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겉바속촉 대신 겉물속강” 수소도 못 뚫는 신소재
[‘역방향 기울기 설계’로 미세조직 차폐 효과 규명... 수소구조재 설계 새 방향 제시] 치킨이나 만두를 먹을 때 최고의 칭찬은 '겉바속촉'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맛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금속 재료 세계에서는 이 조합을 살짝 바꾼 '겉물속강'이 최고의 칭찬이 될 것 같다. ‘겉은 물러도 속은 강철처럼 단단한’ 금속, 이런 금속이 실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이 금속 미세조직을 '거꾸로' 설계하는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 구조'를 개발해, 높은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부식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Corrosion Science'에 최근 게재됐다. 금속은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수소 앞에서 더 쉽게 부서지는 얄궂은 성질을 갖고 있다. 이른바 '수소취성1)'이다. 수소가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지금, 이 딜레마는 수소경제로 가는 길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왔다. 수소 저장탱크와 배관, 연료전지 같은 인프라를 지으려면 튼튼하면서도 수소에 잘 견디는 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깨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연구팀은 금속 내부 구조 '순서'를 통째로 뒤집은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2) 구조'라 이름 붙였고, 이 구조를 적용한 고엔트로피 합금에서 강도와 수소취성 저항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금속 표면을 단단하게, 내부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설계하는 기존 정석을 뒤집고 연구팀은 표면에는 수소에 강한 '재결정 조직'을, 내부에는 강도를 끌어올리는 '냉간압연 조직'을 배치했다. 겉은 수소를 막아내는 역할을, 속은 힘을 내는 역할을 나눠 맡긴 셈이다. 이 설계의 핵심은 '구조적 차폐(Structural Shielding)3)'라는 개념이다. 수소에 강한 표면층이 외부 환경을 먼저 견뎌내면서, 안쪽 고강도 조직에는 수소가 아예 닿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별도 코팅이나 보호막을 덧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금속 내부 미세조직의 배열 순서만 바꿔서 수소의 침투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조직이 함께 변형되면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도 나타났다. 강도와 함께, 잘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까지 같이 좋아진 것이다. 실제 실험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합금은 일반 열처리 합금보다 항복강도가 약 2.4배 높았다. 그런데도 수소를 주입한 뒤 나타나는 연성 감소 폭은 기존 합금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강도는 훌쩍 뛰었는데, 수소취성이라는 약점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표면 코팅이나 복잡한 후처리 공정 없이도, 미세조직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설계만으로 수소취성을 줄일 수 있다는 원리를 처음으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원리는 수소 저장탱크와 배관, 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인프라뿐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쓰이는 고강도 구조재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형섭 교수는 "표면 코팅에 의존해 온 기존 수소취화 대응을 넘어, 미세조직 자체가 능동적으로 수소를 차폐하는 새로운 설계 원리를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라며 "수소 저장·운송용 차세대 합금 설계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논문 제1저자인 친환경소재학과 박사과정 김래언 씨는 “자연 계층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역방향 기울기 설계가 강도와 연성 상충 관계는 물론, 수소취성 같은 환경 취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과 기본연구사업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16/j.corsci.2026.113760 1. 수소취성(Hydrogen Embrittlement, HE) : 금속에 침투한 수소가 격자·입계·전위 등에 축적되며 연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균열을 유발하는 현상. 강도가 높을수록 더 취약해 수소 환경 구조재 개발의 핵심 난제로 꼽힌다. 2. 역방향 기울기(Reverse-gradient): 표면을 강하고 내부를 부드럽게 두는 통상적 기울기 구조와 반대로, 변형·수소 침투가 집중되는 영역에 차폐 미세조직을 배치하는 설계 개념이다. 3. 구조적 차폐(Structural Shielding) : 코팅·표면처리 없이 미세조직 자체의 배치만으로 수소를 가두거나 분산시켜 균열 핵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친환경/물리/첨단재료 김지훈 교수 연구팀, 꿈의 자기 소용돌이 ‘스커미온’, 드디어 찾았다
