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3 180호 / Science black box
연구 대상이 된 신체 조직, 무단으로 사용했던 거라고?
21세기에 들어 생명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전공학 분야에서 CRISPR-Cas9을 통해 DNA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합성 생물학 분야에서는 높은 정확성으로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생명과학의 발전은 식량, 의료, 환경보존 등 많은 분야에서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무시되었던 윤리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죽은 사람의 신체 조직을 무단으로 연구한 사례가 있다는 사실, 충격적이지 않나요? 그럼, 본인의 동의 없이 신체 조직을 연구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각난 채 연구된 아인슈타인의 뇌,
본인은 원하지 않았다고?
여러분은 천재 과학자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이 떠오릅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바꾸고,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등의 업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았습니다. 높아진 명성만큼 수많은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지능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본인도 그 호기심 어린 시선을 알고 있었고, 사후 자기 몸이 연구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가족들에게 화장을 당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인슈타인의 죽음 후, 가족들은 그가 바란 대로 화장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몇십 년 뒤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뇌가 발견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간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의 부검을 맡았던 프린스턴 병원의 의사, 토마스 하비 박사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뒤집어 놓은 천재의 뇌는 얼마나 다를까?”라는 탐구심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하는 것이 과학과 인류에 대한 책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사는 분노한 유가족들을 과학적 목적으로만 뇌를 사용하겠다는 조건으로 설득했고, 결국 정식으로 아인슈타인의 뇌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1. 포롬알데하이드에 박제된 아인슈타인의 뇌(상), 240개로 조각난 뇌(하)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를 알아내기 위해 토마스 하비 박사는 뇌를 240조각으로 잘게 쪼개 전 세계의 연구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1,200g으로, 일반인 남성 뇌의 무게가 1,400g 정도인 것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특이한 점은 공간 지각 능력, 수학적 사고의 역할을 하는 두정엽(Parietal Lobe)이 일반인보다 15~30%가량 컸다는 것입니다. 두정엽 외에도 전두엽(Frontal Lobe)과 후두엽(Occipital)의 여러 영역에서 주름이 많고 굴곡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가장 차이가 클 것으로 예상되었던 뉴런(Neuron)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뉴런의 기능을 지원하는 신경아교세포(Glia Cell)가 일반인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지금까지도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 평생토록 연구했던 천재 과학자에게 고인이 되어서까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옳을까요?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한 헬라 세포,
과학계의 인종차별이라고?
1951년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헨리에타 랙스라는 환자가 자궁 경부암을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녀의 자궁 암세포 조직이 몸 밖에서도 끊임없이 분열하는 것이었습니다! 헨리에타 랙스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연구자들은 그녀의 치료 과정에서 채취한 세포를 무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들은 환자의 이름과 성을 두 글자씩 따서 헬라(HeLa) 세포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세포를 계속해서 배양했습니다. 인간에게서 불멸의 세포주2 (Cell Line)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림 2. 헨리에타 랙스(좌), 헬라 세포(우)
헬라 세포는 동일한 조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무척 중요한 재료였습니다. 끊임없이 분열하고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성장하며 발달과 특성이 일관적이어서 예측이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의 몸에서 추출된 세포는 과학사적으로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지표는 지금까지 배양된 헬라 세포의 무게와 헬라 세포를 이용한 연구 논문 수입니다. 현재까지 배양된 헬라 세포의 무게는 무려 5,000만 톤이며 연구 논문 수는 6만여 편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헬라 세포는 어떻게 끊임없이 분열할 수 있을까요? 이는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단백질 인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세포주기를 끝내는 단백질 인자가 돌연변이에 의해 억제됨으로써 세포주기가 지속되는 것이 헬라 세포가 증식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헬라 세포는 암, 바이러스 증식, 유전자 조절, 단백질 합성, 약제의 효과 확인 등 다양한 연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헬라 세포주는 70년 가까이 증식을 이어오며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 최초의 체외 수정법, 최초의 복제 세포 개발 등에 기여하여 전 세계 의학과 생명과학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림 3. 헬라세포를 이용한 연구 업적
그러나 헬라 세포는 뚜렷한 장점과 함께 커다란 윤리적 문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헬라 세포는 최초의 불멸 세포주임과 동시에 최초로 세포 기증자의 동의 없이 사용된 세포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헨리에타 랙스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계 인종차별의 일종으로 그 당시에는 흑인 또는 여성의 실험 세포와 조직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의 동의 없이 세포주가 무단 사용되었다는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헨리에타 랙스의 유가족들은 지난 70년 동안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피험자의 동의 여부, 생물의학 데이터 소유권 등의 권리가 중요시되기 시작한 최근에서야, 유가족들은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윤리 문제들은 우리가 현대 의학과 생명 과학의 발전과 함께 직면하게 된 중요한 고민 중 하나입니다. 헬라 세포와 아인슈타인의 뇌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의료기록이 공개되거나 유전자 정보가 온라인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생체 데이터가 동의 없이 공개되는 일은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과학 발전을 위해 우리 함께 노력해 봅시다!
(글) 무은재학부 23학번 29기 알리미 황현준
[각주]
1. 중추신경계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주요한 세포로, 전기적 신호를 통해 뇌와 신경계를 조절하는 세포의 집합.
2. 균일한 조직에서 유래된 세포집단으로 동일한 유전적 특성을 가지는 세포 계통.
[참고자료]
1. 윤신영. “세포로 의학 발전에 공헌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동아사이언스」. 2020년 9월 11일.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39654.
2. Verginia Hughes. “The Tragic Story of How Einstein’s Brain Was Stolen and Wasn’t Even Special.” 「National Geographic」 April 21, 2014.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science/article/the-tragic-story-of-how-einsteins-brain-was-stolen-and-wasnt-even-special.
3. Zielinski Sarah. “Henrietta Lacks’ ‘Immortal’ Cells.” 「Smithsonian」. January 22, 2010.
https://www.smithsonianmag.com/science-nature/henrietta-lacks-immortal-cells-6421299/.
[그림출처]
그림 1. 이준엽. “아인슈타인 뇌 240조각 분석해보니…’충격’.” 「MBN뉴스」. 2017년 3월 3일.
https://m.mbn.co.kr/news/society/3157096.
人民网. “美박물관에 전시된 아인슈타인 뇌조각 ‘세상에 이런 일이’.” 「머니투데이」. 2015년 5월 15일.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5052611158875283.
그림 2. 변희연. “생명 구한 흑인 여성의 ‘불멸 세포’, 72년만에 보상받는다.” 「조선경제」. 2023년 8월 3일.
https://www.chosun.com/economy/science/2023/08/02/YZXCYYE2GVCXRITBRBMBV5KBEA.
그림 3. 김한별. “인류가 빚진 헬라세포 … 불멸의 삶 2막 열리다.” 「중앙일보」 . 2013년 8월 12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285947#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