산학 공동 연구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109/VLSITechnologyandCir65830.2026.11577362 1. MILC(Metal-Induced Lateral Crystallization, 금속 유도 측면 결정화): 니켈 등 금속 촉매를 이용해 비정질 실리콘을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결정질 실리콘으로 변환하는 결정화 기술이다. 2. MWA(Microwave Annealing, 마이크로웨이브 어닐링): 마이크로웨이브 에너지를 특정 화학 결합에 선택적으로 전달해 낮은 기판 온도에서도 반응을 촉진하는 열처리 기술이다.
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겉바속촉 대신 겉물속강” 수소도 못 뚫는 신소재
[‘역방향 기울기 설계’로 미세조직 차폐 효과 규명... 수소구조재 설계 새 방향 제시] 치킨이나 만두를 먹을 때 최고의 칭찬은 '겉바속촉'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맛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금속 재료 세계에서는 이 조합을 살짝 바꾼 '겉물속강'이 최고의 칭찬이 될 것 같다. ‘겉은 물러도 속은 강철처럼 단단한’ 금속, 이런 금속이 실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이 금속 미세조직을 '거꾸로' 설계하는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 구조'를 개발해, 높은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부식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Corrosion Science'에 최근 게재됐다. 금속은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수소 앞에서 더 쉽게 부서지는 얄궂은 성질을 갖고 있다. 이른바 '수소취성1)'이다. 수소가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지금, 이 딜레마는 수소경제로 가는 길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왔다. 수소 저장탱크와 배관, 연료전지 같은 인프라를 지으려면 튼튼하면서도 수소에 잘 견디는 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깨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연구팀은 금속 내부 구조 '순서'를 통째로 뒤집은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2) 구조'라 이름 붙였고, 이 구조를 적용한 고엔트로피 합금에서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금속 표면을 단단하게, 내부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설계하는 기존 정석을 뒤집고 연구팀은 표면에는 수소에 강한 '재결정 조직'을, 내부에는 강도를 끌어올리는 '냉간압연 조직'을 배치했다. 겉은 수소를 막아내는 역할을, 속은 힘을 내는 역할을 나눠 맡긴 셈이다. 이 설계의 핵심은 '구조적 차폐(Structural Shielding)3)'라는 개념이다. 수소에 강한 표면층이 외부 환경을 먼저 견뎌내면서, 안쪽 고강도 조직에는 수소가 아예 닿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별도 코팅이나 보호막을 덧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금속 내부 미세조직의 배열 순서만 바꿔서 수소의 침투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조직이 함께 변형되면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도 나타났다. 강도와 함께, 잘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까지 같이 좋아진 것이다. 실제 실험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합금은 일반 열처리 합금보다 항복강도가 약 2.4배 높았다. 그런데도 수소를 주입한 뒤 나타나는 연성 감소 폭은 기존 합금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강도는 훌쩍 뛰었는데, 수소취성이라는 약점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표면 코팅이나 복잡한 후처리 공정 없이도, 미세조직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설계만으로 수소취성을 줄일 수 있다는 원리를 처음으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원리는 수소 저장탱크와 배관, 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인프라뿐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쓰이는 고강도 구조재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형섭 교수는 "표면 코팅에 의존해 온 기존 수소취화 대응을 넘어, 미세조직 자체가 능동적으로 수소를 차폐하는 새로운 설계 원리를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라며 "수소 저장·운송용 차세대 합금 설계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논문 제1저자인 친환경소재학과 박사과정 김래언 씨는 “자연 계층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역방향 기울기 설계가 강도와 연성 상충 관계는 물론, 수소취성 같은 환경 취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과 기본연구사업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16/j.corsci.2026.113760 1. 수소취성(Hydrogen Embrittlement, HE) : 금속에 침투한 수소가 격자·입계·전위 등에 축적되며 연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균열을 유발하는 현상. 강도가 높을수록 더 취약해 수소 환경 구조재 개발의 핵심 난제로 꼽힌다. 2.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 표면을 강하고 내부를 부드럽게 두는 통상적 기울기 구조와 반대로, 변형·수소 침투가 집중되는 영역에 차폐 미세조직을 배치하는 설계 개념이다. 3. 구조적 차폐(Structural Shielding) : 코팅·표면처리 없이 미세조직 자체의 배치만으로 수소를 가두거나 분산시켜 균열 핵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신소재 이병주 교수 연구팀, "몇백 시간 걸리던 계산, 하루 이틀 내에" 3D 프린팅, 금속 제조 '가상 실험실' 열다