[반강자성 물질 속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 '스커미온' 흔적 포착]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은 팽이를 돌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과학계에서도 오랫동안 '팽이'처럼 존재는 알려졌지만 좀처럼 붙잡기 힘든 대상이 있었다. 바로 '꿈의 자기 소용돌이'라 불리는 '스커미온(skyrmion)'이다. 최근 POSTECH 연구팀이 미국 베일러대(Baylor University) 연구팀과 함께 그동안 관측하기 어려웠던 반강자성 물질에서 스커미온의 흔적을 처음으로 포착하며 차세대 저전력 반도체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물리학과·첨단재료과학부 김지훈 교수, 물리학과 이연규·윤진영 박사, 박사과정 이찬영 씨 연구팀, 미국 베일러대 루이스 발리카스(Luis Balicas) 교수 연구팀이 함께 진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에 최근 게재됐다. ‘스커미온’은 전자의 자기 방향, 즉 스핀이 소용돌이처럼 꼬여 만들어진 나노미터 크기의 자기 구조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안정성이 뛰어나고 적은 에너지로도 손쉽게 움직일 수 있어 초고밀도 메모리와 저전력 반도체를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그중에서도 '반강자성 스커미온'은 외부 자기장 영향을 덜 받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정보를 저장·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반강자성 스커미온이 실제 물질 속에 정말 존재하는지 확인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는 점이다. 있다는 건 알겠는데 좀처럼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말 그대로 '꿈속의 존재'였던 셈이다. 연구팀은 코발트(Co)를 넣어 반강자성 상태를 만든 2차원 자성체(Fe₃GaTe₂)에 자기장을 걸어가며 물질 내부의 자기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 결과, 자기장이 특정 세기에 이르자 지름 약 100~200나노미터(nm) 크기 원형자기 구조가 나타났고, 동시에 전기 신호가 강하게 나타나는 '위상 홀 효과(Topological Hall Effect)1)'도 함께 커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자기력현미경2)로 들여다본 결과, 이 전기 신호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구간에서 실제로 원형 자기 구조가 형성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따로따로 연구되던 '위상 홀 효과'와 '실제 자기 구조'가 서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준 중요한 결과다. 연구팀은 이 원형 구조가 반강자성 스커미온일 가능성이 크며, 자기장이 더 강해지면 일반적인 스커미온으로 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코발트를 넣은 2차원 자성체가 그동안 붙잡기 어려웠던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기술까지 이어진다면, 더 빠르고 안정적이면서도 전력 소모는 줄인 차세대 메모리와 정보처리 소자 개발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POSTECH 김지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반강자성 물질에서도 스커미온과 같은 복잡한 자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전기 신호로도 확인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향후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활용한 저전력 스핀전자소자와 차세대 정보처리 기술 개발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과제(RS-2024-00410027)와 미국 Department of Energy BES 프로그램(DE-SC0002613), Baylor University 지원, 미국 National High Magnetic Field Laboratory(NSF Cooperative Agreement Grant DMR-2128556 및 Florida 주 지원)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1/acsnano.6c00559 1. 위상 홀 효과: 전자들이 비공선 스핀 구조를 통과할 때 유효 자기장을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홀 전압 신호. 스커미온과 같은 위상학적 자기 텍스처의 중요한 전기수송 지표로 사용된다. 2. 자기력현미경(Magnetic Force Microscopy, MFM): 시료 표면 위 국소 자기 stray field를 측정해 자기 도메인 구조를 시각화하는 현미경 기법이다.
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철강의 딜레마 깼다"… 3D 프린팅으로 더 강하고 더 잘 늘어나는 합금 개발
세계 최고 수준 강도·연성 조합 갖춘 3D 프린팅용 초고강도 철계 합금 개발 우주선과 전투기는 극한 환경에서 버텨야 한다. 하지만 금속은 강도가 높으면 깨지기 쉽고, 잘 늘어나는 경우 강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이 ‘강도와 연성의 딜레마’를 해결할 새로운 초고강도 철계 합금이 나왔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기존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초고강도 철계 합금보다 강도와 연성의 조합이 뛰어난 철계 합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제조·공정 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인 ‘International Journal of Extreme Manufacturing (Impact Factor: 25.1)’에 최근 게재됐다. 초고강도 철계 합금은 항공우주, 자동차, 방위 산업 장비처럼 극한의 힘을 견뎌야 하는 구조 부품에 널리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마레이징 강(Maraging steel)1)’은 열처리를 통해 높은 강도를 내는 대표적인 초고강도 합금이다. 