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4 182호 / POSTECH ESSAY
지구를 지키는 연구자에 도전해 보세요.
연구자의 삶을 꿈꾸는 전국의 고등학생들과 포스테키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정말 이상하죠? 갈수록 이상기후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전 지구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데요. 먼저 제가 수행하고 있는 기후과학 분야에서는 무슨 연구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간단히 소개해 드리고, 제가 기후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과정과 그동안 경험을 통해 느낀 점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 연구 분야는 기후변화의 원인 및 전망으로서, 특히 지구온난화에 따라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폭염, 호우, 태풍 등의 이상기후 현상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파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가올 미래에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들이 얼마나 증가할지를 예측하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이상기후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하나뿐이기에 직접 실험할 수가 없다는 점인데요. 이 때문에 실험 대신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진 가상의 기후모델을 시뮬레이션해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상청에서 슈퍼컴퓨터로 날씨를 예측할 때 사용하는 일기예보 모델과 거의 같지만 온실가스나 화산 폭발 등 다양한 기후변화 원인을 고려하여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시뮬레이션을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를 기후모델에 입력한 경우와 이를 제거한 경우의 기후모델 시뮬레이션 결과를 비교해 보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전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극단적인 이상기후의 증가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더욱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극한 호우라고 불리는 시간당 극한 강수인데요. 최근 우리나라에도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단기간에 좁은 지역에서 집중으로 쏟아지는 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나는 규모의 시간당 100mm를 초과하는 폭우가 거의 매해 발생하면서 산사태와 침수로 인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주고 있는데요. 관련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겪고 있는 극한 호우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추후에 지구온난화가 심해짐에 따라 극한 호우가 얼마나 빈번해지고 강해질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극단적 호우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동반한 대류현상을 수반하는데, 이러한 대류현상을 정확히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km 규모의 해상도를 가지는 고해상도 기후모델이 필요합니다. 고해상도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온난화가 강해질수록 수증기가 많아지면서 시간당 극한 강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반면, 온난화 수준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유지한다면 극한 호우의 발생이 확연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극한 호우를 포함한 이상기후 현상의 미래 전망은 기후모델, 관측자료, 물리적인 이해 등 여러 한계로 인해 매우 불확실하며,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미래 이상기후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우리 연구팀의 최종 목표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이렇게 이상기후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후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좋은 스승님들이 계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가는데요. 물리 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선생님과 진로를 상담했는데 앞으로 지구환경 문제가 아주 중요하게 될 거라고 하시면서 그때는 다소 생소했던 대기과학과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물리학과나 컴퓨터공학과가 가장 인기 있던 시절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나름 지구과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서울대 대기과학과에 입학하여 좀 더 깊이 공부하다 보니 실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대기를 공부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가 생겼고 이후 기후 분야의 중요성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기상청 기상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요. 독일과의 기후변화 공동연구를 담당하게 되어 본 대학과 함부르크에 있는 막스 플랑크 기상연구소에 여러 번 방문하면서 기후변화 모델링의 최첨단 연구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때 저를 지도해 주신 독일 교수님과 기상청 기상연구소 박사님들의 권유에 따라 독일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독일 유학 이후 캐나다 환경부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인위적 기후변화 분석 연구를 이끌고 계신 박사님들로부터 깊이 있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모든 상황마다 저를 이끌어주신 선배님들이 계셨고 그분들을 통해 새로운 길로 연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연구를 하든 꼭 필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저도 막연한 꿈을 꾸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다양한 곳에서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지요.
1. 독일 본 대학 재학시절(2005년)
2. 독일 본대학 박사 디펜스 후 지도교수님과(2006년)
3. 캐나다 환경부 재직시절 스승님들과(2008년)
국내뿐만 아니라 독일, 캐나다, 호주 등 다양한 나라의 국가연구소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한 경험은 제게 매우 특별했습니다. 국가별로 관심 있는 분야도 달랐지만, 연구 시스템과 분위기에도 크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조직이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뉴얼도 잘 만들어져 있어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다음 단계로 잘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정교함이 요구되는 기후모델링 분야에서 독일이 세계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것도 이러한 연구 환경이 중요하게 작동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캐나다 환경부 연구소의 경우에는 연구자가 해당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었는데요. 연구과학자를 뽑을 때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로 간주하는 개념이었어요. 또한 북극지방에 큰 영토를 갖고 있는 만큼 기후변화 연구에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호주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프로젝트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되면서 많은 팀이 다양한 회의를 통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이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넓은 영토에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이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이렇게 국가마다 연구 환경이 달랐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구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연구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였다는 점입니다. 결과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에서 꼭 필요한 덕목임을 많이 느꼈고, 포스텍의 학생들과 연구원들에게도 자주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텐데요. 끈기 있게 잘 버티면서 중간중간 여유를 갖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홍보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융합연구의 시대에 필요한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 포스텍 환경공학부에서는 작년부터 학부에 “환경융합부전공”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기오염, 물 환경, 환경 관측, 환경 생태 등 환경 관련 과목 4개와 타 학과에서 제공하는 선택과목 3개를 수강하면 되는데요. 지구에 닥친 여러 환경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포스텍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글. 포스텍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님