[금속 응고 빠르게 예측하는 기술 개발... 3D 프린팅·주조 공정 설계 혁신 기대] 새로운 금속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성능이 나올 때까지 공정 조건을 바꿔가며 수없이 실험해야 한다. POSTECH 연구팀이 이 과정을 컴퓨터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 이병주 교수, 오상호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금속 소재와 제조 공정 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액체 상태인 금속이 굳는 과정에서 내부에는 결정립과 미세조직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응고 과정 중 형성된 미세조직은 제품의 강도와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주조 공정은 물론,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였다가 빠르게 굳히는 3D 프린팅 공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3D 프린팅은 복잡한 열 이력에 따라 미세조직이 어떻게 변하는지 예측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혀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널리 사용된 ‘상장(Phase-field)1)’ 모델 같은 정밀 시뮬레이션은 계산량이 매우 많다는 한계가 있었다.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 영역을 분석하는 데 고성능 컴퓨터로도 수백 시간이 필요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통계역학을 기반으로 한 ‘몬테카를로 포츠(Monte Carlo Potts)2)’ 모델에 주목했다. 금속 내부 결정립 성장 과정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이 모델은 알고리즘이 간단해 계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응고 현상까지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모델에 실제 물리적 단위를 연결하는 방법과 응고 역학 이론을 접목해, 금속이 굳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동시에 계산하는 모델을 구현했다. 여기에는 결정립이 자라는 과정, 새 결정이 생겨나는 과정, 그리고 기존 결정 방향을 따라 이어 자라는 현상까지 포함된다. 이를 통해 응고 속도와 미세조직을 정확하게 재현했으며, 기존에는 계산이 어려웠던 수십 밀리미터 규모의 실제 제조 공정도 일반 데스크탑 수준의 컴퓨터로 수십 시간 안에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모델은 정밀 시뮬레이션 방식 한계를 뛰어넘는 계산 효율성을 보이면서도 응고와 결정립 성장 현상을 하나의 알고리즘 안에서 동시에 다룰 수 있어 ‘계산 효율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속 제품을 실제 만들기 전에 컴퓨터에서 여러 공정 조건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하는 성능을 갖는 합금과 제조 공정을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주조와 용접은 물론, 최근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금속 3D 프린팅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연구를 이끈 POSTECH 이병주 교수는 “이 기술은 적은 계산 비용만으로 금속 제조 공정 설계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가이드가 될 것”이라며, “원하는 미세조직과 성능을 얻기 위한 합금 및 공정 설계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과 선도연구센터(ERC)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2512-7 1. 상장(Phase-field) 모델: 금속이 녹고 굳는 과정에서 미세조직이 어떻게 변하는지 매우 정밀하게 계산하는 대표적인 시뮬레이션 기법. 정확도는 높지만 계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2. 몬테카를로 포츠(Monte Carlo Potts) 모델: 확률 계산을 이용해 금속 내부 결정립 성장 과정을 빠르게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기법. 계산 속도가 빠르지만 응고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철강의 딜레마 깼다"… 3D 프린팅으로 더 강하고 더 잘 늘어나는 합금 개발
세계 최고 수준 강도·연성 조합 갖춘 3D 프린팅용 초고강도 철계 합금 개발 우주선과 전투기는 극한 환경에서 버텨야 한다. 하지만 금속은 강도가 높으면 깨지기 쉽고, 잘 늘어나는 경우 강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이 ‘강도와 연성의 딜레마’를 해결할 새로운 초고강도 철계 합금이 나왔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기존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초고강도 철계 합금보다 강도와 연성의 조합이 뛰어난 철계 합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제조·공정 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인 ‘International Journal of Extreme Manufacturing (Impact Factor: 25.1)’에 최근 게재됐다. 초고강도 철계 합금은 항공우주, 자동차, 방위 산업 장비처럼 극한의 힘을 견뎌야 하는 구조 부품에 널리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마레이징 강(Maraging steel)1)’은 열처리를 통해 높은 강도를 내는 대표적인 초고강도 합금이다. 