최근에는 금속 3D 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서 복잡한 형상의 부품 제작도 가능해졌지만, 높은 강도에 비해 잘 늘어나지 못해 충격에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3D 프린팅 공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아주 작은 내부 구조에서 찾았다. 금속 분말이 레이저에 의해 순식간에 녹고 다시 굳는 과정에서 수백 나노미터(nm) 크기 벌집 모양 ‘셀(cell) 구조2)’가 형성되는데, 연구팀은 이를 단순한 부산물이 아닌 소재 설계의 핵심 요소로 활용했다. 연구팀은 철(Fe), 코발트(Co), 니켈(Ni), 몰리브덴(Mo)을 조합한 새로운 마레이징 중엔트로피3) 합금 분말을 만들고, 3D 프린팅으로 내부 기공이 거의 없는 합금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몰리브덴이 셀 경계에 집중된 구조가 형성됐고, 연구팀은 열처리를 통해 이 구조를 정교하게 제어했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열처리하면 강도는 높아졌지만(항복강도 1,840MPa), 셀 경계에 딱딱하고 취약한 막 형태의 조직이 생겨 잘 늘어나지 못했다. 반면, 더 높은 온도에서 열처리하자 이러한 취약한 조직은 크게 줄어들고, 대신 부드러운 성질을 가진 결정립이 최대 27.8%까지 소재 전체에 매우 고르게 분포했다. 작고 고르게 분포한 연한 결정립은 단단한 기지 재료 속에 안정적으로 분산되어 높은 항복강도를 유지했다. 동시에 이 결정립들은 외부 힘을 받을 때 더 단단한 조직으로 바뀌며 변형을 흡수한다. 덕분에 소재는 높은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고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단단한 철골 구조물 사이에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를 촘촘히 배치한 것과 같다. 실험 결과, 연구팀이 제작한 합금은 항복강도 1,484 MPa, 인장강도 1,750 MPa, 균일 연신율 10%를 달성했다. 이는 지금까지 동일한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18Ni 마레이징 강, AerMet100 등 기존 초고강도 철계 합금과 비교해도 가장 뛰어난 수준의 강도와 연성 조합이다. POSTECH 김형섭 교수는 “3D프린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나노 크기 셀 구조를 적극 활용해 초고강도와 높은 연성을 모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라며, “이번 연구는 고성능 금속 부품의 3D프린팅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 지원을 받았으며, 일본 J-PARC 중성자 가속기 시설 빔라인(BL19 TAKUMI)을 활용한 실시간 인장 실험이 병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88/2631-7990/ae6f56 1. 마레이징 강(Maraging steel): 탄소를 거의 넣지 않은 마르텐사이트 기지에 열처리로 금속간화합물을 미세하게 석출시켜 매우 높은 강도를 내는 합금이다. 2. 셀(cell) 구조: 금속 3D프린팅의 급격한 냉각 과정에서 형성되는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조직. 경계부에 특정 원소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다. 3. 중엔트로피 합금(Medium-Entropy Alloy, MEA): 세 가지 이상의 원소를 고농도로 혼합한 다원계 합금으로, 단일 원소 합금보다 더 다양한 특성을 발현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이상의 원소를 고농도로 혼합한 고엔트로피 합금(High-Entropy Alloy, HEA) 보다는 혼합도가 덜한 합금이다.
친환경/물리/첨단재료 김지훈 교수 연구팀, 전류 방향 기억하는 초전도 소자 나왔다
[외부 자기장 없이 스스로 방향 기억하는 초전도 다이오드 개발] 국내 연구팀이 전류가 흐르는 방향을 스스로 ‘기억’하고 제어하는 초전도 소자를 개발했다. 한 번 방향을 설정하면 전원을 꺼도 유지되고, 외부 자기장 없이도 작동해 양자컴퓨터 회로를 더 작고 단순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물리학과·첨단재료과학부 김지훈 교수 연구팀은 아르헨티나 Instituto Balseiro, CNEA-CONICET 소속 네스토르 하베르코른(Nestor Haberkorn) 교수 연구팀과 이번 연구를 수행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초전도 다이오드’는 전류가 한쪽으로는 잘 흐르고, 반대 방향으로는 잘 흐르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일방통행 장치다. 전류가 손실 없이 흐르는 초전도 환경에서 매우 중요하다. 양자컴퓨터나 초고속 초전도 회로에서는 전류 방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전체 동작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초전도 소자는 대부분 외부 자기장이 필요해 회로가 복잡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자석의 기억 성질’로 해결했다. 연구팀이 만든 소자는 ‘초전도층(NbN1))’, ‘절연층(AlN2))’, ‘자성 금속층(퍼멀로이, Permalloy3))’ 세 겹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자성 금속층으로 이 층은 한 번 자성 방향이 정해지면 외부 자기장이 없어도 방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성질 때문에 소자 안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환경이 양쪽에서 다르게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면 한쪽은 전류가 잘 지나가는 길이고, 반대 방향은 상대적으로 흐름이 방해받는 구조가 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보텍스(vortex)4)’라는 아주 작은 자기 소용돌이다. 보텍스는 초전도체 상태에서 생기는 미세한 자기 흐름이다. 평소에는 초전도 상태 안에 존재하지만 전류가 흐를 때 함께 움직이는데, 보텍스가 움직이면 초전도 상태가 깨지면서 전기 저항이 생긴다. 