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2 겨울호 /Science black box
간지럼의 과학
사람들은 친근함의 표시로, 혹은 내기에서 졌을 때, 때론 그냥 장난으로 상대방을 종종 간지럽힙니다. 온몸을 비틀며 웃는 상대를 보면 괜히 더 간지럽히고 싶은 장난기가 솟구치기도 하죠. 하지만 사람마다 간지럼을 전혀 타지 않기도 하고 때론 불쾌함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는 등 간지럼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이처럼 알쏭달쏭한 간지럼에 숨어있는 과학적인 원리를 함께 알아봅시다!
#1. 간지럼이란?
간지럼을 이해하기에 앞서 간지럼의 종류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1897년, 미국의 심리학자 그랜빌 스탠리 홀은 간지럼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는 ‘외부 자극에 의한 가려움(Knismesis)’입니다. 예시로 깃털을 이용해 팔을 살살 간지럽히는 상황이 있죠. 외부 자극에 의한 가려움은 아토피 피부염이나 두드러기 등의 피부질환으로부터 야기되기도 합니다. 가려움은 외부의 아주 약한 자극으로 발생하며 벅벅 긁거나 문지르고 싶은 행동을 끌어낸다는 특징이 있죠. 두 번째는 가려움보다 더 강한 촉감으로 발생하는 ‘웃음이 나는 간지럼(Gargalesis)’입니다. 우리가 흔히 ‘간지럽힌다’라는 상황이 이에 해당합니다.
피부 감각에는 통각, 촉각, 압각, 온각, 냉각이 있습니다. 그럼 가려움과 간지럼은 각각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과거에는 두 경우 모두 통각의 일종이며 통각의 세기가 약하면 가려움이, 강하면 간지럼이 생긴다고 여겨졌습니다. 1939년, 스웨덴의 신경생리학자 잉베 조테르만의 고양이를 이용한 실험을 비롯해 다양한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해왔죠. 하지만 최근 가려움은 통각이 아닌 별개의 촉각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습니다. 통각을 느끼는 통점은 다른 촉각들과 달리 기계적 자유 수용체Mechanoreceptor 1가 없는 자유 신경 말단Free Nerve Ending 2인데, 이 자유 신경 말단이 다시 가려움 신경과 통각 신경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웃음이 나는 간지럼 또한 통각으로만 볼 수 없음이 입증되었습니다. 1990년, 영국 신경질환국립병원 피터 나탄 교수는 척수손상으로 통증을 못 느끼는 환자들이 간지럼을 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간지럼이 통각을 포함한 다양한 촉각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설은 없지만, 촉각과 통각의 혼합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2. 간지럼은 왜 탈까?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따라서 가려움과 간지럼을 타는 이유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그 이유가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죠. 먼저 가려움의 경우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긁거나 문지르는 등의 행동은 벌레나 기생충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으므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진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지럼은 진화적으로 생긴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많은 가설이 있지만, 그중 방어 능력을 학습하기 위해 간지럼을 타게 되었다는 가설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목, 겨드랑이, 옆구리, 생식기 등 주로 간지럼을 타는 부위들의 공통점은 주요 혈관이 피부 가까이 위치해 상처를 입으면 위험한 급소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부위들에 자극이 가해지는 것을 피하도록,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자식의 급소를 가볍게 건드리면서 본능적으로 급소를 방어하게끔 학습시킨다는 것이죠. 이를 확장해 보면 간지럼이 친밀한 사람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진화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친밀한 사람끼리 가벼운 스킨십으로 취약 부위를 짚어주는 일종의 ‘생존 훈련’이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가설은 좋지 않은 자극인 간지럼으로부터 왜 웃음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도출되는지도 설명할 수 있는데요. 훈련을 시켜주는 사람이 계속 훈련을 지속하도록 유도하고자 간지럼을 당하는 사람이 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간지럼을 타면 웃음이 나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이 아닌 생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도 있습니다. 독일 훔볼트대 베른스타인센터 마이클 브렛 연구원팀은 2016년 쥐 실험을 통해 특정 뇌 부위를 자극하면 간지럼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쥐는 간지럼을 탈 때마다 50kHz 영역의 짧은 웃음소리를 냅니다. 연구진은 간지럼을 태울 때 촉각을 처리하는 뇌 영역인 체지각 대뇌피질Somatosensory Cortex 3이 활성화되어 이에 대한 반응으로 쥐가 소리를 냄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실을 이용해 체지각 대뇌피질에 전류를 흘려 넣었더니 간지럼을 태웠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3. 자신을 스스로 간지럽힐 수 없는 이유