최근에는 금속 3D 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서 복잡한 형상의 부품 제작도 가능해졌지만, 높은 강도에 비해 잘 늘어나지 못해 충격에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3D 프린팅 공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아주 작은 내부 구조에서 찾았다. 금속 분말이 레이저에 의해 순식간에 녹고 다시 굳는 과정에서 수백 나노미터(nm) 크기 벌집 모양 ‘셀(cell) 구조2)’가 형성되는데, 연구팀은 이를 단순한 부산물이 아닌 소재 설계의 핵심 요소로 활용했다. 연구팀은 철(Fe), 코발트(Co), 니켈(Ni), 몰리브덴(Mo)을 조합한 새로운 마레이징 중엔트로피3) 합금 분말을 만들고, 3D 프린팅으로 내부 기공이 거의 없는 합금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몰리브덴이 셀 경계에 집중된 구조가 형성됐고, 연구팀은 열처리를 통해 이 구조를 정교하게 제어했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열처리하면 강도는 높아졌지만(항복강도 1,840MPa), 셀 경계에 딱딱하고 취약한 막 형태의 조직이 생겨 잘 늘어나지 못했다. 반면, 더 높은 온도에서 열처리하자 이러한 취약한 조직은 크게 줄어들고, 대신 부드러운 성질을 가진 결정립이 최대 27.8%까지 소재 전체에 매우 고르게 분포했다. 작고 고르게 분포한 연한 결정립은 단단한 기지 재료 속에 안정적으로 분산되어 높은 항복강도를 유지했다. 동시에 이 결정립들은 외부 힘을 받을 때 더 단단한 조직으로 바뀌며 변형을 흡수한다. 덕분에 소재는 높은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고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단단한 철골 구조물 사이에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를 촘촘히 배치한 것과 같다. 실험 결과, 연구팀이 제작한 합금은 항복강도 1,484 MPa, 인장강도 1,750 MPa, 균일 연신율 10%를 달성했다. 이는 지금까지 동일한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18Ni 마레이징 강, AerMet100 등 기존 초고강도 철계 합금과 비교해도 가장 뛰어난 수준의 강도와 연성 조합이다. POSTECH 김형섭 교수는 “3D프린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나노 크기 셀 구조를 적극 활용해 초고강도와 높은 연성을 모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라며, “이번 연구는 고성능 금속 부품의 3D프린팅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 지원을 받았으며, 일본 J-PARC 중성자 가속기 시설 빔라인(BL19 TAKUMI)을 활용한 실시간 인장 실험이 병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88/2631-7990/ae6f56 1. 마레이징 강(Maraging steel): 탄소를 거의 넣지 않은 마르텐사이트 기지에 열처리로 금속간화합물을 미세하게 석출시켜 매우 높은 강도를 내는 합금이다. 2. 셀(cell) 구조: 금속 3D프린팅의 급격한 냉각 과정에서 형성되는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조직. 경계부에 특정 원소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다. 3. 중엔트로피 합금(Medium-Entropy Alloy, MEA): 세 가지 이상의 원소를 고농도로 혼합한 다원계 합금으로, 단일 원소 합금보다 더 다양한 특성을 발현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이상의 원소를 고농도로 혼합한 고엔트로피 합금(High-Entropy Alloy, HEA) 보다는 혼합도가 덜한 합금이다.
신소재 한현, 이동화 교수 공동 연구팀, “나노입자들이 튀어나왔을 뿐인데...” 전기 안 통하던 절연체, 갑자기 금속 됐다
[상온 초상자성과 초고속 전기 전도 전환 메커니즘 규명] 영화 속에서 단단한 바위가 순식간에 녹아 금속으로 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국내 연구진이 이로 구현했다. 산화물 박막이 ‘절연체’에서 ‘금속’으로 바뀌고, 동시에 새로운 자기적 성질까지 나타나는 놀라운 전환이 확인된 것이다. 최근 POSTECH 신소재공학과 한현 교수, 이동화 교수 연구팀, KENTECH 오상호 교수 연구팀은 엑솔루션(exsolution)’ 과정에서 산화물 내부 결함과 금속 나노입자의 형성을 정밀하게 제어해, 전기적·자기적 성질이 동시에 급격히 변하는 현상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되었다. ‘엑솔루션(exsolution)’은 산화물 안에 있던 금속 이온이 환원 환경에서 표면으로 이동해 나노입자로 ‘튀어나오듯’ 석출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노입자는 산화물 표면에 반쯤 박혀 있어 일반적으로 증착된 나노입자보다 훨씬 안정하다. 이 때문에 연료전지나 촉매 같은 에너지 기술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그동안 엑솔루션이 단순히 ‘나노입자를 만드는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지, 특히 물질의 전기적·자기적 성질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엑솔루션 현상을 정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특이한 구조의 산화물 박막(La₀.₂Sr₀.₇Ni₀.₁Ti₀.₉O₃-δ1))을 모델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이 물질은 여러 원소가 서로 자리를 바꾸고 빈자리(결함)도 존재하는 구조지만, 초기 상태에서는 이 요소들이 서로 전하를 보상하며 전체적으로는 ‘절연체’ 성질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계산을 통해 밝혀냈다. 이후 환원 조건에서 엑솔루션을 유도하자 성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박막 내부와 표면에 니켈(Ni) 나노입자가 형성되며 결함 구조가 재배열됐고, 그 결과 전자 구조 역시 변화했다. 특히, 란타넘(La)이 도핑된 스트론튬 타이타네이트(SrTiO₃)와 유사한 형태의 전자 구조로 전환되면서, 원래의 절연체 상태에서 벗어나 전자가 풍부한 금속 상태로 변화했다. 