연구팀의 소자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보텍스 움직임이 달라졌다. 한쪽에서는 보텍스가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초전도 상태가 유지됐으며, 반대 방향에서는 보텍스가 서 쉽게 끌려 들어와 초전도 상태가 쉽게 깨졌다. 그 결과 한쪽은 강한 전류에서도 저항 없이 흐름이 유지됐고, 반대쪽은 비교적 약한 전류에서도 저항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외부 자기장 없이도 전류가 한쪽으로 더 잘 흐르는 ‘초전도 다이오드’ 구조가 구현된 것이다. 이 소자의 가장 큰 특징은 ‘기억 기능’이다. 자성층 방향을 한 번 설정하면 전류가 잘 흐르는 방향이 고정되며, 전원을 꺼도 상태가 유지된다. 반대로 자화 방향을 바꾸면 전류 방향도 함께 뒤집힌다. 실험 결과, 자성층 두께 89nm(나노미터) 소자에서 최대 40% 수준의 높은 정류 효율(한쪽으로 얼마나 더 잘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 확인됐다. 이번 성과는 외부 자기장 장치 없이도 전류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POSTECH 김지훈 교수는 "비교적 단순한 재료 조합만으로 고효율 초전도 다이오드를 구현했다"라며 "양자컴퓨팅 회로와 극저온 초전도 전자소자에서 전류 방향성을 제어하는 핵심 부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CONICET,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SRC 사업 및 핵심연구, Brain Pool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02/adfm.75836 1. NbN: 니오븀 나이트라이드,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재료다. 2. AlN: 알루미늄 나이트라이드, 위아래 층을 분리해주는 얇은 절연막이다. 3. Permalloy(퍼멀로이): 자석처럼 방향을 기억하는 자성 금속이다. 4. 보텍스(vortex): 초전도체 내부에 자기선속이 양자화되어 침투한 구조. 보텍스가 움직이면 전기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신소재/친환경/배터리 김용태 교수 연구팀, “다쳐도 스스로 낫는 촉매 나왔다” 수소차·연료전지 핵심 난제 극복할까
[손상돼도 금속 상태로 되돌아가는 전기화학 촉매 개발] 상처가 나도 회복하는 피부처럼, 산화되어 성능이 떨어져도 스스로 원래 상태를 되찾는 촉매가 나왔다. 수소차와 연료전지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소 경제 상용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POSTECH 신소재공학과·친환경소재학과·배터리공학과 김용태 교수, POSTECH 신소재공학과 유상훈 박사(現 국립공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유상훈 교수), 서울대 신소재공학부 한정우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 이국승 박사 연구팀이 함께 스스로 성능을 회복하는 촉매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에너지 앤 인바이런멘탈 사이언스(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게재됐다. 수전해 장치와 수소 연료전지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거나,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수소 경제의 핵심 기술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내부에서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가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패시베이션(passivation)1)’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이 상태가 되면 촉매가 다시는 본래 성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 시동을 켜고 끄는 과정(이하 SU/SD2))이나 연료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처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조건에서 촉매 손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뛰어난 초기 성능을 갖고도 실제 제품에 쓰이지 못한 촉매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이리듐(Ir)과 철(Fe)을 결합한 합금 나노촉매(IrFe/C)를 설계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핵심은 촉매 '겉'과 '속'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 금속 합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바깥 표면만 주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촉매 표면이 산화되더라도 다시 금속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 회복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동적 분리-표면 재구성(dynamic segregated-surface reconstruction)’이라 설명했다. 불에 타도 다시 재생되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촉매 스스로 성능을 복원하는 길을 연 셈이다. 