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3 178호 / Science black box
‘박사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노벨상 수상자들
노벨상은 ‘매년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상으로, 과학자 대부분이 목표로 하는 상이기도 합니다. 보통 노벨상은 연구를 많이 하는 위치에 있는 박사나 교수들이 수상하는데요. 박사 학위는 ‘한 명의 학자로서 홀로 설 수 있는 독립적 연구자’임을 뜻하며, 대부분의 교수 임용 자격에서 박사 학위를 요구하듯, 박사 학위는 연구자로서 당연한 학위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 박사 학위 없이도 노벨상을 받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다나카 고이치 Koichi Tanaka
다나카 고이치는 학계와 관련 없는 민간 연구원이었습니다. 당시 민간 연구원이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사례는 다나카 고이치를 포함하여 오직 4번뿐이었죠. 그는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Soft Laser Desorption, SLD)을 개발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는데요.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은 다른 말로 연성탈착 이온화 질량분석(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 MALDI)¹ 이라고 하며, 거대분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는 당시 단백질 분자의 질량을 이온화를 통해 측정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레이저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단백질 시료에 레이저를 쏘니, 빛과 열 때문에 시료가 손상되어 버린다는 문제점이 있었죠. 그래서 그는 시료를 보호할 용액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분자량이 약 1,350인 비타민 B12의 질량 측정을 준비하던 다나카는 실수로 아세톤이 아닌 글리세린에 시료를 섞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글리세린이 시료의 손상을 줄여주고 레이저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이온화를 촉진함을 발견합니다. 그 덕분에 비타민 B12의 이온화에 성공했고, 단백질의 구조를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다나카는 레이저를 이용한 고분자 단백질을 분석하는 기법을 개발할 수 있었죠.
그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을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2002년 10월 회사에서 근무하던 다나카는 노벨상 수상 전화를 받게 되는데요. 통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받는 상이 노벨상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또한, 회사에는 ‘다나카 고이치’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3명이나 있었기에 본인이 노벨상 수상자인지 몰랐다고 하네요!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동명이인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투유유 Tu Youyou
중국 국적의 베이징대학 출신인 투유유는 말라리아의 치료제를 개발하여 201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중국 여성 중 최초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았죠.
당시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말라리아의 치료를 위해 ‘523 임무²’를 지시했습니다. 투유유는 당시 베이징의학원에서 약학을 공부한 후, 중국중의과학원에서 전통 약초와 서양의학을 함께 연구하고 있었는데요.
1969년 중국 정부는 그녀를 523 임무의 보조 연구원으로 배정했죠.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그녀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만들어져, 그녀는 수천 가지의 천연 식물을 이용하여 치료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국화 쑥 속의 한해살이풀인 개똥쑥에서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풀 속에 있는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라는 성분이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아르테미시닌은 열에 취약했기에 그녀는 저온에서 활성화되는 다이에틸 에터(Diethyl ether)를 이용하여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했습니다.
하지만 투유유의 업적은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이루어져, 연구내용을 발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1년에 그녀가 중국인 최초로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래스커 상(Lasker Award)을 받으며 그녀의 업적이 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녀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벽 때문에 석사 학위, 박사 학위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해외 유학 경험도 없었죠. 하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그녀는 인류에 공헌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잭 킬비 Jack Kilby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공학자로, 집적회로를 발명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수상할 당시 잭 킬비는 박사 학위가 아닌 석사 학위를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947년 일리노이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센트럴랩에서 세라믹 기반 실크스크린 회로³를 디자인하고 개발했습니다. 이후 그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에, 그는 역사에 남을 발명을 하게 되는데요. 1959년 반도체 공정으로 1개의 게르마늄 칩 위에 소자들을 집적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최초였으며, 비록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보를 작은 사이즈의 칩 속에 집적할 수 있었기에 그의 발명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죠. 킬비는 이를 통해 토머스 에디슨, 라이트 형제, 헨리 포드와 함께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많은 특허를 취득하며 과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발명한 집적회로는 20세기 최고의 발명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집적회로 덕분에 전자산업이 발전하게 되었고, 현재 모든 전자장비에 이 집적회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와 같은 가전기기들은 저렴한 가격의 집적회로 덕분에 우리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박사 학위 없이도 노벨상을 받은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연구를 많이 하기 위해서는 박사나 교수가 유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가 필수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꼭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목표로 하는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고방식과 열정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다나카 고이치와 투유유, 그리고 잭 킬비처럼 우리 모두 열정을 가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글) 수학과 21학번 27기 알리미 김도영
[각주]
1. 레이저 에너지를 흡수하는 매트릭스(기질, matrix)를 이용하여 크기가 큰 분자로부터 파편화를 최소화하면서 이온을 만들어내는 이온화 기법
2. 1967년에 중국 정부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하여 진행한 비밀 군사 프로젝트로, 암호명은 프로젝트 시작 날짜인 5월 23일에서 유래되었다.
3. 실크스크린은 전자부품을 인쇄 배선판의 표면에 고정하고 각 부품을 구리 배선으로 연결해 전자 회로를 구성한 판인 인쇄 회로 기판(Printed Circuit Board, PCB)에서 가장 바깥에 위치한 층이다. PCB에 대한 주석, 부품 번호, 로고, 버전 정보 등의 내용을 표시하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연성탈착 이온화 질량분석법 개발 (다나카 고이치_Koichi Tanaka)」, 『BRIC 동향』, 2021.11.10.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36195
2. 「박사 학위 없어도 노벨상 받았던 여성 과학자」, 『주간동아』, 2020.10.27. https://weekly.donga.com/List/3/08/11/2223477/1
3. 「2005년 6월 20일, 미국의 과학자 잭 킬비 (Jack St. Clair Kilby, 1923 ~ 2005) 별세」, 『크리스천 라이프 & 에듀 라이프』,
2005.06.20.
http://chedulife.com.au/2005%EB%85%84-6%EC%9B%94-20%EC%9D%BC-%EB%AF%B8%EA%B5%AD%EC%9D%98-%EA%B3%BC%ED%95%99%EC%9E%90-%EC%9E%AD-%ED%82%AC%EB%B9%84-jack-st-clair-kilby-1923-2005-%EB%B3%84%EC%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