우리는 왜 자신 스스로를 간지럽힐 수 없는 걸까요? 촉각에는 ‘감각 감쇠Sensory Attenuation’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 감쇠는 내가 나의 몸을 만질 경우 그 강도가 실제보다 약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를 ‘몸 소유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내 몸을 소유한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모든 행동이 예측 가능해 뇌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고무손을 내 몸의 일부로 착각하게 만들면, 고무손이 내 몸을 만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감각 감쇠가 일어날까요? 네, 그렇습니다. 고무손을 내 몸의 일부로 착각하는 현상을 ‘고무손 착각Rubber Hand Illusion’이라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감각 감쇠의 원인이 몸 소유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 고무손 착각으로 감각 감쇠 현상이 몸 소유권에 따른 현상임을 보인 실험
[출처]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703347114
1998년, 미국 피츠버그대 정신과 매튜 보츠비닉 교수와 카네기멜론대 심리학과 조너선 코헨 교수가 처음 ‘고무손 착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이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고무손을 진짜 손으로 착각했을 때 전두엽4의 전운동 피질5이 활성화됨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신경과학과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감각 감쇠의 원인이 몸 소유권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선, 피실험자의 왼손 검지와 오른손 검지에 센서를 부착합니다. 이후 왼손 검지에 힘을 가하면, 피실험자가 본인이 생각하는 받은 힘을 오른손 검지로 누르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왼손 검지와 고무손을 겹친 뒤 진짜 오른손은 25cm 떨어뜨립니다. 대부분의 피실험자는 고무손이 보이지 않는 경우(고무손 착각이 일어나는 경우)에서 감각 감쇠가 일어나 실제보다 더 강하게 눌렀습니다. 또한 고무손을 180도 돌려 다른 사람이 누르는 상황(고무손 착각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을 연출하였더니 감각 감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간지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눈치채셨겠지만, 간지럼은 최근까지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어릴 적 한 번쯤 궁금증을 가질 법한 간지럼에 대해 이렇게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여러분들도 항상 주변 사물과 현상, 환경에 의문을 가지고 왜 그럴까 고민해 보는 습관을 지녀보시는 건 어떨까요? 별거 아니라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이러한 태도가 바로 과학자처럼 사고하는 첫걸음이니까요!
글 / 무은재학부 22학번 28기 알리미 윤정현
[각주]
1. 기계적 자유 수용체 : 기계자극을 받아서 최종적으로 구심성 충격의 발생을 일으키는 수용기
2. 자유 신경 말단 : 신호를 감각뉴런으로 보내는 비특화 구심성 신경 섬유
3. 체지각 대뇌피질 : 대뇌의 표면에 위치하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인 대뇌피질 중 촉각을 일차적으로 처리하는 부분
4. 전두엽 : 대뇌반구의 앞에 있는 부분으로 기억력, 사고력 등을 주관하는 기관
5. 전운동 피질 : 뇌의 전두엽에 위치한 운동피질 부분으로 과거 경험에서 비롯한 움직임을 저장하는 것을 도움
[참고자료]
1. 「[과학동아] 간지럼 탈 때 나는 웃음… 웃는게 아니야」, 『동아사이언스』, 2019.06.21,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1431700&memberNo=36236175
2. 신수빈, 「간지럼 느끼는 뇌 부위 찾았다」, 『동아사이언스』, 2016.11.13,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14699
3. 강석기, 「스스로 간지럼 태울 수 없는 이유 」, 『ScienceTimes』, 2017.08.04,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스스로-간지럼-태울-수-없는-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