실험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수전해 장치(PEMWE3))와 연료전지(PEMFC4))에 적용한 결과, 기존 촉매(Pt/C)는 성능이 62%나 감소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촉매(IrFe/C)는 16% 감소에 그쳤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불안정한 운전 조건에서도 높은 전류 밀도와 최대 출력 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기존 촉매의 출력 밀도가 최대 0.25W·cm⁻²까지 떨어지는 동안, 새 촉매는 0.72W·cm⁻²를 유지했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을 넘어, 성능 자체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수소 에너지 경제성을 높여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촉매 수명이 늘어나면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의 유지 비용이 줄어들고, 교체 주기도 길어진다. POSTECH 김용태 교수는 “촉매 표면 패시베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라며 “수전해 기반 친환경 수소 생산은 물론, 수소차·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비 수명을 늘리고 유지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세종과학펠로우십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39/d5ee05899f 1. 패시베이션(passivation): 금속이나 촉매 표면에 산화물층 같은 얇은 막이 형성되면서 외부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이 막은 촉매의 활성 부위를 덮어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2. SU/SD(Start-up/Shut-down): 장치의 시동(Start-up)과 정지(Shut-down) 과정을 뜻한다. 수소 연료전지나 수전해 장치는 이 과정에서 전압 변화가 크게 발생해 촉매 열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3. PEMWE(Proton Exchange Membrane Water Electrolyzer):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 장치.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수소(H₂)와 산소(O₂)로 분리하는 장치로,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4. PEMFC(Proton Exchange Membrane Fuel Cell): 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 수소와 산소의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로, 수소차와 친환경 발전 시스템 등에 활용된다.
김형섭•이안나•김동식 교수 공동 연구팀, “울퉁불퉁 금속 표면 오히려 좋아” 제거해야 할 결함, 실은 최강의 접착제였다
[3D 프린팅 표면 거칠기 제어로 접착력 2배 높여… 소프트 로봇·의료기기 적용 기대] ‘금속 부품 표면은 최대한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기본’이라는 제조업계의 오랜 상식이 뒤집혔다. POSTECH 연구팀이 3D 금속 프린팅 과정에서 생기는 ‘울퉁불퉁한 표면’을 오히려 적극 활용해, 금속과 고분자를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접합 기술을 개발했다. 금속과 고분자(폴리머)를 안정적으로 결합하는 기술은 자동차, 항공우주, 소프트 로봇, 의료기기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금속의 단단함과 고분자의 유연함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소재의 물성이 달라 쉽게 분리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학적 표면 처리 등 공정이 필요했는데, 공정이 번거롭고 복잡한 3차원 구조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POSTECH 친환경소재학과·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친환경소재학과 박사과정 김래언 씨, 기계공학과 이안나·김동식 교수, 이정락 박사, 통합과정 이중훈 씨 연구팀은 이 문제를 발상의 전환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연구팀은 레이저로 금속 분말을 녹여 층층이 쌓는 3D 금속 프린팅(PBF-LB/M)1)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표면 거칠기를,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요소’로 봤다. 연구팀은 레이저 출력과 스캔 속도, 간격 등 조건을 조절해 티타늄 합금 표면의 거칠기를 20~70마이크로미터(μm) 범위에서 자유롭게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음악 볼륨을 조절하듯 울퉁불퉁한 정도를 원하는 수준으로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하나의 부품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거칠기를 부여하는, 이른바 '공간 맞춤형 표면 설계'도 구현했다. 이렇게 설계된 표면은 접합 성능에서 뚜렷한 향상을 보였다. 소프트 로봇과 미세 유체 장치에 쓰이는 실리콘 계열 고분자(EcoFlex, Dragon Skin, PDMS)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최적 조건의 거칠기를 적용했을 때, 매끄러운 표면 대비 접착 강도가 2배 이상 증가했다. EcoFlex는 214%, Dragon Skin은 229%, PDMS는 229% 각각 증가했으며, PDMS의 경우 최대 717kPa(킬로파스칼)에 이르는 높은 접합 강도를 기록했다. 그 원리는 운동화 ‘찍찍이(후크-앤-루프, hook-and-loop)’와 유사하다. 거친 표면에는 미세한 돌기와 틈이 촘촘히 형성되는데, 액체 상태 고분자가 스며든 뒤 굳으면서 서로 맞물리는 '인터로킹(interlocking)' 구조가 형성되고, 접촉 면적이 넓어지는 효과까지 더해져 접착력이 크게 높아진다. 별도 화학적 처리 없이 구조 설계만으로 접합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안나·김동식 교수는 3D 프린팅 중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표면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접합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딱딱한 뼈대와 부드러운 피부를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소프트 로봇, 몸 안에 삽입되는 의료기기 등 분야에서 잠재력이 크다”라고 전했다. 김형섭 교수는 “한 부품 안에서 부위별로 서로 다른 접합 성능을 구현할 수 있어, 다재료 하이브리드 구조 설계에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연구재단,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민군기술협력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지원을 받은 이 연구는 제조·생산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Virtual and Physical Prototyping'에 최근 게재됐다. ▶️ DOI: https://doi.org/10.1080/17452759.2026.2653924
