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4 182호 / HELLO NOBEL
[2023 노벨 화학상 이야기]
양자점, 빛의 마법으로의 안내
2023년 노벨 화학상은 수 나노미터 수준의 반도체 나노입자인 양자점의 발견에 기여한 세 명의 과학자 모운지 바웬디, 루이스 브러스, 그리고 알렉세이 예키모프에게 돌아갔습니다. 특히 반갑게도 MIT 모운지 바웬디 교수는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지도교수이기도 하여 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바웬디 교수는 자유롭고 깊은 사색을 좋아하는 철학자 타입의 교수며, 무엇이든지 탐구할 수 있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같이 연구하면서 받은 지적 자극과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자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입자 크기가 빛의 색깔을 결정하는 양자점을 발견하고 합성에 기여한 세 사람의 업적을 살펴보면서 양자점의 기술 발전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대의 연금술사
고대부터 중세까지 연금술사들은 황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실험 화학이 정립되고 현대 화학의 기초 지식을 마련하고 금속 및 세라믹 기술이 크게 발전하는 모태母胎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금술을 통해 화학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확산되었고, 연금술은 허황한 꿈이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죠. 비록 현대 과학 기술로는 화학적인 반응을 통해 납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이번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모운지 바웬디(Moungi G. Bawendi)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루이스 브러스(Louis E. Brus) 명예교수, 前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소속의 알렉세이 예키모프(Alexey Ekimov) 박사의 양자점 나노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값싼 돌멩이를 나노크기로 쪼갬으로써 형형색색의 빛을 내는 쓸모 있는 물질로 전환하는 현대의 연금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 1. 값싼 카드뮴 기반의 물질을 유용한 형형색색의 양자점으로 만들 수 있는 현대의 연금술. (출처: Funcmater, Chemistry World)
그림 2. 202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양자점의 발견과 원리 규명, 왼쪽부터 모운지 바웬디, 루이스 브러스, 알렉세이 예키모프.(출처: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Columbia University, Nexdot)
그림 3. 입자 크기에 따라 전자의 분포 공간이 달라 다른 에너지의 빛을 내는 양자점.(출처: 노벨상 위원회)
양자점 인공분자로 자연의 색을 구현하다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3인의 과학자 외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지난 30여 년 동안 양자점의 합성법을 개량하고 특이적인 광학적, 전기적 성질을 분석하여 양자점의 특성을 향상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양자점 인공원자로 순수한 색을 표현하는 기술을 완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양자점을 디스플레이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현대 사회에서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회사들이 자연의 순수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양자점 디스플레이 제품을 출시하여 선보이고 있습니다. 물질의 크기를 조절하여 특성을 변화시키는 양자점 자체의 기술도 대단하지만, 기초연구를 통해 산업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부분도 주목받을 만한 대단한 연구였습니다.
양자점 디스플레이에서 하나의 서브 픽셀 내에는 대략 108~1,010개의 양자점이 채워집니다. 양자점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입자 크기가 그 색깔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비록 하나하나의 양자점은 자연의 색을 모사할 수 있는 생생한 빛을 낼지라도, 픽셀 내에 여러 크기의 양자점이 혼재되어 있다면 크기별로 서로 다른 색깔이 섞여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색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주형鑄型을 이용하여 동일한 모형의 물질을 찍어내듯이, 양자점 합성 비커에서 동일한 크기 및 모양의 입자를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양자점이라는 나노물질이 크기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으나, 연구에 응용하기에는 재료와 기술이 불충분한 상황이었죠.
MIT의 바웬디 교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끓는 기름과 계면활성제를 함께 활용해 양자점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하여 1993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하였습니다. 섭씨 300도 정도의 매우 뜨거운 기름과 계면 활성제가 혼합된 용액에 양자점을 구성하는 원소가 포함된 유무기 분자체를 재빠르게 주입하여 양자점 씨앗 물질을 만들고, 반응 온도 및 농도를 제어하면서 양자점의 균일한 결정 성장을 유도하였습니다. 물 대신 끓는점이 높은 기름을 반응 용매로 사용하여 양자점 합성 온도 범위를 확장하고, 반응 전구체 후보물질을 다양화하여 다양한 크기의 양자점 입자를 균일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뜨거운 용액에서 입자를 성장시켜 결정성을 향상하고 내부 결정 결함을 줄여 뛰어난 발광성을 가지는 고품질의 양자점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웬디 교수는 이와 같은 고온열분해법 양자점 합성법을 통해, 까만색 돌덩이의 카드뮴셀레나이드 반도체 물질을 나노 크기로 선별 합성하여 무지개 색깔의 밝은 빛을 내는 연금술을 선보였습니다. (그림 4)
그림 4. 서로 다른 색깔을 내는 카드뮴 기반의 양자점 용액 (출처: MIT 바웬디 교수 연구실)
그림 5. 색순도가 높은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발광 파장(왼쪽)과 상대적으로 색순도가 낮은 기존 디스플레이 발광 파장(오른쪽) (출처: 삼성 디스플레이)
이와 같은 혁신적인 양자점 합성 기술이 발표된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양자점 합성 및 분광학적 분석 연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에너지 장벽이 큰 무기물 껍질로 양자점을 보호하는 핵/껍질 구조의 양자점 합성법이 추가로 발표되면서 양자점의 발광특성과 안정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밝기, 색순도, 안정성이 모두 확보된 인화인듐(InP) 기반의 양자점 소재를 양산하는 기술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완벽히 분리된 청색, 녹색, 적색의 순수한 삼원색의 조합으로 자연의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양자점 디스플레이가 제품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림 5) 양자점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양자점 분야의 노벨상 수상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림 6. 양자점 디스플레이 텔레비전의 원리 (출처: 삼성 디스플레이)
그림 7. (왼쪽) 2023년 여름 노벨상 발표가 있기 몇 개월 전,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QD&PV 연구회 해외석학초청 워크샵 (오른쪽) MIT 모운지 바웬디 교수 강연. 강연을 마치고 청와대 관람, 모운지 바웬디 교수 왼쪽에서 두 번째, 필자 오른쪽 끝 (출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QD&PV 연구회)
우리나라의 양자점 기술은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양자점 디스플레이 기술을 산업화하였으며, 학계 및 연구계에서도 고품질의 양자점을 합성하고, 이를 LED 디스플레이, 센서, 에너지 기술로 활용하는 연구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모운지 바웬디 교수를 비롯하여 양자점 연구의 석학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기술 교류를 하며, 해외석학들이 한국의 양자점 연구자들과 활발한 토론을 하면서 양자점 기술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기반으로 국내외 양자점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양자점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고 발전되기를 고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글. 포스텍 화학과 김성지 교수
(무은재 석좌교수, 시스템생명공학부 주임교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위원, 과학기술특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