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4 181호 / 포라이프
공대생이 작곡가가 되기까지
(버스킹)
어려운 수학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고, 물리학 법칙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흥분했던 제가 포스텍에 처음 입학한 순간의 설렘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다’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포스텍에 진학하였습니다. 단순히 인간이 편리해지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은 게 아닌, 인간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음악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중학교 때 처음 배운 실용 음악 피아노1 덕분에 음악에 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실용 음악은 제게 악보에 적히지 않은 음들도 상상해서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아무런 악보 없이도 즉흥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 혼자 음악실에 가서 그 순간의 기분을 즉흥 연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음악에는 저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밴드공연)
한때 음악 쪽 진로를 고민하기도 하였으나, ‘너는 공부도 잘하니까 음악은 취미로 하면 된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설득되어 일찍이 음악에 대한 꿈을 내려놓은 채로 스무 살의 공대생이 되었습니다. 새내기였던 저는 당시 작곡 동아리였던 ‘GT LOVE’2에 가입하여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400곡이 넘는 수많은 무대에 참여했고, 후배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며 연주의 즐거움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은 공대생인 제 삶에 점점 깊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동아리 활동 외에도 저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연주한 음악 영상을 올리고, 교내 버스킹도 십여 차례 기획하였습니다. ‘공대는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깨고 싶었고, 공부로 지쳐 있을 사람들에게 지나가다가 마주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주고 싶었습니다. 버스킹을 수차례 진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버스킹의 장소 선정이나 준비 부족 등의 문제로 누군가에게 소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음악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건 매 버스킹과 공연마다 노래를 듣는 관객의 행복한 미소들이 있었고, 음악으로 인해 치유를 받고 즐거움을 얻었다는 관객들의 감사한 후기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창의설계)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음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공학을 결합하여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고, 학과 전공 수업인 ‘창의설계’3에서 ‘사람과 함께 합주하는 AI’, ‘작곡가의 화성 편곡을 도와주는 AI’와 같은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음악과 IT 기술에 관해 공부하는 일은 흥미로웠고, 오디오 정보를 정보화, 수치화하는 다양한 기술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어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정형화할 수 없는 이론 밖의 영역이었기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즈음 저는 다시 진지한 진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시간을 많이 쓰고 즐겁게 한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니 그해 저는 음악에 가장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았고, 그다음으로 친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그리고 정작 코딩과 공부에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음악을 진로로 선택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요소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강사’라는 직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곧바로 휴학 후 상경하여 수학 강사로서 일하게 되었고, 서울에 온 김에 음악을 더 배우고자 실용 음악학원도 등록하였습니다. 그때 실용 음악학원 원장님께서 제게 재능이 있다며 예대 작곡 입시를 권유하셨고, 음악에 진심이었던 저는 전공생들과 실력을 겨뤄볼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승낙하였습니다. 화, 목, 토요일에는 수학 선생님, 나머지 요일에는 예대 입시생이 되어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제가 교육보다 음악에 훨씬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9월에 수학 강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포스텍 졸업을 위해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으며 입시를 병행했죠. 다른 입시생보다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부족했기에 최선을 다할 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었습니다.
(예대입시)
예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덕분에 저는 작곡에 있어 제가 남들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공대생이라는 저의 개성을 살려 자작곡에 수학적인 요소들을 삽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음악으로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직업으로서의 음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은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가장 잘한 점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5살부터 쉬지 않고 지금까지 피아노를 쳐왔다는 점, 즉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는 점일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기적적으로 실용음악 분야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두 대학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서울예술대학교’로의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진로를 변경하게 된 저는 지금도 포스텍에 입학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포스텍은 지금의 제 성격과 가치관,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저에게 개성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공대였기에 음악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마음껏 해볼 수 있었고, 오히려 일찍이 스무 살에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면 지금처럼 순수하게 음악을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경험이든 잘 생각해 보면 배울 점이 있었고, 헛된 것은 없었습니다.
포스텍에 입학한 후 수학 강사로 일하다가 서울예대에 진학하는 커다란 변화들은 마법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무엇을 위해 살까’, ‘어떤 사람이 될까’와 같은 고민을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것이 제가 실천해야 할 이유이자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막 서게 된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더 빨리, 확고한 진로 결정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여러분 또한 공학자든, 예술가든, 혹은 여러분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이 포스텍이라는 울타리 안이든, 그 어디에서든 말이죠! 사실 저는 ‘커서 뭘 하고 싶냐?’는 식의 질문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는 저의 꿈은 미래의 일이 아닌, 오늘의 제가 작게나마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현재, 혹은 오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미래에도 꼭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글. IT융합공학과 17학번 김승일
[각주]
1. 또는 재즈피아노, 오선지 없이 코드(chord)를 보고 연주하는 방법을 배움
2. 현재는 버스킹 동아리로 분류되어 있음
3. IT융합공학과에서 졸업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연구 과목으로, 총 네 학기에 걸쳐 학기별로 IT 기술을 활용하는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교수님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지속해서 보완하여 결과물을 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