친환경/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보이지 않는 결함까지 읽어낸다”… AI가 완성한 ‘금속 3D 프린팅 신뢰의 공식’
[숨은 기공 반영한 예측, 항공·자동차 ‘꿈의 소재’ 상용화 앞당길까] 가볍고 복잡한 형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제조업의 혁명’으로 불리는 금속 3D 프린팅.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결함’ 때문에 여전히 불안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AI’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금속 3D 프린팅 기술의 신뢰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통합과정 이정아 씨 연구팀이 한국재료연구원(KIMS) 박정민 박사 연구팀과 함께 금속 3D 프린팅 공정에서 생기는 미세 결함까지 반영해 소재의 강도를 예측하는 AI 기반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인 ‘악타 머티리얼리아(Acta Materialia)’에 게재됐다. 금속 3D 프린팅은 레이저로 금속 분말을 녹여 쌓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기포처럼 작은 ‘기공(공간)’이 생기기 쉬운데, 이 결함은 부품 강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특히, 항공기나 자동차처럼 극한 환경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지금까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많은 실험과 시간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발상을 전환했다. 결함을 제거하는 대신, 이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집중했다. 공정 조건과 미세 구조, 기계적 특성 데이터에 기공 정보까지 결합해 AI를 학습시키고, 중요한 변수만 골라내는 ‘데이터 선택형 머신러닝(DSML)1)’ 기법을 적용했다. 마치 의사가 CT 사진을 보며 병을 진단하듯, 금속 내부 미세 구조와 결함을 분석하게 한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결과만 제시하는 ‘블랙박스 AI’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기호 회귀2)(해석가능한 AI 방식)’를 활용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식 형태’의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수식은 기공이 많을수록 하중을 견디는 면적이 줄어 강도가 낮아지는 실제 물리 현상을 반영하여 AI가 ‘왜 그런 결과를 내는지’까지 설명한다. 연구팀은 항공기나 자동차에 쓰이는 대표적인 3D 프린팅 합금인 AlSi10Mg3)를 다양한 조건에서 제작해 검증한 결과, 복잡한 실험 없이도 수 초 만에 부품의 강도를 평균절대오차(MAE)4) 9.51MPa(메가파스칼) 수준으로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 대비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번 연구는 공정 조건에 따른 소재의 성능을 미리 설계할 수 있는 ‘결함 고려 설계 지도’로 이어질 수 있어, 소재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보이지 않는 결함까지 읽어내는 ‘AI의 눈’. 설계와 신뢰까지 책임지는 진정한 미래 산업 기술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논문 1저자인 이정아 씨는 "AI를 통해 결함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김형섭 교수는 “이번 기술은 금속 3D 프린팅 부품의 신뢰성을 높여, 항공과 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사업, KIMS 기본사업, 현대자동차그룹 지원을 받았으며, 이정아 씨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추진하는 학문후속세대 펠로우십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하였다. ▶️ DOI: https://doi.org/10.1016/j.actamat.2026.122101 1. 데이터 선택형 머신러닝(DSML, Data-Selective Machine Learning): 많은 데이터 중 결과에 중요한 정보만 골라내어 학습하는 인공지능 분석 방법이다. 불필요한 데이터를 줄이고 핵심 변수만 활용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2. 기호 회귀(Symbolic Regression): 유전 알고리즘을 활용해 데이터로부터 수학적 공식을 자동으로 도출하는 기계학습 기법. 블랙박스 모델과 달리 물리적으로 해석 가능한 형태의 방정식을 제공한다. 3. AlSi10Mg(Aluminum-Silicon-Magnesium alloy): 알루미늄에 실리콘과 마그네슘을 섞은 합금으로, 가볍고 강도가 높아 항공우주·자동차·3D 프린팅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량 소재이다. 4. 평균절대오차(MAE, Mean Absolute Error): 예측값과 실제값의 차이를 절대값으로 계산해 평균을 낸 지표로, 값이 작을수록 예측이 정확하다는 의미이다.