실제 전기 저항은 1,000배 이상 감소하며 뚜렷한 ‘절연체→금속’ 전이 현상이 관찰됐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자기적 성질의 변화다. 초기 상태에서는 반자성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엑솔루션 이후 생성된 니켈 나노입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상온에서 ‘초상자성(superparamagnetism)’이 나타났다. 이는 나노입자들이 외부 자기장에는 반응하지만, 자기장이 사라지면 다시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독특한 상태다. 이번 연구는 엑솔루션이 단순히 물질 표면에 금속 나노입자를 형성하는 기술을 넘어, 산화물 내부의 전자 구조와 결함 상태를 재구성해 전기적·자기적 특성을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POSTECH 한현 교수는 “이 기술은 향후 전자소자나 스핀트로닉스 소자 설계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천기술국제협력개발사업과 신진연구사업, Max Planck Partner Group 프로그램, 삼성전자 DS부문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 DOI: https://doi.org/10.1002/adma.202600031 1. La₀.₂Sr₀.₇Ni₀.₁Ti₀.₉O₃-δ: 스트론튬(Sr)과 티타늄(Ti) 기반 산화물에 란타넘(La)과 니켈(Ni)이 일부 치환된 구조 박막으로 여러 금속 원소가 섞이고 일부 원자 자리가 비어 있는 복잡한 구조다.
신소재/배터리 강병우 교수 연구팀, 전해질 내부의 이온 고속도로로 ‘꿈의 배터리’ 전고체전지 한계 넘는다
[게르마늄 도입으로 리시콘(LISICON)형 고체전해질 이온 전도도 5배 향상]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무엇일까. 더 복잡한 구조나 새로운 소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담는 것’일지도 모른다. POSTECH 연구팀이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전극을 두껍게 만들수록 성능이 떨어진다는 기존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고, 기존보다 수십 배 두꺼운 전극도 거뜬히 버티는 차세대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배터리공학과 강병우 교수, 신소재공학과 우승준 박사(現 LG에너지솔루션), 신소재공학과 통합과정 박준형 씨 연구팀은 기존보다 수십 배 두꺼운 양극을 사용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전고체 배터리 플랫폼 구현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영국왕립화학협회 에너지 분야 국제 학술지인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A’에 게재됐다. 전고체 배터리(all-solid-state battery)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를 사용하는 차세대 배터리로, 불이 붙을 위험이 낮고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그런데 꿈에도 약점은 있었다. 고체 안에서 리튬 이온이 느리게 움직이는 탓에 전극을 두껍게 만들수록 내부 저항이 커지고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소재 자체를 뜯어고치는 대신, 리튬 이온이 지나가는 '길'을 바꾸는 전략을 선택했다. 기존 리시콘형1) 산화물 고체 전해질(Li3.5Si0.5P0.5O4, 이하 LSPO) 소재에서 규소(Si)와 인(P)의 일부를 게르마늄(Ge)으로 바꾼 것이다. 마치 좁은 골목길이 얽히고설킨 구도심을 고속도로망으로 재편한 것처럼, 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훨씬 넓어지고, 통로도 서로 촘촘하게 연결됐다. 그 결과, 이온 전도도가 기존 대비 약 5배 향상됐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소재가 양·음극 소재와의 접촉성도 매우 좋다는 것이다. 양극 소재와는 단순한 가열만으로 단단하게 결합하는 공소결2)이 가능하며, 음극으로는 리튬 금속을 사용하여 별도 외부 압력 없이 안정적인 배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약 14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초두꺼운 양극(Ultra-thick electrode)’을 적용한 전고체 배터리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보고되는 전극보다 수십 배 두꺼운 수준으로, 그동안 ‘두꺼우면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전고체 배터리의 한계를 정면으로 넘어선 결과다. 이렇게 제작된 배터리는 상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부피 기준 에너지 밀도는 841Wh/L(와트시퍼리터, 1L 안에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에 달했다. 더 작고 가벼운 배터리로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구조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차세대 에너지 저장 기술의 방향을 한 단계 앞당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POSTECH 강병우 교수는 “산화물계 전고체 배터리에서 두꺼운 전극을 도입해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라며,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동시에 만족하는 차세대 리튬 금속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이차전지 첨단전략산업 글로벌 지원 사업‘, ’기판실장용 산화물계 초소형 적층 전고체전지개발 사업’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6TA00467A 1. 리시콘형(Lithium Superionic Conductor type): 리튬 이온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2. 공소결(co-sintering) : 둘 이상의 물질을 고온에서 구워 하나의 입자로 만드는 공정
신소재/친환경/배터리 김용태 교수 연구팀, “다쳐도 스스로 낫는 촉매 나왔다” 수소차·연료전지 핵심 난제 극복할까
