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2 겨울호 / POSTECH ESSAY
포스텍 교수님 이야기
나에게 맞는 지름길 찾기
* 1월 27일, 에세이와는 다른 매력의 고아라 교수님을 만나보세요!
고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관련해서, 제 경험이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한 이유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로 글을 써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에서 3년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한국 친구들 모두 알파벳은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고 회화도 기본적인 수준은 구사할 수 있었기에 알파벳부터 외워야 하는 저로서는 공부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장점은 약간의 집요함이었지만 암기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단점이었고, 그래서인지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요령 없이 발음만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수업에서 영어 문장을 읽고 직독 직해해야 하는 상황이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 상태로 대학에 진학하여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께서 분명 한국말로 수업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영어 단어가 많고 교재도 원서여서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대학교 1학년 때는 많이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생명과학 실험 수업에서 나름대로 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하였지만, C+를 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같은 학기에 들었던 일반화학 실험 수업의 보고서는 A+를 받았습니다. 암기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생명과학 과목들은 1학년 때의 점수가 좋지 않았는데, 화학과 과목은 원리를 알면 반응을 풀어낼 수 있어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부터 화학 복수 전공을 시작하였습니다. 화학 실험 후 discussion을 쓸 때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과정(이 당시 실험 리포트가 한 실험당 50페이지가 넘는 일도 있었답니다)이 흥미로워서 자연스레 전공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화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흥미와 함께 생명과학 과목들도 덩달아 재미를 느껴 졸업할 때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뛰어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곧 자신감이 되어 다른 부분에서도 충분히 성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했을 때 무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어에 대한 고민은 앞서 언급한 대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대학생 때까지 저를 괴롭혔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원서 내용 이해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외국인이 말하는 “How tall are you?”도 알아듣지 못한 것이 지속해서 스트레스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나름의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발음이 안 되면 단어가 외워지지 않아서 발음 기호를 찾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었습니다. 겨우 영어 독해 능력을 향상한 후에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발음을 중심으로 영어 공부를 진행한 덕에 영어 발표 수업도 무난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사 2년 차 때는 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6개월간 연구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가게 되었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제가 살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과 대화하며 각종 파티에도 참여하고, 다른 분야의 세미나도 열심히 들으면서 과학자로 사는 삶을 즐겁게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영어에 대한 현지인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으로 접근하면 되는구나’하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당시에 공부했던 방식이 국적에 상관없이 제 연구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현재의 직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학생들은 앞으로 점점 더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늦게 부족함을 깨닫더라도, 그것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학 입학 후에는 입시에 유리한 방식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있어, 조금 더 즐겁게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입학을 종점으로 생각하고 달리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 방황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입시라는 확실한 종점이 없기 때문에 방향성을 잃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서 자유롭게 그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어색해하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자신이 접근한 방법이 단기적으로는 실패로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 경험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는 시점이 분명히 옵니다. 물론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성적에 대한 압박을 경험하겠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 스타일대로 학습하고, 또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인턴을 해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동료 대부분이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을 택하는 것이 절대 틀린 것이 아닙니다. 10년 후에는 자신이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고 있는 선구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므로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포스텍은 학과를 입학 후에 결정할 수 있어, 자신이 생각한 분야 외에 다른 분야로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면 고등학교 때 꿈꿔왔던 학문이 본인 기대와 달랐을 때 다양한 돌파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의 3년이라는 시간이 힘들고 막막할 수 있지만, 거기서 삐끗한다고 해서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낙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으니, 굳이 지름길로 가지 않아도 천천히 주변을 보면서 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글 / 포스텍 생명과학과 고아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