친환경소재/신소재 김형섭 교수 연구팀, 금속의 ‘헤테로’ 구조, 강도와 연성 동시에 높였다
[고엔트로피 합금 속 ‘경한 영역과 연한 영역 비율’ 조절해 강도·연성 향상] 금속은 강하게 만들면 깨지기 쉽고, 유연하게 만들면 약해진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딜레마에 POSTECH 연구진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POSTECH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합금 내부에 ‘헤테로’ 미세 구조를 만드는 전략으로 금속의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학술지 중 하나인 ‘머터리얼즈 리서치 레터스(Materials Research Letter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항공우주와 에너지, 국방 분야에서는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가 필수다. 이러한 요구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재가 바로 ‘고엔트로피 합금’이다. 일반 합금이 철이나 알루미늄처럼 한 가지 금속을 중심으로 다른 원소를 소량 섞는 방식이라면, ‘고엔트로피 합금’은 여러 금속 원소를 거의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다. 다양한 원소가 뒤섞이면서 독특한 결정 구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강도, 내구성, 내식성에서 기존 합금을 뛰어넘는 성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고엔트로피 합금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석출 강화’라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금속 내부에 작은 입자들을 고르게 분산시켜 외부 힘이 가해졌을 때 쉽게 변형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미끄러운 바닥에 작은 돌멩이를 흩어 놓으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금속 강도를 높일수록 잘 늘어나지 못하는 ‘강도-연성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팀은 기존의 ‘균일 강화’ 접근에서 벗어나 ‘구조적 대비’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금속 전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경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을 공존시키는 ‘헤테로’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연구팀은 고엔트로피 합금 내부에서 형성되는 두 가지 석출 방식에 주목했다. 결정 내부에 고르게 형성되는 ‘연속 석출’과, 결정 경계 주변에서 비교적 거칠게 형성되는 ‘불연속 석출’이다. 연구팀은 열처리와 기계적 가공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해 이 두 구조의 비율을 다르게 설계한 합금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기계적 특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불연속 석출이 더 많이 형성된 헤테로 합금에서 ‘항복 강도’(더 큰 힘을 견디는 능력)와 ‘변형 경화 능력’(변형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이 모두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경한 영역인 불연속 석출 영역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단한 영역과 상대적으로 연한 영역이 함께 존재하면, 힘을 받을 때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속도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추가적인 저항이 형성되고, 금속은 변형될수록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헤테로 변형 강화효과’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영역 간의 변형 차이가 추가적인 가공경화를 유도해, 기존 합금보다 더 높은 강도와 우수한 변형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제조 설비나 복잡한 공정 없이 이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열처리·기계 가공 공정만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어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이 높다. POSTECH 김형섭 교수는 “차세대 고강도 구조용 합금이 필요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논문 제1저자인 이재흥 씨는 한국연구재단 2025년도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 DOI: https://doi.org/10.1080/21663831.2026.2615167
환경 감종훈 교수 연구팀, 태풍은 재난일까, 가뭄 막는 생명줄일까
[태풍이 사라진 세계 가정한 분석 통해 가뭄 완화 역할 확인] POSTECH 감종훈 교수 연구팀이 태풍으로 인한 강수가 사라진 상황을 가정해 태풍이 전 세계 가뭄을 완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태풍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가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최근 지구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태풍은 흔히 홍수와 피해를 가져오는 재난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태풍이 남기는 비는 가뭄을 늦추고 물 순환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태풍의 부재가 가뭄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체계적으로 분석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 연구는 ‘태풍이 오지 않았다면 가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연구팀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지구 전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태풍 강수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가정하고 수문 모델 실험을 진행했다. 