[손상돼도 금속 상태로 되돌아가는 전기화학 촉매 개발] 상처가 나도 회복하는 피부처럼, 산화되어 성능이 떨어져도 스스로 원래 상태를 되찾는 촉매가 나왔다. 수소차와 연료전지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소 경제 상용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친환경소재학과·배터리공학과 김용태 교수, POSTECH 신소재공학과 유상훈 박사(現 국립공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유상훈 교수), 서울대 신소재공학부 한정우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 이국승 박사 연구팀이 함께 스스로 성능을 회복하는 촉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에너지 앤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게재됐다. 수전해 장치와 수소 연료전지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거나,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수소 경제의 핵심 기술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내부에서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가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패시베이션(passivation)1)’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이 상태가 되면 촉매가 다시는 본래 성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 시동을 켜고 끄는 과정(이하 SU/SD2))이나 연료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처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건에서 촉매 손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뛰어난 초기 성능을 갖고도 실제 제품에 쓰이지 못한 촉매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이리듐(Ir)과 철(Fe)을 결합한 합금 나노촉매(IrFe/C)를 설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핵심은 촉매 '겉'과 '속'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 금속 합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바깥 표면만 주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촉매 표면이 산화되더라도 다시 금속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 회복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동적 분리-표면 재구성(dynamic segregated-surface reconstruction)’이라 설명했다. 불에 타도 다시 재생되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촉매 스스로 성능을 복원하는 길을 연 셈이다. 실험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수전해 장치(PEMWE3))와 연료전지(PEMFC4))에 적용한 결과, 기존 촉매(Pt/C)는 성능이 62%나 감소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촉매(IrFe/C)는 16% 감소에 그쳤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불안정한 운전 조건에서도 높은 전류 밀도와 최대 출력 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기존 촉매의 출력 밀도가 최대 0.25W·cm⁻²까지 떨어지는 동안, 새 촉매는 0.72W·cm⁻²를 유지했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을 넘어, 성능 자체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수소 에너지 경제성을 높여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촉매 수명이 늘어나면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의 유지 비용이 줄어들고, 교체 주기도 길어진다. POSTECH 김용태 교수는 “촉매 표면 패시베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라며 “수전해 기반 친환경 수소 생산은 물론, 수소차·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비 수명을 늘리고 유지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5ee05899f 1. 패시베이션(passivation): 금속이나 촉매 표면에 산화물층 같은 얇은 막이 형성되면서 외부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이 막은 촉매의 활성 부위를 덮어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2. SU/SD(Start-up/Shut-down): 장치의 시동(Start-up)과 정지(Shut-down) 과정을 뜻한다. 수소 연료전지나 수전해 장치는 이 과정에서 전압 변화가 크게 발생해 촉매 열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3. PEMWE(Proton Exchange Membrane Water Electrolyzer):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 장치.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H₂)와 산소(O₂)로 분리하는 장치로,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4. PEMFC(Proton Exchange Membrane Fuel Cell): 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 수소와 산소의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로, 수소차와 친환경 발전 시스템 등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