쉽게 말해, ‘태풍이 존재하는 세계’와 ‘태풍이 사라진 세계’를 나란히 놓고, 토양 수분, 하천 유출, 가뭄 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분석했다. 태풍 강수가 사라지는 경우 세계 곳곳에서 토양 수분이 급격히 줄어들고, 가뭄이 훨씬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 확인됐다. 특히, 태풍이 토양을 적시는 방식과 그 효과는 지역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오세아니아 같은 건조·반건조 지역에서는 태풍이 남긴 토양 수분이 1년 이내에 빠르게 사라졌으며, 태풍이 오지 않을 경우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다. 반면, 동아시아 같은 습윤 지역에서는 태풍 강수가 없더라도 토양 수분이 완전히 고갈되지 않았다. 이는 태풍의 부재가 어떤 지역에서는 가뭄을 촉발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을 악화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시대에 물 관리의 새로운 변수를 제시한다. 태풍 경로와 빈도가 변화하면, 일부 지역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가뭄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영향은 농업 생산을 넘어 수자원 관리, 도시 물 공급, 재난 대응 방식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번 연구는 태풍을 바라보는 관점도 확장한다. 감종훈 교수는 “태풍 상륙이 주로 홍수·피해의 관점에서만 논의됐지만, 태풍이 가뭄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태풍과 가뭄을 다같이 잘 모사할 수 있는 기후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 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 DOI: https://doi.org/10.1029/2025GL120290
친환경소재/신소재 김형섭 교수팀, 단단한 금속 유연하게 만든 ‘노른자·흰자 전략‘
[김형섭 교수팀, 단순 주조와 열처리만으로 금속 강도와 연성 잡는 신소재 개발] 금속 세계에서는 '강도'과 '연성(잘 늘어나는 성질)'을 동시에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면 부서지기 쉽고, 잘 늘어나도록 만들면 약해지는 등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로 한쪽이 내려가는 시소와 같은 관계였다. 그런데 최근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김형섭 교수팀이 이 상식을 깨뜨렸다. 기존에는 여러 금속을 비슷한 비율로 섞어 만든 '고엔트로피 합금*1'이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엔트로피 합금은 대부분 균일한 구조로 되어 있어, 금속의 강도와 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큰 결정립은 금속이 잘 늘어나게 해 연신율을 높이고, 작은 결정립은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어 강도를 높일 수 있으나, 한 금속 안에서 두 종류의 결정립을 동시에 갖기는 어려웠다. 최근에는 크기가 다른 결정립을 일부러 섞어 만든 비균질 구조가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려면 ‘분말야금(powder metallurgy)’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 기술은 금속 가루를 눌러 성형한 뒤 고온에서 다시 가공하는 방식으로, 뛰어난 성능을 얻을 수는 있으나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산업 현장에서 상용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POSTECH 연구팀은 니켈(Ni) 기반의 고엔트로피 합금에 뜨거운 상태에서 금속을 눌러 펴는 작업(열간압연)과 정밀 열처리를 적용해 금속 내부에 마치 달걀처럼 ‘코어–셸(core–shell) 구조’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코어(core)’는 기존의 큰 결정립으로 달걀노른자에 해당하고, ‘셸(shell)’은 그 둘레를 둘러싼 새로운 작은 결정립으로 달걀흰자와 같다. 이 과정에서 금속의 내부에 형성된 미세한 나노 입자(B2 석출물)가 작은 결정립들의 과도한 성장을 적절히 억제해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이와 함께, 마지막 열처리 단계에서는 결정립 경계에서 이 입자들이 선택적으로 형성되어, 금속에 힘이 가해질 때 쉘은 방패처럼 전위를 막아 강도를 높이고, 코어은 완충재처럼 충격을 흡수해 균열을 완화시킴으로써 재료가 단단하면서도 잘 부서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연구팀이 개발한 합금은 항복강도 1,029MPa(메가파스칼), 인장강도 1,271MPa, 연신율 31.1%라는 놀라운 성능을 기록했다. 쉽게 말해 기존보다 훨씬 더 단단하면서도 30% 이상 늘어날 수 있는 금속을 구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주조(녹여 틀에 붓는 방식)와 열처리만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연구를 이끈 김형섭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말야금 공정 없이도 복잡한 코어–셸 구조를 주조와 열처리만으로 구현한 첫 사례”라며, “정밀한 석출물 제어를 통해 구조 안정성과 변형 성능을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극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재 개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친환경소재대학원·신소재공학과 김형섭 교수, 신소재공학과 통합과정 박효진 씨 연구팀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최근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Journal of Materials Science & Technology’에 게재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 현대자동차그룹의 연구 지원을 받았다. DOI: https://doi.org/10.1016/j.jmst.2025.04.017 1. 고엔트로피 합금(HEA, High-Entropy Alloy): 고엔트로피 합금(HEA)은 기존의 전통적인 합금과 달리, 하나의 주 원소(base element)가 아닌 5개 이상의 원소가 유사한 원자비로 혼합된 합금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성으로 인해 높은 혼합 엔트로피를 가지며, 독특한 미세구조와 우수한 기계적 성질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